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충렬 박사(한일장신대·한국상담치료연구소장).
제30장 강박증의 치료와 욕구 해소

강박증은 긍정 에너지의 결핍에서 비롯되는 경향이 있다. 이는 반드시 채워져야 할 충족을 어떤 형태로든 시도하게 된다. 이는 사실상 심리적 문제이기에 아무리 약물로 치료해도 심리적인 것까지는 채울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러면 강박증을 상담으로 치료하는데 그들의 욕구의 결핍을 이해하고, 충족을 시도하는 것이 중요해진다. 이런 관점에서 그들이 무엇인가에 집착했다면, 그것이 어떤 욕구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봐야 한다. 그러면 치료는 이들의 욕구를 이해할 뿐 아니라 어떻게 하면 그 충족을 시도할 수 있을까에 초점을 둬야 한다.

1. 치료의 기초로서 욕구 이해와 해소

강박증의 치료에서 그들의 욕구를 이해하는 일은 상담치료의 일차적 문제가 될 수 있다. 욕구 결핍은 그대로 긍정적인 에너지의 부족을 의미한다는 점에서다. 실제로 개인에게는 사소한 욕구가 충족되지 않아 자신도 모르게 강박증으로 빠져들기도 한다. 이는 마치 작은 통로가 막혀 생각지 않은 다른 방향으로 치닫게 된 현상과도 같다. 여기서 다른 방향이란 물론 어떤 것에 집착하다 나중에 강박증으로 되어버린 경우를 상정한다. 심리적으로 작은 통로가 막히는 문제는 그대로 욕구가 거절되거나 충족되지 않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들에게 심리적 통로가 막히는 문제는 심리 및 정신적 교류가 중단된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1) 존재 의미와 가치로서의 욕구 충족

강박증에서 욕구 충족은 존재 의미나 가치를 느끼게 만드는 부분일 수 있다. 존재의 의미와 가치는 자신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사건들을 통제하는 에너지를 발휘하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이들은 누구보다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모습을 보인다. 이런 경향은 이들에게 더 많은 노력으로 보다 바람직한 미래를 실현하고 바람직하지 않은 미래의 염려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일 것이다. 그러나 더 깊이 들여다보면 이들의 행동은 욕구의 결핍으로 인해 자신의 노력에 의해 바람직한 결과를 산출할 수 있다는 믿음을 더 많이 갖고 있는 점이 발견될 것이다. 만약 그들이 그렇게 행동하지 않으면, 그들은 삶에서 힘을 잃는 경우가 발생한다. 그러면 이들에게 욕구의 결핍은 행동의 주된 근원이며, 그들의 삶은 이러한 존재의 의미와 가치에 의해서 유도된다고 볼 수 있다.

확실히 강박증에서 욕구 결핍은 삶의 활력을 상실하게 만드는 원천이라 볼 수 있다. 그들은 욕구가 충족되지 않은 채 결핍을 보이는 상태에서 주어진 삶의 목표를 달성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필요한 행동을 수행하는 데도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개인이 어떤 목표를 달성하려면 그에 상응하는 집중력이 요구된다. 그들에게는 주어진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행동과정들을 재조직하고 실행하는 능력에 대한 신념이 뒷받침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신념이란 그들이 갖는 정신적인 힘이기에 힘의 산출은 그대로 존재의 조건을 기반으로 하는 의미와 가치의 인정에 기초한 것이기도 하다.

2) 욕구 결핍의 의미

강박증에서 욕구 결핍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이런 측면을 이해하려는 태도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지만, 그대로 치료에 해당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문제가 되고 있다. 이런 경우 그들을 위한 치료는 그들의 심리적인 측면을 이해하는 것을 일차로 삼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미 굳게 닫힌 그들의 마음을 열어 무엇이 그들을 움직이는 요인인지를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이런 이해를 기초로 대화를 진행해 나갈 때 그들의 마음이 풀려진다.

그러기에 치료자가 강박증의 결핍된 욕구를 아는 일은 실로 중요하다. 그들의 욕구는 반드시 충족을 원하기에 치료자가 이해하고 알아주는 것만으로 상당한 효과를 거둔다. 이는 강박증의 상담치료에서 치료자가 그들의 욕구의 결핍을 먼저 알아야 하는 이유이다. 실제로 치료자는 현장에서 일단 그들의 결핍된 욕구를 이해만 해도 그들은 숨통이 열리는 효과를 경험할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들의 결핍된 욕구를 찾아내는 일이 상당히 힘들다는 것이다. 그들의 욕구는 대개 의식적이라기보다는 무의식적인 것이어서 보다 심층적인 방법을 동원해야만 알 수 있다. 이를테면 깊은 무의식이 반영되는 꿈을 분석하거나 직관력으로 그들의 속마음을 뚫어보거나 그리고 순전히 심층심리학적인 차원에서 심도 깊은 논의를 통하여 파악되기도 한다.

3) 욕구 결핍을 발견하는 방법

욕구 결핍은 이미 상당한 부정성을 축적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 부정성으로 인하여 그들은 치료자의 조언이나 권고, 그리고 해법을 귀담아 들으려 하지 않는다. 여기서 치료자는 한 가지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부정성이 가득한 상태에서는 치료자의 어떤 말도 받아들이려 하지 않으려는 심리가 작동한다는 점이다. 이런 점은 경험 적은 치료자들이 가장 많이 직면하는 문제로, 그들의 부정성은 어떤 것도 거부하면서 자신의 마음을 먼저 이해해 달라는 경향이 강한 편이다. 치료자가 이런 상황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면, 그들은 자기 기분대로 치료자를 평가하거나, 심한 경우 치료자에게 불쾌하게 반응할 수도 있다. 이는 치료자에게 상당한 훈련이 요구되는 이유인데, 그것은 치료자가 평가받는 상황, 심지어 모욕까지도 견뎌낼 수 있는 힘을 소유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때로는 간단한 방법으로도 알 수 있는 길이 있다. 매우 전문적인 지식을 동원하지 않는다 해도 일상생활에서 투영되는 행동에서도 얼마든지 알 수 있다. 그들의 욕구가 때로는 심각한 신경증이나 망상을 드러내려고 한다거나 신앙처럼 굳건하게 바라고 원하는 형태로 자기도 모르게 투영되거나 투사되는 경우로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강박증이 물론 꿈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해도 인간 정신의 법칙을 아는 치료자라면 그것을 충분히 구분하여 알 수 있다. 그들의 생활에서 행동으로 나타나는 문제는 대개는 자유로운 기대의 욕구로써 그 의미가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이런 과정에서도 치료자의 오랜 경험이 적절히 활용되는 것은 무시될 수 없다. 그것은 그들이 취하는 상황에 따른 행동과 평상시 활동하는 동작이나 행동 고려를 구분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나타나는 행동은 보이지 않는 심리적 세력에 의해 조종받은 내면의 동기라 할 수 있다. 이를 알았다 해도 그들이 심리적으로 자유로운 상태에서 생기는 욕망과 그 뒤에 은밀한 힘이 사로잡고 있는 욕구를 다시 구분해야 한다. 이런 점은 치료자가 보다 깊은 심리학적 지식을 갖추어야 하는 이유가 되고 있다.

2. 욕구충족으로서 존재의 인정

욕구충족의 문제는 간단하게 처리될 수 없는 측면이 있다. 그것은 매우 무의식적인 특성을 갖고 있기에 치료자가 강박증에 대한 지식이 풍부하지 않거나 임상의 경험이 충분하지 않은 경우에는 정확하게 파악하기에 어렵기 때문이다. 그리고 강박증이라고 해서 모두 동일한 것도 아니기에 그 유형에 맞는 강박증을 먼저 발견해야 하고, 그에 상응하는 욕구를 알아내어 충족을 시도해야 할 것이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다양한 강박증 유형에 일반적으로 해당하는 욕구의 문제를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자 한다.

1) 사소한 욕구의 인정

강박증은 사소한 욕구를 가지고 있다. 이들이 기대하는 욕구는 매우 주관적인 것이기에 때로는 사소한 것이거나 간단한 것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남자 강박증의 경우 아내가 자신의 말을 들어주기를 바라는 것, 말대꾸를 하지 않고 들어주는 것, 인정해주기를 바라는 것, 형편이 넉넉하지는 않지만 가족이 오손도손한 분위기를 가졌으면 하는 것, 잠자리를 요구할 때 거부하지 말고 응했으면 하는 것 등이다. 이런 것은 모든 결혼한 남자들이 아내에게 바라는 것들이기도 하지만, 그들은 이런 것들에서 기대한 만큼 정상적으로 되지 않고 있다고 판단될 때 답답하여 다른 무엇에 집착하게 되는 것이다.

이때 집착은 적어도 그들에게는 자신의 마음을 달랠 수 있는 유일한 길이거나 수단이 된다. 이들에게 자신의 답답함을 어디에도 하소연 할 수 없을 때 무엇인가에 집착할 때만 이런 답답함을 잊어버릴 수 있거나 순간적이면서도 마음에 작은 위로가 된다는 것은 확실하다. 물론 그들이 집착하는 행동은 정당한 방법의 위로가 아니라 괴로운 마음을 달랠 수 있는 하나의 수단이 된다는 것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이렇게라도 해서 괴로운 순간을 모면하고 싶은 심리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2) 대화에서의 존중

존재가 인정받는 문제는 대화에서도 쉽게 드러나는 측면이 있다. 결혼한 사람들 중 강박증의 경우 이런 현상은 더 많이 발견된다. 실제로 강박증의 상담치료에서 가장 많이 직면하는 것은 아내와 대화가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 그들은 대개 아내가 자신들의 말을 거부하는 것을 자신들의 존재 거부로 받아들여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토로한다. 그들에게 대응하는 아내의 태도로 자신들 존재가 무시당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외에도 아이들과 자신을 분리시켜 외롭게 만든 아내의 불만을 쏟아놓기라도 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생활하는데 경제적 문제는 없는데 아내가 잠자리를 거부하는 것에 불만이 많아 다른 것에 집착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흥미롭게도 치료자가 이들의 불만을 듣고 있노라면 거기서는 공통점이 발견된다. 그것은 “존재의 무시”라는 점이다. 그들 존재가 아내에게 무시당하고 있다는 것인데, 여기서 “존재의 무시”라는 점이 상쇄되거나 치료되려면 “존재의 인정”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수 있다. 그들은 존재가 인정받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들은 내면적으로 무척 존재의 인정을 바라고 있기에,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고 이해해 달라고 소리 높여 외치고 싶은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어느 여성 내담자는 강박증이 심한 남편에 대하여 자주 경어를 사용했다고 한다. 그랬더니 그에게 놀라운 행동의 변화가 일어난 것을 토로했다. 단순히 경어를 사용했을 뿐인데 자신의 마음도 달라지고 남편의 마음까지 달라지는 경험을 하게 되어 한 마디 말이 그렇게도 중요한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말이 마음에서 나온다고 할 때 그녀가 하는 말은 마음을 정화시키는 효력을 발휘하여 결과적으로 남편을 존중하게 되었을 것을 생각하기에 어렵지 않다. 이런 현상은 본질적으로 존재의 인정을 하는 것에 따른 효과이지만 말이 마음을 고치는 결과로 이어진다는 원리다. 간단한 대화에서라도 존재의 인정을 시도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3) 존재의 인정

전술한 대로 강박증 치료에서 존재를 인정하는 작업은 가장 중요한 방법이다. 존재의 인정은 가장 적극적으로 그리고 효과적으로 긍정 에너지를 축적하는 결과를 산출한다는 점에서다. 그러나 여기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존재의 인정이란 자연적인 결과로 이루어지고 있는 점 때문이다. 그들이 존재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그들이 가장(家長)으로서 가정 경제를 책임진다든가, 아버지로서 존경할 만한 태도를 취한다든가, 아내에게 적절한 남편이 되어야 한다는 점 등의 요구사항에 어느 정도 부합되어야 한다는 점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강박증의 전반적인 행동이 상대방에게는 긍정적으로 수용되어야 한다는 전제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실로 이들의 문제는 이제 간단하지 않다. 여기는 그들의 결혼 전 문제, 그러니까 성장 과정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자란 점이 연속된다고 보아야 한다. 임상경험에 의하면 강박증 환자들은 대개 성장 과정에서도 부모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자란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결혼해서 아내에게 인정받기를 요구하지만, 여전히 거부되는 존재로 되고 있는 점이 특이하다. 이런 점은 성장 과정에서 부모에게 인정받지 못한 사람일수록 아내에게 인정을 강하게 요구하는 측면이 있다.

그런데 이런 사람일수록 더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하는 역설이 존재한다. 그것은 유달리 결핍을 느끼는 인정의 문제가 강하게 인정을 요구해 오히려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인정받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여유로운 대응을 해야만 더 수월하기 때문이다. 이런 것을 생각하면 마치 배고픈 사람이 갑자기 음식을 먹다 오히려 체하는 꼴이나 다름이 없다. 여유를 갖고 천천히 먹으면 즐거운 식사를 할 수 있을텐데 말이다. 그런가 하면 치료자가 판단하기에도 그들의 행동이 아내로부터 인정받을 만한 경우가 되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런 현상을 두고 우리는 ‘악순환’이라 이름붙이는데, 상담치료에서 나타난 현재 문제를 더 멀리 성장 과정까지 살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3. 강박증에서 욕구 좌절과 해소

강박증에서 발견되는 욕구 좌절은 반드시 해소돼야 할 부분이다. 욕구 좌절은 얼마나 옳은가를 따지는 정당성을 넘어 일단 해소를 목적으로 하는 점에서다. 실제로 그들에게 욕구가 어떤 방식으로든 해소되지 않으면 욕구불만을 초래하여 정신에서 부정적으로 작용할 뿐 아니라 그들이 하는 다른 일에까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이는 욕구좌절이 반드시 해소돼야 할 이유이면서 치료자가 그들의 욕구좌절을 더 깊이 이해하고 치료해야 할 부분이다.

1) 어쩌면 피해자일 수 있는 상황

강박증은 매우 오해되는 측면이 있다. 그들을 바라보는 사회적인 시각은 그들의 행동 문제를 두고 일단은 정상에서 벗어난 사람으로 간주하려는 시각이 우세하다. 그러나 알고 보면 그들은 도덕적으로 문제를 보이거나 마땅히 행해야 할 의무나 과제를 수행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그런 면에서는 더 모범적인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이다. 더 나아가서는 이들의 행동을 두고 지나치게 철저한 사람이라든가 아니면 드러나지는 않아도 내면적으로는 여유가 없는 사람쯤으로 보려는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기도 한다. 그것은 일면 맞는 말이지만 그런 시각은 때로는 정반대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그들의 깊은 내면에는 일반인들이 오해할 만한 것에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니라 보다 더 깊은 측면에 있기 때문이다.

이는 그들의 전반적인 문제를 이해하고 그들의 형편을 자세히 분석하는 치료자가 그들의 나타난 행동과는 달리 정반대의 현상이 발견되고 있다는 점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들이 바로 욕구가 좌절된 사람이 맞지만 때로는 그들이 가해자가 아니라 오히려 피해자인 점으로 둔갑되는 현상이 존재한다는 점에서다. 예를 들어 전술한 남편의 경우 아내가 자신의 존재를 무시하고 대화를 받아주지 않아 무엇인가에 집착하게 되어 급기야는 강박증으로 되어버린 것이라 해야 한다. 이런 시각에서 강박증이 심한 남편의 경우 오히려 아내가 남편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여 강박증으로 만든 장본인이요, 가해자라는 점으로 해석이 가능할 수도 있다. 이는 물론 부부가 서로 존중하고 협력하여 살아가는 것을 전제로 하는 말이다. 남편이 스스로 노력하여 잘 하려는데도 아내가 거기에 적절하지 대응하지 못한 경우로 제한해야 하기 때문이다.

2) 욕구좌절 원인으로서 존재의 무시

욕구의 좌절은 바라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그 반응으로 일어나는 현상이다. 여기서는 욕구가 올바른 것인지 그렇지 않은지는 상관이 없다. 욕구는 바라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좌절을 가져오는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치료자는 그들의 욕구에 대한 좌절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런 과정에서는 대개 남성답지 못한 성격을 가졌거나 내성적 또는 소심한 성격인 점도 고려해야 할 사항이다. 대범한 사람들이라면 아내와 강하게 싸워서라도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혼자 무엇에 집착하면서 달래는 형태로 가지 않는 점에서다.

특히 아내가 가정 경제를 도맡아 남편이 기(氣)를 펴지 못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적절한 예를 들면 저자가 상담을 할 때 아내가 족발집을 경영하는 강박증 환자가 있었다. 그의 불만은 아내가 자신을 허수아비로 만든다는 것이었다. 자신은 가게에서 잡일이나 하고 남편으로서의 적절한 역할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때 치료자는 아내를 상담소에 방문하게 하도록 권유하여 면담했다. 그 아내는 50대 후반으로 자신이 가정의 모두를 담당하고 있다는 마음이었다. 그녀의 말에 의하면 그 남편은 자주 집착하고 술을 마시며 하루라도 마시지 않으면 넘어가지 못하는 사람으로서 골치아픈 존재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런 문제의 본질은 남편이 욕구가 좌절된 데 따른 것, 존재의 무시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을 아내가 간과한 것이다. 이는 욕구 좌절에서 존재의 무시를 간과하지 말아야 할 이유이다.

3) 욕구좌절 치료로서 존재 역할 인정

강박증 환자에게 욕구좌절은 대개 존재의 인정과 관련된 부분이 많은 편이다. 그들의 존재가 ‘있는 그대로’의 중요한 존재로 인정받지 못하여 심리적인 결핍을 초래하였다는 점에서다. 이런 경우 치료자에게는 인정하는 기술이 필요한데, 매우 단순한 하나로도 효과를 보는 경우가 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존재의 역할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런 것은 앞의 사례와 연결시켜 그에 대한 대응으로 볼 수 있는데, 이때 치료자는 그녀에게 한 가지를 조언하였다. 그것은 남편으로 하여금 다른 일을 돕도록 하는 일은 좋으나 그에게 돈을 책임지게 하면 어떻겠느냐고 권유했다. 가게는 물론 가정에서 지출하는 돈까지도 모두 남편을 통하여 지출되는 방식이다. 이렇게 하면 남편에게도 가정에서의 일정한 역할이 있게 되고, 자녀들도 아빠의 권위를 인정할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니까 그렇게 하도록 역할을 권유한 것은 한 마디로 남편의 권위를 세워주어야 한다는 의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단번에 완강히 거부하였다. 이때 치료자는 “듣기 거북하시겠지만, 남편을 강박증으로 만든 사람이 바로 당신일 수 있다”고 말했다. 남편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 사람으로 만든 사람이 바로 아내라는 말이었다. 그녀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갑자기 왈칵 눈물을 쏟았다. 이런 현상은 자주 있는 것은 아니지만 순간적으로 자신의 모습을 본 경우에 해당한다. 아마도 순간적으로 감동이 되어 자신의 모습을 보아 눈물을 쏟은 결과로 볼 수 있다. 상담 장면에서는 종종 이런 일이 일어나곤 한다. 완강히 상대방의 잘못을 주장하다 갑자기 자신의 잘못을 알게 되었을 때 일어나는 반응이요 현상이다. 참고로 그녀는 교회에서 권사 직분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이런 점으로 미루어 현상적으로는 남편이 강박증으로 가정을 헤치는 가해자인 것 같지만 실제로는 아내가 남편을 강박증으로 만든 가해자였던 것이다. 치료자들 뿐 아니라 일반인들도 이런 현상을 아는 사람들은 아직은 많지 않다. 그러기에 집착을 많이 하는 남편을 둔 아내들은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만 문제로 삼아 집착하는 남편들 때문에 주변으로부터 “속이 상하겠다!”는 등 동정을 받는 편이다. 그런 아내들은 남편을 문제 덩어리로 치부하는 것이다. 이제 이런 시각은 바로 교정되어야 할 일이기도 하다. 이는 치료자가 강박증의 깊은 심리와 성장 과정까지를 더 많이 분석하고 이해해야 할 이유이다.

4. 욕구충족 방법으로서 성적 욕구불만의 해소

강박증 환자의 욕구충족에서 성적 문제, 이를테면 성욕의 문제와 관련시켜 치료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성욕은 인간의 가장 바탕이 되는 근본적인 것으로 모든 욕구의 원천이 된다는 점에서다. 실제로 강박증이 심한 경우 대개 부부관계가 원만하지 않은 측면이 발견된다. 이런 현상은 아마 서로의 관계에서 정신적인 것도 관련되지만 특히 성적 부분에서 원만하지 못한 것을 생각할 수 있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성격적으로 까다로운 편이어서 강박증으로 이행된 경우라면, 이는 결혼을 통해 치유되는 경우도 있다. 물론 부부간 금슬(琴瑟)이 좋은 경우에 해당한다. 금슬이 좋은 경우 긍정적 에너지가 교류되어 정신적 안정을 산출하는 점에서다. 이런 점을 고려하여 여기서는 성적으로 원만하지 못한 경우를 들어 해결책을 찾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된다.

1) 욕구충족과 성욕의 발현

강박증의 욕구불만에는 성적인 요인이 상당히 차지하는 측면이 있다. 남자 강박증의 경우 아내가 잠자리를 거부한다고 무엇인가에 집착하게 된 경우가 있다. 저자가 상담하는 강박증 중에는 그런 경우가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였다. 이런 원인에는 물론 다양하여 한 마디로 말하기 어려운 점이지만 잠자리의 거부는 그 결과로 나타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사례를 하나 들기로 하자. 강박증 상담을 받는 30대 후반 남자였다. 그는 유달리 성적 문제를 중요시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매우 단순한 사람으로서 가정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아내와 좋은 관계를 맺는 것만이 유일한 삶의 목표라고 했다. 이런 때 아내의 좋은 관계를 말하는 그의 태도는 약간 포장된 것이다. 성적 관계에 불만이 없다면, 별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의 의도가 수포로 돌아가자 급기야 무엇인가에 집착하게 됐고, 그것이 하나의 증상으로 이행되어 강박증 진단을 받기에 이르렀다. 지금도 그는 아내가 잠자리를 거부하지 않고 응해준다면 집착을 얼마든지 끊을 수 있다고도 말했다. 물론 그의 말에는 여러 문제가 있지만, 상당히 중요한 점이 드러나고 있다. 그에게는 적어도 성생활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이다.

그러면 여기에서 성생활이 욕구를 충족하여 다른 정신적 특성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측면을 생각하게 된다. 실제 남성의 성욕은 때로 남성의 존재 가치를 결정할 정도로 중요한 측면이 있다. 그래서 상담치료에서는 남성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것을 남성의 성욕을 이해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런 경우 남성에게 성욕이란 일과 마찬가지로 상당히 강박적이 될 수 있는 특성이 있다. 실로 성욕이란 여성에게도 중요하지만 남성에게는 특별히 중요한 문제로 보아야 하는 점이다.

대부분 남성들은 아내가 싫어하지 않는 한 규칙적으로 성관계를 원한다. 실제 결혼한 사람들의 성(性)욕구는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원초적 충동이다.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거의 모든 사람들은 이런 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에서 보면, 강박증의 성 욕구나 욕망은 단순히 만족적인 수단을 향하여 존재하는 것만은 아닐지 모른다. 흔히 성의 욕구는 심리학에서 음식에 대한 욕구와 더불어 기본적인 것으로 인정한다. 이런 기본적 욕구에는 대개 식욕, 성욕, 그리고 의욕이 상호 연관되는 것으로 본다. 식욕이 강한 사람이 성욕이 강하고, 성욕이 강한 사람이 의욕도 강하다고 보는 것이다.

2) 성욕 발현과 존재 형성

앞에서 강박증과 성 욕구 문제를 기술했다. 이런 욕구는 자연히 그 발현을 전제로 하는 점에서 성욕 발현은 존재 형성과 상당 부분 관련되어 있다. 더욱이 이런 문제는 건강 정도에 상당한 원인이 될 수 있는 점도 상정된다. 그러기에 어떤 사람의 성(性) 행동이 고정화되어 끊임없는 추구에 의해 지배되고, 그로 인해 수치감과 부적합성을 느낀다면, 성욕구나 성행동은 다른 행동과 같이 강박적이 될 수도 있다. 최근 살인사건으로 사회에 물의를 빚은 어느 범인의 경우도 결국은 성행동이 살인까지 이어졌다고 볼 수 있다. 성욕의 결핍을 견디지 못해 충족을 시도하다가 살인으로까지 이어진 것이다. 여기서는 그가 남성이라는 점과 성욕을 해소하지 못해 살인범이 된 점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성욕 결핍은 그들의 무의식 또는 의식에서 강박적으로 작용하는 원초적 본능이기 때문이다. 이런 시각에서 강박증은 성 본능에 사로잡혀 이를 해소하려고 갖은 노력을 다 하다 급기야는 성에 대한 지나친 집착으로 자신의 마음을 달래는 방식을 선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성 본능에서 본다면 그것의 충족은 특성상 강박증으로 이행되는 측면이 있다. 이로 인한 강박성은 점차 이전 어느 때보다 자유롭게 성적 경험을 할 수 있기를 바라고, 더욱 성적 행동을 생각하는 쪽으로 발전한다. 여기에는 젊은이들이 그 성욕 발현에 집착하다 포르노 등 종종 성범죄자가 되는 이유다. 이런 점은 여성들에게도 예외는 아니다. 성욕이 인간의 본능으로 인정되거나 마땅히 충족되어야 할 특성이라면, 성적 자율성과 충족에 대한 권리주장이 더 거세질지 모른다. 이런 현상은 임상경험에 의하면 안타깝게도 이혼의 사유까지 되고 있는 현실이다. 확실히 이런 점은 성욕이란 단순히 억압 가설로만 이해되면 안 된다는 것을 말한다.

신앙인도 성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서 부부생활이 문제되는 경우를 보게 된다. 상담하다 보면 이를 신앙으로 이겨보려고 노력하지만, 너무나 힘들다고 토로하는 교인들이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런 현상은 밥을 먹지 않고 먹었다고 생각하자는 것이나 진배없기 때문이다. 이들은 성적 욕구불만을 신앙으로 누르고 있지만, 한계를 느끼는 꼴이다. 이런 경우 치료자는 상당히 난감한 입장에 처한다. 단순히 밥의 문제라면 음식점에서 사먹으면 되지만, 딱히 다른 묘안을 제시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3) 신앙에서도 예외일 수 없는 성욕

성욕의 문제란 실로 뿌리깊은 문제여서 치료자가 한계에 직면하기 쉽다. 신약성경에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힌 여성이 떠오른다. 그때 예수님은 그녀를 돌로 치려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돌로 치라!”고 땅에 쓰시고 양심에 호소하여 그들을 물리침으로 그녀를 막아주셨다. 그러면서 “여인아! 너를 돌로 치려던 자가 있느냐?” 하고 묻자 “없나이다”고 했고,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 하노니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고 이르셨다. 그 대목은 단순히 죄의 문제가 아니라 성욕 이해가 주일 수도 있다. 그러니까 주님은 죽을 각오, 다시 말하면 목숨을 걸 정도로 참지 못하는 그녀의 성욕을 이해하신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상담치료에서 인간의 성욕을 어디까지 이해할 수 있는가의 문제는 중요하다. 성욕 문제는 실제로 부부상담의 핵심이 되는 경향이 있다. 성욕으로 인해 일어난 갈등이나 문제를 적절히 해결할 때 생각보다 쉽게 부부의 갈등이나 문제가 해결되는 수가 많기 때문이다. 실로 성욕 문제는 비단 성범죄자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성욕으로 일탈을 일삼는 사람들, 심지어 강박증이나 신경증 환자들에게도 연관되어 있다. 이런 점을 감안하여 치료자는 강박증이 갖는 성적 가치관이나 주관적인 특성을 고려하여 최대한 마땅한 대안을 제시하려 노력하지만, 적절한 대안을 제공해 주지 못하는 미흡한 경우도 발생한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비단 강박증만 아니라 때로는 교인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그런 교인들의 경우 성적 욕구불만이 신앙적 차원으로 녹아들어가지만, 그 욕구는 다른 심리적 현상을 유발시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성적 욕구불만으로 인한 히스테리 현상이 신앙적으로 오해되어 발현되는 경우이다.

이런 경우 치료자는 여성 내담자가 말하는 히스테리와 신앙의 현상에서의 경험들을 구분하기 쉽지 않다. 성욕에 불만이 있어 신앙으로 치우친 경우도 때로 신앙적 열성으로만 보일 수 있다. 이들은 신앙에 심취하여 히스테리적 증상을 해소하고 있다고 보이는 점에서는, 신앙 전통에서 이해되는 ‘영적인 것’과 망아지경을 일으키는 입신 등의 문제도 히스테리와 관련되는 측면이 없지 않다. 성욕의 불만족이 어딘가에 깊이 빠져들고자 하는 현상이나 증상을 유발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이런 현상은 정신 병리적인 관점에서 이해되기에 신앙적인 측면과 명확하게 구분하기에는 쉽지 않다. 신앙 현상이란 대개 신비한 현상으로 나타나지만 정신의학에서 생각하는 심각한 히스테리나 망상 같은 정신병과 유사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은 물론 명확한 과학적인 연구를 토대로 해야 한다는 전제를 바탕으로 분석되거나 해석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5. 결론: 본능적 측면에서 바라보고 이해하려는 자세 필요

지금까지 강박증의 치료에서 성욕구와 그 해소에 대해서 중점적으로 다루었다. 이런 것들은 겉으로 드러난 것과는 달리 매우 내면의 감추어진 심리적인 것과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중요한 핵심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간단하게 대화하는 정도로 끝낼 문제가 아닌 존재의 깊은 본능에 연관되는 문제라는 점이었다. 이는 치료자가 그들을 치료한다면서 이런 문제를 다루지 않고 간단한 대화 정도로 치료가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대단히 잘못된 생각임을 지적하는 것이다.

그들이 갖는 성의 욕구, 그리고 성장의 과정에서 이미 결핍된 문제들, 이를테면, 마땅히 충족되어야 할 존재로서의 가치 등이 모두 연결되고 있는 점을 뒤로하고 치료하려고 할 때, 그들의 내면에서 작용하는 심리적인 특성들을 간과하는 것이거나 놓치는 것이 될 수 있다. 겉으로 드러난 행동을 수정하려고만 노력을 기울일 때에 보다 근본적인 문제들을 지나치거나 놓치고 있는 꼴이다. 실제로 상담치료는 그들의 행동을 수정하려는 것에 목표를 두고 있지만 그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강박증을 치료하는 치료자들은 그들이 지나치게 집착하는 근본적인 점들을 고려해야만 한다. 그들의 근본적인 문제를 차치하고 단순히 증상의 완화를 시도하는 것만을 노력한다면 바라는 바, 소기의 성과를 거두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임상의 경험에 의하면 어떤 증상의 이행에는 때로 인간성을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 발견된다. 여기에서 치료가 그 근본적인 것을 소홀히 다루고 인간적인 특성이나 여건들을 고려하지 않으려 한다는 것은 잘못이 될 것이다. 이런 것은 일면 치료자의 편견일 수도 있지만 어느 정도 사실이기도 하다.

실제로 상담치료에서 치료자가 그들을 본능의 측면에서 인간적으로 이해하려는 태도를 갖지 않으면 치료는 요원할지 모른다. 이는 치료가 단순히 증상의 완화에만 급급하여 더 본질적인 본능적인 욕구에 거리감을 두려고 하는 피상적인 치료를 지양하고 보다 깊은 인간 이해에 바탕을 두는 인간학에 해당하는 심리학이나 정신의학을 더 많이 참고해야 하는 이유다. 치료자는 인간으로서 본능을 감안하여 그들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하고, 그들이 갈등하고 힘들어 하는 부분을 진정으로 치료하려는 본능적인 차원으로 승화시키기 위해서도 간과하지 말아야 할 요소이다. 이런 경우 신앙의 정신이나 교훈만을 일삼으려는 지극히 종교적인 태도를 지향하려는 치료자들에게 주는 하나의 경종으로 받아들여도 좋을 것이다.

그런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상담치료의 관점에서 인간을 이해하는 지식이 요구된다. 신앙 일변도의 지식은 때로 그들에게 무의식적으로 반발심이나 위압감을 불러일으키는 결과를 초래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강박증을 치료하는 전문가들은 누구나 심리학이나 정신의학적인 지식도 겸비하여 그들을 대할 때, 인간적으로 본능적인 차원에서 대응해 나갈 때 그들에게 마음의 평안과 위로를 가져다주어 놀라운 치료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