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교리적 다름을 인정하는 종교적 관용성 (3·끝)

류재광 기자  jgryoo@chtoday.co.kr   |  

방한하는 교황을 배척하는 건 성도의 바른 태도 아니다 (III)

▲김영한(샬롬나비 회장/기독교학술원장/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설립원장).
▲김영한(샬롬나비 회장/기독교학술원장/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설립원장).

-목차-

9) 요한 바오로 2세, 베네딕토 16세, 프란치스코 교황
(1) 친근한 목자상 보여준 요한 바오로 2세
(2) 높은 품격의 베네딕토 16세
(3) 겸허한 목자상 풍기는 프란치스코 교황
<1> 성장 및 사목 활동
<2> 가난한 자를 위한 교황
<3> 관행을 깨는 겸허한 행보
<4> 프란치스코 효과
10) 방한 교황을 맞는 자세: 교리의 다름을 인정하는 박애의 신앙
11) 종교절대주의 시대의 종언: 종교 상생과 관용성 요청

맺음말

필자는 오늘날의 로마천주교 교황이 중세나 종교개혁 당시의 교황이 아니라는 점을 부각하고 싶다. 이러한 필자의 견해는 1970, 80, 90년대에 걸쳐 근 10년간 독일과 영국 등 현지 유학과 연구생활을 통하여, 몸소 유럽의 천주교회와 루터교회와 개혁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유럽 기독교인들(신학자들과 성직자들과 평신도들)과의 대화를 통하여 저들의 이웃종교관을 체험한 데서 형성된 것이다. 필자는 오늘날 유럽 기독교인들에게서 천주교가 “이단”이라거나 교황이 “적그리스도”라는 평가를 들어 본 적이 없다. 이제 130여 년의 역사를 가진 한국 기독교인들은, 종교개혁으로 천주교에서 개신교가 분리되어 나온 후 근 500년 가까이 되고 있는 유럽 기독교인들의 이웃종교관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9) 요한 바오로 2세, 베네딕토 16세, 프란치스코 교황

종교개혁 당시에는 천주교도들과 개신교도들은 극심한 대립과 갈등을 했고, 그 이전에는 영국의 존 위클리프, 틴데일, 보헤미아의 후스 등 수많은 개혁자들이 교황주의 천주교의 비성경적 행태를 비판하고 반대한다고 하여 화형을 당해 순교한 경우가 비일비재하였다. 그러나 루터의 종교개혁은 독일 민족주의의 울타리 안에서 독일 영주들의 정치적인 보호를 받으면서 성공하고 농민들의 호응을 받아 그 지지층을 넓혀갔고, 스위스의 츠빙글리, 마르틴 부처와 칼빈을 중심으로 개혁파 교회가 독립적으로 지지층을 확산하여 갔다. 그리하여 가톨릭교회의 세력이 쇠퇴하여 갔던 것은 하나님의 섭리라고 보아야 하겠다.

종교개혁과 더불어 중세 가톨릭교회의 절대적인 교황권이 쇠퇴하고 개신교가 약진하면서, 천주교와 개신교는 이미 11세기에 분리해 나간 동방 정교회와는 지리적으로 떨어져 큰 갈등이 없었다. 그러나 서구 유럽이라는 서로 이웃한 공간 안에서 천주교와 개신교는 역사적으로 갈등·분쟁하면서, 앞서 말한 바와 같이 30년 종교전쟁을 치르고 난 후에 1649년 베스팔리아 종교화의 조약을 체결하여 적대관계를 끝냄으로써 결국 사회제도적으로 공존하기에 이른 것이다.

특히 2천년대에 들어와 한국에서 가톨릭교회의 약진은 1970년대 이래 선출된 세 교황들의 종교적 리더십과 김수환 추기경 등 신앙 공공성을 보여준 한국 천주교 지도자들의 리더십에 힘입고 있다고 볼 수 있다.

(1) 친근한 목자상 보여준 요한 바오로 2세

요한 바오로 2세(Pope John Paul II) 교황(1978~2005)은 1978년 요한 바오로 1세가 등위 34일 만에 별세하자 후계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이탈리아인이 아닌 교황 탄생은 사상 처음인 455년 만의 일이다. 그는 세 번째 밀레니엄을 맞이할 기반을 닦았다. <3천년을 맞는 칙서(勅書)>를 통하여 구·신교 일치운동에 한층 화해 분위기를 조성하였다. 바오로 6세의 교회개혁 정신을 이어받아, 교회 안팎 문제들에 관심을 가지고 많은 활약을 하였다.

요한 바오로 2세는 1984년 한국 천주교 200주년 기념식 때 내한하여 103위 복자(福者)에 대한 시성식(詩聖式)을 집례하였으며, 1989년 세계성체대회 때도 다시 한국을 방문하였다. 1994년 11월에는 <3천년을 맞는 칙서(勅書)>를 통하여, 교회가 과거에 종교의 이름으로 저지른 불관용(不寬容)과 전체주의 정권에 의한 인간 기본권의 유린을 묵인한 것은 잘못임을 인정하였다. 이러한 태도는 가톨릭교회의 개방성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는 요한 23세 이후에 조성된 천주교·개신교 일치운동에 한층 화해적인 분위기를 조성하였다.

그는 동구 폴란드 출신으로 1989년 동구권 공산주의가 무너지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 이러한 그의 용기있는 행동은, 로마 천주교가 공산주의를 용납한다는 개신교 근본주의의 오해를 불식시켜 주었다. 그의 신앙은 보수적이지만 행보는 진보적이었다. 한국을 두 번이나 방문한 그는, 한국인들에게 교황에 대한 친근하고 좋은 목자상을 남겨주었다.

(2) 높은 품격의 베네딕토 16세

베네딕토 16세(Benedictus XVI, 2005-2013)는 2005년 요한 바오로 2세의 별세로 인해 추기경들의 비밀투표로 교황에 선출되면서 자신의 이름을 ‘베네딕토’로 정하였는데, 라틴어로 ‘축복’(blessing)이라는 뜻이다. 그는 독일 출신으로, 1966년에 튀빙겐대학교의 교수 시절 당시 그의 신학 강의 내용이 보수적이고 마르크스주의를 비판하였기 때문에 학생운동에 가담한 학생들과 충돌을 일으킨 적이 있을 정도로 진리와 강경파 교리에 정통하였다.

그는 가톨릭 내의 진보 성향에 대하여 부정적인 입장을 견지하였고, 해방신학이나 종교다원주의, 사제의 결혼이나 여성 사제 서품, 개신교와 합동 미사 등에 반대하였다. 마찬가지로 낙태·동성애·콘돔 사용·혼전 성관계·페미니즘·인간복제 등도 반대하였다. 가톨릭이 세속주의와 다른 종교에 위협받지 않고 시류에 영합하지 않도록 바티칸이 정통 가톨릭 원리에 충실하여 중심을 잡아야 한다는 입장으로, ‘가톨릭의 현대화와 대중화’를 주장하는 진보적인 신학자 및 신자들과 갈등을 빚어왔다.

베네딕토 16세는 2013년 2월 고령 및 건강 상의 이유로 들며 자진 사임을 선언했다. 그는 “교황 자리를 지키지 말고 평생 기도하는 데 열중하라”는 하느님의 계시를 받았다고 전했다. 그는 교회 역사상 600년 만에 처음 스스로 사임한 교황이었다. 종신직인 교황의 생전(生前) 사임은 중세(中世)인 1294년 첼레스티노 5세(Papa Caelestinus V) 이후 처음이었다. 베네딕토 16세는 자진 사임 행동으로 가톨릭교회 안팎에 세계 종교 및 사회 지도자들에게 큰 윤리적 모범을 보여주었고, 퇴임 후 ‘명예 교황’(emeritus pope)으로 추대되어 조용히 기도로 여생을 보내고 있다. 그는 보수적이었고 정통신앙을 가졌으며, 윤리적으로도 높은 품격을 지닌 자로 평가받고 있다.

(3) 겸허한 목자상 풍기는 프란치스코 교황

<1> 성장 및 사목 활동

프란치스코 교황(Francisco I)의 본명은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리오(Jorge Mario Bergoglio)이며, 1936년 남미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이탈리아 이민자 가정의 5남매 중 맏이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철도회사 회계원, 어머니는 전업주부였다. 그는 중학교 때는 아버지의 권유로 양말공장에서 청소와 사무보조로 일하고, 공업학교에 진학해서는 오전에는 공장에서 일하고 오후에는 학교에서 식품화학을 공부했다(이해인, 교황님 트위터, 236-7). 그는 1953년 한 젊은 사제를 만나 영적으로 큰 감동을 받고, 고해성사를 보며 사제 성소(聖召: 사제로의 소명)를 깨달았다. 1958년 예수회에 입회하였고, 공동체의 결정으로 칠레에서 인문학 기초를 닦았다. 1963년 아르헨티나로 돌아온 후 산미겔 산호세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한 후 학위를 받았다.

1969년 사제서품을 받고 1973년 종신서원을 하였다. 1986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성 게오르겐 신학대에서 독일의 가톨릭 신학자이자 철학자 로마노 과르디니(Romano Guardini, 1885~1968)에 대한 연구로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과르디니는 보수적 가톨릭 신앙을 대변하는 자로서, 그의 저서 <권력>에서 권력은 필요하지만 나치의 권력 남용에서 보듯이 제어가 필요하다고 역설한 인물이다. 학위 취득 후 베르골리오는 부에노스아이레스와 코르도바에서 고해 사제와 영성 지도자로 활동했다.

이후 1992년 주교 서품을 받기까지 근(近) 20년 동안 고국 아르헨티나는 역사의 격랑 가운데 서 있었다. 특히 전반 10년은 시민들의 피로 물든, 민주주의의 암흑기였다. 이 암울한 시기에 있어서 그의 행적에 대한 논란이 있다. 베르골리오 신부가 어느 자리에 있었는가이다. 베르골리오 신부가 군사정권에 대한 ‘저항’ 대신 ‘순응’과 ‘협조’를 택했던 건 아니냐는 것이다. 그는 혁명투쟁에 동참하지 않았지만, 정권의 폭압에 손 놓고 있지도 않았다. 그는 저항자들을 위한 ‘드러나지 않은 보호자’로 남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1998년 부에노스아이레스 대주교가 된 그는, 2000년 군사정권 시기 가톨릭교회의 죄를 고백하는 문헌 <내 죄> 발표를 이끌었다. <내 죄>는 “우리는 자유와 인권을 해친 사람들에게 너무 너그러웠다”며 “책임있는 이들의 침묵을 용서해 달라”고 빌었다. 교회 차원의 과거사 속죄를 이끌어낸 그는, 사목활동의 평생 지침으로 삼았던 ‘가난과 벗하는 교회’의 실현에 한층 적극적으로 나선다(한겨레 신문/ 휴심정, 아르헨티나 현대사의 교황, 2014. 08. 13, 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

2001년 2월 교황 바오로 2세에 의해 추기경으로 서임되었을 때, 그는 아르헨티나 교인들에게 “바티칸에서 열리는 서임식에 참석하는 대신, 여행 경비를 가난한 자들을 위해서 기부할 것”을 약속하였다(이해인, 프란치스코 교황님 트위터, 2014, 236-7).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 대한 관심도 남달랐다. 2001년에는 에이즈 환자들을 방문해 그들의 발을 씻어주고 발에 입을 맞췄다. 직업교육프로그램을 만들어 마약중독자들의 재활을 도왔고, 암 말기 환자들을 꾸준히 찾아가 위로했다. 추기경으로서 그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가장 위험한 빈민가에 불쑥 나타나, 가난한 이들과 차를 함께 마시고 고해성사와 미사를 집전하기도 했다.

<2> 가난한 자를 위한 교황

베르골리오 추기경은 2013년 3월 13일, 세계에서 모인 120명의 추기경들에 의하여 266대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가난한 이들은, 그가 교황으로 선출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빈민가의 교황이 탄생했다”며 기뻐했다. 그는 1282년 만에 선출된 비유럽 출신 교황이자, 가톨릭교회 역사상 첫 미주 출신이며 첫 예수회 출신 교황이다. 선출된 후 가난과 평화의 성인인 ‘아시시의 프란시스코’를 교황명으로 택한 첫 교황이다. 교황이 방한하여 이용하는 차량이 방탄차가 아니라 소형차 ‘쏘울’이라는 것은, 이 차가 소외된 장애인들의 발이 돼 주는 복지차량으로도 활용도가 높기 때문이다(한겨레 뉴스, 교황이 ‘쏘울’ 타는 이유 있었네, 등록 : 2014.08.06. 20:00 수정 : 2014.08.06. 22:11, 박승헌 기자). 이러한 선택은 평소에 배어 있는, 소박하고 검소한 그의 삶 방식이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것으로 보인다.

프란치스코 교황과 20년 인연을 가진 문한림 주교는 다음과 같이 가난한 자와 부자에 대한 견해를 가진, 교황의 가난한 영성에 관하여 설명해준다. “제가 알기로 교황님은 부자도 많이 아신다. 그리고 부자를 배척하지 않으신다. 다만 가난한 사람들은 ‘제외된 사람’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에 더욱 관심과 애정을 갖는 것이다. 이는 하느님의 아들이 가난하게 태어나 자라고 살기를 원하신 것과 같은 것이다. 이게 ‘하느님 스타일’이다. 그걸 따르는 게 교황님이다. 교황님은 결코 부자들에게 ‘압력’을 넣은 적이 없다. 다만 물질에 묶이지 않는 것은 강조하셨다. 돈이 많아도 묶이지 않으면 ‘가난한 영성’이지만, 적게 가져도 묶이면 ‘가난한 영성’이 아니다.”(교황과 20년 인연, 문한림 주교, “교황은 사랑 주러 오시는 분… 그저 받기만 하세요” 김한수 종교전문기자 입력 : 2014.08.12 03:07 | 수정 : 2014.08.12 04:21 조선일보 2014 08 12 A21).

교황은 가난한 자에 대한 각별한 관심을 가지나, 그렇다고 부자에 대하여 편견을 가지지 않는다고 한다. 필자는 이를 올바른 태도라고 본다. 오늘날 한국의 일부 개신교 보수주의 교회가 정통주의에 안주하여 교리적 지상주의와 배타와 독선에 안주하여 있으며, 한기총 등 연합단체의 선거는 자리다툼이나 금품선거로 얼룩져 평신도와 사회로부터 걱정이 되고 있는 데 반해, 로마가톨릭은 교황선출권을 지닌, 전 세계에서 온 120명의 추기경에 의하여 비밀투표로 파격적인 새로운 지도자를 선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만큼 로마 가톨릭이 변화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볼 수 있다.

프란치스코의 트위터에 있는 ‘기독교인에 대한 정의’(定義)는, 예수님의 산상설교의 정신을 보여주는 감동주는 메시지다. “기독교인이란 그의 마음과 타자의 마음 속에 주님이 풍성하시도록 가난해질 수 있는 자이다”(The Christian is someone who can decrease so that the Lord may increase, in his heart and in the heart of others.)(Pope Francis 인증된 계정, @Pontifex, Welcome to the official Twitter page of His Holiness Pope Francis, Vatican City, news.va 2012년 2월에 가입함). 이러한 그의 짧은 메시지는, 그가 직업적이고 권위적인 종교인이라기보다는 예수님을 닮은 진실하고 소박한 신앙인임을 보여주고 있다.

이탈리아 중도좌파 성향의 일간 <라 레푸블리카>의 창립자인 무신론자 스칼파리는 지난해 7월과 8월 두 차례에 걸쳐 교황 프란치스코에게 ‘무신론자가 교황에게 묻는다’는 제목으로 도발적인 질문을 던졌다. “하나의 진리만이 존재하는가?” “무신론자도 ‘용서’받을 수 있는가?” 스칼파리는 “신이란 인간의 마음이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창조한, 매력적인 발명품”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프란치스코 교황은 답장을 보내왔다. “신앙이란 비타협적인 것이 아니며, 오히려 타자를 존중하는 공존의 상황 속에서 성장한다” “하느님은 인간 사유의 결과가 아니다. 대문자로 시작되는 궁극적인 실재다”라고 답하고, 무신론자도 용서받을 수 있느냐는 물음엔 “하느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자신의 양심을 따른다” “진리는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사랑이고 그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난다. 따라서 진리는 관계이다”라고 답했다. 이러한 대답들은 매우 깊이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한겨레 신문, 무신론자와 프란치스코 교황의 대화, 휴심정, 2014. 07. 14, 허미경 기자, carmen@hani.co.kr; 교황 프란치스코·에우제니오 스칼파리, 무신론자에게 보내는 교황의 편지, 최수철·윤병언 옮김 바다출판사 펴냄).

지난 6월 23일 오후 서울 명동성당 구내 문화관 꼬스트홀에서 교황청 정의평화평의회 사무총장 마리오 토소(Mario Toso) 주교가 강연을 끝낸 후에, 운동권에 속한 자들이 던진 질문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게 관심이 많다. 한국에서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은 쌍용차 해고자, 밀양 송전탑과 제주 해군기지 주민 등이다. 이런 문제에 대해 교황님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고, 방한 때 어떤 말씀을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에 대해 “교황께서는 특정 국가와 특정 사안에 대해 가벼이 발언하지 않으며, 특히 그것이 그 사회공동체에 갈등을 유발할 소지가 있을 경우엔 더더욱 그렇다”는 원론적 대답을 하였다(조선일보, 제발 보채지 말자, 김한수 기자, 입력 : 2014.08.12 05:44 조선일보, 2014 08 12 A31.). 최근 발간된 교황의 강론·연설문 번역집 ‘뒷담화만 하지 않아도 성인이 됩니다’를 찬찬히 읽어 보면, 프란치스코 교황은 ‘사회행동가’가 아니라 ‘영성가’임을 단박에 알 수 있다. "사랑이 없다면 우리는 NGO일 뿐”이란 스스로의 말처럼, 프란치스코는 처음부터 끝까지 사랑과 온유함에 바탕을 두고 세상살이의 원칙을 이야기하고 있을 뿐이다.

<3> 관행을 깨는 겸허한 행보

프란치스코 교황은 스스로 실천해온 “가난, 겸손, 섬김”을 새 시대정신으로 제시했다. 강자와 약자, 부자와 빈자, 선진국과 개도국이 겸손하게 나누고 섬기며 함께 살아가야 할 3번째 밀레니엄의 첫 삽을 뜬 것이다. 프란치스코는 관행을 깨고, 교황 관저가 아닌 성 베드로 대성전 근처, 종전의 순례자 숙소 자리에 지어진 ‘성녀 마르타의 집’에서 머물고 있다. 평소 소탈하고 겸손하게 평온한 일상을 보여주고 있는 교황은, 현지 수녀들에게도 깊은 신뢰를 받고 있다. 로마 교황청에 파견 나가 있는 요세피나 수녀는, 지난 2014년 8월 4월 성녀 마르타의 집을 찾은 교황과 면담했다. 교황은 요세피나 수녀가 한국에서 왔다고 밝히자, “아, 순교자의 땅!”이라는 반응을 그 자리에서 보이며 반가워했다는 것. “한국 가톨릭 역사는 순교자의 역사”라고 할 만큼, 초기 가톨릭이 들어올 때 많은 박해를 받았음을 강하게 인식하고 있었다고 한다. 교황이 이번에 유일하게 한국만 방문하는 것도, 한국이 순교자의 나라인 것을 알기 때문이었을 것이다(프란치스코 교황, “한국은 순교자의 땅” 디지틀조선일보 이찬란 웹PD 입력 : 2014.08.07 12:09 | 수정 : 2014.08.07 13:51).

프란치스코의 행보는 연일 파격이다. 교황이 취임 후 보여준 파격이란, 정치인이 보이는 권력지향적 행보가 아닌 자신의 특권을 내려놓고 섬기는 목자의 행보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탈리아 정부까지 골머리를 앓고 있는 마피아에 대해 전쟁을 선포했다. 그는 3살 난 아기를 살해한 마피아 집단을 파문했다. 이탈리아에서는 마피아와 교회의 결탁이 오랜 사회 문제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는 인도주의적 선행만으로 그치지 않고 세상의 구조적 악을 건드리고 있다는 점에서, 세계의 지성과 양심들의 환호를 받고 있다. 2013년 4월 13일에는 각 대륙에서 1명씩 뽑은 추기경들로 자문단을 구성해 교황청 개혁 작업에 착수했다.

프란치스코는 “배제와 불평등의 경제체제야말로 사회 병폐의 뿌리이며, 규제받지 않는 자본주의는 새로운 독재”라고 규정했다. 이어 교회와 그리스도인은 ‘가난한 이들의 해방과 진보를 위한 하느님의 도구가 돼야 한다’고 선포했다. “부의 재분배, 가난한 이들의 사회통합 등과 같은 가치들이 위협받을 때는 예언자적 목소리를 드높여야 한다”(한겨레신문, 프란치스코 교황에 왜 열광하나? 조현 기자, 2014. 08. 11).

정의채 신부는 다음과 같이 새 교황을 평가한다. “비대해진 교권을 비판하며 본래 정신으로 돌아가자는 수도원 운동의 대표 인물이 프란치스코 성인이다. 예수회는 선구적 대학 교육과 세계 선교 시대를 열었다. 새 교황은 실천이 전면에 부각되는 시대정신을 드러낸다. 세상엔 한 끼니, 주사 한 대가 없어 굶어 죽고 아파 죽는 사람이 여전하다. 부자도 선진국도 겸손해져야 나눌 때 위세 부리지 않는다. 그것이 시대적 의미의 속죄이고 진정한 섬김이다. 교황은 말이 아니라 실천해야 할 때임을 이름으로도 웅변하는 거다. 그를 통해 이 시대정신은 계속 확산할 것이다.”(정의채 몬시뇰이 본 새 교황, "몸으로 먼저 섬기는 교황… 이게 새 밀레니엄이 갈 길" 이태훈 기자, 입력 : 2013.04.15. 03:04, 조선일보, 2013. 4.15. A21).

<4> 프란치스코 효과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3년 말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에서 ‘올해의 인물’로 선정되었고, 올해 3월 20일 미국 경제전문지 「포춘」(Fortune)에서 세계 위대한 지도자(Greatest World Leader) 50인 가운데 1위에 선정됐다. 「포춘」지는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지도자로 뽑힌 교황에 대해 “즉위 후 1년이 지난 지금, 교회 쇄신의 새 방향을 제시했고 가톨릭교회 밖에서도 존경을 받고 있다”며 “아직 풀어야 할 과제가 많지만, 자선을 실천하는 신자가 늘어나는 등 ‘프란치스코 효과’가 나타났다”고 평했다(미 경제전문지 「포춘」 선정, 프란치스코 교황, 세계 지도자 1위’ 미 경제전문지 「포춘」 선정, “교회 쇄신 새 방향 제시” 평가, 2014. 3.).

「포춘」지는 50인의 선정 기준으로 “리더십이 부족한 시대에, 사람들에게 힘을 주고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 데 영적 영향력을 행사한 사람”을 들었다. 단순히 거대한 조직을 책임지거나 정치적 지도자라는 이유만으로 위대한 지도자가 될 수 없다는 뜻이라고 부연했다. 교황에 이어 2위에는 ‘가장 성공한 국가 지도자’로 평가받은 독일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올랐다.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50위 안에 들지 못했고, 미국 역대 대통령 중에서는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5위로 유일하게 이름을 올렸다(미 경제전문지 「포춘」 선정 ‘프란치스코 교황, 세계 지도자 1위’, “교회 쇄신 새 방향 제시” 평가, 2014. 3.).

필자의 견해에 의하면, 오늘날의 교황들은 신앙적 품격이 훌륭하며 높은 도덕성을 가졌으므로, 비단 가톨릭교인들만이 아니라 개신교인들과 일반 무종교인들의 존경을 받고 있다. 오늘날 로마가톨릭 교황은 6백년 이전 중세교회와 종교개혁 시기의 교황과는 다르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로마 교황이 권좌에서 땅으로 내려오는 데는 2천년이 걸렸다. 프란치스코는 2천년 만에 권좌에서 낮은 곳으로 내려온 교황이다. 세상을 놀라게 하는 가장 핵심은 그의 행동이다. 프란치스코도 전임 교황들 못지 않은 노인이지만, 중세 교황처럼 권좌(權座)에서 권력을 휘두르는 종교적 속인(俗人)이 아니라, 겸허하게 권좌에서 내려와 서민들에게 다가간다. 그리고 그는 예수의 사랑의 계명을 오늘날 새로운 행복 10계명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오늘날 ‘중세 교황권력을 비판하고 종교개혁을 수행한 개혁자들의 후예’라고 자처하는, 오늘날 일부 한국 개신교의 대형교회 목사들이나 증경총회장들 가운데는, 인위적으로 만든 종교적인 권력과 위선이라는 베일 속에 있다는 비난을 받고 있는 자들이 있다는 것을 볼 때 안타깝기 그지없다.

프란치스코는 최근 조국 아르헨티나의 주간지 <비바>와 한 인터뷰에서 ‘행복에 이르는 비밀 지침 10가지’를 소개하였다. ①내 방식의 삶을 살되 타인도 자기의 삶을 살게 두자. ②마음을 타인에게 열자. ③조용히 전진하자. ④삶의 여유를 찾자(식사할 때 TV 끄기 등). ⑤일요일에 가족과 함께 쉬자. ⑥젊은 세대들에게 가치있는 일자리를 만들어줄 혁신적인 방법을 찾자. ⑦자연을 존중하고 돌보자. ⑧부정적 태도를 버리자. ⑨개종시키려 하지 말자. ⑩평화를 위해 행동하자(한겨례 뉴스, 프란치스코 교황이 제시한 ‘행복 10계명’ 등록 : 2014.08.01. 16:08, 수정 :2014.08.01. 16:10; 프란치스코 교황 <행복 10계명>, blog.naver.com/hasodong/220079658601). 이 10가지 교황의 행복 메시지는 비단 천주교인들 뿐 아니라 개신교인들과 마음이 가난한 모든 자들에게는 수용될 수 있는, 일상적인 언어를 통한 복음의 해석이다. 이번 교황 방한이, 우리 개신교 지도자들에게는 자신이 이루었다는 대형교회적인 명예의 권좌와 욕망에서 내려와 겸허한 목자의 태도로 소외된 자들과 낮은 처지의 신자들에게 다가가는 자성의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10) 방한 교황을 맞는 자세: 교리의 다름을 인정하는 박애의 신앙

필자의 신앙에 의하면 천국에는 정교회인과 천주교인과 개신교인의 구분이 있지 않고, 오직 그리스도인들만 있을 것이다. 혹시나 일부 개신교 목회자들이 “이번에 명망이 높은 교황이 와서 양들을 현혹하여 빼앗아가지나 않을까” 생각한다면, 이는 참 목자라기보다는 종교기업가들의 생각으로 알고 쫓아 버려야 할 것이다. 목회자들은 신자들이 자유롭게 자기의 교회를 선택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주고 도와주어야 할 것이다. 교회의 존재 목적은 신자들을 많이 모으는 데 있지 않고, 저들로 하늘나라의 시민이 되도록 도와주는 데 있다. 우리는 중국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이요, 하나님의 사람들이요, 하늘나라의 시민이기 때문이다.

자기 종교 내지 자기 교파 절대주의는 비성경적이다. 스위스의 복음주의 신학자 에밀 브루너(Emil Brunner)가 말한 것처럼, 기독교는 로마국교가 된 이후에 초기의 성경적 순수성을 상실하고 점차 제도화되고 절대화되어갔다. 그리하여 중세시대에는 교황의 권세가 절대적이 되면서 부패하기에 이르렀다. 교황 우르바노 2세(Urbanus II)는 십자군 전쟁을 일으키고, 이후 교황들도 교황무오설, 교황권 절대주의를 주장하면서 타락일변도로 나아갔다. 루터와 칼빈의 종교개혁에 의하여, 교황권 절대주의가 도전받고 종교개혁이 이루어졌다. 종교개혁은 성경만이 절대적이라는 것이다. 천주교 교리나 장로교 교리가 절대적이 될 수 없다. 장로교 교리를 기준으로 하여 가톨릭, 정교회, 심지어 개신교 다른 종파의 교리를 비교하면 다른 것들이 있지만, 기독교 안에는 사도신경과 니케아 콘스탄티노플 신경을 고백하는 공통점이 있다. 이것은 정교회나 가톨릭이나 개신교가 모두 부분 진리의 교파로서 함께 보완하면서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며 사도적 교회에 속한다는 것이다.

개신교 교파 가운데 자기 교단만이 절대적이라는 교파는 오만한 자들이며, 이들은 아직도 교파절대주의에 노예화되어 있는 것이다. 루터가 주장한 이신칭의의 교리는 성경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고 믿음과 행위를 주장하는 가톨릭에는 구원이 없다고 주장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 예수를 믿으면 구원 얻는 것이지, 좋은 교리를 갖는다고 하여 그것이 구원을 주는 것은 아니다. 믿음이 약한 자에 대하여 용납하고 포용하는 사랑과 화목이 중요하다. 우리는 오늘날 교리적 다름을 인정해주는 종교적 포용성과 관용성을 필요로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겸손하여 서로 나누고 섬기고 존경할 때 아름답고 화목한 사회를 이루는 것이다. 이것을 부인할 때 다종교 사회에서는 종교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

이번 교황의 방한을 계기로 우리 개신교에서도 높은 인품과 영성을 지닌 지도자들께서 더욱더 자기 정비의 선한 계기로 삼아, 교권 행사나 세상적 명예 추구보다도 소외되고 가난한 이웃을 섬기는 그리스도의 종의 성품을 계발하기를 기원해 본다.

11) 종교절대주의 시대의 종언: 종교 상생과 관용성 요청

교회사가 보여준 것은, 자파종교절대주의란 신화요 허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중세 교황절대주의는 십자군 전쟁 실패, 면죄부 판매로 인한 개신교의 등장, 교황의 도덕적 부패로 인한 신뢰 상실 등을 통하여 점차 무너졌다. 중세의 교황주의에 비하면, 오늘날 교황권은 많이 축소된 것이 사실이다. 중세 천 년 동안 서방 세계(유럽)를 지배했던 교황주의는, 종교개혁을 기점으로 축소되면서 오늘날 명목적으로 존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교황주의는 중세에는 가톨릭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extra ecclesiam nulla salus)는 북아프리카 카르타고의 감독 키프리안(248~258)의 공식을 오늘날 신학적으로 수정하기에 이르고 있다. 앞서 언급한 같이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에서는 종교다원주의라는 신학적 자유주의의 영향으로 인하여 타종교 구원의 길을 열어주었다. 중세 천 년을 거쳐 그 후 960여 년 내려온 가톨릭 절대주의는 “교회 밖의 구원” 교리를 선언하며 가톨릭 보편주의로 나아가고 있다.

개신교에서도 루터 정통주의와 칼빈 정통주의는 18세기에 이르러서 종교개혁 정신을 고갈하면서, 제도적으로 교리적으로 자파(自派)를 절대화하기에 이르런 것이다. 이러한 추세는 인간 운동이 만든 기구나 제도의 한계였다. 오늘날 개신교 근본주의도 자기 교단의 교리만이 완전하다면서 천주교나 다른 교파들을 이단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오늘날 이슬람 근본주의의 행태에서 보는 바와 같이 종교절대주의의 사고에서 나오는 것이다.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종교가 아니라 그리스도가 구원을 가져다 준다는 것이다. 오늘날 개신교 내에서 교황 방한에 배척운동을 벌이는 근본주의자들에게 종교절대주의가 남아 있다. 이러한 근본주의 사고는 보수주의 교단의 일부 극단적 사고를 하는 목회자들 사이에 나타나 있다. 이들이 지난번 WCC 부산총회를 “적그리스도의 모임”이라고 했고, 이번 방문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을 “사탄” 내지 “적그리스도”라고 배척하고 있다. 이것은 아직도 일부 목회자들이 이러한 자파종교절대주의에 갇혀 있다는, 너무나 안타까운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오늘날 포스트모던 사회에서 종교는 정치와 분리되어야 하고, 종교는 더 이상 절대화되어서는 안 된다. 종교가 정치와 연관될 때, 이슬람 근본주의처럼 종교를 빙자한 테러가 야기된다. 진정한 종교는 자기 신앙이 귀한 것처럼 다른 종교인의 신앙도 귀한 것으로 인정하고 존중해 주는 것이다. 타종교의 신앙을 귀한 것으로 본다면 전도나 선교는 어떻게 가능한가? 사랑의 설득과 감화를 통해 가능하다. 종교절대주의가 무너지고 종교상대주의가 되어 버린 시대에, 사랑의 설득과 감화만이 새로운 선교와 전도의 방법으로 요청된다. 그러나 복음주의적 신앙에 의하면 종교다원주의는 수용될 수 없다. 그것은 다른 종교에도 구원이 있다는 자유주의적 사상으로, 공교회가 받아들일 수 없다. 종교인들이 서로 상대방을 존중하며 서로에 대하여 문을 열고 경청할 때, 진리와 성령은 그 힘을 발휘하는 것이다. 전도와 선교는 강압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감화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는 자유스러운 분위기 가운데서 생겨나는 영의 대결에서 이루어진다. 신앙은 강요로 되는 것이 아니라 자유스러운 양심의 결단 속에서, 감동과 영적 체험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맺음말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구주이시다. 종교로서의 기독교는 사람들이 모임이기 때문에 절대적이 될 수 없다. 타종교의 신앙을 존중해 주면서도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만을 통해서 온다”는 사랑의 간증과 겸허의 설득에 의해서만 오늘날 우리는 참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될 수 있다. 교리의 신앙은 자기 교파와 타교파를 분리하게 하나, 박애의 신앙은 타종교를 인정하고 타교파와 공존하도록 한다. 타종교와 화목하게 지내도록 한다. 교리는 분리시키나 박애의 신앙은 관용과 화목을 이룬다. 사랑이 없는 교리적 신앙은 종파성에 빠지나, 박애의 신앙은 종파성의 울타리를 넘어 공공(公共)성, 사회적 신뢰로 나아가게 한다.

야고보는 비방하지 말라고 가르친다. “형제들아 서로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관이로다”(약 4:11). 그리고 히브리서 기자는 형제를 사랑하고 손님 대접하기를 힘쓰라고 가르친다.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고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히 13:1-2). 교리는 신앙의 울타리로서 필요하다. 그러나 교리는 항상 사랑과 관용과 함께 가야 한다. 교리는 신앙의 줄기라면, 박애는 신앙의 열매다.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고전 13:13). 종교적 관용은 이 사랑에서 나온다.

종교적 관용이란 그리스도와의 인격적 교제와 그의 온유한 성품을 닮아가는 성화에서 나온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먼 나라 로마 바티칸에서 우리나라에 손님으로 오신 분이다. 이분을 세계의 영적 지도자들 가운데 한 분으로 존경하는 태도를 가지고 맞이하는 것이 성도의 바른 태도가 아닐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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