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덕영 박사

우리 민족과 가까운 스키타이족 조상이 된 마곡(Magog)

세상을 호령하던 세계 최초 유목정권 스키타이족의 조상이 된 야벳의 둘째 아들 마곡(한민족은 과연 셈족인가? 야벳족인가?)

마곡 후손들은 누구인가?

마곡은 ‘곡의 장소’란 뜻이다. 즉 마곡은 문자적으로는 곡(Gog)이 최고 통치자로 다스리던 땅(혹은 백성)을 말한다(겔 38:2; 39:6). 야벳의 둘째 아들이었던 마곡(Magog, 창 10:2; 대상 1:5)은 성경 안에서 정확한 혈통 계보가 뚜렷하지 않다. 하지만 에스겔서를 참조할 때 마곡은 분명 곡(Gog)과 연관(겔 39: 6; 계 20:8)되며, 한 통치자(주된 왕, 겔 38: 2, 미국 표준역 ASV) 밑에서 메섹과 두발(지금의 터키 북동쪽 앗수르인의 영토였던 무쉬쿠와 타발)과 연합했다는 사실(겔 27:13)은 마곡이 북방의 야만 민족이 되었음을 말해준다(에스겔 38:15, 39:2). 전통적으로 마곡족은 요세푸스의 기록(요세푸스, Ant Ⅰ. 6. 1, 123)에 따르면 스키타이족이 되었다. 많은 학자들은 성경의 마곡과 곡을 동일한 민족으로 간주한다. 요세푸스는 북방(겔 38:15, 39:2)에 살던 사람들은 Magogites라고 불렸는데, 그리스 사람들은 이들을 스키티안(Scythians)이라고 불렀다고 설명한다. 브리태니카 백과사전에 의하면, 지금의 루마니아(Romania)와 우크라이나(Ukraine)를 포함한 지역의 고대 이름도 스키티아(수구디아, Scythia)였다.

스키타이(마곡 후손)를 닮은 우리 민족

우리에게는 스키타이족이란 이름으로 유명한 이들은 누구일까? 놀랍게도 이들은 세계 최초 유목 정권을 이룬 민족이다. 이들은 서쪽으로는 헝가리와 터키 그리고 한반도 남부까지 그 영향력을 확장하여 세계 최초로 글로벌화된 민족을 이루었다. 앞서 고멜족을 다루면서 고멜족을 흑해와 카스피해 연안에서 남쪽(지금의 서남 터어키 방향)으로 밀어낸 민족이 바로 이들이었음을 소개한 적이 있다. 게르만 민족의 대이동을 일으킨 것도 이들이요, 동유럽 토착민들이 두려움의 대상인 드라큘라 전설을 만들어낸 것도 이들 스키타이 민족 때문이었다. 이들은 서기 370년경 유럽 남동부를 침략한 이후 140여 년 동안 유럽 남동부와 중부에 거대한 제국을 건설한 유목민족이 되었다. 스키타이를 이란인들은 ‘사카’, 인도인은 ‘샤카’, 중국인은 ‘새’(塞)라고 불렀다. 하지만 넓은 의미에서 같은 유목민인 흉노(匈奴)나 훈족(Hun)도 결국 스키타이 계열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들 마곡족은 우리의 신라 왕족과도 연결된다. 한반도 3국 통일을 완성한 신라의 <문무왕릉비문>에 보면 투후제천지윤(秺侯祭天之胤)이란 구절이 있는 데, 여기서 ‘투후’는 흉노 휴도왕의 태자로서 한 무제의 총애를 받았던 김일제(金日磾)를 가리킨다. 신라 왕족은 자신들이 하늘(신)을 섬기던 김일제의 혈통(후손)이었음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경주 지역 신라 김 씨 왕가의 김알지 후손들은 자신들을 흉노계인 김일손의 후손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흉노족들이 유목민이므로 정착 생활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렇지 않았다. 성곽을 만들어 농사를 지은 사람도 다수 존재했으며, 특히 그들의 유적에서는 과거 한반도 북동 지역 옥저(沃沮) 사람들이 발명했다고 알려진 온돌(깐)이 발견되기도 했다. 이렇게 일부 흉노는 우리 땅에 정착하고 우리 민족에 동화되었다.

본래 신라 건국자는 박 씨 성을 가진 혁거세(赫居世)였다. 신라 초기 왕호(王號)요 군장, 제사장을 나타내는 거서간(居西干)은 몽골의 게세르(keser) 영웅서사시에 등장하는 ‘게세르 칸’과 언어학적으로 연관된다. 변한 지역에 존재하던 귀틀집의 기원도 한반도가 아니라 바이칼 호와 알타이 지방 및 애니세이 강 유역이라는 것은 역사적 정설이다, 가야 통치 지역이던 김해 대성동과 양동 고분에서 출토된 솥인 동복(銅鍑)과 철복(鐵鍑) 3개는 모두 북방 기마민족(스키타이 계열)이 사용하던 것들이었다. 삼국사기는 “박혁거세 즉위년에 (고)조선 유민들이 산곡(山谷)에 나누어 거주하여 6촌을 이루었다”고 하여, 신라 기원을 고조선 유민들의 이주에서 찾고 있다. 신라 총 56대 992년(B. C. 57-935) 동안 박씨 성을 가진 왕이 10명, 석 씨 8명, 김 씨 38명이었다. 건국 초기에는 주로 박 씨와 석 씨가 왕위에 올랐으며, 김 씨들이 왕조에 오르기 시작한 것은 17대 내물왕과 19대 눌지왕 사이에 성립된 것으로 보인다. 이때 왕호도 거서간에서 마립간(麻立干)으로 바뀐다(삼국사기는 19대 눌지왕부터 22대 지증왕까지 4대, 삼국유사는 17대 내물왕부터 지증왕까지로 봄). 마립간은 임금이 있는 곳, 곧 강력한 통치자를 지칭한다. 왕호까지 바뀐 것에서 박 씨와 석 씨를 능가하는 강력한 북방 세력이 어느 시기 남하하였음을 웅변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들은 분명 스키타이(흉노)의 피를 받은 무리들이었다.

금(金)은 농경민족이 아닌 본래 유목민들이 소중히 여기던 금속이었다. 즉 신라 금관도 초원을 달리던 스키타이와 흉노의 유물인 것이다. 최초 금관이 출토된 곳은 남러시아 초원의 사르마트족 묘로, 주전 2세기 것이었다. 금관의 상징은 나무와 사슴의 녹각, 그리고 새이다. 이들은 모두 고대 중앙아시아 지역 유목민들의 샤머니즘의 상징이었다. 나무는 신(태양)에 닿을 수 있는 일종의 계단이었고, 사슴은 생명을 주는 신이었다. 나무에 앉은 새는 신과 인간을 오가는 전령이었다. 신라 서봉총의 금관, 흉노의 금관, 스키타이 황금 인간의 모자에서는 이 새가 빛나고 있다. 신라 금관은 우리 민족이 문화적으로 중국 한족이 아닌 스키타이와 흉노의 영향을 받았음을 결정적으로 보여 준다. 언어적으로도 우리 민족은 한족과 전혀 다른 우랄 알타이어족인 것이다. 단재 신채호의 말대로 우리 민족은 “만주, 몽골, 터키 등과 수천 년 전에는 같은 혈족”이었음이 분명하다. 단재는 조선족과 중국의 한족은 동족으로 볼 수 없다고 했다. 물론 현재 우리 민족 씨족들의 기원이 상당수 중국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우리 민족 문화의 원형은 중앙아시아 대륙의 영향을 받았음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성경적으로 우리 민족은 어느 경로를 통해 한반도로 들어왔을까? 보통 중국 한족은 함족 또는 셈족과 함족의 혼합 계열로 비정한다. 반면, 만주를 통해 들어온 우리 민족은 셈족이나 함족보다 스키타이와 흉노의 계열인 야벳족의 피를 물려받았음을 강력히 시사하고 있다고 하겠다.

스키타이족의 또 다른 두드러진 특징은 황금 장식과 함께 땅을 파서 시신이 담긴 목곽(木槨)을 안치하고 그 위에 돌을 쌓아올린 소위 적석 목곽분이라는 무덤양식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바로 우리들이 신라의 거대 왕릉에서 보는 무덤 양식이다. 유명한 천마총은 바로 적석목곽분의 대표적 왕릉이다. 스키타이족은 말을 타고도 활을 잘 다루는 기마민족이었다. 유효사거리가 길고 강력한 ‘맥궁’이라는 화살과 몸을 돌려 쏘는 ‘배사법’을 특징으로 하는 스키타이족은, 말을 타고 능숙하게 활을 다루었다. 한자 ‘동이’(東夷)의 ‘이’(夷)는 ‘큰 활’를 의미한다. 즉, 동이는 동방의 큰 활의 민족을 의미한다. 이들 스키타이족들의 탁월한 활솜씨가 세계 최고의 양궁 실력을 가진 우리 동이 민족에도 일정한 영향을 주었던 것은 아닐까? 즐거운 상상을 해본다. 이 같은 기마민족의 기질은 일본에까지 이르게 된다.  태평양전쟁이 끝난 1948년, 한 좌담회에서 당시 도쿄대 교수였던 에가미 나미오(江上 波夫)는 일본 민족의 주류가 말을 타고 달리던 사람들이라고 주장하면서 ‘기마민족설(騎馬民族說)’을 들고 나왔다. 기동성을 지닌 기마민족이 만주 지역에서 한반도를 경유한 후 일본 열도로 진입해 통일국가를 실현했다고 보았던 것이다. 그는 일본 천황가의 기원도 기마민족에서 유래한다고 보고 ‘기마민족정복국가설’을 주장했다. 전 세계 인종 가운데 우리 민족과 가장 가까운 인종은 어찌 되었든 우리와 늘 애증의 관계에 있는 일본이 아니던가. 그러니 일본에서 기마민족 기원설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하겠다.

스키타이, 흉노족 그리고 인류의 한 혈통

이들은 중국 진(秦), 한(漢) 시대에는 흉노(匈奴), 수(隨), 당(唐) 시대에는 돌궐(투르크 또는 위그르, 터키), 고대 그리스(폴리스 시대)에서는 스키타이, 로마(제정시대)에서는 훈(후니)족으로 불리게 된다. 즉 흉노는 인종학적으로는 아시아족에 속하는 황인종 퉁구스(시베리아, 만주, 한반도 사람들을 지칭하는 칭호로 전통적인 동이족을 말함) 계열에 속하고, 19세기 이후 발달한 언어학적인 민족계열로 분류하면 몽골어군에 속한다. 고구려의 서울이었던 집안현(輯安縣)의 국내성(國內城), 환도성(丸都城) 지역 이름이 통구(通溝)인 것도 의미심장하다.

흉노가 중국 땅에서 주목받은 것은 BC 318년 중국 전국시대 제후국인 한(韓)·위(魏)·조(趙)와 함께 진을 공격하고, 그 뒤 중국 땅을 빈번히 침입하면서부터였다. 이에 중국 땅 여러 나라들은 흉노의 침입을 막기 위해 각각 성벽을 쌓았는데, 이것이 훗날 만리장성이 되었다. 흉노족이 강성해지기 시작한 것은 이들이 선우(單于)라고 불리는 단일 지도자 밑에서 광범위한 부족연합을 형성한 때부터였다. 그러기에 고대 중국 삼국지에 나오는 오나라의 왕 손권이, 고구려를 ‘흉노의 왕’이라는 의미의 ‘흉노의 선우’라고 지칭한 것도 주목된다. 백제는 일부 부여-고구려 유민들이 세운 나라요 가야도 기마민족의 후손이므로,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로 대표되는 우리 민족의 모든 주류는 국내 신학자들이 보는 셈족 계열도 아니요 서구 신학자들과 헨리 모리스(H. M. Morris)가 말하는 함족도 아니요 북방 야벳 계열이 되는 셈이다. 아무런 근거도 제시 못하면서 우리 민족이 막연히 셈족이라는 이상한 영적 우월주의에 빠지는 것은 결코 신앙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앞으로 더 많은 신학자들의 연구를 기대해 본다.

우리 민족은 유난히 우리와 다른 외국인들에게 배타적인 나쁜 습성이 과거 있었다. 다문화 사회가 되면서 그런 습성들이 일부 사라진 것은 아주 반가운 현상이다. 기독교인들은 우리 민족이 단일 민족이라는 허구적 세계관과 역사관을 빨리 버려야 한다. 우리 민족은 예부터 각 지역에서 유민들이 쏟아져 들어온 역동적 나라였으며, 북방 스키타이 계열의 흉노 뿐 아니라 중국계, 남방계, 몽골계, 베트남계, 일본에서 역유입된 왜(倭)계, 심지어는 아라비아계도 있었다. 하나님은 모든 인간의 혈통을 하나로 만드셨다(행 17:26). 성경적으로 보면 결국 모두 노아의 후손인 셈이다.

마곡 후손들의 미래

종말론적 관점에서 곡과 마곡은 그리스도와 하나님 백성들의 대적을 상징(계 20:8)한다. 에스겔 38-39장은 마지막 때(38:8) 마곡의 통치자 곡은 아시아와 아프리카(38:5,6; 계20:8)에서부터 군사를 모아 메시야의 나라를 침공할 것이라고 예언되어 있다. 그 동기는 사탄의 유혹에 따른(계 20:8-10) 탐욕(겔 38:12)과 교만(계20: 7)이었다. 그 결과, 마곡에 내란이 일어나고(겔 38:21) 하늘에서부터 파멸이 임하게 된다(겔 38: 12). 땅은 갈라지고(겔 39:20; 계 20:9-11) 하나님의 영광은 드러날 것이다(겔 38:16, 23; 39:7). 이 계시의 구체적 해석은 보다 영적이다. 따라서 역사와 현재와 미래를 잘 살펴서 앞으로 더 깊이 연구하여 종말에 대비해야 할 구절들이다.

고멜처럼 마곡 후손들도 야벳의 장막을 창대케 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예언대로 한때 온 세상을 호령한 민족이었다. 하지만 오직 문명사적 창대일 뿐 신앙적 창대는 아니었다. 오늘날 많은 마곡(스키타이)족 후손들은 하나님도 잃고 성경과도 멀어졌으며 복음도 잃어버렸다. 일부는 변질된 신을 섬기고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스키타이의 피를 이어 받은 우리 한민족에게 부여된 하나님이 주신 복음의 짐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휴전선으로 꽉 막힌 우리나라는 일본보다도 못한 섬나라나 다를 게 없다.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을 긍휼히 여기셔서 빨리 북한 땅에도 복음의 문이 열리고 스키타이족들이 누비던 만주, 원동, 캄차카반도, 시베리아, 중국 대륙, 중앙아시아, 위그르, 몽골, 내몽골 지역, 동남아, 서남아시아, 심지어 아프리카, 유럽까지 칼과 피가 아닌 십자가의 보혈과 복음을 들고 우리 민족이 달려가는 날이 속히 오기를 소망해본다.

* 이 글은 조덕영 박사의 ‘창조신학연구소’ 홈페이지(www.kictnet.net)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조덕영 박사는

환경화학 공학과 조직신학을 전공한 공학도이자 신학자다. 한국창조과학회 대표간사 겸 창조지 편집인으로 활동했고 지금은 여러 신학교에서 창조론을 강의하고 있는 창조론 전문가이기도 하다. 그가 소장으로 있는 ‘창조신학연구소’는 창조론과 관련된 방대한 자료들로 구성돼 목회자 및 학자들에게 지식의 보고 역할을 하고 있다. ‘기독교와 과학’ 등 20여 권의 역저서가 있으며, 다방면의 창조론 이슈들을 다루는 ‘창조론 오픈포럼’을 주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