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 박사가 지난해 강연하는 모습. ⓒ양화진문화원 제공

‘소설로 찾는 영성 순례’로 다시 돌아온 이어령 박사가 올해 초까지 계속됐던 영화 <레미제라블> 열풍을 놓고 “작가인 빅토르 위고가 무엇을 이야기하려 했는지를 보지 않고, 각자 본 것만 제각기 말하고 있다”며 “모두가 혁명을 이야기하지만, <레미제라블>에서는 혁명을 어느 정도 인정하면서도 ‘사랑 없는 혁명’은 안 된다는 점, 그 사랑은 바로 예수의 사랑 곧 기독교적인 사랑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28일 서울 합정동 한국기독교선교기념관에서 열린 ‘<레미제라블>, 혁명이냐 사랑이냐’ 강연에서 이어령 박사는 “영화가 전세계에서 상영됐는데 유독 한국에서 본고장보다 큰 흥행을 거두고 있어 거꾸로 놀라고 있다”며 “그러나 빅토르 위고를 보고 레미제라블을 보는 게 아니라 나 자신을 투영시켜 영화에서 나를 보게 되면서, 중요한 걸 잃어버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위고는 바리케이트에서 혁명의 노래를 부르다 죽어간 사람들이 아니라, 유일하게 살아남았으며 사랑이 무엇인지를 아는 코제트와 마리우스를 주인공으로 삼았다”며 “모두가 쓰러진 눈물바다 속에서 코제트와 마리우스를 살려준 이가 바로 장발장”이라고 전했다.

마지막 장면에서 장발장이 죽어갈 때 코제트가 ‘(고해성사를 위해) 신부를 부를까요?’라고 묻지만, 장발장은 필요없다며 자신이 가석방된 죄수였을 당시 신부가 준 촛대를 가리키며 ‘저 빛이 나를 구제해 줬다’고 말하는 부분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이 박사는 “이렇게 명명백백한 기독교적 메시지를 주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모두가 혁명만을 인정할 뿐 이를 기독교적인 사랑으로 해석해낸 사람을 보지 못했다”며 “장발장은 예수님처럼 가난한 사람, 소외된 사람을 위해 살았던 인물 아니냐”고 반문했다.

이 박사는 “예수님께서 그 시대 창녀와 세리들을 위해 혁명을 일으키시거나 지도층을 칼로 찌르셨느냐”며 “혁명 이상의 사랑이 없으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오늘날 교회는 빵을 만들어주겠다거나 이 땅의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해주겠다는 등 엉뚱한 걸 믿는 경우가 많다”며 “인간이 혁명을 해서 낙원을 만들 수 있다면,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시험받으실 때) 사탄이 이 모든 땅을 주겠다고 했을 때 왜 받지 않으셨겠나”고도 했다.

자베르에게 ‘장발장의 은촛대’가 있었다면…

예전에는 읽지 않고 지나쳤던 소설 앞부분까지 꼼꼼히 다시 읽었다는 이어령 박사는, <레미제라블>이 쓰였던 시대적·사상적·역사적 배경을 소개하면서 다양한 이야기들을 풀어냈다. 그는 자베르 경감을 프랑스혁명 이후 공포정치를 실시했던 로베스피에르에 비유했다. 그는 정직하고 정의로웠으며 나무랄 데 없었던 사람이었지만, 사랑 없이 모두를 자신의 잣대로 바라보다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말았다는 것.

이 박사는 “로베스피에르는 최정상의 권력을 잡았을 때도 셋방살이를 할 정도의 인권변호사였지만, 혁명을 일으키면서 생명과 사랑을 놓치고 말았다”며 “<레미제라블>은 로베스피에르에게 장발장의 ‘은촛대’가 있었다면 그렇게 많은 피를 흘리지 않고 혁명이 더 잘 이뤄졌을 거라는 이야기”라고 덧붙였다.

또 “등장인물 중 누가 진짜 ‘레 미제라블(불쌍한 사람들)’이냐”며 “모두들 코제트나 팡틴이라 생각하지만, 알고 보면 법 아니면 아무 것도 모르던, 융통성이라곤 전혀 없던 자베르도 불쌍한 사람 아닌가”라는 견해를 밝혔다. 자베르는 인간이 만든 법에 잘못이 있음을 알지 못하고 이를 절대시한 잘못을 깨달으며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이 박사는 “우리는 장발장이 자베르를 여러 차례 살려주고, 코제트를 팔아먹으려 한 떼나르디에 부부까지도 용서하는 데서도 ‘기독교적 메시지’를 찾아내지 못했다”며 “바리케이트를 치고 소리 지르면서 노래를 부르는 데서만 감동을 얻지만, 사실은 용서와 구원의 이야기가 <레미제라블>”이라고 했다. 당시 혁명을 반대(反)하자는 말이 아니라, 혁명 이상의 것을 가지지 못해서 그 혁명이 실패했음을 위고는 말하고 있다는 것.

▲바리케이트 위에서 다함께 혁명을 노래하는 <레미제라블>의 마지막 장면. ⓒ크리스천투데이 DB

그는 “마지막 장면의 바리케이트 노래를 들으면 실제로 피가 끓고, 첫 장면의 장엄함에서도 마찬가지”라며 “이처럼 예술의 힘은 잘못 하면 이성을 잃게 만드는데, 믿는 사람들이 항상 그런 힘이 좋은 쪽으로 가도록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광신자들이라는 말을 듣거나 마귀가 유혹하기 딱 좋은 곳이 되고 말 것”이라고 했다. 이어 “기독교도 감성적으로 영성이나 힐링만 강조하다 보면 문제가 생길 수 있고, 그렇다고 너무 이성적으로만 접근할 경우에는 엔지오처럼 변질돼 소금의 맛을 잃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레미제라블> 보고 나면, 기독교인 늘어날 수밖에 없는데…

이어령 박사는 “<레미제라블>을 보면 기독교인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데, 자칫 잘못해서 로베스피에르처럼 돼 반기독교가 되면 큰일난다”며 “영화와 소설은 끊임없이 죽이고 가두고 싸우고 쫓고 쫓기는 이야기로 가득하지만, 그 속에서 장발장처럼 살려주고 구원하는 예수의 모델이 담겨 있다”고 전했다. 마리우스 대신 죽는 에포닌에게서도 아가페적 사랑이 있다고도 설명했다.

이 박사는 “프랑스혁명의 정신이 자유·평등·박애(사랑)였는데, 자유와 평등의 모순과 대립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융합시켜야 한다”며 “유럽은 이 ‘박애’를 잘못 해석해 갈라서고 죽이고 냉전을 일으켰지만, 기독교의 메시지처럼 이웃에 대한 사랑이 있다면 자유와 평등을 통합시켜 두 세력을 하나가 되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자유경쟁 세력(산업화)과 평등 세력(민주화)가 어딜 가든 충돌하고 있는데, 이를 통합할 수 있는 힘이 바로 사랑이며, 이를 예수님 안에서 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젊었을 때는 <레미제라블>에서 이 사랑을 발견하지 못해 빅토르 위고를 크게 보지 못했다”며 “다시 읽고 영화를 보니 위고가 지구 전체를 에워싸는 사랑의 영성을 가진 위대한 사람임을 알게 됐고, 예술가로 불리기에는 너무 큰 영혼을 가진 사람이어서 몇백 년이 지나도 갈채를 받는 것 아닌가 한다”고 밝혔다.

‘소설’에 대해서는 “강자가 서술한 역사와 달리,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이 등장하는 데서 매력과 위대성을 발견할 수 있고, 여기서 우리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게 된다”고 언급했다. 이어령 박사는 오는 4월 25일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말테의 수기>에 대해 ‘생명찾기’라는 주제로 강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