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옥 교수(기독문학 작가, 영문학 박사, 영남신대 외래교수).

그리스도교의 엄격한 금욕의 세계관과 고향 크레타의 그리스적 자유분방함 사이에서 처절하게 고뇌한 젊은 예술가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분명 현대 그리스 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이자 시인이다. 그러나 젊은 시절 한 인간으로서 카잔차키스는 유랑하는 별이었다. 어쩌면 안데르센의 동화처럼 유랑하는 랩소디스트를 닮았으리라.

랩소디스트는 그리스의 유랑 악사이다. 그들은 보통 늙고 눈이 먼 사람들로서 겉모습만 보면 영락 없는 호메르스이다. 하지만 그들 중에는 타고난 기질과 음악적 재능 때문에 스스로 그 길을 선택한 젊은이들도 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그러한 젊은이들 중 하나이었으리라.

조국 그리스가 터키인의 억압에 묶여있던 시절, 그는 동족과 납치되어간 딸들에 대해 애가를 바친다. 그리스의 역사와 고난을 담은 깊은 슬픔과 상실감은 사람들의 가슴에 깊이 스며들었다. 노랫말의 행간에 스치는 부드러우면서도 비탄에 젖은 음색은 민족 전체가 울기라도 하듯 거친 울음으로 터져나왔다. 그가 미투리를 잡고 그리스의 역사와 고난의 현을 뜯어낼 때는, 마치 바벨론 물가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부른 노래처럼 사람들의 가슴을 적셨다. 누가 니코스 카잔차키스를 그리스의 국민 악사라 말하지 않을 수 있을까.

비록 그의 문학이 3만여 시행의 방대한 시로 사상을 기록한 호메로스를 재현하고 있고, 절대 자유를 향해 투쟁해 간 오디세우스의 삶을 닮아있다 할지라도, 그의 작품의 태생적 배경과 모태는 언제나 유랑하는 영혼이었음을 나는 알고 있다. 의미론적으로는 자유하는 영혼일 터이다.

여러분이 알고 있듯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 <미할리스 대장>으로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교회로부터 반기독교도로 매도되는 탄압을 받는다. 그리고 그리스 정교회와 로마 가톨릭으로부터 신성모독을 이유로 파문당한다. 비록 반기독교도로 낙인이 찍혔을지라도, 나는 그가 평생을 바쳐 하나님을 사랑한 자유인이었음을 확신한다. 예나 지금이나 이 사실이 나를 얼마나 감동시키는지, 참 감사하다.

그리고 날마다 살아가는 자질구레한 얘기를 회고하면서, 크고 작은 슬픔에 연연하면서, 작은 기쁨과 작은 상처들을 곱씹으면서, 그렇게 살아가는 우리 보통 사람들로 하여금 비상하는 독수리의 꿈을 꾸도록 일깨워 준 카잔차키스에게 고마워한다. 때문에 독자들은 지금도 끊임없이 모든 얽매인 것을 벗어놓고 크레타로 날아간다. 위대한 여행을 떠나기 위해 닻을 내린 사람들처럼.

안개 같은 구름떼가 하늘을 뒤덮고 흘러가는 저녁녘에 나는 크레타 땅을 밟았다. 크레타의 흙에서는 여전히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영혼이 청년의 열정과 고민에 휩싸여 있는 듯하다. 언제나 지성과 열정의 격류를 따라 흘러갔던 그의 정신이 살아있다.

동서양 사이에 위치한 그리스의 지형적 특성과 터키 지배 하의 기독교인 박해로 땅은 얼룩져 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그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때문에, 일생동안 진실과 자유를 향해 헤매는 순례자의 길을 택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 영혼의 편력은 민족의 고난과 터키인의 기독교인 학살과 무관하지 않을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