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드은 아바리스라는 이름을 대부분 모르고 있을 것이다. 아바리스는 고대 이집트의 중심지 중 하나로서 나일 삼각주의 북동부에 있으며, 이집트 13왕조 때부터 이집트 제2 중간기 및 신왕국 19왕조 때까지 수도 및 중심 도시였다. 이곳은 지금 칸타라라고 불리고 있고, 이곳에 텔-엘-다바가 있다. 이곳에서는 가나안풍의 거대한 항아리, 황갈색의 작은 단지, 유명한 검은색의 텔-엘-야후디야 도자기도 셀 수 없이 많이 발견되었다. 1885년 에두아르 나빌이 이곳에서 원기둥이 있는 거대한 신전 복합체와 12왕조의 마지막 통치자인 네페르소베크 여왕의 이름이 새겨진 스핑크스를 발견하였다.
 
그리고 1929년 마흐무드 함자는 이 근처인 칸타르 마을 남쪽에서 거대한 람세스 궁전을 발굴하였다. 1955년 모하마드 셰하타는 이 근처에서 중 왕국 시대의 마을을 발견하였고, 그 마을은 아메넴하트 1세가 세우고 세누세레트 3세가 확장한 대신전을 둘러싸고 있는 모습이었다. 이곳에서 발굴된 아시아인의 유적은 두 시기의 형태가 존재하고 있었다고 한다. 발굴자 비타크 교수는 초기 아시아인들은 고도로 이집트화했으며, 후기 아시아인들은 전혀 달랐다고 한다. 우리는 비타크 교수의 언급을 통하여 초기 아시아인들은 요셉 및 그의 형제와 동일시할 수 있을 것이며, 후기 아시아인들은 힉소스일 것으로 추정할 수가 있다. 초기 아시아인들이 고도로 이집트화되었다는 것은 우리는 성경을 통하여 알 수가 있다. 왜냐하면 요셉 자신이 고도로 이집트화한 인물이었고, 자신의 민족을 위해 이집트 문화의 영향을 기꺼이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리고 초기 아시아인들과 후기 아시아인들 사이에 아마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을 하였을 것으로 추정할 수가 있는 것이다.
 
성경의 기록대로 하룻밤 사이에 이집트 전역을 덮친 재앙 즉 장자의 죽음이 있었다면, 이 재앙의 결과가 고고학적 기록으로 남아 있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는 전통적인 연대표에 의하여 고고학적 기록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고고학적 자료는 있다. 1996년 오스트리아 비타크 교수가 아바리스와 피람세스로 추정되는 텔 엘 다바를 발굴하는 과정에서, 13왕조에 해당하는 지층에서 소름 끼치는 것을 발굴하였다. 그것은 아바리스 전역에서 끔찍한 재앙에 희생된 자들을 얕게 판 구덩이에 서둘러 던져 넣은 흔적을 발견한 것이다.
 
“밤중에 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모든 처음 난 것 곧 왕위에 앉은 바로의 장자로부터 옥에 갇힌 사람의 장자까지와 가축의 처음 난 것을 다 치시매 그 밤에 바로와 그 모든 신하와 모든 애굽 사람이 일어나고 애굽에 큰 부르짖음이 있었으니 이는 그 나라에 죽임을 당하지 아니한 집이 하나도 없었음이더라”(출 12:29~30)는 말씀을 증거하듯, 희생자들을 얕게 판 구덩이에 서둘러 던져 넣은 흔적을 발견한 것이다. 발굴한 결과, 그 무덤은 결코 정성껏 매장한 것이 아니었다. 시신들을 정상적인 매장 방식에 따라 배열하지 않았고, 무덤 속에서 겹겹이 던져진 모습으로 보여 주었던 것이다. 물론 부장품도 없었다. 발굴자 비타크 교수는 이것은 역병이나 다른 갑작스러운 재앙이 아바리스를 덮친 증거라고 주장하였다. 게다가 유적을 분석한 결과는, 이곳에 살았던 주민의 대다수가 집을 버리고 떼 지어 떠난 것을 암시하고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이처럼 성경의 출애굽기 말씀과 일치하는 고고학적 증거가, 정통적인 연대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무시되어왔다.
 
또한, 아이케-마인라트 방클러와 하랄 빌핑이 발굴된 인골들을 인류학적으로 분석한 결과, 이 마을에서는 성인 남성이 성인 여성보다 더 많이 매장된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아바리스의 여성 인구가 남성보다 훨씬 많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성경의 기록과 연결하여 본다면 ‘요셉을 모르는 파라오’가 이집트에 사는 이스라엘 백성의 정치적 위협을 두려워하여 이스라엘 민족의 사내아이를 골라 죽였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텔-엘-다바에서 발견된 인골 가운데 갓난아이가 차지하는 비율이 고대 다른 유적에 비하여 평균치보다 훨씬 높은 것으로 밝혀졌다. 그리고 전체 인골의 65%가 생후 18개월 미만 어린아이라는 것이다. 평균치보다 높은 유아 사망률도 파라오가 이스라엘 백성의 어린애 중 남자아이면 죽이는 대량 학살을 했기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이집트의 그리스 왕조 포톨레미우스 시대 제사장이면서 역사학자였던 마네토는 13왕조 파라오 두디 모세의 치세에 “신의 재앙이 우리를 덮쳤다”고 말하였고, 아바리스의 발굴은 이 무렵에 끔찍한 재앙이 일어났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출애굽기에서는 이스라엘 민족이 ‘약속의 땅’을 찾아 떠난 것은 일련의 ‘재앙’이 이집트를 유린한 뒤였다고 한다. 그리고 마지막 열 번째 재앙은 갑작스럽고 극적으로 발생한 것이다. 이처럼 모세의 이집트 탈출을 중 왕국 13왕조 말기에 일어났다고 맨 처음 주장한 사람은 1950년대 임마누엘 벨리스코프스기가 <혼돈 속의 시대>라는 책자에서 주장하였다. 이 주장을 다시 한 번 되새기며, 고고학적 발굴이 이루어지면서 하나님의 역사가 증명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김용규 목사
령천교회 중동 선교사
크리스찬 해피투어 중동 선교사
성지 가이드북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