모스크바는 9월 말이 되면서 아파트에 스팀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기온이 급격하게 저점으로 내리닫고 있기 때문이다. 기온의 급격한 변화는 가을의 정취를 느끼기도 전에 초겨울에 접어들고 있는 느낌이다. 벌써부터 긴긴 겨울의 기초를 닦고 있는가!

성급하게 흩어진 낙엽들이 이리저리 뒹굴기도 하지만 소복이 쌓인 낙엽들은 대지를 품고 무언가를 잉태하는 듯한 따스함과 여물어 가는 모습을 보인다. 한참 바라보고 있으면 아직 못다 한 일들을 완성해야 한다는 조급함도 동시에 갖게 된다. 러시아의 가을이 깊어가면서 가을에 걸맞는 사람이 생각나 소개하고 싶다.

모스크바에서 서북쪽으로 80km 정도 가면 차이코프스키 박물관이 있다. 그곳에 도착하기까지의 도로는 그야말로 살아있는 그림 그 자체이다. 끝없이 두 줄로 길게 늘어서 팔랑이는 자작나무 잎들은 환영 인파라도 되는 듯하다. 진한 단풍으로 물들어 길 가는 이들에게 풍부한 시상을 제공해 준다. 그곳에는 아직도 250년 전에 그가 치던 피아노가 한 달에 한 번씩 연주되고 있다.

가난한 어린 시절, 그의 음악적 재능을 알게 된 어떤 여인이 그에게 제안을 한다. “내가 가진 별장에 가서 피아노를 치고 작곡을 하면서 음악공부를 하라”고. 그는 이유 없는 호의를 거절하지만, 반복되는 편지를 받고서 세계인을 홀리는 작곡가의 길을 걷게 된다.

강물이 잔잔히 흐르는 곳, 별장이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게 지어져 있다. 그가 그곳에서 작곡을 하면서 강변을 산책할 저녁 무렵, 저 멀리서 작은 보트 한 대가 조용한 물결을 가르며 가까이 다가오는 가 싶더니 이내 돌아서 간다. 그러기를 가끔 반복하지만 결국 다가오지는 않았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는데, 한참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신비함을 갖게 된다.

그러한 묘령의 여인이 있었다는 사실과, 결코 방해하지 않고 멀리서 지켜보며 음악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고 인재를 키웠던 마음을 숨길 수 있었다는 것이 동화처럼 들려온다. 그래서 그에 대한 보답처럼 인생과 역사와 자연을 노래하는 위대한 작가가 만들어지지 않았는가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그 여인의 이름이 나제즈다 폰 메크 부인이었다는 사실과 차이코프스키보다 아홉 살 연상이었다는 것, 그리고 러시아 철도 경영자의 미망인이었다는 것, 인재를 아끼고 마음껏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는 사실이 러시아를 매력 있는 예술의 나라로 만든 것이 아닌가 하고 ‘야~ 정말 멋지다’라는 생각을 한다.

필자는 러시아가 개방된 직후, 모스크바 크레믈린 근처의 볼쇼이 극장에서 차이코프스키의 작품인 백조의 호수를 볼 기회가 있었다. 정말 아름다운 극장이다. 300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었지만 당시 관람료가 1$이었던 것으로 기억난다. 지금은 100$을 주어도 뒤쪽 후미진 자리이지만, 흐르는 음악과 함께 군무는 완전 매혹적이었고 보는 이들로 하여금 긴장과 전율을 느끼게 하였던 것을 기억한다.

한참 세월이 지난 후에 St. 피터스버그에서는 흑조의 호수를 관람하게 되었는데, 백조가 흑조로 바뀌는 변화를 시도하였던 작가의 면모를 엿보게 되어 흥분하였던 기억이 있다. 예술계의 통념을 벗어나는 시도, 질서라는 족쇄로 만들어낸 기존의 규범, 사회적 통념이라는 습관으로 생겨난 고정관념을 파괴하는 레크레이션 도전에 신선했던 기억이 새롭다.

애석하게도 차이코프스키는 불행한 인생을 살았다. 기독교 국가에서 동성애로 인하여 편안하지 못했고, 결혼 생활의 불화로 2주 만에 결별을 하며, 그 이후 도박으로 든든한 후원자였던 메크 부인과도 종말을 고하면서, 그의 인생은 그의 어떤 작품처럼 외롭고 쓸쓸하게 막을 내리게 된다.

그러나 깊이 보면, 그러한 고난의 인생이 위대한 작품과 역사를 쓰게 하지 않나 생각을 해본다. 가을이 되니 차이코프스키의 연주가 생각난다. 잔잔한 연주 아래 까치발을 딛고 팔랑거리는, 인형 같은 무용수들의 안무를 보고 싶다.

현장의 소리, 세르게이(모스크바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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