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덕영 박사.

“노아의 아들 셈과 함과 야벳의 후예는 이러하니라. 홍수 후에 그들이 아들들을 낳았으니 야벳의 아들은 고멜과 마곡과 마대와 야완과 두발과 메섹과 디라스요”(창 10:1-2)

디라스 후손들의 정착지

지금까지 야벳의 여섯 자녀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들은 주로 오늘날 유럽의 주요 민족이 되었다. 고멜 후손들은 지금의 아르메니아, 터키 일부, 독일, 프랑스, 스페인 일부와 영국 웨일즈로 진출하였다. 마곡은 지금의 루마니아, 우크라이나 지역을 배경으로 스키타이 족을 이루었다. 마대의 후손들은 페르시아와 병합되어 지금의 이란을 이루었고, 아마 현재 전 세계에서 독립 국가가 되지 못한 민족 가운데 최대 인구를 가진 민족인 쿠르드 족도 마대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야완은 헬라의 주인공이 되었고, 두발과 메섹은 오늘날 러시아를 일구었다. 베네룩스 3국이나 스칸디나비안족들도 결국 고멜족과 관련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유럽의 주요 민족 가운데 남는 것은 고대 지중해의 주인공과, 이탈리아와 과거 주요 동유럽 일부 민족(유고 연방을 중심으로)의 행방이다. 여기서 야벳의 막내 아들 디라스를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성경에서 디라스(Tiras)는 야벳의 일곱째(마지막) 자녀(창 10:2, 대상 1:5)로 표현되어 있다. 그의 후손들의 행로에 대해서는 성경이나 역사 속에서 뚜렷하지는 않다. 그러나 야벳의 여섯 형제들의 경로를 살펴볼 때, 작금의 유럽을 일군 야벳의 후손 가운데 막내인 디라스 후손들은 크게 두 경로로 진출하였음이 분명하다.

먼저 내륙으로 들어간, 디라스의 후손들이 있는 반면, 나머지 후손들은 바다로 나아가 에게해와 동지중해로 진출하였다. 이들 해양 진출 후손들 중 일부는 멀리 이탈리아 반도까지 진출하여, 현재의 이탈리아인이 되었을 것이다.

유럽 내륙으로 간, 디라스의 후손들

요세푸스에 의하면, 디라스(Tiras)의 자손들은 디라시안스(Thirasians)라고 불리었다. 헬라인들은 그들을 트라키안(Thracians)이라 불렀다. 트라키아(Thrace)는 남쪽으로는 마케도니아(Macedonia)에서, 북쪽으로 다뉴브강, 동쪽으로는 흑해까지 이르렀다. 이들은 주로 과거 냉전 시대 유고슬라비아(Yugoslavia) 연방을 이룬 민족이다. 동쪽으로는 마곡족(루마니아, 불가리아 등), 북쪽으로는 고멜족(독일, 프랑스 등), 남쪽으로는 야완 족(헬라), 서쪽으로는 이탈리아와 바다를 접하고 있다. 오늘날 유고 연방은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헤르체코비나, 마케도니아,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등으로 갈라졌다. 지금도 민족 간 분열과 종교 분쟁으로 갈등이 잔존하는 지역이기도 하다. 이것은 같은 야벳의 후손인 고멜과 마곡과 야완의 후손들 틈바구니에 낀 지정학적 위치와 여러 민족으로 분화되면서 겪게 된, 내륙으로 진출한 디라스 후손들의 숙명과도 같은 것이었다.

역사적으로 트라키아 사람들은 야만적인 인도-유럽 계통으로서, 전쟁과 약탈을 좋아하는 민족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타민족을 평가할 때에는 편견이 작용할 수 있음을 감안해야 한다. 디라스는 이들 후손들에게서 두라스(Thuras), 또는 번개의 신인 토르(Thor)로 숭배를 받았었다. 오늘날 과거 유고 연방에 속했던 나라들에서 벌어진 참혹한 종교 전쟁이나, 국토 면적과 인구가 주변 유럽 강국들에 비하여 소규모임에도 불구하고 농구나 축구 등 다양한 올림픽 종목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모습들을 볼 때, 이들 국가들이 다혈질적이고 대단히 역동적인 성향을 물려받은 것은 분명한 것 같다.

해양으로 진출한 디라스 후손들의 경로 

내륙으로 들어간 디라스의 후손들과 달리, 일부 디라스의 후손들은 일찌감치 바다로 진출하였다. 애굽 비문에 투루사(Turusa)로 기록된 바다 사람들(Sea Peoples)은, 디라스의 후손들이 분명하다. 다소(Tarsus)와 다시스(Tarshish)의 지명도 디라스의 흔적이다. 당시 바다란 주로 에게해와 동지중해를 말하며, 이곳에 진출한 바다 사람들이란 곧 해적 노릇을 하던 사람을 말한다. 이들이 기원전 13세기 수리아와 애굽을 침입한 기록이 남아 있다.

야완의 후손들보다도 더 역동적으로 바다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디라스의 후손들은 소아시아 앞바다를 기점으로 점점 더 바다쪽으로 진출하여 에게해의 크레타 섬을 중심으로 고대 문명을 일구었으며, 마침내 그 일부는 이탈리아 반도에까지 닿게 되었다.

이탈리아의 한 축을 이룬 에트루리아

이탈리아와 관련하여 주목되는 민족은 에트루리아이다. 에트루리아는 로마 공화정 이전에 이탈리아에 존재했던 주요 문명이었다. 헨리 모리스는 이탈리아의 에트루리아(Etruscans)가 디라스의 후예들이라고 했다. 그리스어로 에트루리아는 티레노이(Tyrrhenoi) 또는 티르세노이(Tyrsenoi)라고 불러, “티라스”의 후예임을 암시하고 있다. 라틴어 문헌에는 티레니아(Tyrrhenia)로 표기되는 에트루리아(Etruria)는 이탈리아 중부에 있던 옛 나라로, 그 영토는 지금의 피렌체를 중심으로 한 토스카나(Tuscany) 주, 남쪽 로마를 중심으로 한 라치오 주, 한때 우리 한국의 유명 축구 선수 안정환이 속해 있던 페루자를 중심으로 한 내륙의 중심 움브리아 주가 이에 해당한다.

에트루리아인이 어디서 기원했는지는 고대부터 논쟁의 대상이었다.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투스는 최초의 에트루리아인들이 기근을 피해 서쪽으로 항해해 온, 소아시아의 서해안에서 온 리디아인이었다고 했다(역사 제1권 94). 반면 할리카르나소스의 디오니시오스는 에트루리아인들이 이탈리아 본토 사람이었다고 주장한다(고대 로마사 1권 25~30장). 둘 다 일리가 있는 주장이다. 한국인들도 당연히 한국 본토 사람들이 주류이다. 그러나 과거 그들도 분명 어디서 왔을 것 아닌가. 결국은 이탈리아인들도 과거 언젠가 어디에서부터인가 이탈리아에 도착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경로가 스페인이나 영국이라 하는 사람들은 없다. 그렇다면 이탈리아 도래인(渡來人)들의 출발지는 결국 북쪽 프랑스와 독일 방향과 바다가 남는다. 두 방면에서 모두 왔을 것이다. 하지만 지정학적 위치로 보아 이탈리아인의 주류는 먼저 문명이 일어난 헬라·에게해 등에서 해양을 건너온 사람들이 정착했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렇다면 지금의 이탈리아인들의 주류는 바다를 건너온 사람들이 되는 셈이다. 그들이 누구인지는 야벳의 자녀들 가운데 야완과 디라스가 주목된다. 야완과 디라스의 후손을 제외하고 바다로 역동적으로 진출한 야벳의 후손들은 눈에 띄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야완은 주로 헬라를 이루었으므로, 야벳의 막내 디라스가 결국 고대 이탈리아 서중부 일대를 중심으로 에트루리아를 이루었고, 그보다 먼저 또는 늦게 이탈리아로 들어온 이들과 함께 이탈리아 민족을 이루었을 것이다. 로마인들은 이들을 투스키 또는 에트루스키라고 불렀는데, ‘에트루스’는 ‘티라스’의 변형으로 여겨진다.

1세기 역사가 리비우스는 “에트루리아는 세력이 매우 강하여 그 이름을 땅과 바다에 가득 채웠다”고 했다. 고대 세력이 강하다는 것은 문명이 발달했다는 의미다. 먼저 로마 알파벳의 기원이 에트루리아인의 작품이었다. 에트루리아 인들은 그리스 문자를 기초로 독자적 언어 체계를 유지하였다. 현재 에트루리아어로 된 명문(銘文)은 1만점 이상 발견되었고, 지속적으로 발굴되고 있다. 이를 보면 에트루리아어가 분명 그리스 문자의 변종인 것은 분명하나, 그 뜻이 확실하게 해독(解讀)되지 않아 학자들 사이에서도 여전히 그 기원이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분명한 사실은 그리스어를 차용한 에트루리아의 독자적 문자 체계는 기원전 600년 로마 알파벳(라틴어)의 기원이 되었고, 이 라틴어의 어휘나 체계는 오늘날 영어의 기초가 되었다는 것이다.

종교적으로 로마 다신교 신전의 원조도 바로 에트루리아인이었다. 그리스 신화 올림푸스신들의 이야기는, 에트루리아인들에 의하여 이탈리아 반도로 들어와 제우스가 주피터로 바뀌면서 로마화되었다.

기원전 5-7세기 유명한 흑도자기 부케로(Buchero)의 주인도 이들이었다. 흑도자기의 검정색은 점점 더 화려한 색깔로 바뀌어갔다. 이들은 귀족들만 사용할 수 있는 값비싼 도자기였다. 문제는 화려한 색깔의 도자기들에는 중금속 적납(赤鑞)이 함유되어 있다는 점이다. 고대 평민들이 아닌 로마 귀족들 자녀에게서 다수의 지진아가 발생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귀족의 자녀들이 우수한 재질을 갖추어야 사회가 계속 그 체제를 유지할 수 있다. 중금속에 대한 무지(無知)가 에트루리아 멸망의 원인 가운데 하나를 제공했을 것이다. 이 같은 참사는 로마에까지 이어졌다. 로마 귀족들 자녀 가운데도 지진아가 많았다. 한때 지중해 세계를 제패한 로마는 상수도 시설까지 납관(鑞管)을 사용할 정도였다. 다수의 귀족 자녀들이 지진아가 되었다는 것은 로마의 쇠락을 재촉하는 원인이 되었고, 이 모두는 납 용출로 인한 참사였다. 당대 최고 의사들의 관리를 받던 진시황이나 당태종, 김일성 같은 독재자들의 급사원인도, 모두 아이러니칼하게도 건강과 장수를 위해 산해진미와 보양식이나 환약과 같은 비약을 즐기다, 알지 못하는 중금속에 의한 중독이 영향을 주었을 거라는 것이 정설이다. 진귀한 보양식이 오히려 화를 자초한 것이다.

에트루리아인들은 도시 건설 방법과 배수·관개 기술을 로마에 전했으며, 아치를 발명한 사람들이기도 했다. 오늘날 모든 아치형 건축물의 원조는 에트루리아인들이었던 셈이다.

우리가 고대 서양을 배경으로 한 영화에서 보는 검투사 제도와 개선 행렬과 같은 대축제(카니발)도 에트루리아의 잔재였다. 에트루리아의 이런 세속적 관람 문화는 전 유럽과 전 대륙으로 퍼져나갔다. 오늘날 이런 이상한 문화가 교회까지 들어와 “명품 교회의 대축제”와 같이 세속화된 말이 난무하게 되었다. 오늘날 툭하면 교회나 기독 단체들이 “축제(카니발)”라는 말을 남발하는 것은, 대단히 비성경적이요 무지의 소치이다. 마치 가난하고 미약한 교회는, 거창하고 즐거운 축제도 하지 못하는 뒤떨어지고 고상하지 못한 교회라는 인상을 줄 수 있다. 예수님은 아마 “명품교회” 자랑하고 축제를 남발하는 거창한 귀족 교회가 아닌, 고상하지 못한 낮고 천한 말구유 같은 교회에 찾아오실 것이다. 굳이 이런 단어를 쓰고 싶다면 유사한 말로 “잔치”가 더 한국적이고 성경적으로도 어울리는 말이 될 것이다.

결국 에트루리아는 그리스 문화와 로마 문명의 징검다리 역할을 한 중요한 유럽 민족이 되었고, 라틴인, 그리스인, 카르타고인들과 더불어 오늘날의 이탈리아를 이루었으며, 언어를 비롯하여 자신들의 앞선 모든 문화 유산을 로마에 전달한, 이탈리아 반도의 문명족이었다.

디라스 후손들의 미래

성경은 디라스 후손들의 미래 행로에 대해 뚜렷한 언급이 없다. 다만 오늘날 디라스 후손이 중심이 된 이탈리아는 한때 세속 문명의 중심이었고, 지금은 로마 가톨릭의 총본산 교황청이 자리한, 세계 종교의 중심이 되어 있다. 장막이 창대해질 것이라는, 아들 야벳을 향한 노아의 메시지를 기억했기 때문일까? 야벳의 막내 디라스의 후손들은 이렇게 오늘날까지 세상 문명의 중심에 자리잡았다. 다만 그 문화가 너무 자연종교적이요 인간중심적이다.

반도의 우리 민족이 옛부터 종교성이 강한 것처럼, 반도의 에트루리아인들도 변질된 신앙의 잡신문화가 발달된 민족이었다. 1세기의 한 역사가는 에트루리아인들에 대해 “다른 어떤 민족보다도 종교 관습에 열심”이라고 했다. 에트루리아인들은 다신 숭배의 사회였는데, 삼위일체 신을 좋아하여 삼위일체 신을 모시는 삼중 신전, 즉 방이 세 개인 신전을 건축하기도 했다. 이것은 기독교의 삼위일체는 아니었다. 3은 그들이 생각하는 가장 완벽한 숫자였기에, 이런 다신교적 의미를 부여한 것이었다. 또한 그들은 내세를 믿었다. 헬라철학의 영향을 받은 그들은 죽어 새로운 세상으로 가서 자신이 거느린 종들과 함께 산다고 믿었다. 그들이 매장문화가 발달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실제 그들의 지도자급으로 추정되는 무덤에서는, 상당한 부장품들과 순장으로 함께 강제로 매몰된 시종들이 발굴되었다. 순장은 고대 동서양에 걸친 인간 중심 문화의 절정이었다. 인간 중심 문화의 본산 로마에도 당연히 순장 풍습이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오늘날 로마가 세계 종교의 중심지가 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내륙으로 들어간 디라스의 후손들인 구 유고 연방 국가들도 민족간 종교적 갈등이 심각한 것을 보면, 디라스의 후손들이 유난히 종교성이 강한 것은 틀림 없다고 여겨진다.

어찌 되었든 디라스의 후손들도 다른 야벳 후손들처럼, 성경 예언대로 “야벳의 장막을 창대케 하시는 하나님의 은총” 가운데 있게 되었다. 하지만 디라스 후손들이 단지 세속적 문명과 세속적 종교의 번영에 그대로 머물 것인가? 그것은 누구도 알 수 없다. 다만 앞으로의 디라스 후손들의 미래도 야벳 후손 전체인 유럽의 상황과 무관하지 않으며, 유럽의 다른 민족과 관련하여 생각해야 될 듯하다. 하나님께서는 공평하시다. 어느 민족이든지 하나님께서는 그 열국(列國)의 모습대로 영광을 받으신다. 야벳은 야벳대로, 셈은 셈대로, 함은 함대로, 그들에게 영광 받으신다. 마치 부모가 되어 보면 자녀가 모두 귀한 것과 같다. 세속적으로 창대해진 디라스의 후손들이 세속의 모습에 머물지 말고, 미래에도 창조의 주가 되시고 구속의 주가 되시며 역사의 주관자이신 그리스도의 참 복음 안에 함께하는 복을 누리기를 소망한다.

조덕영 박사는

환경화학 공학과 조직신학을 전공한 공학도이자 신학자다. 한국창조과학회 대표간사 겸 창조지 편집인으로 활동했고 지금은 여러 신학교에서 창조론을 강의하고 있는 창조론 전문가이기도 하다. 그가 소장으로 있는 ‘창조신학연구소’는 창조론과 관련된 방대한 자료들로 구성돼 목회자 및 학자들에게 지식의 보고 역할을 하고 있다. ‘기독교와 과학’ 등 20여 권의 역저서가 있으며, 다방면의 창조론 이슈들을 다루는 ‘창조론 오픈포럼’을 주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