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옥 교수(기독문학 작가, 영문학 박사).

케냐 나이로비 국립대학에 지난 2월 한국의 경제와 문화 등 정규 과목을 가르치는 한국학과가 정식 개설되어, 한국학과 첫 강의를 시작할 예정이다. 한국학과 개설을 축하하는 그날의 기념행사에는 한-케냐 양국 우호증진에 관한 ‘꿈’을 주제로 한 학생들의 공연도 있었다.

한국학과 개설 이전, 지난해 12월 나이로비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공모한 한국학 에세이 경연대회에는 무려 138명의 학생들이 참석하였는데, 교육학과에 재학 중인 세실 레이몬드 군이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영예의 대상을 차지했다.

한국학 개설을 축하하는 기념행사가 있던 날, 나는 참으로 감회가 새로웠다. 전세계 75개국이 참여하고 있는 국제 와이즈멘 클럽에서 국제 여성 총재로서 책임을 맡고 일을 하던 때였다. 그 첫 임기 동안 국제 의회가 아프리카 케냐 나이로비에서 열렸다. 때마침 나는 한 건축회사의 사보에 아프리카 기행을 연재하기로 계약이 된 상태였다. 때문에 회의를 마친 후 이집트를 비롯하여 아프리카 여러 지역을 돌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러는 동안 주 아프리카 한국대사관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

한날 동아프리카 케냐 최대 대학교인 나이로비 국립대학 인문대학 학장 핸리 인다가시 박사를 만나기로 약속이 되어 대학 캠퍼스를 찾았다. 인다가시 박사는 케냐 작가협회 부회장이었다. 아프리카 학문의 상징이자 중심인 나이로비 국립대학은 푸른 잔디밭과 아름다운 숲이 우거진 근사한 녹지대에 자리잡고 있었다.

마침 쉬는 시간이라 내가 도착했을 때는 많은 학생들이 잔디밭에서 삼삼오오 짝을 지어 담소를 즐기고 있었다. 나는 여행 중이라 청바지에 티를 걸치고 선글라스를 끼고 카메라를 든 상태였다. 인다가시 박사의 방은 학생들이 모여 있는 잔디밭을 가로질러 본관 건물로 가야 했다.

나는 조금 긴장되었고 조심스러웠다. 그 순간 유난히 키가 큰 마사이 청년들의 시선이 일제히 나에게 집중되었다.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10년 전 아프리카는 비록 케냐 나이로비라 하더라도 환경이 얼마나 열악했는지. 한국 자동차는 물론 선글라스와 카메라와 시계, 그리고 청바지를 그들이 얼마나 부러워하였는지.

학생들의 강렬한 시선 때문에 나는 잔디밭 한가운데서 멈추어 섰다. 학생들과 나 사이에 이상한 침묵이 흐르고 있는데, 갑자기 한 청년이 성큼성큼 걸어오더니 내 앞에 장대처럼 우뚝 서는 것이다. 청년은 마치 하람비 댄서 같았다. 움푹 패인 눈과 그 눈에 튀는 불꽃같은 강렬함, 곧고 긴 다리로 내 발을 붙들어 매었다. 청년은 내게 악수를 청하더니, 경영학을 전공하는데 당신 나라 한국에 노동자로 갈 수 없겠느냐고 하였다. 자신은 케냐의 미래에 대해 절망하고 있으며, 많은 학생들이 자신의 삶과 미래를 포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나는 참으로 딱한 심정으로 그를 대했다. 케냐의 미래가 불확실한 것은 학생 스스로의 부정적 시각 때문이며, 과거 전쟁 이후 내 나라 대한민국도 오늘날 케냐처럼 처참한 상황이었음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 우리도 잘 사는 나라에 값싼 노동력으로 팔려갔으며, 주린 배를 움켜쥐고 살았다고 했다.

한국은 박정희 대통령 같은 나라 사랑하는 지도자가 있지 않았느냐. 오늘날 케냐의 지도자들은 나라를 사랑하지 않는다. 그들의 해외 도피 재산이 얼마인지 아느냐. 그것이 학생의 대답이었다.

나는 그 학생의 손을 잡고 따스한 눈빛으로 말했다. 한국에 노동자로 팔려가지 않아도, 한국을 롤 모델로 삼고 한국을 멘토로 지니고 한국을 꿈꾼다면, 언젠가는 반드시 한국이 누리는 번영을 소유할 수 있을 것이라고. 그날 호텔로 돌아온 나는 학생과의 일을 마음에 깊이 지니고, 그 꿈이 실현되기를 기도하였다.

오랜 시간이 흐르고 이제 나이로비 국립대학에 한국학과가 개설되었다. 주아프리카 한국대사 김찬우 씨는 이렇게 말했다. 한국학과가 개설되면 한국이 과거 1960년대 이후 경제발전 과정에서 터득한 노하우를 케냐에 전수하는 데 기여할 것이며, 양국이 미래지향적 동반자 관계를 형성하는 받침대로 작용할 것이라고.

지금 현재 나이로비 대학은 여전히 케냐의 대표적인 대학으로 7개의 캠퍼스에 6개의 단과대학을 보유하고 있으며, 현재 재학생 수가 6만여명에 달하고 있다. 10여년 전 내 손을 잡았던 그 청년은 이미 학교를 떠났을 것이다. 그러나 그 학생이 꾼 꿈은 지금 그 캠퍼스에 화려하게 피어났다.

나는 나이로비 국립대학에 한국학과가 정식으로 개설되던 날, 나의 말에 귀를 기울여 주신 하나님께 깊은 감사를 드렸다. 그리고 케냐의 어느 하늘 아래, 아니면 한국의 어느 곳에서 근사한 삶을 누리고 있을 그 학생을 오래도록 생각하였다. 우리가 마음 속에 낙원을 품고 그 세계를 꿈꾸며 나아갈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은총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