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인권 운동에 앞장섰던 김상철 장로(65)가 13일 오후 11시 지병으로 소천했다.

김 장로는 짧은 공직생활 후 탈북난민 돕기와 북한인권 개선을 위해 매진했다. 1999년 탈북난민보호운동본부(현 세이브엔케이)를 설립하고, 국내외 1180만명의 서명을 유엔 등 국제사회에 전달, 탈북민들이 국제법적으로 난민 지위를 획득하는 데 기여했다.

이후 2002년에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을 창간하고 북한인권과 자유민주주의를 위해 힘썼다. 교계에서도 북한구원운동을 설립하고 전국을 돌며 북한 주민 구원과 탈북자 돌보기 운동에 앞장서 오다 쓰러져 투병생활을 해 왔다.

평북 태천 출신으로 서울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김 장로는 1973년 서울형사지법에서 판사로 공직활동을 시작했지만, 1975년 ‘김대중 사건’을 빨리 처리하라는 정권 압력을 거부하며 지방으로 좌천되기도 했다.

1980년 독일 연수 중에는 광주민주화운동 소식을 접하고 ‘군사정권으로부터 임명장을 받을 수 없다”며 변호사가 됐다. 대우자동차 파업사건과 김근태 고문, 권인숙 성고문, 박종철 고문치사 등 굵직한 시국사건 변호를 도맡았고, 1987년 6·29 선언 이후에는 여야 개헌협상이 결렬 위기에 놓이자 타협안을 내놓기도 했다.

민주화가 되고 나자 운동권이 과격한 반미운동으로 변질되는 모습을 보고 1990년대부터는 한·미 동맹 강화와 자유민주주의 수호에 앞장섰다. 그는 1993년 김영삼 정부 출범과 함께 46세의 젊은 나이로 서울시장에 임명됐으나 그린벨트 훼손 논란으로 7일만에 사임했다. 그는 그 전후 이야기를 신앙적으로 녹인 <7일간의 서울시장>을 집필하기도 했다.

유족은 부인 최원자(65)씨와 아들 세호(38·AT커니 이사), 딸 민정(36)씨, 사위 김범수(39·미래한국 사장)씨가 있다.

빈소는 가톨릭대 강남성모병원 장례식장이며, 발인은 17일 오전 10시 대치동 서울교회에서 진행된다(02-2258-59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