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바르트.

‘칼 바르트’(Karl Barth, 1886~1968)는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신학자 중 하나다. 그리고 그는 한국교회에서 또한 가장 논쟁적인 신학자이기도 하다. 모두가 알듯 칼 바르트는 ‘신정통주의’(neo-orthodoxy) 신학자로, 그는 그가 생존할 당시 득세하던, 이른바 ‘자유주의 신학’에 반기를 들고 ‘예수 그리스도’ 중심의 새로운 신학 사상을 전개했다.

한 신학자는 “칼 바르트가 일반적인 자유주의 신학자였다면 아마 논쟁의 대상이 되지 않았을 것”이라며 “그는 자유주의 범주에는 포함되지 않지만, 그렇다고 정통주의도 아니다. 이 같은 그의 위치가 특히 보수적 신학계에 논란을 불러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즉, 같은 개혁주의 노선에 있으면서도 보다 온건한 이들은 ‘인간 중심’의 신학을 ‘예수 그리스도 중심’의 신학으로 옮겨온 칼 바르트의 신학적 업적을 인정하지만, 보수적 성향이 좀 더 강한 이들에게 칼 바르트는 여전히 자유주의적 색채를 띤, 섞일 수 없는 존재인 것이다.

공과(功過), 무엇이 더 큰가

이 같은 차이는 칼 바르트의 신학 중 예정론이나 종말론, 성경에 대한 입장 등 정통주의 해석에 반한다고 평가되는 것들을 양자가 얼마나 비중있게 생각하느냐에 따른 것이다. 온건한 이들이 이 같은 부정적 측면이 있음에도 자유주의에 경도되지 않았다는 점을 높이 평가해 그의 신학을 어느 정도 수용할 수 있다는 입장인 반면, 그렇지 않은 이들은 그런 오류가 너무 크고 또 그것이 신학의 ‘첫 단추’와도 같은 것이어서 신학 전반을 수용하기에 무리가 있다는 주장이다.

지난 21일 열린 한국개혁신학회-한국칼바르트학회 공동심포지엄에서 발제를 맡았던 김영한 박사(기독교학술원 원장, 숭실대 명예교수)는 칼 바르트 신학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도 “칼 바르트는 한국 보수교회에서 자유주의자로 평가절하되고 있다. 이는 바르트에 대한 올바른 평가라고 할 수 없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그는 칼 바르트가 “자유주의를 격파하고 하나님 말씀으로 되돌아가는 신학 혁명을 주도했다”고 평가했다.

한국개혁신학회 회장직을 역임하기도 한 권혁승 박사(전 백석대 교수)도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만약 그대로 두었다면 당시 기독교는 완전 자유주의로 흐를 수도 있었다. 이를 칼 바르트가 막았던 것”이라며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매우 사랑했던 사람이었고, 비록 약점이 있었지만 큰 틀에서 보면 교회를 위한 신학을 했고, 교회를 살리는 신학을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승구 박사(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는 김영한 박사와 함께 참여한 공동심포지엄에서 “적어도 칼 바르트는, 자신도 그렇게 이해하고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이해하듯이, 계시관과 성경관에서 정통주의적 입장과는 다른 입장을 제시하고 있다”며 “정통주의 입장에서는 과연 칼 바르트가, 우리가 상당히 수용할 수 있는 신학을 제시한 분이라고 할 수 있는가에 대해 여전히 질문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특히 이 박사는 이와 관련,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칼바르트 신학에) 중간중간 괜찮은 것도 있지만, 계시관과 성경관은 신학의 전제 혹은 출발점과도 같은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김길성 교수(총신대 조직신학) 역시 “칼 바르트가 성경의 영감과 무오를 전적으로 부인하진 않았지만 계시와 성경을 분리, 성경이 가진 절대 권위를 희석시켰다”고 비판했다.

왜 문제인가?

그렇다면 보수, 혹은 정통주의 신학자들이 받아들일 수 없다고 지적하는 칼 바르트 신학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 많은 이들이 그의 성경관과 예정 및 구원관을 문제 삼고 있다.

먼저 성경관과 관련, 칼 바르트가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감을 일정 부분 인정하고 있고, 하나님의 계시가 담긴 경전으로 성경의 중요성을 언급하면서도, 자유주의적 해석의 틀을 여전히 지니고 있다는 것을 문제로 꼽는다. 그가 예수 그리스도에 지나치게 강조점을 둔 나머지 성경조차 어느 정도 상대화시켰다는 것이다.

구원관도 논란의 대상이다. 칼 바르트를 비판하는 이들은 흔히 그가 ‘만인구원론’ 혹은 ‘보편구원론’을 폈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영한 박사는 앞서 언급한 공동심포지엄 발제를 통해 “칼 바르트는 유기(遺棄)론을 다루기는 하나 그것을 인류를 대표하는 그리스도의 인성에 돌림으로써 죄인인 개인이 유기당하는 것을 기독론적으로 무위화시켰다”며 “이러한 바르트의 유기론 포기는 유기를 말하고 있는 성경의 계시를 신학적으로 제거하는 것으로써, 정통주의에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일원예정론은 종말론에까지 영향을 주면서 만인구원론에 이르게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공동심포지엄 논찬자 중 하나였던 유태화 교수(백석대 신대원 교의신학)도 “칼 바르트가 성부 하나님이 인간과 화해하는 사건으로써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을 지나치게 확대하는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며 “과연 성부가 단 한 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모든 죄인의 죄를 심판하시고, 단 한 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모든 사람을 자신의 백성으로 인양해 들이셨는가 하는 점이다. 사실상, 위르겐 몰트만이 칼 바르트가 남겨놓은 과제로써 보편화해론의 구원론적 적용을 시도했듯이, 보편구원론적인 차원으로 가지 않겠는가 싶은 것”이라고 우려했다.

하지만 칼 바르트가 ‘만인구원론’이 아닌 ‘만인화해론’을 주장했다는 반론도 있다. 공동심포지엄에서 최영 박사(기장 목회학박사원)는 “바르트에 의하면 화해와 구원은 다른 사건이다. 화해는 2천년 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죽음, 그리고 부활을 통해 객관적으로 일어났고, 구원은 오늘 여기서 성령의 능력과 역사를 통한 인간의 주관적 수용을 통해 일어난다”고 반박했다.

한편 한국개혁신학회-한국칼바르트학회의 사상 첫 공동심포지엄은 국내 신학계에서 매우 의미 있는 자리였다는 평가다. 이들 신학회 관계자는 “두 학회가 공개적으로 심포지엄을 가진 건 이번이 처음으로, 매우 역사적인 사건”이라며 “확정되진 않았지만 심포지엄을 계기로 공동 정기 학술대회나 연구 모임 등을 갖자는 의견들이 오갔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칼 바르트는 유럽은 물론 미국에서도 대부분 보수적이라고 할 만큼, 한국에서와는 다소 상반된 평가를 받고 있다. 사실 칼 바르트에 대한 국내 보수 신학계의 반응은 어느 정도 정치적 문제와도 관계가 있다”며 “그러나 이런 논쟁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한국교회가 어느 한 신학자의 신학을 평가하는 차원을 넘어 오늘의 여러 위기에 어떻게 대처하느냐 하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신학이 과연 어떤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