룩소는 이집트 남부 상이집트의 나일강 동안에 위치하며 고대 이집트에서 가장 번영하였던 도시다. 이곳은 나일강의 키나 굴곡부의 시발점에 자리잡고 있는데, 룩소 시가와 북방 3㎞의 카르나크 신전 사이 나일강 동안에 유적들이 산재해 있다.

옛 이름이 테베였던 룩소는 이집트 고왕국 시대에는 작은 마을에 지나지 않았으나, 중왕국시대가 되자 테베를 본거지로 하여 안테프 1세가 고왕국 말의 혼란을 수습하였다. 중왕국의 12대 왕조 아멘투호테프 2세가 상하 이집트의 재통일을 달성하자, 그 수도가 되어 중왕국·신왕국 시대에 번영하였는데, 전성기는 신왕국의 18~20대 왕조 때이다. 이 때가 전통적인 이집트 연대에 의하면 주전 1800년에서 1300년 무렵이다.

신왕국의 특유한 문화는 왕가의 골짜기 같은 암굴분묘, 카르나크 신전과 룩소 신전으로 나타난다. 룩소에는 이와 같은 거대한 신전들이 문화유적으로 남아 오늘날 이집트 최대의 관광 도시가 되었다. 이러한 거대 도시 룩소는 주전 678년 앗시리아의 아슈르바니팔이 이집트를 침공하여 하이집트와 상이집트를 점령하고, 이집트의 중심 도시인 당시 이름 테베를 무차별 약탈하고 파괴함으로써 서서히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지게 버렸다. 룩소는 성경에서 노아몬또는 노라고 한다(렘 46:25, 겔 30.:14-16).

노아몬은 ‘큰 도시’란 뜻으로 누에라고 불리다가 신왕국 때에는 와세트라고 불렸다. 헬라인들은 이 도시를 ‘신의 대도시’란 뜻으로 디오스플라스 마그나라고 불렀다가 테베로 불렀고, 아랍이 정복한 이후 룩소라고 불리고 있는 것이다.

노아몬을 최초로 수도로 정한 왕조는 제11왕조의 멘투호테프 1세이다. 그리고 신왕국 18왕조의 아흐모세는 힉소스족을 쫓아낸 후 이곳에 수도를 다시 정한 것이다. 노아몬은 지리적 여건 때문에 제19왕조에 들어서서는 행정상의 수도를 피람세스[람세스]로 옮겨갔으나, 이집트의 중심 도시로서의 역할은 계속되었기 때문에 신왕국 시대의 무덤들은 모두 노아몬에 만들어진 것이다.

나일 강변 오른쪽에 있는 카르나크 신전은 웅장하고 장엄하다. 어마어마한 134개 열주의 숲이 하늘을 찌르듯이 버티고 있어 이집트에서도 규모가 제일 큰 신전이다. 카르나크 신전은 룩소의 4개 신전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며, 특히 아몬(Amun) 신을 위해 세워진 신전이므로 ‘아몬 신전’이라고 한다. 태양신 아몬 신전을 중심으로 좌우에 무트(Mut) 신전, 몬트(Montu) 신전, 콘스(Khonsu) 신전 등 룩소의 수호신들을 모신 신전들이 기본 신전들로 배치되어 있고, 투트모세(Tuthmosis) 3세의 신전, 아멘호텝(Amenhotep) 2세 및 3세의 신전, 람세스(Rameses) 3세의 신전 등 다수의 작은 신전들도 복합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고대 이집트 중왕국 시대의 제12왕조 때부터 건축되기 시작하여 그리스계 프톨레미 왕조에 이르기까지 약 2000년에 걸쳐 계속 증축되어 왔으나, 기본 구조는 제1 탑문이 건설된 제25왕조 때 완성된 것이다. 전체 신전 배치는 남북으로 되어 있으나, 아몬 신전은 동서로 배치되어 있고, 전체 카르나크 신전 규모는 남북으로 2km, 동서로 500-600m 정도 크기로 그 규모에 우선 놀랄 것이다.

▲룩소 카르나크 신전 입구의, 양의 머리와 사자 몸통을 가진 스핑크스가 도열된 대로. ⓒ크리스찬해피투어

카르나크 신전 입구에는 제1탑문 과 제2탑문이 있는데, 제1탑문(정문) 앞에는 양의 머리에 사자의 몸통을 가진 스핑크스들이 도열한 스핑크스 대로가 남쪽으로 약 2km 떨어진 룩소르 신전 입구까지 연결되어 있었다. 제1 탑문을 지나면 22왕조 때 건축된, 넓이가 약 8,650㎡에 달하는 대광장이 나올 것이다. 대광장 북쪽에는 아몬 신, 무트 신, 콘스 신의 성스러운 배를 모셔 두었던 세티 2세의 신전이 있고, 남쪽에는 람세스 3세의 신전이 있다. 대광장을 지나면 제2 탑문 앞에 붉은 화강암으로 조각된 람세스 2세의 석상이 있다.

제2탑문은 18왕조의 마지막 파라오인 호렘헵이 건축을 시작하여 19왕조 람세스 2세 때 완성되었다. 제2 탑문을 지나면 열주전이 나오는데 그 넓이는 5,356㎡로 로마의 베드로 성당과 런던의 바울 성당의 크기를 합친 것과 같다고 한다. 이 열주전은 134개의 기둥으로 구성되어 있고, 중앙 12개(좌우 6개씩) 기둥은 아멘 호텝 3세가 건축하였으며, 외곽의 파피루스 모양의 122개 기둥들은 세티 1세가 건축하기 시작하고, 람세스 2세가 완공하였다. 가운데 12개 기둥과 외곽의 122개 기둥간의 높이 차이를 이용하여 햇살이 들어올 수 있도록 창문을 천장에 건축하였다. 고대에는 기둥에 채색한 흔적이 기둥 윗부분에 약간씩 남아 있다. 134개의 열주는 높이 23m와 15m 두 종류로 되어다.

대열주실을 지나면 투트모세1세와 핫셉수트 여왕의 오벨리스크(Obelisk)가 각각 오른쪽에서 보인다. 맨 끝에 있는 신전은 투트모세 3세의 장제전이다. 제3탑문은 아멘호텝 3세 때 건축되었으며, 제4탑문은 투트모세 1세 때 건축된 것을 세티 2세가 복원한 것이다. 제3탑문과 제4탑문 사이에는 작은 광장이 있고, 광장에는 투트모스 1세의 오벨리스크가 있다. 제4탑문 안쪽에는 핫셉수트 여왕의 오벨리스크가 보이며, 투트모세 1세와 3세가 건설한 제5탑문과 제6탑문을 지나면 태양신 아몬의 지성소에 도달한다.

지성소는 동쪽과 서쪽으로 개방되어 일출과 일몰 때 햇살이 아몬 신의 지성소를 비출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지성소는 2중 구조다. 외실은 투트모세 3세가 건축한 것이며 내실은 주전 3년경 프톨레미 왕조가 건설하였다. 지성소 남쪽에는 제사장들이 종교의식을 행하기 전 목욕재계하던 성스러운 호수가 있다. 성스러운 호수 입구에는 고대 이집트에서 신성한 동물로 여겨졌던 딱정벌레(Scarab)의 석상이 보인다. 호수 입구 쪽에 핫셉수트 여왕의 누워있는 오벨리스크도 있다. 이 신전에는 람세스 2세가 세운 건물에 아스글론 벽이 있는데 이 벽에는 람세스 2세가 아스글론 성읍을 공격하고 아스글론 백성들이 맏아들을 성벽 너머로 던지면서 저항하고 있는 모습이 부조되어 있다. 그리고 중앙에는 람세스 2세 때 터키의 힛타이트 제국과 맺어진 세계 최초의 평화조약이 기록되어 있다. 꼭 이곳을 성지라고 생각하여 순례할 계획이라면 맨 안쪽에 초대 교회 시절에 신전이 교회로 바뀌어서 예배드렸던 흔적이 보일 것이다. 지금은 퇴색되어 희미하지만 성화가 그려져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초대 교인들은 사막 너머 이곳에 숨어서 예배드렸던 당시를 상기함으로써 오늘의 나를 다시금 되돌아 볼 수 있는 것이다.

김용규 목사
령천교회 중동 선교사
크리스찬 해피투어 성지플레너
성지 가이드 북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