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고난과 십자가를 묵상하는 사순절, 그리고 고난주간이다. 출판계 신간을 중심으로, 고난주간 동안 읽을 만한 책들을 골라봤다.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로 느껴보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를 위에서 내려다본 사진. 사랑하는 아들을 잃은 하나님의 시선이 느껴지는 듯하다. ⓒ아드폰테스 제공

켄 가이어의 묵상집 <십자가를 바라보라(아드폰테스)>는 독특한 구성으로 흥미를 끈다. 미켈란젤로의 그 유명한 석상 ‘피에타’를 각도를 달리해 찍은 사진으로 바라보면서, 저자가 느낀 그리스도의 고난에 대해 담담히 써내려간 글이다.

성모 마리아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예수 그리스도의 시신을 무릎 위에 안고 애도하는 모습을 표현한 작품을 일컫는 ‘피에타’는, 사전적 의미를 넘어 ‘하나님의 주권에 영혼으로 복종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지난해 김기덕 감독이 만든 동명의 영화가 황금사자상을 받아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유명해졌다. 특히 영화 포스터에서 두 주연배우가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상을 재현하기도 했다.

‘십자가에 의해 빚어지는(Shaped by the Cross)’이라는 원제의 책에서 켄 가이어는 미켈란젤로가 예수님과 그의 어머니를 조각하면서 가졌던 열정을 전해들으면서, “미켈란젤로의 열정이 이 정도였으니 우리를 조각하시는 하나님의 열정은 어느 정도일까”를 생각한다. “우리는 하나님이 손수 작업하시는 작품이다. 그분은 해가 뜨고 질 때까지 격정적으로 우리를 조각하신다. 우리가 완성될 형상에 대한 생각으로 그분의 마음은 들끓는다. 미켈란젤로가 대리석만 생각했듯, 하나님도 우리만 생각하신다.”

‘하나님께서 내려다보시는 듯’ 위에서 아래를 향해 찍은 사진에서는 “가장 비참한 그리스도의 모습”을 느끼며 특별한 감상에 젖는다. “그리스도는 당당하게 서 계시지 않고 여인의 무릎에 생기 없이 누워 계신다. 어의(御衣)를 입고 계신 것도 아니다. 겨우 작은 천으로 몸을 가리고 계실 뿐이다. … 십자가는 ‘자아’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태양계에 일대 코페르니쿠스의 혁명을 일으킨다. 공전하고 있는 ‘내 인생’이라는 작은 별은 지난날 내가 상상했고 지금도 간간이 상상하는 태양계의 중심이 아니다. 예수님이 중심이시다. 중심축은 십자가이다. 우주 전체가 십자가를 중심으로 움직인다.”

그는 여느 왕의 모습과도 다르고, 심지어 미켈란젤로가 조각한 <다비드>나 <모세>와도 다른, 힘없는 예수의 모습을 통해 “스스로의 욕심을 채우고, 자신을 의지하고, 제멋대로 행하고, 자기를 방어하고 보존하고 자랑하는 모든 자아에 대해 죽은 자의 형상”을 본다.

▲조명이 비춰 땀흘리시는 듯한 예수님의 모습. ⓒ아드폰테스 제공

조명이 비춰 마치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 있는 듯한 예수님의 무겁게 젖혀진 고개에서 ‘목울대(Adam’s apple)’를 발견해내기도 했다. ‘마지막 아담’의 목에 걸려있는 아담의 ‘그 열매’ 말이다. “그 후로 우리는 계속 그 열매를 향해 손을 뻗고 있다. 결국 그리스도의 고난은 우리 탓이라는 뜻이다. 우리는 그분의 상처에 책임이 있다.”

책을 출간한 아드폰테스에서는 맥스 루케이도가 쓴 <예수가 선택한 십자가(He Chose the Nails)>도 나왔다. ‘쉬운 작가’ 루케이도는 십자가 사건에 담긴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 자신의 경험들을 버무려서 들려주고 있다. 그는 ‘단순한 모양’의 십자가가 왜 우리 믿음의 상징이 됐는지에 대해 “하나는 ‘하나님의 사랑처럼’ 양옆으로 뻗어있고, 하나는 ‘하나님의 거룩함처럼’ 위로 향하고 있다”며 “십자가는 그 둘이 만나는 곳이고,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준을 낮추지 않으면서 그 자녀들을 용서하시는 곳”이라고 말한다.

루케이도는 예수님의 손에 박힌 못,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의 명패, 함께 달린 두 죄인의 십자가, 벗겨진 당신의 옷과 찢긴 당신의 몸, 수의와 빈 무덤 등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면서, 이 모두가 “당신을 위해 한 일”이라고 말한다. 그는 그리스도께서 버리신 것들을 열거한 뒤, 우리에게도 “뭔가를 내려놓지 않겠는가”라고 묻는다. 그리고 나쁜 습관과 나빴던 순간, 화났던 순간, 내게 잘못한 사람들의 명단 등 버려야 할 것들을 들고 십자가 앞에 나아갈 것을 부드럽게 권유한다.

◈존 파이퍼가 말하는 ‘금식과 절제’의 참 의미

▲위에 소개된 <십자가를 바라보라(오른쪽)>와 <하나님께 굶주린 삶>. 두 책 모두 십자가 모양의 표지 디자인을 사용했다.

지난 15년간 사랑받아온 존 파이퍼(John Piper) 목사의 <하나님께 굶주린 삶(복있는사람)> 개정판이 출간됐다. 존 파이퍼는 사순절과 고난주간이면 성도들이 한 끼쯤은 하게 되는 금식에 대해 이야기한다. “금식하는 이유 중 하나는 우리 안에 무엇이 있는지 알기 위해서다. 금식하면 속이 다 드러나게 돼 있다. 당신의 내면이 보일 것이다. 비로소 우리는 내 영혼의 자원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금식은 믿음의 굶주린 시녀다.”

저자는 “그리스도인의 금식은 하나님을 그리워하는 향수에서 비롯된다”며 이러한 ‘하나님께 더 간절히 굶주린 마음’은 자기부인과 방종의 위험 사이에 있는 ‘즐거운 고통의 길’이자, 마조히스트의 병적인 쾌락이 아니라 ‘사랑에 빠진 사람의 뜨거운 추구’라고 말한다. 그는 이를 자신의 아내를 사무치게 사랑했던 경험과 비교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에 따르면 ‘먹거나 먹지 않는 일’은 본질이 아니다. 둘 다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주를 위하여’ 할 수 있다. 파이퍼는 마태복음 9장 14-17절을 금식에 관한 가장 중요한 성경말씀으로 제시하면서 “그리스도의 임재라는 ‘새 포도주’가 요구하는 것은 새로운 금식”이라고 강조한다. “우리의 금식이 간절한 이유는 그리스도의 임재라는 포도주를 맛본 적이 없어서가 아니라, 이미 성령을 통해 아주 놀랍게 맛보았기 때문이다. 기독교의 금식은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엡 3:19)’에 대한 굶주림이다.” 이럴 때 금식은 ‘잔치’가 될 수 있다.

추천사를 쓴 <지옥은 없다>의 프랜시스 챈과 <래디컬(이상 두란노)>의 데이비드 플랫도 오늘날 복음을 선포하고 교회를 개척하기 위한 계획과 원칙에 대해서는 쉽게 말을 많이 하면서도, 여기에 필요한 능력인 ‘금식과 기도로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에 대한 열띤 대화가 사라졌다고 거들고 있다. <하나님께 굶주린 삶>도 <십자가를 바라보라>처럼 제목으로 만든 십자가 모양의 표지를 하고 있다.

◈짧게 살다 간 인디언 선교사의 ‘순전한 헌신’

▲<순전한 헌신>.

예수님의 고난 뿐 아니라, 그를 따라 자신을 온전히 드린 이들의 삶도 고난주간 동안 묵상할 만하다. 생명의말씀사 ‘리폼드 시리즈’ 네번째 책인 <순전한 헌신>은 미국 식민지 시대 인디언들을 선교하다 29세의 나이에 폐결핵을 앓아 주님 품으로 영원히 떠난 데이비드 브레이너드(David Brainerd)의 선교 일지에 동시대를 살았던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의 해설을 덧붙인 책이다.

그는 인디언들 사이 황무지에 거처를 마련하고, 함께 살아가고, 복음을 전하던 일들을 짧게나마 매일 기록했다. 그는 수많은 역경과 고난을 통과한 뒤, 많은 인디언 신자들을 얻었고 그들과 더 많은 사역을 일궈나갔다. 먹을 것 없어 며칠을 굶는 일도 다반사였고, 복음을 전하러 가다 깊은 숲 속 땅바닥에 누워 ‘야곱처럼’ 잠을 청하는 날도 적지 않았다. “삶의 위로를 발견할 수 없는 광야에서는 종종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렸고, 숲속에서는 종종 길을 잃었으며, 때로는 한밤중에 말을 타고 달려야 했다. 한번은 숲속에서 밤을 지새운 적도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를 지켜주셨다.”

조나단 에드워즈는 “그는 나이가 들수록 은혜가 무르익었고, 내면에서 이뤄지는 신앙활동이 더욱 순결해졌으며, 판단력이 더욱 예리해졌다”며 “책을 읽다 보면 우리는 브레이너드가 우울하고 쉽게 의기소침해지는 기질을 타고나 경건한 슬픔과 기독교적 겸손이 우울한 기질과, 젊음의 혈기와 하나님을 향한 거룩한 열정이 한데 뒤섞여있음을 알 수 있지만, 이 모든 약점에도 불구하고 지금 눈앞에 있는 본보기가 마음과 행위를 통해 드러난 참되고 뛰어난 기독교적 경건의 표상이자 참된 믿음의 실체와 경건의 능력을 확증하는 사례이기 때문에 많은 점에서 영적 유익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고난주간 묵상할 도서들

최근에 나온 책들로는 지난해 여름 나온 김남준 목사의 <가상칠언(생명의말씀사)>을 비롯해, 본지에서 지난 몇 년간에 걸쳐 고난주간에 소개됐던 <갈보리의 그림자>, <죽임 당하신 어린양(이상 지평서원)>, <가장 길었던 한 주(포이에마)> 등은 여전히 다시 펴볼 만하다. 로이 헷숀의 베스트셀러 <갈보리의 그림자>와 그의 신간 <나는 죽고 그리스도만(이상 CLC)>도 있다.

십자가의 고난과 부활은 성도들에게 영원한 ‘화두’이기에, 우리 시대 대표적인 고전이 된 존 스토트의 <그리스도의 십자가(IVP)>를 비롯해 고난주간 읽을만한 도서들은 위에 언급된 것들 외에도 적지 않다. 이번 고난주간에는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마음으로, 평소 미뤄뒀던 신앙서적을 한 권 들고 조용한 골방에서 무릎을 꿇은 채 주님을 만나는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