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옥 교수(기독문학 작가, 영문학 박사, 영남신대 외래교수).
밀턴에게 바친 월 폴(Walpole, Horace 1717-79)의 찬사

늦은 아침 눈부신 빛 속으로 거대한 세계가 펼쳐졌다. 저 멀리 보이는 구릉 너머로 어두운 회색의 산으로 쫓겨가는 안개가 보였다. 안개는 희미하게 스러져 가는 생명을 연상하게 하였지만 나는 헤글리 공원의 아름다움을 찬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는 우리 모두가 다시 살아갈 낙원을 꿈꾸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날 내가 헤글리 파크의 밀턴의 자리로 찾아간 직접적인 동기는 무엇보다 월 폴의 한마디 말 때문이었다. 영국의 작가이고 미술 감정가이며 수집가인 월 폴이 문학을 공부하던 나에게 매력이 있었던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 그는 ‘편지쓰기’라는 일상을 하나의 예술의 차원으로 승화시킨 사람이었다. 또 하나의 이유는 월 폴과 영국 시인 토머스 그레이(Thomas Gray, 1716-1771)와의 에피소드 때문이었다.

그레이는 시골 묘지에서 쓴 애가 하나로 세상에 널리 알려진 낭만주의 시인인데 나는 그 여행에서 애가의 현장을 찾아갈 계획이었다. 월 폴과 그레이는 케임브리지대학교 킹스칼리지 동기생으로 프랑스와 이탈리아 등 유럽 여행을 함께할 만큼 절친한 사이였다. 그러나 여행 도중 두 사람은 크게 다투고 헤어져 평생 화해를 못한다. 이를 후회하고 아파한 월폴은 한평생을 그레이 시의 애송자로 지내면서 그에게 마음을 바쳤다.

‘애가’가 태어난 곳은 해질 무렵 마을의 순박한 조상들이 잠든 조용한 시골묘지이다. 시인은 이 시에서 권력도 부귀도 똑같이 피할 수 없는 시간을 기다리고 영광의 길도 모두 무덤으로 이어질 뿐이라고 노래한다. 시의 말미에서 시인은 자신의 장례 행렬을 보면서 자기 묘비명을 적는다.

월 폴은 1753년 헤글리 파크의 지금 밀턴 자리가 있는 동산을 찾아간다. 첫눈에 헤글리 파크의 아름다운 조경에 반한 그는 감탄을 멈출 수 없었던 나머지, 밀턴이 묘사한 에덴동산의 모습이 바로 여기라고 단언하게 된다. “이 공원은 <실락원>에 나오는 에덴동산의 묘사에서 영감을 받아 조경 되었음이 틀림없다”고. 이 말을 들은 밀턴의 애호가 헤글리파크의 리틀턴 영주는 즉시 월 폴의 찬사를 받아들인다. 결국 헤글리 파크에 바친 월 폴의 찬사가 오늘 밀턴의 자리를 탄생시킨 것이다.

리틀턴 경은 월 폴의 찬사를 받들어 현재 벤치가 놓인 자리에 조그마한 목조 사당을 짓는다 그리고 그 안에 의자를 놓아 밀턴에게 바쳤던 것이다. 세월이 지나면서 사당은 허물어졌으나, 밀턴의 자리는 낡은 의자를 바꾸어 가면서 여전히 살아 남아있다. 밀턴의 자리는 해글리 동산에서 뿐 아니라, 전세계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해마다 새롭게 단장이 되고 있다. 사람들은 잃어버린 낙원을 찾아 해글리 동산으로 오고 낙원은 그들 속에서 늘 새롭게 태어나는 것이다.

헤글리 동산 밀턴의 의자에는 이렇게 쓰여있다.

전능하신 하나님, 이것이 당신의 영광스러운 작품들이니
이렇게 놀라웁도록 아름다운 세상의 형체는 당신 자신이옵니다.

이제 당신은 이해할 것이다. 내가 지금도 이른 새벽 하늘의 빛나는 별 한 개를 바라볼 때, 눈부신 아침 햇살을 호흡할 때, 스러지는 안개와 이는 바람과 숲과 호수와 폭포를 볼 때에 밀턴을 영혼 속에 어떻게 살려내고 있는지를…. 이제 나는 실낙원을 제3권부터 읽으려 한다.

이 글을 쓰는 내 눈앞에는 <실락원> 제 3권 탄생의 ‘빛’과 함께, 죽음을 노래한 애가의 산실이 동시에 펼쳐지고 있다. 아마도 그 여행 길에서 밀턴의 자리를 떠난 다음날, 내가 웨스트민스터 사원을 찾아가 잠든 시인 그레이와 조우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위대한 대시인 밀턴도, 그리고 우리도 피할 수 없는 시간의 길을 지나 죽음을 향해가면서도 구원을 노래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낙원에 있음이다. 시인이 노래한 장엄한 빛을 우리가 숨죽이며 기대하고 있으니, 오오 영광 있으라! 거룩한 빛이여(서시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