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옥 교수(기독문학 작가, 영문학 박사, 영남신대 외래교수).
길을 떠나면서

한낮의 음악 프로그램에 70대 중반에 접어든 어떤 할머니 한 분이 음악을 신청했다. 할머니는 얼마 전 컴퓨터로 워드 작업하는 것을 배워서 그날 난생 처음으로 컴퓨터를 이용해 담당 피디에게 편지를 보내고 있다면서 그 옛날 할아버지와 함께 듣던 음악을 들려달라고 했다. 프로그램 진행자는 할머니의 편지에 다음과 같은 설명을 덧붙였다. 할아버지는 이미 세상을 떠났으나, 할머니는 그와 함께한 생생한 기억을 지니고 할아버지를 그리워한다는 사연이었다.

그 음악 프로그램은 글을 올리는 사람들이 대부분 젊은이들이어서 나도 놀랐지만, 피디 역시 감동이 컸던 것 같다. 그의 멘트에 듣는 사람들이 따스함을 느끼는 댓글을 보냈다. 정녕 이 할머니에게는 먼저 세상을 떠난 할아버지와의 사랑의 추억이 자신의 낙원을 찾는 하나의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낙원이란 바로 사랑으로 칠한 아름다운 색깔들의 세계이며, 그 세계를 그리워하는 마음 속에 피어나는 꽃인 때문이다. 그 정오의 시간에 나는 마침 밀튼(John Milton ,1608-78)의 작품을 다시 읽으려고 서재에 있었다. 밀튼은 내가 외국문학을 공부하면서 최초로 읽은 대작이었다. 그리고 남편과 나의 사랑을 이어준 도구였으며, 그의 작품세계가 석사논문 주제였던 때문이다.

어쩌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는 이 지상에 낙원이 오리라는 희망이 없는지도 모른다. 다만 생의 마지막 날까지 너와 내가 서로 공감하고 서로를 아끼고 사랑해 보자는 희망이 있을 뿐이다. 낙원에 대한 이러한 희망 때문에 우리는 인생을 살다가 어느 때인가 경험했던 일들을 다시 떠올려 보고, 또 언젠가 가 보았던 곳으로 다시 한 번 가 보고 싶은 충동을 갖는다. 만났던 사람을 다시 만나보고 싶어한다.

이러한 충동 가운데서 나의 경우는 문학적 충동이 가장 컸던 것 같다. 외국 문학을 공부하면서 내가 영향받았던 작품과 사람들과 섭렵했던 그 무대에 다시 서 보고 싶은 충동이다. 나의 삶은 본질적 부분에서 결국은 책을 통한 편력일 것이니 이는 너무나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책을 사랑했고, 책 속의 사람들을 좋아했으며, 그 책의 무대를 찾아 70여 나라를 여행한 것이 나의 삶이었으니까. 어쩌면 문학과의 친밀함, 그것이 내가 나의 낙원을 찾는 방법이었을 것이다.

지금도 문학은 늘 아름답고 치열한 생각들의 세계이고, 공부를 한다는 것 자체가 늘 나에게 충실감을 동반하는 자존감을 안겨준다. 글을 쓴다는 자체가 모험심을 자극하고 용기를 격려하며 삶의 풍요의 최상위 단계를 꿈꾸게 만든다. 무엇보다 문학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최고의 걸작품인 성경을 가슴으로, 영혼으로 읽을 수 있는 힘을 나에게 제공해 주었다. 참으로 문학은 내 삶의 낙원으로 나를 인도하는 하나의 통로인 셈이다.

지금 방송에서는 안드레이 보첼리(Andrea Bocelli)의 ‘아마폴라(Amapola)’가 들려오고 있다. 산레모 가요제에서 대상을 받았던 그 청년, 눈을 감고 영혼의 빛으로 노래하는 보첼리를 여러분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방송의 그 할머니, 칠십 중반에 든 그 여인은 아마폴라를 들으면서 ‘활짝 핀 아름다움(이태리어 아마폴라의 이미지)’을 노래해 주던 연인을 만나고 있을 것이다. 그 사랑을 생각하면서 그녀는 기쁨과 감사의 선물이 가득한 낙원을 회복할 것이다.

늘 내 마음 속에는 이 문학적 길 위에 다시 서 보고 싶은 생각이 있었는데, 안드레이의 노래는 눈을 감고 영혼의 빛으로 밀튼의 작품 세계를 다시 보고 싶은 충동을 자극했다. 잃어버린 낙원을 찾아 길을 떠나기로 작정했다고 할까. 학창시절 책을 읽을 때마다 펼쳐졌던 새로운 세계를 성숙한 눈으로 다시 만져보고 싶고, 순간 순간 새로운 발견으로 가슴 뛰놀던 그 설렘을 이 글을 읽는 독자와 나누고 싶다. 충실감을 동반하는 인식이라는 새로운 차원의 은총을 함께 나누자. 다양한 지적 미적 원천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은 <실락원>이 우리들처럼 평범한 일상을 사는 사람들을 어떻게 격려하는지…. 제1권에서부터 12권까지 함께 가 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