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한 박사(기독교학술원장, 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설립원장).

머리말

오늘날 역사적 예수는 우리들에게 더 이상 지나간 인물이 아니다. 그는 초대교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케리그마(kerygma) 가운데 현재하시는 분이시다. 케리그마의 내용은 “십자가에 달리신 이가 하나님의 아들이었다”는 것이다. 이 케리그마를 통해서 예루살렘에서 초대교회가 형성되었다. 이어서 안디옥, 소아시아와 로마에 이르기까지 교회가 형성되었다. 교회 형성의 기반은 “십자가에 달리신 나사렛 예수가 그리스도, 구세주이다”는 신앙고백이었다. 역사적 예수에 대한 칭호들(구주, 메시아,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 인자, 하나님 등)은 그에 대한 신앙고백으로 생겨난 것이었다. 서구 교회를 통해서 복음이 북미와 전 세계로 전파되었다. 그리스도는 “선포된 말씀”으로 오늘도 우리 가운데 계신다. 그는 태초의 말씀이셨다. 그는 이제 승천하셔서 태초의 말씀으로 되돌아가 계신다. 그러나 그는 오늘날 교회와 전도자들이 선포하는 말씀을 통해서 우리 가운데 현재하신다. 오늘도 그의 구속사역은 계속되고 있다. 교회와 신자들은 그의 구속사역의 동역자이다.

1. 보혜사인 진리의 영으로 우리 안에 거하시는 그리스도

역사적 예수는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제자들에게 미리 말씀하신다. “내가 아직 너희와 함께 있어서 이 말을 너희에게 하였거니와”(요 14:25). 그 이유는 이 일이 이루어지면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이 사실이라는 것을 믿게 하기 위함이다. “이제 일이 이루기 전에 너희에게 말한 것은 일이 이룰 때에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요 14:29).
 
역사적 예수는 그가 이제 아버지께로 되돌아 가시면 세상은 그를 보지 못하게 될 것이나, 아버지께 구해 아버지께서 영원토록 같이 계실 “다른 보혜사”를 보내주실 것을 약속하셨다. “다른 보혜사”는 진리의 영이다. 세상은 받지 못하고 알지도 못한다. 예수는 말씀하셨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요 14:16-17). 예수는 그리스도인들을 고아같이 버려두지 않으시고 성령을 통하여 다시 이들에게 오신다. 그리하여 세상은 예수를 보지 못하나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를 다시 보게 된다.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 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터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았고 너희도 살겠음이라”(요 14:18-19). 성령은 우리들에게 예수께서 가르치신 모든 것을 기억나게 하실 것이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요 14:26). 성령이 오실 때 그리스도인들은 예수가 하나님 안에, 우리가 예수 안에, 예수가 우리 안에 있게 될 것을 알게 된다고 말씀하신다.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요 14:20).
 
보혜사 성령은 약속하신대로 예수의 부활 승천 후에 오순절에 예루살렘에 있는 마가의 다락방에 오셨고, 베드로를 비롯한 12제자들과 스데반을 비롯한 120 신자들이 성령의 충만을 받았다. 빌립을 통해서 사마리아 신자들이 성령을 받고, 에디오피아 내시가 전도되어 예수를 믿고 세례와 성령을 받았다. 핍박자 사울이 성령으로 다메섹 도상에서 빛으로 나타나신 부활의 예수를 만나 극적 회심을 한다. 그후에 로마의 백부장 고넬료가 베드로의 설교를 통하여 복음을 듣고 성령을 받으면서, 하나님의 복음은 이방인들에게도 퍼져나가 안디옥교회가 세워진다.

사도행전의 사역은 성령의 사역이다. 보혜사 성령은 예수의 부활 승천 이후에는 그의 대리자로서, 진리의 영으로서, 예수께서 약속하신대로 제자들 가운데 같이 계시고 구원의 사역을 행하고 계신다. 이러한 성령의 역사는 영원히 살아계신, 성자되신 예수의 사역으로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그분이 원하신 때와 장소에서 그의 구속 사역을 지속하신다.

그 대표적인 것이 서구 교회사에서는 1517년 독일 비텐베르그대에 있었던, 종교개혁자 루터의 종교개혁운동이었다. 종교개혁을 기점으로 천주교에서 개신교가 파생되어 나온다. 제네바에서 일으킨 칼빈의 종교개혁에 영향을 받은 영국의 성공회에서는 청교도운동이 일어났다. 이 청교도 후예들이 미국에 건너가 북미교회를 세웠다. 북미교회가 청교도 선교사 언더우드와 아펜젤러를 한국에 선교사로 파송하여, 1884년 부활절에 이들은 조선 땅에 상륙하였다. 한국 선교가 이루어진 것이다. 이들이 선교한 한국교회는 1903년 원산에서 일어난 회개운동과 1907년 평양 장대현교회를 중심해서 일어난 회개운동을 경험하였다. 1907년 평양의 영적 대각성운동은 한국교회의 중생 사건이라고 불린다. 역사적 예수는 오늘날 한국교회 안에서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신자들 가운데 그가 보내신 보혜사 성령을 통해서 현재하신다.

2. 계명으로 다가오시는 그리스도
1) 계명을 지키는 것은 주와 동행하는 것

오늘도 역사적 예수는 그가 주신 계명으로 우리에게 인격적인 그리스도로서 다가오신다. 예수께서는 자기를 믿는 유대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 8:31-32). 예수는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가 그를 사랑하는 자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는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자신을 인격적으로 드러내신다.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요 14:21). 예수는 계명을 지키는 것이 곧 그 안에 거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요 15:10). 사도 요한은 요한일서에서 그가 요한복음에 기록한 예수의 말씀을 다시 확인하고 있다.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그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 그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하게 되었나니 이로써 우리가 그의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요일 2:3-5). 예수의 계명을 지키는 자가 그를 아는 자요 그렇지 않는 자는 그를 알지 못하는 자이다. 오늘날도 예수는 계명을 지키는 자 속에 계신다.

2) 구약의 율례와 신약의 계명은 동일한 하나님의 말씀

신약성경의 이러한 증언은 구약의 시편 저자의 증언과도 일치한다. 계명을 통해서 우리에게 교훈하시고 계명으로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 가운데 계시는 그리스도를 이미 증언하고 있다. 구약의 율례나 도(道)는 포로기 이후에 변질한 바리새인이 생각한 율법과는 다르다.

(1) 시편 저자는 주의 율례와 도를 즐거워한다고 찬양하고 있다.
“내가 모든 재물을 즐거워함 같이 주의 증거들의 도를 즐거워하였나이다”(시 119:14 )
“주의 율례들을 즐거워하며 주의 말씀을 잊지 아니하리이다”(시 119:16)
“주의 증거들은 나의 즐거움이요 나의 충고자니이다”(시 119:24).
“여호와여 내가 주의 구원을 사모하였사오며 주의 율법을 즐거워하나이다”(시 119:174)
“주의 증거들로 내가 영원히 나의 기업을 삼았사오니 이는 내 마음의 즐거움이 됨이니이다”(시 119:111).

(2) 시편 저자는 하나님의 율례가 영혼을 살리는 놀라운 능력을 발견한다.
“내 눈을 열어서 주의 율법에서 놀라운 것을 보게 하소서”(시 119:18)
“주의 증거들은 놀라우므로 내 영혼이 이를 지키나이다”(시 119:129).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내 소리를 들으소서 여호와여 주의 규례들을 따라 나를 살리소서”(시 119:149).

(3) 시편 저자는 하나님의 율법이 진리요 등이요 빛인 것을 고백한다.
“주의 의는 영원한 의요 주의 율법은 진리로소이다”(시 119:142).
“주의 말씀의 강령은 진리이오니 주의 의로운 모든 규례들은 영원하리이다”(시 119:160)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 119:105)
“여호와여 주께서 가까이 계시오니 주의 모든 계명들은 진리니이다”(시 119:151).

(4) 시편 저자는 하나님의 율례를 지키고 사랑하며 감사한다.
“내 영혼이 주의 증거들을 지켰사오며 내가 이를 지극히 사랑하나이다”(시 119:167)
“내가 주의 의로운 규례들로 말미암아 밤중에 일어나 주께 감사하리이다”(시 119:62).
“그러므로 내가 주의 계명들을 금 곧 순금보다 더 사랑하나이다”(시 119:127).
구약의 성도들은 율법을 지킴으로 하나님과 동행하였다. 오늘날 교회 시대에는 그리스도의 계명을 지킴으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으며. 그리스도는 우리 속에 계신다.

3. 케리그마(선포)로 다가오시는 그리스도

사도 바울은 케리그마란 사람들이 믿어야 하는 “선포의 말씀”이며, 이 케리그마를 입으로 시인하고 마음으로 믿으면 그리스도는 우리의 구주가 되시고 우리 속에 인격적으로 들어오신다고 증언한다. 오늘도 복음이 전파되고 새로운 신자가 되는 사건이 지구촌 곳곳에서 일어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케리그마 가운데 오늘도 살아 계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면 무엇을 말하느냐 말씀이 네게 가까워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 10:8-10).

그리스도는 오늘도 케리그마로 그를 갈구하는 현대인의 마음을 두드리신다. 그리스도는 초대교회 시절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계 3:20). 예수는 오늘날 이천년 후의 모든 사람들을 향하여 ‘너희 마음의 문을 열어라. 그러면 내가 인격적으로 너희 마음 속으로 들어가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고 말씀하신다. 역사적 예수는 부활하시고 승천하고 왕적 통치를 하신 이래, 역사의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시고 그가 원하시는 모든 시대의 처소의 인간과 소통하시고 저들의 인격적인 주님이 되시기를 원하신다.

오늘도 그리스도는 말씀으로 우리 가운데 계시면서, 우리가 말씀을 묵상하면서 자신의 깊은 내면을 성찰할 때 말씀으로 우리 내면의 깊은 곳에 자리잡은 잘못된 생각과 관념과 습성과 죄성을 드러내시고 수술하시며 우리를 성결케 하신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히 4:12-13). 말씀의 묵상과 선포 속에서 그리스도는 우리 자신의 깊은 내면, 잠재의식 속의 생각하지 못한 부분까지 드러내신다. 그리고 우리의 죄성을 드러내신다. 밝은 태양의 빛 앞에서 모든 만물이 드러나는 것처럼 우리 자신의 진정한 모습이 드러난다. 그리하여 우리 자신의 추한 모습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 분 앞에 우리의 죄성을 고백하게 되면, 그리스도는 우리를 정결케 하신다. 새로운 모습, 그분의 형상으로 우리를 날마다 변화시키신다.

4. 복음 전파와 선교사역 가운데 계시는 그리스도

예수는 승천하시기 전 제자들에게 복음 전파와 세계 선교를 명령하셨다. 그 근거는 성부께서 그에게 하늘과 땅의 권세를 주셨다는 것이다.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 28:1-20상). 이제 제자들은 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세계 모든 민족에게 전파해야 할 사명을 지녔다. 예수는 모든 민족들을 신자로 만들어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하나님의 명령과 법을 지키도록 하라고 명령을 하셨다. 이 복음 전파와 선교 명령을 하신 예수는 복음 전파와 선교사역 가운데 현재하신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20하).

오지(奧地)에서 선교사역을 하는 선교사들의 보고서에서, 오늘도 삶과 선교 현장에 임재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읽게 된다. 이것은 “세상 끝날까지 항상 함께 있으리라”는 주님의 약속을 지키심이다. 18세기 대각성운동의 주역 조나단 에드워즈의 사위였던 데이빗 브레이너드(David Brainerd)의 일기를 읽으면, 그가 20대의 선교사로서 미국 뉴저지주 크로스윅숭의 인디언족에 대해 쓴 선교사역 일기에서, 인디언 가운데서 일어난 그리스도의 생동적인 임재와 사역을 감동 깊게 읽을 수 있다. 브레이너드는 21세에 회심을 하고 24세에 헌신을 해서 29세의 청춘에 폐결핵으로 생애를 마쳤다. 그는 당시의 무서운 유행병 폐결핵을 앓았으나, 그 가운데도 인디언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상상할 수 없는 성과를 거둔 선교사였다. 그는 일기에 “하나님의 능력이 강한 폭풍처럼 회중 가운데 강림하는 것처럼 보였다”고 증언하고 있다. 1745년 12월 15일 뉴저지의 크로스윅숭의 인디언 선교사역을 그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눅 13:24-28 말씀을 붙들고 인디언들에게 복음을 증거했다. 주님의 신령한 진리가 듣는 이들 위에 힘 있게 능력 있게 임하여, 많은 사람의 심령을 적시는 듯했다. 저녁이 가까워서 마 25:31-46 말씀을 붙들고 그들에게 다시 복음을 증거했다. 이 때도 말씀은 신령한 능력으로 동행하셨다. 참석한 사람들과 집회 위에 매우 특별한 방법으로 능력 있게 나타났다. 참으로 놀라운 은혜의 때였다. 주님의 말씀이 오늘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게’ 능력 있고 빠르게 나타나 많은 무리의 가슴을 찔러 쪼개었다.”[Jonathan Edwards(ed.), The Life of David Brainerd, Chiefly Extracted from His Diary, (Grand Rapids: Baker Book House), 윤기향 역, 데이비드 브레이너드, 크리스챤 다이제스트, 1984, 158]. 이 브레이너드의 일기는 예수께서 약속하신대로 복음의 말씀이 선포되는 전도와 선교의 현장에서,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성령은 능력 있게 말씀의 선포 가운데 현재하시는 것을 잘 보여주는 역사적 자료다.

네팔 학교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면서 선교하고 있는 어느 한국 목사가 보내온, 매년 별미로 드리는 10일 금식기도(2011년 12월 10일부터 10일 동안 기도)의 체험에 관한 간증도, 오늘날 선교사역에 현재하는 그리스도에 대한 하나의 실례가 될 수 있다. 누가복음에 있는 예수님의 비유 가운데, 지옥에 있는 부자의 간청에 관한 그의 영적 체험이다: “금식기도를 끝내고 며칠 후 생긴 일이었습니다. 밤에 묵상을 하고 잠이 들었는데, 귓가에 소리가 들렸습니다. ‘물 한 방울 주세요’ 하고. 깜짝 놀라서 깨어 보니 아무도 없었습니다. 다시 자리에 누웠습니다. 그런데 ‘물 한 방울 주세요’ 하고 같은 음성이 몇 차례 더 들렸습니다. 무슨 일일까, 생각했습니다. 감을 잡을 수 없었습니다. 그 때에 누가복음 16장을 기억했습니다. 지옥에서 타는 듯한 목마름으로 혀에 물을 찍어 달라는 부자의 외침을……. 그 이후로도 저를 향해 물 한 방울을 달라며 아우성을 치는 음성을 물리치지 못했습니다. 내 형제들에게 복음을 전해 주세요. 그래서 이 곳 불붙는 곳에 오지 않도록 해주세요. 간절함으로 호소해 오는 소리를 듣고 저는 가슴을 떨어야 했습니다.”(“금식기도 10일의 기적… ‘예수님은 최고의 의사’,” 크리스천투데이 기사 입력 : 2012.01.19. 07:14)

제미교포 목회자 지용훈은 교회 앞마당에서 뉴욕 맨해튼까지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선포한 여정을 담은, 그의 저서 『나는 뉴욕의 거리 전도자』(규장, 2010년)에서 다음과 같이 복음 전도에 임재하시는 성령에 관하여 간증하고 있다. “어느 날 거리에서 전도를 하고 있는데 어떤 한국 여자 집사님께서 다가오더니 나에 대해 궁금해했다. 목사라고 하니까 그 분이 반문했다. ‘목사님도 전도하세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의문이 떠올랐다. ‘아니, 복음을 알고 누리는 목사가 전도 안 하면 누가 전도하는 거지?’ 그 때 결심했다. ‘앞으로 내가 어떤 사역을 하고 어떤 위치에 올라간다 해도 나의 영성을 순수하게 유지하기 위해서 이 거리 전도는 결코 포기하지 않으리라.’”(지용훈, 『나는 뉴욕의 거리 전도자』, 규장, 2010년). 그는 달리는 버스 안에서 성령의 임재를 체험하고 복음 전도의 삶으로 바뀌어 뉴욕 거리의 전도자가 되었다. 지용훈의 신앙 체험은 미국의 19세기의 시카고의 복음 전도자 무디((Dwight L. Moody)가 경험한 성령 체험을 연상케 하고 있다. 무디는 어느 날 오후 뉴욕시의 월가(Wall street)를 걷고 있었다. 성령께서 강하게 그에게 임하였고, 그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그의 영에게 증거하였다. 무디는 사랑과 능력으로 가득 찼다. 그것이 그의 목회 사역에 있어서 전환점이 되었다. 그 사건은 무디로 하여금 전 세계적인 복음 전도자가 되게 하였다(로이드 존스, 로마서 강해 5권 / 414쪽).

5. 재림의 말씀 선포 가운데 계시는 그리스도

복음의 선포, 특히 재림에 관한 말씀 선포 가운데 예수는 현재하신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의 복음 때문에 환난을 받는 신자들에게 안식을 주시기 위하여 자기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능력으로 강림하실 것이다. “환난을 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시니 주 예수께서 자기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가운데에 나타나실 때에”(살후 1:7)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시면 복음을 불순종한 자들에 대하여 심판하시고, 이들은 영원한 멸망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에 복종하지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내리시리니, 이런 자들은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살후 1:8-9). 그러나 그를 기다리는 신자들에게 영광을 받으시고 존귀함을 받게 될 것이다. “그 날에 그가 강림하사 그의 성도들에게서 영광을 받으시고 모든 믿는 자들에게서 놀랍게 여김을 얻으시리니 이는 (우리의 증거가 너희에게 믿어졌음이라)”(살후 1:10).

예수는 속히 오실 것이며, 각 사람에게 행함대로 갚아주실 것을 말씀하신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계 22:12). 역사의 의미는 예수께서 다시 오심으로써 비로소 이루어진다.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자기의 구원과 역사의 바른 의미를 성취하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간절히 고대한다. 오늘날 북녘 하늘의 동포들, 중국에서 숨어지내는 탈북 신자들에게, 이 말씀은 일제하에서 박해받은 우리 한국교회 신자들처럼 주의 재림을 진실로 고대하게 하는 유일한 소망일 것이다.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계 22:20 ). 이 재림의 선포 가운데서 그리스도는 임재하시고 오늘도 회개한 신자들을 부르시고, 저들로 제자가 되게 하시고 복음의 전도자가 되게 하신다.

6. 선포의 말씀으로 오시는 그리스도는 “피 뿌린 옷”을 입으시고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

오늘도 선포의 말씀으로 다가오시는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히 13:8) 주님이시다. 그분은 과거의 인물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서 우리에게 자신이 항상 살아 계시고 시간과 공간의 주인이신 것을 말씀하신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라”(계 22:13). 천상에 계시지만 예수는 오늘도 역사를 주관하시고 구속(救贖)의 역사를 그의 말씀과 성령을 통해서 수행하신다. 오늘도 그는 세상 죄를 지시고 죽으신 속죄의 어린양으로서, 적그리스도의 무리들과 싸우신다. 사도 요한은 이 영적 사실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그들이 어린 양과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그들을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받은 진실한 자들도 이기리로다”(계 17:14). 오늘날 서구 교회는 쇠잔하고 적그리스도의 세력들이 교회를 압도하고 있다. 그러나 영적으로 세계 전반에서 볼 때 그리스도의 영적 싸움은 이기고 있는 싸움이다. 왜냐하면 그가 하나님이시고 “왕 중 왕”이시고 “만주의 주”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이 세상의 불의한 적그리스도의 세력을 그냥 이기는 것이 아니라 정의로써 이기신다. 그는 이 불의한 세상의 죄에 대한 대가를 그의 십자가에 흘리신 피로 지불하셨기 때문이다. “그 눈은 불꽃 같고 그 머리에는 많은 관들이 있고 또 이름 쓴 것 하나가 있으니 자기밖에 아는 자가 없고, 또 그가 피 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계 19:12-13). 그는 십자가 도의 말씀으로 오늘날 그의 교회를 통해서 세계 선교를 수행하시고 계신다. 그는 이기고 또 이기신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2천년 전이나 오늘이나 한결같은 복음이다. 어린양의 피를 믿는 자만이 거룩한 성, 다가오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 세속인 재벌이나 세상의 권세나 유명세로는 결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다른 종교의 교주나 성인의 이름도 거룩한 성의 입장권이 될 수 없다.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계 21:27).

맺음말

종말은 다가오고 있으나 역사 과정에서는 아직도 그분은 오시는 분이시다. 그러나 예수는 선포의 말씀 속에서 이 시간 우리 가운데서 말씀하시며 우리 가운데서 중생의 사건, 새 사람의 사건을 일으키시며, 당신의 구속사건을 현재화하신다. 예수는 이 시간도 선포 말씀 속에서 각 개인의 영혼에 그리고 거대한 집회 가운데서 여러 영혼들에게 말씀하시면서, 그가 “우리 개인의 구주”요 부조리한 사회의 구세주요 역사와 자연의 구속자이신 것을 드러내신다. 한편으로 예수는 개인의 구주로, 다른 한편으로 사회와 역사와 자연의 구세주로 다가오신다. 그는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앞으로 오시는 왕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