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이 무엇일까? 오늘날 수없이 터지는 문제를 보면서 ‘대한민국은 기본이 무너져 있다’, ‘기본이 안 되어 있다’는 말을 많이 한다. 사실 그렇다. 사고는 기본이 바로 되어 있지 않아 생겨난 것이 많다. 그러면 그 기본은 무엇인가? 몇 가지를 생각해 본다.
첫째로 책임 의식이다. 자기의 맡은 일에 대하여 정확하게 파악하고, 성실함으로 일을 행하는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러한 책임감이 어릴 때부터 훈련이 되어야 실천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기본에 대한 훈련 없이 하루아침에 되는 일은 없다는 사실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항상 현실을 탓한다. 그러나 오늘의 처참한 현실은 과거에 살아온 삶의 결과라는 사실은 우리를 매우 두렵게 한다. 내가 바로 살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갈수록 이기적인 세상은 공공의 책임의식을 상실하여 버렸다. 오직 자기의 유익한 일에만 열심을 낼 뿐이다. 책임감 훈련, 공공의 책임, 사회적 책임, 이웃을 향한 배려, 공동체를 향한 관심, 이러한 모든 일에 책임을 질 줄 아는 훈련이 필요하다.
책임감이란 일의 진행 과정과 결과와 평가를 모두 포함하는 것이다. 우리는 모든 일의 시작은 매우 잘 한다. 그런데 일의 과정을 살피지 못한다. 그 일의 결론도 확실치 않다. 이 모든 것은 책임감의 상실인 것이다. 말은 잘 하지만 책임감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정부나 지자체가 수천억을 투자하여 공사하는 일들이 용두사미로 끝나는 일들이 너무나 많다. 원인은 책임감의 부재이다. 기본이 안된 상태에서 일을 하면 항상 결과는 낭패일 뿐이다. 이번 세월호의 침몰 사건은 한 마디로 책임이 실종되어버린 사건의 대표적인 케이스다. 반바지 차림으로 탈출하는 선장의 모습은 그야말로 굴욕이요, 수치요, 참담함이었다.
사실 선장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역시 자기만 살면 된다는 의식이 팽배하여 있다. 내 교회만 잘 되고 부흥하면 된다는 비뚤어진 공동체 의식, 나만 잘 되고 성공하면 된다는 철없는 생각들, 이 모든 것은 자본주의가 가져다 준 폐해일 것이다. 모두가 자기 살 길만 찾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오호라 슬프도소이다.
무책임한 사람들, 기본이 안 된 사람들은 항상 죄송하다는 말을 입에 담는다. 그런 말은 필요 없다.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은 것은 우리가 모두 공감하는 바일 것이다. 책임을 회피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책임을 통감하고 무릎을 꿇어야 할 사람들이 남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정작 본인들은 빠져나올 궁리만 하는 태도 역시 아주 악하다. 후진국이라는 소리를 듣는 것은 이렇듯 책임의식이 없기 때문이다.
둘째로 정직함이다. 기본이 되었다는 것은 정직한 삶의 태도인 것이다. 자본주의의 타락한 정신은 정직이나 청렴한 삶과는 거리가 멀다. 오직 돈에만 정신이 팔려 있다. 성공과 출세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성경의 경제원리는 청부사상이 아닌가? 얼핏 보면 이것도 자본주의 사상인 듯하지만 사실은 전혀 다른 배경을 가지고 있다. 공동체를 위한 삶이요, 가난한 자와 나그네를 위한 것이요, 약자를 돌보기 위한 것이 아닌가? 결국에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하나의 방편일 뿐이다.
오늘 교회와 사회의 최대 걸림돌은 정직함을 상실한 것이다. 그 핵심은 돈과의 관계이다. 대부분 일상에서 정직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돈과의 관계에서는 그렇지 않다. 돈이 연관되어 있으면 어떤 방법을 통해서든지 이익을 취하고 얻으려는 태도로 일관한 것은 추접한 인간의 모습인 것이다. 신앙인이라면 이러한 추접함을 십자가에 못박은 사람들이 아닌가? 그런데도 오히려 더욱 하나님의 능력으로 거짓을 일삼고, 출세와 부와 성공을 향하여 달음질치는 모습을 보게 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돈과의 관계에서 정직함을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더욱 중요하다. 이웃과 사회와 가난한 자들과 나의 도움이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기꺼이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정직한 것이다. 우리는 소극적으로 거짓말하지 않는 일에 치중하여 왔다. 바르게 사는 것이 정직한 것이라고 일반적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오히려 적극적으로 나아가야 한다. 돈 있다고 자기만 부를 누리는 것도 정직하지 못한 신앙인의 태도인 것을 기억하면 좋겠다.
오늘 이 사회와 교회의 문제는 정직함을 회복하는 길이다. 교회에서는 지도자들의 책임이요, 지도자들이 바르게 하면 교회 회중은 대부분 따르게 되어 있다. 지도자들의 마음속에 정직함이 없기 때문에 교회가 그렇게 나아간다. 성도들이 그렇게 살아간다.
주님은 많이 선생이 되지 말라고 충고하신다. 책임이 크기 때문이다. 이것 역시 하루아침에 되는 일이 아니다. 어릴 때부터 교육되어야 하는 문제이다. 기초가 무너져 있는데 오늘을 탓하고 있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지금부터라도 자라나는 세대를 바로 교육하여야 한다.
나는 일본 지도자들의 역사인식이나 정치적 성향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그들의 정직한 삶의 태도나 근면 성실함은 인정한다. 또한 공동체를 위하여 개인의 삶이 제한되는 불편함도 기꺼이 감수하는 태도는 배워야 한다고 본다. 길거리에 자전거가 서 있어도, 지갑이 떨어져 있어도 주인이 오기까지 그 자리에 있다는 것은 삶의 기본적인 훈련이 되어 있다는 것이 아닐까?
셋째 기본을 든든히 하려면 공동체 의식을 배우고 가르치는 것이다. 우리는 인류라는 운명 공동체 속에서 살아간다. 크고 작은 공동체 속에서 산다. 그 누구도 공동체를 벗어나 살 수 없는 세상이다. 지구촌 한 곳에서 일어난 사건은 우리 모두에게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된다.
경제적인 관계에서는 더욱더 직접적이다. 지구 한쪽에서 환경이 파괴되면 그것은 곧바로 우리 모두에게 영향을 미친다. 한 사람의 실수는 모든 공동체를 파괴하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라는 공동체 의식을 가르치고 배워 실천하여야 한다.
사회에는 여러 가지 사상과 이념을 같이하는 공동체가 많다. 그 중에서도 그리스도를 중심한 신앙공동체는 매우 중요하다. 그리스도인 공동체는 사람을 살리고 세상을 살리고 지구를 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자라나는 세대에 공동체의식과 정직함을 가르쳐야 한다. 이것이 비전이고 내일의 소망일 것이다.
기차를 타고 가는 사람들은 잠시나마 함께 한 공동체이다. 비행기를 타고 갈 때도 타고 가는 공동체이다. 배를 타고 갈 때도 육지를 떠난 이상 생사를 함께하는 공동체의 일원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공동체 정신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모두가 파멸하게 된다.
성경에서는 이것을 지체의식으로 가르치고 있지 않는가? 몸이라는 구조 속에 많은 지체를 가지고 있지만 그것은 각각 독립적이 아니다. 서로가 유기적인 관계를 가지고 돕고 협력하여야만 하는 공동체적인 구조인 것이다. 이것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가르쳐야 한다.
자본주의는 공동체의식보다는 개인주의를 더욱 더 심화시킨다. 그래서 자본주의 장점이 많이 있지만 폐해가 심각한 것이다. 성경적 공동체 정신을 배우고 가르쳐야 이 사회에 국가에 기본이 확립될 것이다. 기본이 무너진 사회는 미래가 없다.
기초를 바로 세우지 않으면 사람이나 사회나 국가나 바로 세워질 수가 없고 미래를 보장하지 못한다. 우리 사회와 교회와 가정에 가장 필요한 것은 기본 공동체의식이다. 기본을 세우고, 기본기를 잘 배워야 한다. 기초가 든든해야 그 위에 많은 것을 세울 수가 있다. 이것이 가장 큰 오늘의 교회와 사회의 과제요 선교적인 삶의 과제이다.
현장의 소리, 세르게이(모스크바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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