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고 답하다>.
묻고 답하다

강영안·양희송 | 홍성사 | 264쪽 | 13,000원

대표적인 기독 철학자인 강영안 교수(서강대)가 삶과 죽음, 그 너머의 온갖 질문들에 답했다. 철학자의 말과 글이지만 난해하지 않은 대담집 <묻고 답하다(홍성사)>는 그 결과물이다.

문답의 주제는 ‘죽음’에서 시작하여 고통과 웃음, 일상과 종교 등 우리 삶과 관련된 것들로 이어지고, 교회와 개인·공동체, 십자가와 한국교회 등 이 시대 영성이 가진 여러 문제점들을 파헤친 후, 지성과 과학, 의심과 윤리 등 신앙과 이성의 관계로까지 나아간다. 마지막으로 자신을 여기까지 오게 한 책과 사람들에 대한 개인적인 고백까지, 무려 15개 분야의 이야기가 종횡무진 이어진다.

첫 주제인 ‘죽음’에 대해서는 지난해 11월 ‘키에르케고어 학회 공개강좌’에서 예수와 소크라테스의 죽음에 대한 자세를 비교했던 그의 강연 내용이 비슷하게 제시된다. 소크라테스 뿐 아니라 동양의 공자나 장자까지 죽음을 자연스러운 현상이나 심지어 ‘해방’으로까지 받아들이는데, 예수는 죽음을 ‘끔찍한 사건’으로 여겼다는 것이다. 심지어 바울은 부활을 ‘마지막 원수를 이긴 사건’으로 표현하면서 죽음을 ‘마지막 원수’로 보고 있다.

강 교수는 이같은 기독교적 세계관에 대해 “죽음이라는 어두움과 음각을 통해 그만큼 삶의 소중함을 배우게 되고, 우리 자신이 누구나 그러한 타자(他者)의 내어줌이나 희생 덕분에 존재하는 ‘빚진 자’임을 알게 된다”며 “이는 후회나 죄책감보다는 내 존재가 타자로부터 지탱된다는 ‘감사 의식’을 불러온다”고 답한다.

“살아있는 사람은 사실 죽음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인간이 죽음에 직면에 있다는 현실은 아무도 부정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죽음이 우리 삶에 드리워 있기 때문에 그 앞에서 우리의 책임은 더 많아지고 커질 수밖에 없다”며 “죽음을 극복하는 것은 과학기술도, 문학도, 철학도 아닌 오직 사랑(아 8:6)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이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고 그는 덧붙인다.

‘고통’에 대해서는 자신이 활동을 쉬면서 병마와 싸웠던 1-2년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세월이 지날수록 무엇이 되거나(Becoming) 무엇을 하려고(Doing) 하지 말고 어떠한 존재가 될지(Being)를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성경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 등에 나오는 ‘웃음’을 살피면서는 “우리가 가진 허식이나 가식을 훌훌 털어버리고 나 자신을 웃음에 맡긴다는 건 타인을 내 세계로 받아들이는 것이며 타인과 손을 잡는 것이고, 타인과 만날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이라며 “웃을 수 있는 것, 웃는 것은 가장 인간적이자 진정성 있는 삶의 모습”이라고 풀이한다.

▲‘묻고 답하는’ 강영안 교수와 양희송 대표(왼쪽부터). ⓒ홍성사 제공

하나님이 우리를 두신 장소인 ‘일상’의 중요성도 설파했다. 종교도 일상을 벗어날 수 없고, 세속을 초월한 수도원적 삶만을 ‘거룩한 영성’이라 부르는 영성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루터와 칼빈의 종교개혁도 식사와 잠, 성관계와 직업 등을 거룩하게 생각했듯 기독교인들도 이제 거대담론으로서의 ‘비전’만을 꿈꾸지 말고, ‘기독교 세계관’이라 불리는 민감하고 섬세한 현실의 ‘하나님 나라’를 논할 때라고도 했다.

나아가 참된 ‘종교’도 결국 성과 속, 영과 육의 이원론을 극복하는 ‘일상의 회복’에서 찾아야 한다고 덧붙인다. 이를 위해서는 신학교부터 설교나 예배 중심의 교육체제에서 벗어나, 일상적인 삶과 지식을 얻고 그런 방식으로 성도들을 훈련시키는 방법을 가르쳐야 한다. 성경신학·조직신학·역사신학·실천신학이라는 전통적 네 가지 신학 분류의 확립은 불과 200여년의 역사밖에 되지 않았고, 이는 본지 신년대담에서 은준관 총장(실천신대)이 지적했듯 학문적 분류일 뿐 목회자 양성에는 맞지 않다고도 했다. “신학 교육의 목적·방법·과정을 전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키만큼 성숙하고 온전한 사람(엡 4:13)으로 자라가고,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섬기도록 훈련할 수 없습니다.”

6-10장은 기독교 신앙의 중심이 개인인지 공동체인지를 논하고, 활동적이고 성공 지향적인 현재 한국교회에 상대적으로 부족해진 ‘낮춤과 비움의 기독론’, ‘내세 중심적·삶으로 열매맺는 신앙’의 필요성을 이야기한다. 이 부분에서는 앞 부분에서 길지 않던 질문자의 목소리가 늘어나고, 반론도 제기된다. 강영안 교수는 “이제 한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는 교회 중심의 신앙에서 훨씬 확장해, 세상으로 나아가야 한다”며 “전도 뿐 아니라 이 세계를 가꾸고 회복하는 일이 하나님 일을 하는 것이고, 이렇게 본다면 목회의 기본 방향이 완전히 바뀌어야 할 것”이라고 진단한다. 세상을 바꾸려면 근본적으로 나 자신이 바뀌어야 하고, 목회자가 바뀌어야 하고, 교회의 근본 방향이 바뀌어야 한다.

2박 3일간 양평 모새골에서 강 교수와 함께하며 ‘질문’을 맡은 양희송 대표(청어람아카데미)는 강 교수에 대해 “검토해야 할 문제의 핵심을 즉각 분별해 내고, 그 논의에 필요한 동서양 고전과 사상가를 바로바로 인용하면서 대답했다”며 “그것은 백과사전과도 같은 지식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르네상스적 지식인을 눈앞에서 만나는 신선한 경험이었다”고 총평한다.

강영안 교수는 대담을 마무리하는 글에서 “이것은 해답(answer)이 아니다”고 단언한다. “내가 한 답은 해답이라기보다는, 질문이 던져졌으니 질문에 대해 내가 보여야 할 응답(reponses)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내가 한 반응, 응답은 나의 지적·인격적 책임에서 나온 것이다. 나에게 답은 없지만 내가 믿고, 읽고, 생각하고, 고민한 것들을 바탕으로 나는 타인에게 반응을 보이고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담을 나누면서, 여기 다룬 주제들을 좀더 깊이 탐구하고 치밀하게 다루는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르네상스적 지식인’이라는 평을 얻은 강영안 교수가 지난해 강연하는 모습. ⓒ크리스천투데이 DB

‘원전주의자’라는 별명답게 강 교수는 원문으로 읽지 않으면 인용하지 않는 엄격함을 지녔지만, 그 ‘응답’에는 시대를 뛰어넘는 동서양 철학과 신학이 가득했다. 고신대 재학 중 네덜란드에서 신학을 공부하기 위해 한국외대로 옮겨 네덜란드어와 철학을 공부했다는 그는 1978년 벨기에에서 철학학사·석사 학위를, 1985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자유대학교에서 칸트 연구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네덜란드 레이든대 철학과 전임강사로 형이상학과 인식론을 맡아 강의하다 귀국 후 계명대를 거쳐 서강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체는 죽었는가>, <도덕은 무엇으로부터 오는가>, <인간의 얼굴을 가진 지식>, <신을 모르는 시대의 하나님>, <강영안 교수의 십계명 강의>, <철학은 어디에 있는가>, <어떻게 참된 그리스도인이 될 것인가> 등을 썼다.

그는 ‘먹는다는 것’, ‘잔다는 것’, ‘집 짓고 산다는 것’, ‘일한다는 것’, ‘쉰다는 것’, ‘신뢰한다는 것’, ‘믿는다는 것’ 등 일상의 주제를 묵상하는 글을 최근 써 왔다며 이를 학문적 논리와 깊이, 내용을 가진 글로 발전시켜야겠다는 생각도 드러낸다. 우리나라에서 특히 사랑받는 ‘일상의 철학자’ 알랭 드 보통의 ‘한국 기독교판’도 곧 탄생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