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혁 목사(강변교회 원로, 한국복음주의협의회 회장).

나는 지난 13년 동안 거의 매년 한 번씩 연변 지역에서 생활하고 있는 불우한 우리 조선족 어린 학생들과 가정들을 방문하며 조그만 위로와 도움의 손길을 펴고 있는데, 지난 6월 17일 월요일 아침 인천을 따나 2시간 후 연길에 도착하여 오후부터 20일 목요일 밤까지 조금도 쉬지 않고 연길, 안도, 왕청, 화룡, 용정, 도문, 훈춘 등 일곱 지역을 계속해서 방문하며 학생들과 가정들을 돌아보고 21일 금요일 오후 연길을 떠나 인천으로 돌아왔는데 언제나 그렇지만 이번에도 많은 슬픈 느낌과 깊은 감동을 받았다.

그곳에서 생활하며 공부하고 있는 불우한 학생들은 거의 대부분 어머니가 북으로 잡혀갔거나 가출해서 병든 할머니, 할아버지 또는 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는 고아들이다. 어머니는 북으로 잡혀가고 아버지는 암으로 사망해서 할아버지와 둘이서 함께 살고 있는 고등학교 1학년 여학생 하나는 내가 자기 집을 방문했는데도 심한 우울증에 걸려서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고 누워서 잠을 자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안타까워하면서 아이가 사람 만나기를 싫어한다고 말했다. 불치의 병에 걸린 할머니, 할아버지, 또는 아버지와 함께 극한 가난 가운데서 살아가는 학생들이 많았는데, 너무 가슴 아픈 장면들이었다. 물론 도움을 받고 있는 대부분의 학생들은 무척 고마워하면서 공부를 열심히 잘 하며 착하고 아름답게 자라가고 있었다.

한국복음주의협의회는 회원 교회들의 후원으로 지난 13년 동안 불우한 학생들 170여명에게 매월 5만원씩의 후원금을 보조해오고 있는데, 매월 5만원의 후원금이 불우한 학생들의 삶을 절망에서 소망으로, 어두움에서 밝음으로, 슬픔에서 기쁨으로, 원망에서 감사로 변화시키고 있는 모습을 글로 그리고 눈으로 바라보면서 얼마나 큰 보람과 기쁨과 감사를 누리고 있는지 모른다. 그리고 일곱 지역 회장들의 추천으로 일곱 명에게 대학 졸업 때까지 매년 200여만 원의 학비를 지급하고 있는데, 저들 “영재 장학생들”의 삶이 감사와 착함과 도움으로 가득한 아름다운 삶으로 변화되어 가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얼마나 큰 보람과 기쁨을 누리는지 모른다.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내가 지난 13년 동안 연변 지역을 방문하면서 공적으로 설교한 일도 전도한 일도 없었지만, 순수한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통해서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게 되었고 신앙생활을 잘 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후원을 받는 학생들은 물론이고 각 지역에서 후원의 창구와 손발의 역할을 하고 있는 부회장들과 봉사자들의 삶이 보람차고 활기 있게 변화되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은 참 감동적이었다. 한복협 후원의 창구와 손발의 역할을 하고 있는 연변 아리랑협회의 이영숙 회장은 인도주의적 사랑의 손길을 펴는 지도자로 연변 지역에서 존경을 받고 있는데, 연변 조선족 사회에서 귀한 일을 많이 하고 있다. 훈춘에서 부회장으로 일하고 있는 오금숙 회장은 본래는 사기 피해로 자살을 생각하던 사람이었는데, 이제는 훈춘 지역의 조선족은 물론 중국과 러시아의 불우한 사람들에게까지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는 자선의 어머니로 탈바꿈하게 되었고 중국 정부로부터 표창을 여러 번 받기도 했다. 지난 수 년 동안은 북한 함경도의 불우한 어린이들과 주민들을 자주 직접 찾아가서 양식과 함께 토기와 오리 종자 8만여 마리를 나눠줌으로 북한 주민들로부터 지극한 사랑과 존경을 받기에 이르렀다. 이번에도 아프리카의 강남진 선교사와 UBF의 이옥기 목사가 100만원씩 보낸 후원금 200만원을 전달했는데 7월 초에 오금숙 회장이 함경도에 가서 불우한 어린이들에게 양식을 전하고 돌아올 것이다. 이영숙 회장과 오금숙 회장은 기도하며 사랑하는 신앙인으로 탈바꿈하여 생활하고 있는데 그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하고 또 고백한다. 도문 지역의 더 많은 불우한 학생들을 돕고자 애쓰는 김덕자 부회장의 열심은 도에 넘을 정도이다. 연길의 오명화 부회장, 왕청의 서장석 부회장, 화룡의 이철현 부회장, 용정의 박중덕 부회장들은 모두 귀한 일을 희생적으로 하고 있었다.

이번에 일곱 지역을 방문하며 후원금을 받고 있는 학생들 중 일부의 가정을 방문하여 선물을 전달하며 격려하고, 일부 학생들과 식사를 함께 하고 선물을 전달하며 격려했는데 모두들 고마워하면서 격려를 받는 것 같았다. 가는 곳마다 학생들이 나와서 감사의 글을 읽곤 했는데 그 일부를 이 글 마지막에 소개하려고 한다.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받은 학생들은 공부를 잘 하는 것은 물론이고 삶과 인격이 귀하고 아름답게 변해가고 있었다. 내가 귀국한 후 이영숙 회장이 전화로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이번에 사랑과 도움을 받은 학생들이 너무 좋아하는데 난리가 날 정도라고 표현했다. 모두가 하나님의 망극하신 은혜 때문이고 여러 후원자들의 사랑과 후원 때문이다.

한 가지 아쉬운 일은 후원교회들이 170여명을 13년 동안이나 계속해서 후원하는 것이 힘이 들어서 최근에는 150여명으로 줄이게 된 것이다. 속히 170여명을 다시 후원할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주린 자, 목마른 자, 지극히 작은 자, 하나하나에게 한 것이 주님 자신에게 한 것이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면서 불우한 우리 조선족 어린이들을 돕는 일에 최선을 다하게 되기를 바란다.

한 가지 첨부하고자 하는 것은 이영숙 회장이 가는 곳마다 “김명혁 목사님과 한국복음주의협의회가 지난 17년 동안 도움의 손길을 계속해서 펴 오고 있다”는 말을 하고 또 한 것이다. 사실 17년 전부터 도움의 손길을 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도움의 손길을 편 것은 13년 전부터라고 생각한다. 또 한 가지 밝히고 싶은 것은 내가 이번에 가는 곳마다 다음과 같은 말을 한 것이다. “김명혁 할아버지가 여러분들을 직접 돕는 것이 아니고 한국에 있는 여러 교회들이 여러분들을 돕고 있는데 나는 후원금을 받아서 보내는 심부름을 하는 심부름꾼입니다.” 사실 나는 매일 이렇게 중얼거린다. “하나님 아버지! 부족한 죄인을 계속해서 심부름꾼으로 써 주시옵소서.” 그리고 지금까지 어려운 중에서도 계속해서 후원금을 보내시는 후원교회와 후원자 여러분들에게, 이번 연변 지역 방문을 후원해 주신 분들에게 그리고 북한 함경도의 불우한 어린이들에게 양식을 보낼 수 있도록 후원해주신 분들에게 심심한 감사를 드리며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함께 하시기를 기원한다.

2013년 6월 28일 여러분들의 심부름꾼 김명혁 목사

그러면 여러분들의 사랑과 도움을 받고 있는 학생들이 나에게 써서 준 감사의 글 몇 개를 그대로 소개한다. 먼저 화룡 출신으로 지금 연변대학교 농학원 2학년 학생으로 공부하고 있는 영재 장학생 라혜연의 편지를 소개한다.

“존경하는 목사님: 안녕하세요, 목사님. 저는 연변대학 농학원 농림경제관리 11학급에 다니고 있는 라혜연이라고 합니다. 저는 그동안 목사님이 베풀어주신 은혜로 학업을 지금까지 잘 완성하고 있습니다. 2007년 3월 11일 저의 어머니는 갑작스레 쓰러졌습니다. 그러고는 다시 저를 볼 수가 없었습니다. 마냥 행복하고 다정한 우리 집은 그 순간에 넘어졌습니다. 2년 반 동안 어머니는 그 아프고 힘든 시간들을 겪으면서 병마와 투쟁을 해보았지만 저의 이름 한 번 불러보지 못하고 저의 얼굴 한 번 더 보지 못하고 그렇게 아프고 괴로워하다가 저의 곁을 영원히 떠나갔습니다.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는 그 날은 2009년 11월 5일 눈 오는 날이었습니다.

그리고 저의 머릿속에 흐릿하게나마 기억되는데 그건 아마도 6년 전이었습니다(목사님을 만났습니다). 목사님을 처음 보았을 때 저는 15살이었습니다. 초 중 때 항상 일등만 하던 저는 어머니의 갑작스런 아픔 소식을 듣고 청천벽력에 맞은 것처럼 눈앞이 캄캄하였습니다. 그 때 저한테는 희망도 없고 의지도 없고 신심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때 목사님을 만나고, 목사님은 저한테 두말없이 도움을 주셨습니다. 저의 어머니 만나러도 가시고 어머니가 있는 영로원에 후원도 해 주시고 (어머니를 위해) 기도도 해 주시고 그 때부터 저는 목사님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매달 저한테 생활비도 보내주시고 관심도 많이 가져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힘을 다시 얻게 되었습니다.

예전에 어머니가 항상 하던 말이 기억났습니다. 어머니는 항상 제가 대학에 입학하는 것이 소원이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시련은 삶의 필수 과목이라고 생각하고 다시 힘을 가지고 학업에 몰두하였습니다. 그리하며 2008년 9월에 룡정고등학교에 입학하였고 3년의 학업을 성공히 끝마친 뒤 2011년 9월에 연변대학 농학원 농립경제 관리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현재 저는 2학년입니다. 저는 어머니의 희망 – 제가 대학에 입학하는 것을 이루어주었습니다. 저는 이것만으로도 어머니가 기뻐하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어머니한테 항상 자랑스러운 딸이 되고 싶습니다. 저의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도 이젠 4년이 거의 됩니다. 불행 중 다행은 있어도 다행 중 불행은 없다고 불행 앞에 감사하는 말이 있다시피, 저는 그냥 제가 남들이 모두 다 겪는 고통을 제가 일찍 겪었다고 생각하며 저를 위로하고 싶습니다.

그동안 목사님의 도움을 이렇게 받고 있어서 얼마나 감사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항상 목사님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나갈 것이고 비가 오면 만물이 자라나고 날이 개면 상쾌하다시피 언제나 다 좋은 날이라고 생각하고 남을 돕는 것은 복을 짓는 일이라고 목사님처럼 앞으로 남을 도우면서 살겠습니다. 목사님 항상 신체 건강하시고 좋은 일만 가득하고 행복하시길 바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동안 저에게 준 사랑을 잊지 않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2013년 6월 19일 라혜연 올림”

그 다음 용정 출신으로 지금 연길시 10중학교에서 1학년 학생으로, 뛰어난 모범 학생으로, 그리고 반장으로 공부하고 있는 강금화의 편지를 소개한다. 어머니는 북으로 잡혀갔다.

“김명혁 목사님께: 안녕하십니까? 저는 지금 연길시 10중 7-4에서 공부하고 있는 강금화입니다. 그동안 목사님을 뵙지 못하다가 아버지와 함께 화요일 오후에 목사님을 만나 뵙게 되어서 저는 정말 기뻤고 반가웠습니다. 불시로 목사님을 뵙는 바람에 목사님한테 편지를 드려야 하는 것을 깜박하였습니다. 지금이라도 이렇게 저의 감사의 마음을 표달할 수 있게 되어서 참으로 행운스럽게 느껴집니다. 저처럼 많고 많은 가난한 아이들을 여태껏 후원해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목사님의 이런 후원이 없었더라면 저는 지금 생활하기가 어려웠을 것이고 할아버지의 약비가 없어서 약을 살 수 없게 될 것이며 ‘행복’이란 이 두 글자에 담긴 깊은 뜻을 느끼지 못하고 있을 것입니다. 매번 김명혁 목사님의 후원을 받을 때마다 목사님은 마음씨가 곱고 훌륭한 분이라는 것을 가슴 속 깊이 느끼곤 합니다. 저의 소원은 김명혁 목사님처럼 훌륭한 사람으로 되어 가난한 애들을 돕는 활동을 벌여 그들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으로 성장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런 사람이 되기 위해 학습방면, 도덕방면에서 기초를 많이 쌓겠습니다. 아, 참! 목사님의 팔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약을 드시고 있습니까? 약을 하루도 빠짐없이 꼭 꼭 드셔야 합니다. 후에 다시 만날 때엔 목사님의 건강하고 건장한 모습을 봤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그럼 이만 필을 놓도록 하겠습니다. 김명혁 목사님, 하늘만큼 땅만큼 사랑합니다!!! 2013년 6월 20일 강금화 올림 ♥♥♥ I am very Happy ♥♥♥”

그 다음 도문시 월청진 소학교 6학년 학생인 김경림의 편지를 소개한다.

“고마우신 김명혁 할아버지께 드리는 편지. 할아버지 할머니 안녕하세요? 저는 도문시 월청진소학교 6학년에 다니는 김경림이라고 합니다. 먼저 다년간 저에게 따뜻한 사랑과 물질 량면으로 도와주신 할아버지께 충심으로 되는 감사를 드립니다. 할아버지께서 제가 가장 도움이 필요할 때 저에게 사랑의 손길을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고맙고 감사한 마음을 무엇으로 표달해야 합니까? 저는 정말 공부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가정의 조건으로 하여 주춤할 때가 매우 많습니다. 어머니는 내가 두 살 때 내 옆을 떠나 할머니의 사랑밖에 모르고 자랐으며, 년로한 할아버지는 췌장암으로 두 차례 수술했지만 효과를 보지 못하고 올해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 혼자로선 농사가 힘들어 우리 가정 형편은 너무나도 어렵습니다. 학교와의 거리가 멀어 날마다 교통비, 책값 내기도 힘이 들었고 하루의 물값도 극히 아껴 써야 했습니다. 이렇게 곤란한 우리 가정에 할아버지 사랑을 받는 그 순간부터 저는 새로운 희망을 갖게 되었고, 행복의 따스함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부모님이 하지 못한 사랑을 할아버지께서 하셨습니다. 저는 이 감사한 마음을 공부를 잘 하는 것으로 보답하려 합니다. 할아버지, 저는 꼭 공부에 노력할 것입니다. 공부를 잘하여 꼭 사회에 공헌하는 사람이 되는 것으로 보답하겠습니다. 할아버지, 지켜봐 주십시오. 저는 있는 힘껏 노력할 것입니다. 아름다운 칠색 꿈을 향하여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저에게 다함없는 사랑과 배려를 주신 할아버지께 다시 한 번 감사하다는 경례를 드립니다. 할아버지 사랑해 주셔서, 관심 가져 주셔서, 배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마지막으로 할아버지, 할머니 옥체 건강을 축원합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장수하세요. 도문 김경림 올림 2013년 6월 20일”

그 다음 용정 출신으로 연변대학교 사범학원 1학년 학생으로 공부하고 있는 영재 장학생 리미영의 편지를 소개한다.

“안녕하세요? 우선 연변대학 사범분원 15명의 장학생을 대표하여 한국복음주의협의회 김명혁 회장님과 연변아리랑창업협회 리영숙 회장님 학교 령도분들께 인사를 드리게 되어 참으로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저는 연변대학 사범분원 10급 1반에서 공부하고 있는 리미영이라고 합니다. 여러분들을 만난다는 설렘으로 밤잠을 설쳤는데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서 정말 반갑습니다. 저는 부모님 두 분 다 롱아인인 가정에서 태어나서 소학교시절은 친할머니께서 저를 키우시다 보니 연길에서 학교를 다녔고 중학교시절은 친할머니께서 중풍으로 편찮으셔서 저를 키우지 못할 상황이 되어서 저는 교하에 있는 외가집에서 중학교 3년을 다녀 519점이란 성적으로 2010년 연변대학 사범분원에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롱아인이다 보니 정상적인 로동력을 상실하였기 때문에 손에 닥치는 이 일 저 일을 하면서 겨우겨우 생활을 이겨나갔습니다. 제 뒷바라지를 해주시려고 연로하신 친할머니, 외할머니, 몸이 허약하신 어머니, 아버지를 보면서 공부를 그만두고 돈벌이나 하려는 생각을 한두 번 한 게 아닙니다. 이런 저한테 장학금은 정말로 가물의 단비처럼 경제적으로 많은 도움을 주면서 정상적인 학습과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2011년 7월부터 현재까지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장학금을 받았습니다. 여러분이 저한데 주신 것은 경제적인 도움 뿐만 아닙니다. 희망과 용기, 그리고 자신감…. 이러한 것들은 돈으로 계산이 안 되는 고귀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들이 보내주신 사랑과 성원에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생활 형편이 어려운 저에게 학교와 담임 선생님께서는 항상 가장 먼저 각종 보조금과 장학금을 주었습니다. 처음에는 내가 당연히 받아야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받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점점 철이 들면서 제가 한 행동에 너무나도 부끄러웠습니다. 우리 장학생 모두가 받은 사랑을 더 큰 사랑으로 부풀려 나보다 더 어려운 친구들을 도와주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만 이 사회가 더 아름답고 따스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우리 모두가 이런 사람이 되기 위하여 노력하겠습니다. 지금 저는 여러분들의 도움으로 더욱 열심히 공부하고 있으며 짬짬이 시간을 내어 아르바이트도 하면서 부모님들의 부담을 덜어드리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더욱 더 열정이 넘치게 대학생활을 하고 모든 일에서 최선을 다할 것이며 훌륭한 인민교사가 되어 우리민족의 미래 인재를 양성하고 우리 민족의 얼을 영원히 보존해 나가는 것으로 여러분의 사랑에 보답할 것을 다짐합니다. 또한 이 은혜를 절대 잊지 않고 제가 받은 사랑을 나보다 더 어려운 이웃과 친구에게 돌릴 줄 아는 훌륭하고 마음 따뜻한 사람이 되겠습니다. 이것은 아마도 이 자리에 있는 15명 사범분원 장학생들의 바람일 것입니다. 앞으로도 저희 사범분원의 어려운 친구들을 많이 도와주셔서 힘든 친구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시기를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연변에 머무시는 동안 매일매일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013년 6월 17일 리미영 올림”

그 다음 석현 출신으로 지금 연변대학교 예술학원에서 2학년 학생으로 공부하고 있는 영재 장학생 박송천의 시 두 편을 소개한다. 박송천은 연변작가협회에서 시인으로 받아들인 학생 시인으로 시집을 출판까지 했다.

“‘당신이라 부릅니다’. 김명혁 회장님에게. 박송천 시. ‘당신이라고 불러봅니다. 초면인 그대에게 버릇없이 감히 당신이라고 부르렵니다. 참 사랑이 옛말로 느껴져 올 때 세상이 험한 길로 느껴질 때 사랑의 화신이 되어 손 잡아주신 당신. 당신의 사랑을 가슴에 새겨두고 익숙하지 않았던 행복에 적응하느니 감사함이 희망을 열어 주더이다. 꿈의 날개가 굳어지고 이제 막 날아갈 준비를 할 때 세찬 바람도 두렵지 않습니다. 내 오늘 당신이라 부르는 그대가 있기에 숙망의 대지가 넓어지고 희망의 푸른 하늘 향한 욕망이 홰불로 타 오릅니다. 당신으로 우리는 나눔의 행복을 알았고 당신으로 우리는 세상의 아름다움을 알았습니다. 믿음 소망 사랑 세상을 꾸미는 셋 중에도 제일이 사랑임을 깨달을 때 우리의 가슴도 사랑의 실천을 향한 작은 충동으로 설레이더이다. 못난 시 한 수에 마음을 담기엔 부끄러움이 앞서지만 감사함을 전합니다. 내 오늘 버릇없이 당신이라 부른 사람이여’

‘감사하게 하소서’ 박송천 시. ‘려명이 밝아오는 이른 새벽 나 홀로 아침을 맞아도 감사함을 잊지 않게 하소서. 나 호올로 외롭고 쓸쓸해도 희망의 새날이 다가옴에 날더러 감사하게 하소서. 폭풍우가 불어치는 밤 슬픈 비가 가슴 찢어도 감사함을 잊지 않게 하소서. 그리움에 힘들고 지쳐도 이 삶에 그리워할 사람 있음에 날더러 감사하게 하소서. 외롭고 힘들고 아픈 인생 날더러 감사하게 하소서. 곡절 많은 인생길 눈물 아닌 웃음으로 감사하게 걸어갈 때 행복이 다가옴을 날더러 감사하게 하소서.’”

그 다음 도문의 “고아의 어머니” 김덕자 부회장의 감사의 편지를 소개한다. 김덕자 부회장은 도문 지역의 불우한 어린이들과 학생들을 돕는 일에 지나칠 정도의 열심을 다하고 있다.

“존경하는 김명혁 목사님과 사모님: 안녕하세요? 무더운 여름철도 마다하고 도문의 아이들을 찾아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10여년간 우리 아이들을 위해 물심량면으로 도와주셔 아이들은 아주 건강히 우수한 성적으로 학업을 마치고 있습니다. 사랑의 새싹에게 단비를 주어 소학교, 중학교, 고중, 전업학교, 대학을 졸업하면서 한국으로 일본으로 연해지방으로 법관으로 교사로 활약하고 있고 나머지 아이들은 학업에 충실하고 있습니다. 대학을 졸업한 학생이 19명이고 기술전업학교를 졸업한 학생이 3명이며 10여 년간 도문의 불후아이 254명을 도와 주셨습니다. 그 후원금은 중국 인민폐로 125만원에 상당하며, 대학통지서를 받았지만 학비를 장만하지 못해 안절부절했던 렴춘희, 동아려, 한미, 리선매 등 학생들에겐 별도로 생활비, 학비를 4-5년 보내 주어 학업을 마치게 하였는데 그 금액은 8, 7만원에 상당합니다(렴춘희 제외).

김명혁 목사님이 보내주신 후원금은 경제적 제한으로 학업의 길을 힘들게 걸어온 아이들에게 힘든 상황에서도 모든 걸 이겨내는 자신감과 용기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남한테 베풀며 살고 싶은 꿈을 키워주셨습니다. 목사님, 한미의 감사 서신의 한 구절을 읽어드리겠습니다. 「목사님, 이렇게 크신 은혜를 제가 감당할 수 있을까요? 목사님을 만났다는 것만으로도 저는 기쁘고 고맙습니다. 오늘 받은 모든 감동과 기쁨을 모두 주님께 영광 돌리기를 원합니다.」 믿음이 좋고 마음씨 착하고 생각이 깊은 한미는 오늘 당당한 법관으로 되었습니다. 또 한 구절은 「저에게는 지금 모든 것이 감사합니다. 내가 원했던 공부를 계속할 수 있고 내가 일용하는 양식도 감사하고 맑은 해살과 무더위를 가셔주는 물방울도 감사합니다. 많고 많은 감사 중에서도 가장 감사한 것 목사님을 만난 것이에요.」 아주 맞는 말입니다. 우리 아이들은 모두가 행운아들입니다.

목사님과 사모님, 중국에 있는 우리 아이들을 위해 노고가 많으셨습니다. 아이들에게 삶의 희망을 심어주시고 사랑의 씨앗을 뿌려주신 데 대해 참으로 고맙습니다. 도문시 고아와 불후의 아이들을 대표하여 두 분께 민족의 큰절을 드립니다. 목사님이 곳곳에 심으신 사랑의 씨앗들이 파릇파릇 새싹이 돋아 푸르싱싱 자라고 있고 멀지 않은 장래에 세계 방방곡곡에서 사랑의 꽃들이 활짝 피어 그윽한 향기를 풍기며 온 세상을 아름답게 단장할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바로 목사님께서 하시는 크나큰 사업이시며 목사님께서 쌓으신 크나큰 업적입니다. 먼저 우리 아이들의 축복을 받으면서 항상 건강하시고 하시는 일마다 뜻을 이루시기를 기도드리겠습니다. 도문의 고아 어머니 김덕자 2013년 6월 20일”

*** 부족한 죄인을 그동안 조그만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는 심부름꾼으로 사용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얼마나 큰지 모른다. 부족한 죄인이 주님과 여러 후원자들이 받아야 할 감사를 대신 받고 있는 것 같아 부끄러움과 죄송함을 금할 수 없다. 하나님의 긍휼과 용서와 사랑과 자비가 불우한 우리 조선족 어린이들과 동포들에게, 우리 북한 어린이들과 동포들에게 그리고 우리 남한 교회에 사회와 동족들에게 충만하게 임하시기를 간절히 기도 드린다. 그리고 불우한 이웃들에게 더 많은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펼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소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