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한(샬롬나비 회장/기독교학술원장/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설립원장).

-목차-

머리말
I. 추석/ 한가위의 의미
1) 한민족 최대의 명절, 한가위 축제
2) 뿌리로서의 고향에 대한 향수
3) 성경적 유비: 뿌리에 대한 귀속 사상

II. 공동체 축제로서의 한가위
1) 차고 기움이라는 삶의 축제
2) 고향으로 민족의 이동
3) 동아시아 민족의 관습, 중추절 지킴
4) ‘알지 못하는 신’이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III. 추석의 기독교신앙적 의미
1) 보편적 가치로서의 명절
2)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감사
3) 조상에 대한 효는 미신적 제사 아닌 기독교적 추도식으로
4) 공동체 축제
5) 나누고 돌보는 실천 계기
6) 영원한 고향 암시
7) 고향교회로의 관심 환기
8) 추석 추수감사절 운동

IV. 복음의 상황화로서 한국인의 추수감사절
1) 추석과 추수감사절의 공통점
2) 추석과 추수감사절의 차이점
3) 한국교회 추수감사절의 ‘원형 회복’ 시급
4) 복음의 상황화라는 과제로서의 추석 명절
5) 민속의 감사절 한가위를 기독교의 추수감사절로 탈바꿈
맺음말

머리말

2014년 9월 8일은 민족 최고의 명절이라고 불리는 추석이다. 그 어느 해보다 일찍 찾아 온 2014년 추석을 맞이하여, 많은 내적인 갈등과 외적인 도전을 맞이하고 있는 한국 사회에 새로운 나눔과 결실의 기쁨이 회복되기를 바라며, 이 명절을 맞이하는 바른 자세와 기대가 요청된다. 추석으로 불리는 한가위는 설날과 함께 우리 민족 최대 명절이라 할 수 있다.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선물보따리를 싸들고 일제히 고향으로 향하는 날이기도 하며, 그만큼 가족들과 친지들이 모두 한 자리에 모이는 날이기도 하다. 우리의 추석은 가을의 중간에 있다고 하여 ‘중추절’이라고도 불리며, 음력 8월 15일이다. 이날에는 가족들끼리 모여 덕담을 주고받으며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고 가족의 화목과 풍요로움을 기원하는 풍습이 있다.

이제 기독교가 우리 사회의 제도종교의 하나가 된 이상, 우리 사회의 문화를 주도하기 위해서는 민속의 명절인 추석을 기독교의 추수감사절로 받아들이는 것이 요청된다. 추석과 기독교의 추수감사절이 역사는 다르지만, 인간 삶에 결실과 수확을 주시는 창조주 하나님을 아직도 믿지 않는 가족과 이웃과 사회에 알리는 운동이 필요하다. 추석을 우리 민족의 추수감사절로 지키는 운동을 전개했으면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교회가 추석 명절을 기독교의 추수감사절기로 받아들이는 실천을 해야 한다. 이것은 민족복음화를 위한 문화적 접근의 길이다.

I. 추석 – 한가위의 의미

1) 한민족 최대의 명절, 한가위 축제

추석(秋夕)은 한가위, 중추절(仲秋節), 가배(嘉俳)라 부르기도 하며, 음력 8월 15일에 치르는 명절로서 설날 다음으로 한국인에게 전통적으로 깊은 뜻을 지니고 있다. 한 해 농사를 끝내고 오곡을 수확하는 시기이므로, 명절 중에서 가장 풍성한 때이다.

한가위는 고대사회의 풍농제에서 기원했으며, 한가위라고 불리는 추석은 삼국사기에 기록된 “가배”라는 신라시대의 명절이나 10월에 지내던 동명절과 관련되어 있다고 추정된다. 고려시대부터 명절로 지냈다는 기록이 남아있으며, 조선시대에 들어서는 국가적으로 선대 왕에게 추석제를 지낸 기록이 있다.

추석날 아침에는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가서 여름비에 무너진 무덤을 보수하고 벌초를 한다. 조상 상에 바치는 제물은 햇곡으로 준비하여 먼저 조상에게 선보이며, 1년 농사 결과에 대한 고마움을 조상에게 전한다. 성주·터주·조상단지 같은 집안신(神)들도 햇곡식으로 천신(薦新)하며 추석치성을 올린다. 천지신명에게 드리는 일종의 추수감사에 해당한다. 추석에는 정월대보름보다는 작지만 풍성한 민속놀이도 행했다. 씨름·소놀이·거북놀이·줄다리기 등을 즐긴다(金明子. 歲時風俗의 機能과 그 變化, 1992; [네이버 지식백과] 추석 [秋夕], 한국세시풍속사전, 국립민속박물관).

2) 뿌리로서의 고향에 대한 향수

한가위는 말 그대로 ‘가을의 한가운데’란 뜻을 가지고 있으며, 한 해의 농사를 끝내고 오곡을 수확하는 시기여서 우리 명절 가운데 가장 풍성하다. 추석은 지금까지도 우리 민족의 고유한 명절로 자리잡고 있어, 추석이 되면 많은 사람이 고향을 찾아간다. 추수를 끝내고 햅쌀과 햇과일로 조상들께 감사의 마음으로 차례를 지내며, 특히 송편은 추석에 먹는 별미로 들 수 있다.

사람은 아무리 타향에서 오래 살아도 그곳은 어디까지나 타향이지 고향이 될 수 없다는 의식을 갖고 있다. 고향은 오직 한 곳, 자기의 뿌리가 있는 그 곳이란 것이다. 사람들은 고향에 대한 향수(鄕愁)를 본래적으로 가지고 있는데, 이것은 인간의 종교성과 관련이 있다. 고향에 대한 향수는 인간의 마음 속에 보편적으로 심겨 있다고 볼 수 있다. 고향을 그리워하는 아름다운 마음을 계발하는 것이, 인간성이 메말라가는 현대인들에게는 필요하다. 그리스도인들은 영원한 고향이 있다는 사실을 복음을 통하여 듣고 알고 믿는 자들이다.

3) 성경적 유비: 뿌리에 대한 귀속 사상

창세기에서 고향을 떠나 이집트에서 총리까지 지낸 요셉이 고향을 그리워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요셉이 창세기 50장 24~25절에서 유언을 하면서 “나는 이제 죽을 터이지만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너희를 찾아오시어 이 땅에서 이끌어 내시고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에게 주시리라고 맹세하신 땅으로 올라가게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너희를 반드시 찾아오실 것이다. 너희는 그 때 여기에서 내 뼈를 가지고 그리로 올라가거라”고 말했다. 요셉은 후손들에게 고향으로 돌아갈 때가 되거든 반드시 돌아가고, 그 때 자기 유골도 가지고 가라고 부탁한 것이다.

이러한 구약적 개념을 넘어 신약 시대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고향이 영원한 본향과 연결되어 있는 것을 안다. 히브리서 11장의 말씀대로 성경의 인물들은 약속된 것을 받지는 못하였지만 그것을 멀리 바라보고 즐거워하였으며, 땅 위에서는 손과 나그네로 있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들은 자기들이 본향을 찾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밝혔다.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히 11:13-14). 이들은 왜 고향으로 찾아가는 것일까? 뿌리로 되돌아가려는 본능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모든 종족들에게 주어진 영원에 대한 향수를 말하는 것이다. 한국인들은 오랜 세월동안 추석 때 제의 행위를 함으로써 조상을 찾고 자기 본향에 대한 향수를 달래왔다.

이 추석의 기원은 신라의 한가위를 넘어서 고구려의 동맹(東盟; 10월), 부여의 영고(迎鼓; 12월), 동예의 무천(舞天; 10월), 삼한(三韓)의 계절제(季節制; 10월)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때의 의식은 조상들의 묘를 찾아 새로운 수확물로 예를 올리는 일보다 제천행사·제천의식적인 내용이 더 강하였을 것으로 판단된다(전경미, 한해 농사 끝내고 오곡 수확…가장 풍성한 시기, [기획]전경미의 문화유산을 찾아서 (41) 다시 바라보는 추석, 2013년 09월 22일 (일) 예원예술대학교 문화재보존학과 교수·문화재&APSUN@sjbnews.com). 이는 조상에 대한 예의(禮儀) 이상으로 천지신명에게 경배의식을 드러내는 종교성을 보여 주는 것이었다. 당시 우리 조상들은 성경의 하나님을 몰랐기 때문에 천지신명에게 그러한 종교성을 표현한 것이다.

II. 공동체 축제로서의 한가위

1) 차고 기움이라는 삶의 축제

한가위 날 우리 선조들은 음식을 차리고 가무를 하고 패를 나누어 놀이를 즐겼다. 이는 한가위란 개인이 각자의 가정에서만 즐기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장마당을 벌여 음식을 나누고 음악을 즐기고 놀이를 했다는 것이다. 우리 조상들은 삶의 결실을 기념하고 즐기는, 공동체의 축제를 벌였다. 이들은 창조주 하나님을 몰랐기 때문에 천지신명에게 기도하고 감사제를 드렸던 것이다.

오래 전부터 우리 조상들이 밝고 큰 달을 볼 수 있는 음력 8월 15일을 명절로 정해, 추수를 끝낸 후 결실을 온 가족과 이웃들이 함께 기뻐하며 축하하는 행사를 갖는 기회로 삼았다. 이날에는 지역별로 씨름, 소싸움, 길쌈, 강강술래, 줄다리기 등 여러 민속 공동체 놀이를 즐기면서 공동체 의식을 고취했고, 또 토란국, 송편, 햇과일 등 많은 명절 음식을 나누면서 온 가족과 이웃이 서로를 돌아보았다. 또 온 가족이 함께 모여 조상의 은덕을 기리며 추수를 축하하는 풍습을 이어왔다.

추석은 그동안 농사를 잘 하게 해준 것을 감사하는 농공감사일(農功感謝日)이며, 농사의 결실을 보는 절일이다. 아울러 한 해 농사의 마무리를 하는 시기로, 또 이듬해의 풍농을 기리는 시기로서 깊은 의미가 있다. 농경사회에서 보름의 만월(滿月)은 농사의 풍작을 비롯하여 풍요다산을 상징하여 대단히 중시된다. 추석은 만월이 뜨는 보름날이다. 만월인 보름달은 곡물로 치면 수확 직전의 알이 꽉 찬 모습이다. 그래서 추석을 달의 명절이라 한다. 곡물 농사는 싹이 돋아 만개하여 열매를 맺으면 거두어들인다. 농사는 한 해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해마다 반복·순환한다. 말하자면 자연의 재생을 한다. 이는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 달의 속성과도 같다. 초승에 소생한 달은 보름에 생명력의 극치를 보여주다가 그믐 무렵이면 소멸하고 이어서 다시 초승에 소생하여 ‘차고 기움’이라는 순환을 반복한다. 이는 죽음과 삶의 반복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곧 재생하는 속성을 의미한다(任東權. 韓國歲時風俗硏究. 集文堂, 1985; [네이버 지식백과] 추석 [秋夕], 한국세시풍속사전, 국립민속박물관). 여기서 자연종교, 달을 섬기거나, 천지신명을 숭배하는 자연종교가 나타나게 된다. 아브라함의 고향 우르(Ur) 지역은 월신 난나(Nanna)를 숭배하는 곳이었고, 성경의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에게 자연종교의 고장을 떠나라고 명령하셨던 것이다. 성경의 하나님께서는 어느 지역에 매이는 월신이 아니라 어느 곳에나 계시는, 천지만물을 주관하시는 열조의 하나님이셨다.

2) 고향으로 민족의 이동

추석에는 고향을 방문하는 풍습이 있다. 이 때문에 전 국민의 75%가 고향을 방문하여 추석이 되면 전국의 고속도로가 정체되고 열차표가 매진되는데, 이러한 현상을 ‘민족대이동’이라 부르기도 한다. 1970년대 경제발전으로 도시가 발달되면서 농촌에서 도심지로 인구가 몰리는 도심화현상이 가속화되어, 한가위는 ‘고향을 찾아가는 명절’이 되었다.

1960년대에는 10만 명 정도였고, 1980년대에도 크게 늘었다지만 8백만 명 정도였다고 한다. 2012년 한가위 경우 본격적인 귀성 전쟁이 시작되었다. 무려 3천만 명 정도가 이동했다. 참고로 남한 인구는 4천8백만 정도이다(한가위 3,000만명 대이동 얄팍한 선물꾸러미 그래도 설레는 歸鄕(귀향), 1998.10.03 동아일보 23면 사회 기사). 사실 귀성은 꼭 태어난 곳으로 돌아가는 것을 뜻하진 않는다. 그래서 귀향(歸鄕)이 아니라 살필 성(省) 자를 써서 귀성(歸省)이라고 한다. 부모와 친지의 안부를 살피고 조상의 묘소를 살피기 위해 돌아간다는 뜻이다. 귀성은 인간의 유전자에 있는 귀향 본능이 보다 현실적으로 표현된 것이라 볼 수 있다. 2014년에도 3천만 명의 이동이 있다고 한다. 이러한 귀성전쟁은 우리 자신의 정신의 고향으로 되돌아가는 인간 깊은 내면성의 발로라고 볼 수 있다.

3) 동아시아 민족의 관습, 중추절 지킴

중국의 음력 8월 15일은 중추제(中秋節)이다. 이름 그대로 가을의 한가운데 있는 날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중추제에는 달을 상대로 제사를 지내고 달을 감상하는 풍습이 있다. 이들은 보름달을 닮은 ‘월병’이라는 음식을 먹는다. 중추절에 월병을 만들어 먹는 것은 당나라 때부터 시작하였다. 둥근 모양은 가족의 화목을 상징한다 하여, 온 가족이 함께 모여 나눠 먹었다(전경미, 상게서). 춘제(春節·설)나 10월 1일 건국기념일과 같이 1주일에 달하는 긴 휴가 대신, 3일가량의 미니 연휴를 즐긴다. 일본에는 ‘오봉’이라는 축제가 있다. 오봉은 음력 7월 15일을 중심으로 일본에서 행한, 죽은 조상의 영혼을 추모하는 행사를 일컫는다. 지금은 양력 8월 15일로 바뀌어 이날 전후로 3일가량 쉬는 것이 일반적이다(전경미, 상게서).

동아시아인들은 이러한 민속절기를 맞이하여 한결같이 거대한 무리를 이루어 고향으로 내려간다. 이는 명절에는 가족들과 함께 보내야 한다는 가족 유대(紐帶)적인 생각이 강하게 뿌리박혀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한가위는 흩어져 있던 가족들과 친지들이 오랜만에 함께 모여 담소를 나눌 수 있는 특별한 날이라 할 수 있다. 가족들이 둘러앉아 햅쌀로 송편을 빚고 갖가지 음식을 장만해 조상에게 차례를 지내고 산소에 찾아가 성묘를 하는 것도, 한가위와 같은 명절에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4) ‘알지 못하는 신’이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중추절은 봄에 씨를 뿌리고 여름에 땀을 흘려 길쌈을 매고 노력하여 가꾼 농작물들에 가을에 결실을 주신 천지신명에 대한 추수감사제다. 이러한 중추절은 창조주를 알지 못하던 시절에는, 우리 선조들과 동아시아 민족들이 천지신명에게 드리는 감사제였다. 우리의 선조들은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천지신명에게 감사를 드렸다.

사도 바울은 아덴을 방문하여 아레오바고에서 아덴인들에게, 저들이 섬기는 ‘알지 못하는 신’(To the unknown god)에 대하여 해석한다.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심이 많도다. 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가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 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이심이라”(행 17:22-25) 바울은 아레오바고 설교에서 아덴인들이 섬기는 ‘알지 못하는 신’이란 바로 천지를 창조하시고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살게 하시고 그들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정하시고”(행 17:’26),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이”(행 17:25),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라고 증거하였다. 이 하나님은 “사람으로 혹 하나님을 더듬어 찾아 발견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계시지 아니하도다.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하느니라 너희 시인 중 어떤 사람들의 말과 같이 우리가 그의 소생”(행 17:27-28)이라고 설교하였다.

우리 선조들도 아덴인들처럼 알지 못하는 신(神)인 천지신명에게 봄에 씨를 뿌림, 여름에 길쌈을 맴, 가을에 결실과 추수를 주심에 대한 감사를 드렸다. 아덴인들이나 우리 선조들이나 동일한 종교성이 있다. 이는 아담 타락 후에 인간에게 있는, 하나님 형상의 잔재이다. 이것은 칼빈이 말한 바와 같이 인간에게 있는 ‘신앙의 씨’(the seed of religion)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신앙의 씨가 인간의 원죄 타락 때문에 바르게 발현하지 않고, 왜곡되어 자연신이나 우상에게로 향한다. 추석이란 인간이 오곡백과를 주신 창조주 하나님께 나아가는, 하나의 신앙적 계기가 될 수 있다.

사도 바울은 아레오바고 설교에서 헬라인들을 향하여, 다음과 같이 ‘알지 못하는 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라고 증거하였다.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간과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에게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니라”(행 17:30-31). 추석을 맞이하여 사람들이 풍성한 수확을 준 대자연(大自然)에게 감사하는데,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우리들이 만나는 믿지 않는 이웃들에게, 대자연을 창조하시고 운행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어야 한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