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 S. 루이스와 함께] 나니아 연대기를 알려드립니다
본지는 C. S. 루이스(Clive Staples Lewis) 소천 50주기를 맞아, 루이스와 그의 작품에 대해 다양한 각도로 조명해 보는 연중기획을 진행 중입니다. 이번에는 가정의 달 5월을 맞아, 어린이들이 즐겨 읽는 루이스의 판타지 소설 ‘나니아 연대기’에 대해 정인영 선생님(양주효촌초)께서 들려주시는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정 선생님은 현재까지 번역된 루이스의 책을 모두 소장한 자칭 ‘C. S. 루이스 팬클럽 회장’이자, 어린이 독자들에게 1944-1963년 사이 루이스가 보낸 97통의 편지를 모아 엮은 <루이스가 나니아의 아이들에게(홍성사)>의 번역가이기도 합니다. <루이스가 나니아의 아이들에게>는 ‘나니아 연대기’의 팬이던 아이들이 루이스에게 책과 작가, 글쓰기 요령, 학교생활과 신앙 고민 등을 주제로 궁금한 점을 물은 것에 대한 그의 답장입니다. -편집자 주
1. ‘나니아 연대기’는 어떤 이야기이죠?
‘나니아 연대기’란 <마법사의 조카>, <사자와 마녀와 옷장>, <말과 소년>, <캐스피언 왕자>, <새벽 출정호의 항해>, <은의자>, <마지막 전투> 등 일곱 가지 이야기로 이루어진 연대기 소설입니다.
아슬란이라는 사자가 노래로 나니아라는 나라를 창조합니다. 노래를 부르면 땅에서 꽃과 나무도 자라고 동물들도 ‘펑’ 하고 나옵니다. 그 중 동물을 골라, 말할 수 있는 능력을 주죠. 그러니까 나니아는 말하는 동물들의 나라입니다. 그런데 마녀가 침입하고 잊을 만하면 등장해 나니아 국민들을 괴롭힙니다. 그때마다 우리 세계의 어린이들이 가서 나니아를 구합니다.
그래서 나니아에는 ‘아담의 아들과 이브의 딸’들이 나니아를 구한다는 전설이 내려옵니다. 그 전설은 매번 사실로 확인되구요. 왕도 바뀌고, 노예 생활도 하고, 침략 전쟁도 막아내며 나니아는 지속되지만 2555년 만에 결국 망합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7권 전체가 서곡에 불과한, 진짜 모험이 시작되니까요.
2. ‘나니아 연대기’는 언제, 누가 쓴 책이죠?
1950년대 초 영국의 영문학자였던 C. S. 루이스가 쓴 책입니다. 이 책이 나올 당시 루이스는 이미 전시 라디오 강연 시리즈(나중에 <순전한 기독교>로 묶여 출간됩니다), <스크루테이프의 편지> 같은 책으로 대중에게 알려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처음 책이 나왔을 때 사람들은 의아했습니다. 50세가 넘은 노총각 교수가 이런 책을 썼으니까요.
<섀도우 랜드(루이스의 결혼과 사별에 관한 영화)>에 보면, 친구 교수들이 술집에 모여 “잭의 빌어먹을 동화책 얘기는 한 마디도 더 하지 마” 라고 하면서 농담을 던지는 장면이 나옵니다. 요술 옷장을 통해 새로운 세계로 간다는, 말도 안 되는 얘기를 한다면서요. 이어 루이스가 “이건 마법이야, 마법!”이라면서 변호를 하죠.
루이스는 ‘어린 시절의 자신’을 통해 어린이의 마음을 헤아렸다고 합니다. <루이스가 나니아의 아이들에게>를 보면 50세가 넘어 동화를 즐겨 읽는 자신을 소개하면서, 나이는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어린 나이에도 진정한 영적 경험을 할 수 있다는 얘기를 여러 곳에서 하죠.
3. ‘나니아 연대기’를 17세부터 썼다구요?
그렇다고 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루이스는 이미지를 연결시키면서 책을 썼습니다. 그런데 7권 중 첫 작품인 <사자와 마녀와 옷장>의 한 장면이 열일곱살 때부터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답니다. 여자아이와 염소인간이 팔짱을 끼고 눈 덮인 숲을 걸어가는 장면입니다(출판사에서도 이 장면을 책의 맨 앞에 넣어 놓았습니다). 이야기를 만들어 보려고 시도한 적도 있었지만, 제대로 된 작품은 50세가 넘어서 나왔습니다.
4. 나니아의 옷장이 루이스의 집에 있었다구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나니아 옷장이 탄생하는데 큰 영향을 준 옷장이 있습니다. 바로 루이스의 할아버지께서 만드신 떡갈나무 옷장입니다. 루이스는 어렸을 때 이 옷장에 들어가 ‘재밌는 모험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답니다. <섀도우 랜드>에도 의붓아들이 루이스의 집 2층에 올라가 이 옷장 문을 열어보는 장면이 나옵니다. 아마도 이 책을 읽은 전세계 거의 모든 어린이들이 그 옷장을 열어보고 싶어했을 것입니다. 현재는 미국의 휘튼대학 웨이드 컬렉션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웨이드 컬렉션은 루이스에 관한 자료를 모아놓은 곳이죠.
5. ‘나니아 연대기’가 기독교를 알리기 위해 쓴 책이 아니라구요?
예. 결과적으로 기독교의 교리를 잘 보여주는 책이긴 하지만, 처음부터 그런 의도를 가졌던 것은 아닙니다. 단지 아이들에게 들려줄 만한 이야기를 쓰려 했을 뿐이었고, 기독적인 요소가 자연스럽게 미끄러져 들어왔답니다. 루이스의 말을 들어보시죠.
“어떤 사람들은 제가 어떻게 하면 아이들에게 기독교를 소개할 수 있을까 고민하며 글을 썼다고 생각합니다.…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모든 것은 이미지와 함께 시작되었습니다. 우산을 들고 있는 파우누스, 썰매 탄 여왕, 위대한 사자 같은 것 말입니다. 처음엔 기독교적인 요소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런 것은 저절로 이야기 속으로 들어왔습니다.”
따라서 이 책을 가장 잘 읽는 방법은 책의 이미지에 푹 빠지는 것입니다. 위대한 사자, 옷장 문을 통해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것, 하얀 눈 위의 염소 발자국, 숲속의 잔치, 결투를 신청하는 생쥐, 동쪽 바다로 항해를 떠나는 배, 빛을 마시는 것 같은 단 바닷물…. 제가 어린이들과 함께 책을 읽은 경험에 비추어 보면 어린이들은 특별히 문제가 없는 한 책에 푹 빠집니다. 어른들이 숙제처럼 떠안기지만 않는다면 말입니다.
6. ‘나니아 연대기’를 성경 구절과 대조해 가며 읽지 말라구요?
예. 루이스가 직접 조언한 것은 아니지만, 분명 루이스도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위에서 말씀드린대로 이미지에 푹 빠지려면, 성경구절을 대조해 가며 읽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닙니다. 루이스의 말을 들어보시죠.
“그리스도의 고통을 느끼는 것이 많은 사람들에게 왜 그렇게 힘들었을까요? 그것을 의무라고 여긴 것이 가장 큰 이유인 것 같습니다. 무언가를 의무적으로 느껴야 한다면 감정은 굳어 버리지요. … 그러나 이런 것들을 교회 창문에 새기거나 주일학교 교리로만 가르치지 말고, 상상의 세계로 보낸다고 생각해 보세요. 처음으로 그런 것들이 힘을 발휘하지 않을까요? ”
혹시 성경구절을 대조하지 않는 것이 좀 불안하신 분들은, 성경을 주신 분도 하나님이시요 상상력을 주신 분도 하나님이심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