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캐나다 Queen's University에서 종교학과 신학을 전공하고, 인도 자이푸르 불가촉천민과 그들의 인권 보장을 위해 Centre for Dalit Rights에서 사역하고 있는 김용욱 씨가 투고한 것입니다. -편집자 주

종교와 신비주의, 13억의 인구, 세계 8대 경제대국, 커리와 향신료로 알려진 인도는, 아직도 우리에게는 ‘고대의 나라’ ‘먼 나라’로 느껴진다.

하지만 중화 문화권에 속한 우리나라는 삼국시대부터 천축국으로 알려진 인도 문물의 전파와 함께 불교를 받아들였고, 포스트모던 사회에 들어서는 뉴에이지 운동의 영향으로 요가와 명상, 만트라 등 힌두 문화의 영향을 끊임없이 받고 있다.

13억에 이르는 인구 중 약 85%는 힌두교를 믿기에, 인도는 힌두교의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잘 알다시피 힌두교는 카스트제도라는, 피라미드 모양의 연좌되는 신분계급에 의해 유지되는데, 크게는 4개의 바르나(브라만, 크샤트리아, 바이샤, 수드라)로 나뉘고, 각 계급 또한 수백 개의 이하 계급(자티)으로 나뉜다. 카스트제도의 표면적 목적은 분업을 통해 사회 구조를 형성하려는 것이지만, 근본 목적은 브라만 계급의 통치를 원활히 하기 위한 것이다.

카스트제도는 인도의 고대 종교문서인 리그 베다에 처음으로 언급되는데, 이 경전에는 “브라만은 창조주의 입에서, 크샤트리아는 팔에서, 바이샤는 허벅지에서, 수드라는 발에서 나왔다”는 상징적인 구절이 포함되어 있다. 입에서 나온 브라만은 정신적 지도자를 의미하고, 힘과 행동을 상징하는 팔에서 나온 크샤트리아는 통치와 무기를 다루고, 허벅지가 몸을 지탱하듯이 바이샤는 농작물을 생산하고 재화를 유통하는 역할을 맡는다. 그리고 수드라는 발이 몸을 지탱하지만 머리가 명령하는 대로 움직이듯이 다른 계층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 사회는 계층 간의 분리를 확고히 하기 위하여 타 계층과의 결혼이나 결합을 금지시켰고, 계급은 대물림되었다.

카스트제도는 마누 법전이라는 고대 힌두교 율법 경전을 기반으로 삼아 법제화되었고, 힌두교가 착취에 기초한 철저한 계급사회를 지향하는 것을 보여준다. 불가촉천민들은 신의 가르침을 접할 기회조차 박탈당했고, 힌두사원에 들어가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이 법전엔 “다섯번째 카스트는 사람이 아니다”, “수드라가 더 높은 계급의 사람을 욕하면, 그의 혀를 잘라라”, “수드라가 더 높은 계급 사람의 이름을 부르면 열 손가락 길이의 달군 못을 식도로 넣어라”, “브라만계급을 수드라가 훈계한다면 끓는 기름을 입과 귀에 부어라”, “수드라는 어떤 사유재산도 가질 수 없고, 브라만은 그 재산을 빼앗을 수 있다”, “여자나 수드라를 죽이는 것은 죄가 아니다” 등 차별을 지지하는 구절들이 있다. 이같은 조항들은 낮은 계급에 대한 차별을 당연시하고 정당화한다. 이러한 차별과 사회적 억압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많은 낮은 계급의 사람들이 기독교, 이슬람교, 불교 등으로 개종했지만, 힌두교 근본주의자들의 박해로 인해 억압은 가중되고 있다.

카스트제도 밖에 존재하는 이들도 있다. 다섯번째 카스트 혹은 불가촉천민이라 불리는 이들은, 명칭이 의미하듯이 힌두교인이 접촉해서는 안 되는 계급의 사람들이다. 힌두사회 속에서 불가촉천민은 인간 취급을 받지 못하며, 그저 힌두교의 성스러운 동물인 소나 원숭이보다는 못하고, 개나 돼지와 같거나 조금 나은 존재로 인식된다. 인도의 국부 마하트마 간디는 이들에게 ‘하리잔(신의 아이들)’이란 이름을 붙여 주었고, ‘파리아(무시당하는 사람들)’나 ‘달리트(억압받는 사람들)’로 불리기도 한다.

전체 인구의 17%에 이르는 달리트들은 시체 처리, 무두질, 길거리 청소, 건설 일용직에 종사하며 대부분 하루 1달러 미만으로 기아 수준의 삶을 살고 있다. 1955년에 인도 헌법과 차별금지법안이 마련돼 카스트제도를 폐지하고 차별을 철폐했음에도 불구하고, 수천 년 이어져 온, 인도인들의 정신 깊숙이 뿌리내린 카스트 사상은 달리트들을 지역사회에서 배제하고 교육·보건·인권·경제활동·법률적 불이익을 받게 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 인도 정부는 이러한 상황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정부 관리들조차 카스트 사상을 따르기 때문에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

한국에서 사는 우리가 표면적으론 느끼지 못하지만, 우리 삶 가운데에도 인도 문화의 영향이 스며 있다. 지구촌 시대의 시민으로서, 인도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그저 먼 나라의 일이 아닌, 우리의 형제 자매들의 고통스러운 현실임을 알리고자 한다. 이를 위해 역사적·사회적·종교적 측면에서 인도라는 나라에 접근해, 인도인 특히 불가촉천민의 삶을 들여다보고 인도 문화가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을 가감 없이 분석하고자 한다. 또한 복음 전파의 필요성과 이를 통한 인도인들의 인식 변화에 관해 앞으로 12주간 서술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