닐로미터가 16큐빗에 이르면 강물을 내륙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수로의 입구를 트는 행사가 열렸었다. 강물은 수로로 흘러들어갔으며 옛 카이로 성곽의 왼편에 있는 호수를 채웠다. 뜨거운 여름에 수로와 호수에는 유람선이 가득 찼고, 호수 주변에는 각종 오락장이 들어섰을 것이다. 물이 차면 수로 입구를 다시 막았다가 다음해 나일강 범람 직전에는 물을 받아들이기 위해 수로 청소를 한다. 수로 입구의 제방을 허무는 행사에는 당대의 최고 통치권자가 항상 참석했고, 행사는 며칠간 계속됐다고 한다. 마믈룩 왕조 시대(1250-1517년)에는 금칠을 한 술탄의 배가 이 때 나일강에 떠 축제 분위기를 띄웠고, 나폴레옹의 카이로 점령 때(1798-1801년)도 이 행사는 계속되었다.


그러나 나일 강 수위가 16큐빗에 이르지 않을 경우, 준비된 행사는 모두 취소한다. 대신 예배와 단식을 함으로써 가뭄과 기근을 막아보려고 하였다. 상 이집트로 불리는 이집트 남부 아스완의 한 섬의 돌에는 이런 글귀가 새겨져 있다. “7년 동안 나일강 수위가 오르지 않았다. 들은 메마르고, 사람들은 그의 이웃을 매장하지 않는다. 어린아이들은 울고 있다. 모든 이집트가 죽어가고 있다.” 나일강 수위 만을 바라보고 있던 시대의 고통스런 기록이며, 창세기의 7년 흉년에 대한 기사를 보는 것 같다. 그러나 1902년 12월 영국인들이 1900m 길이에 54m 높이의 아스완 댐(Aswan Low Dam)을 완공하면서 나일강의 범람은 끝이 왔다.

▲남부 아스완 기근의 석비.
나일강의 중간에 자리잡은 엘리판티 섬의 남쪽에 크놈 신전이 있다. 지금 거의 형체를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파괴되어 잔해만 있다. 크놈 신전을 이곳에 세우게 것은 당시 이집트 사람들이 이곳을 나일강의 시작 지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상류 쪽은 나일강의 협곡을 이루고 있는 폭포지대가 있기 때문에 더 이상 갈 수가 없었다. 이집트인들은 나일강을 단순한 수로로 여긴 게 아니라 천상에서 지상으로 내려온, 천상의 강의 분신이라고 여겼다. 이곳에서 발견된 “기근의 비석”에서 물이 부족하여 힘들었던 때의 일이 기록되어 있는데, 비축해둔 식량이 바닥나고 기근이 이집트를 위협했다는 내용이다.

당시 파라오의 조세르는 시공장 임호테프에게 이같은 상황이 왜 발생하였는지를 조사하게 한다. 임호테프는 헤르모폴리스에 보존된 옛 문자 기록을 참조하여 이 같은 상황이 발생하게 된 것은 전례 규정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으로 해석하고, 크놈 신의 분노를 가라앉히기 위해서 성대한 봉헌식을 올려야 한다고 왕에게 고했다. 이에 조세르 파라오는 수해를 막기 위해 봉헌식을 행하여 크놈 신에게 제1카타락트 지방을 바쳤다고 한다. 또한 제19왕조 람세스3세도 이곳에서 제사를 드렸다. 크놈 신은 폭포지대[카타륵타]의 신으로 나일강을 상징한다. 이 신은 다산과 창조의 신으로도 알려져 있는데 이쪽 아스완 특히 누비아 지방에서는 주신으로 신앙되며, 주신전은 상아섬에, 아내 사티스 및 아누카스와 함께 있다. 이 신은 뿔이 난 숫양의 머리가 달린 남자의 모습으로 표현되고 있다.

아스완은 방대한 채석장으로 이름이 높았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최상급 화강암 뿐만 아니라 사암과 섬록암들도 채굴하였다. 시공장들은 먼 거리에도 불구하고 필요한 돌들을 찾아 이곳까지 찾아온 것이다. 채굴한 거대한 돌들을 적재할 수 있는 배들을 만들었고, 거대한 돌들과 오벨리스크를 그 배에 어떻게 적재하였는지 궁금하지만 조직된 노동력을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이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햇살이 바위들 위에서 반사하는 이곳 채석장에서는, 석공들의 노동 흔적과 길이가 42m에 무게가 1200t이나 나가는 미완성 오벨리스크를 볼 수 있다. 이곳은 고대 이집트인들이 어떻게 거대한 암석을 어떻게 매끄럽게 잘라냈는지에 대한 의문을 풀어주는 곳이다. 먼저 돌에 홈을 만들어 그 홈에 세 곳의 쐐기를 박아 놓고 쐐기에 물을 계속 적셔주면, 돌의 내부가 팽창하여 돌이 갈라진다는 것이다. 길이가 41m의 미완성 오벨리스크는 원래 룩소의 카르낙 신전에 있는 투트모세 3세 신전 앞에 있던 오벨리스크에 붙이려고 했던 것인데, 돌을 잘라내는 과정에서 결함이 발견되어 버려진 것이다.

1980년 3월 10일은 물에 잠기게 될 필레 신전이 다시 태어난 날이다. 주전 300년에 건설된 이시스의 성소 필레 신전이 아스완 하이댐의 완성 후 댐에서 방류하는 물로 인하여 잠기게 되었다. 이집트 정부는 유엔의 유네스코와 협력하여 1972년부터 1980년까지 필레 신전을 근처의 아글라카 섬으로 옮겼다. 이 신전은 오시리스의 아내이자 호루스의 어머니인 이시스 여인을 위한 신전으로, 수백 년에 걸쳐서 완공된 신전이다. 이 신전은 제30왕조의 넥타네브1세에 의하여 건설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 후 이집트를 점령한 그리스 포톨레미우스 왕조에 의하여 계승되었고, 이집트를 침입한 로마에 의하여 완성되었다. 그러다 보니 이 신전은 이집트, 그리스, 로마의 건축 양식 혼합되어 있다. 그리스식 원형 기둥위에 장식된 파피루스 꽃 모양이 그것을 보여주고 있다.

김용규 목사
령천교회 중동 선교사
크리스찬 해피투어 성지플레너
성지 가이드 북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