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룩소 카르나크 신전 입구에 양의 머리와 사자 몸통을 가진 스핑크스가 도열된 대로의 모습. ⓒ크리스찬해피투어

룩소르 중심지에서 가장 돋보이는 장소인 나일강변에 거대한 룩소 신전이 있다. 룩소 신전은 나일 강 동안에 나일 강을 따라 남북으로 건축되었는데 폭 40-70m, 길이 180-200m 정도 규모이며 태양신 아몬을 숭배하기 위한 신전이다. 이 신전은 신 왕국시대 황금기였던 약 200년에 걸쳐 완성된 대신전이며, 비교적 모든 부분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고 조형성 넘치는 건축물이다. 제18대 왕조 아멘호텝 3세가 창건, 후에 람세스 2세가 탑문과 제1중정을 부설했다. 원래 카르나크 신전 부속으로 건립됐기 때문에, 신전 탑문 앞에서 시작되는 스핑크스 대로는 2km 정도 떨어진 카르나크 신전까지 연결돼 있어서 매년 제사를 드리는 시기에는 제사장들이 배의 출영식을 행하기 위해 카르낙 신전과 스핑크스 대로를 통하여 이곳에 와서 행사를 했다고 한다.

정문 외벽에는 카데쉬(Kadesh) 전투 장면이 벽화에 부조되어 있으며, 정문 좌우에 람세스 2세의 좌상 2개 및 입상 4개가 세워져 있었으나, 현재는 좌상 2개와 입상 1개만 남아 있다. 여기 있던 입상 2개는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또한 정문 좌우에 원래 2개의 오벨리스크가 있었으나 하나는 19세기에 무하만 알리왕이 프랑스에 기증하여 콩코드 광장에 전시되고 있어, 현재 하나만 남아 있다. 탑문 안쪽 람세스 2세 광장에는 투트모세 3세 당시 건축된 성소가 남아있고, 후대에 건축된 회교 모스크 건물이 광장의 일부를 차지하고 있다. 동 광장 주위를 74개의 기둥이 2중으로 둘러싸고 있다.

람세스 2세 광장을 지나면 아멘호텝 3세의 열주가 보이는데, 이 열주는 16m 높이의 파피루스 모양을 가진 기둥으로 14개가 있으며, 람세스 2세의 석상들이 기둥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아멘호텝 3세의 열주를 지나면 아멘호텝 3세의 광장이 나온다. 면적은 약 2,400㎡인데 람세스 2세의 광장과 모양이 유사하며 파피루스 모양의 기둥이 광장 3면을 2중으로 둘러싸고 있다. 이곳에 이슬람군이 침입해 세운 아부알 하자즈 모스크가 있어 건축양식이 전혀 다른 광경을 만나게 되는데, 신전의 지배자에 의하여 어떻게 변하는지를 알 수 있게 한다.

아멘호텝 3세 광장을 지나면 32개 기둥이 배열된 다주식 광장(Hypostyle Hall)이 나오며, 이를 지나면 8개의 기둥이 있었던 제1전실이 보일 것이다. 제1전실(Ante Chamber)은 비잔틴 시대인 4세기 기둥들이 제거된 후 교회 예배장소로 변경돼 사용됐던 그 흔적이 아직도 남아있다. 제1전실을 지나면 4개의 기둥이 있었던 제2전실이 있고, 안쪽에 태양신 아몬의 성스러운 배를 모셨던 지성소가 위치하고 있다. 그 제단 옆에는 성화가 그려져 있었으나, 지금은 세월을 감당할 수 없어 희미해지고 있지만 보수를 한 적이 거의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곳에는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밀라노 칙령비로 알려진 헬라어 비석이 있다. 그러나 그 내용은 많이 마모되어 확인할 수가 없다. 룩소에는 많은 신 왕국 시대의 유물들이 있다. 우리나라와 비교한다면 경주라고 할 수 있다. 이곳이 왜 성지가 되어 성지 순례코스가 들어갔는지 사실 이해할 수 없다. 아마 정통 연대에 의해 출애굽 당시 바로를 아멘호텝 3세로 생각하여 이곳이 출애굽 당시 이집트 수도였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역사는 계속적인 발굴에 의해 변경·해석될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 근거를 라메세움에서 찾을 수가 있다.

▲남부 룩소 부조 ⓒ크리스천 해피투어 제공
라메세움은 19왕조 람세스 2세의 장례를 치룬 전이었으며, 다른 왕들의 장례도 약 4세기 동안 치루었던 곳이다. 프랑스의 이집트 고고학자 상포리웅이 이집트 상형문자를 해독한 결과 이곳을 람세스 장제전으로 확인한 뒤 람세스의 궁전이라는 뜻으로 라메세움으로 불렀다. 라메세움에는 람세스 2세 거상이 넘어져 있는데, 높이가 약 17m에 무게가 약 1000톤이 넘는다. 이곳 제1탑문에는 “왕이 8년에 약탈한 도시 살렘”이라는 글이 새겨져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

그럼 살렘은 어디일까? 일부 사학자들은 예루살렘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곳에 새겨진 부조는 람세스 2세가 즉위 8년째 되던 해 봄에 팔레스타인과 시리아로 쳐들어갔을 때 업적을 묘사한 대형 조각의 일부이다. 람세스 2세는 이집트가 팔레스타인 많은 국가를 북이집트 제국에 복속하게 했던 신 왕국 시대 전설적인 파라오이다. 이 원정은 이집트의 다른 신전 벽에도 기록되어 있지만, 람세스가 점령한 도시들의 이름은 대부분 손상되거나 마멸되었고, 룩소 신전의 경우처럼 후세에 지어진 이슬람 건축물에 가려져 있으나, 이곳 라메세움에서는 비교적 부조가 양호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어 도시 이름을 쉽게 읽을 수 있다. 부조에서는 람세스2세 병사들이 쇠고랑을 채워 그 도시에서 이집트로 끌고 온 포로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살렘은 성도 예루살렘의 초장기 이름이다(창 14:8, 시 76:2, 히 7:1-2). 예루살렘이라는 이름은 서부 셈어에서 ‘도시’를 뜻하는 낱말 ‘예루’와 그 고장에서 숭배한 신의 이름-살렘-을 합친 것이라 볼 수 있다. 따라서 예루살렘은 ‘살렘(신의) 도시’라는 뜻이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살렘이 이집트의 파라오에 의하여 약탈당한 것은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 때 일이다. “르호보암 왕 제5년에 애굽의 왕 시삭이 올라와서 예루살렘을 치고 여호와의 성전의 보물과 왕궁의 보물을 모두 빼앗고 또 솔로몬이 만든 금 방패를 다 빼앗은지라(왕상 14:25-26)” 이처럼 성경의 기록과 이집트 룩소에서 발굴된 라메세움의 고고학적 발굴이 서로 차이를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이집트 연대표를 정통적 연대표로 인정할 경우 발생하는 이야기다. 만약 이집트 연대표가 잘못되었다고 가정한다면, 즉 람세스 2세가 솔로몬과 르호보암 시대와 동시대를 살았다고 가정한다면, 성경 이야기는 그대로 고고학적으로 증명되는 것이다. 르호보암 왕 제5년, 즉 주전 925년에 이집트왕 시삭이 유대 왕국의 도시들을 공격하여 승리를 거둔다.

애굽왕 시삭은 르호보암의 많은 도시들을 점령한 뒤 예루살렘 성문에 이르러 유대왕에게 항복을 요구한다. 애굽왕 시삭은 예루살렘을 완전히 파괴하지 않은 대가로 솔로몬의 궁전과 신전에서 모든 보물을 빼앗아 이집트로 가져간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일어난 일이 외부 자료에 입증된 최초의 사건이다. 그런데 학자들은 애굽 시삭왕을 제22왕조 쇼셍크 1세라 추정하고 있어, 그 증거를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해 이집트 연대표를 다시금 면밀히 검토하여야 할 때가 됐다고 주장할 수 있다.

김용규 목사(령천교회 중동선교사, 크리스찬해피투어 성지플레너, 성지가이드 <미츠라임에서 유프라테스까지>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