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펄을 삶의 터전으로 살아가는 증도의 여인들. ⓒ김혜경 작가

몇 해 전 아시아에서 최초로 슬로시티에 지정된 남도의 아름다운 섬 증도와, 이 섬을 순결한 신앙의 섬으로 가꾸시다가 순교하신 문준경 전도사님의 일대기를 취재해 <천국의 섬>이란 책을 냈었다. 이후 5년여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이 섬에 다리가 놓이고 관광객이 몰리면서 많은 변화가 생겼는데, 이런저런 변화된 모습을 반영하여 이번에 개정판 <천국의 섬 증도/홍성사>를 다시 쓰게 됐다.

남도의 작은 섬 증도는 천국의 섬으로 불리는 곳이다. 왜 이곳이 천국의 섬으로 불리게 된 것일까? 자연이 빚어낸 풍광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130만 평에 달하는 광활한 게르마늄 개펄은 증도 최고의 보물이다. 이 개펄 위로 영화의 한 장면처럼 아름다운 짱둥어다리가 놓여 있고, 드넓은 개펄에서는 짱뚱어와 농게들이 자유롭게 헤엄친다. 폭 2미터에 길이 470미터에 달하는 짱뚱어다리 위에서 저녁놀을 바라보거나 야경을 감상하면 자리를 뜨기가 어렵다.

보물섬 전망대는 한반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몰을 볼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바위에 부딪혀 들려오는 장엄한 파도소리와 함께 이글거리는 태양이 바다 속으로 서서히 침몰하는 광경을 바라다보면 대자연의 신비에 절로 탄성이 쏟아진다. 저녁 무렵 바다로 빨려 들어간 태양은 다음날 아침이면 증도대교와 태평염전이 있는 바다 사이로 또 다시 떠오른다.

증도의 자랑인 태평염전은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단일 염전이다. 140만 평에 달하는 태평염전에서는 매년 1만6천여 톤의 천일염을 생산해 낸다. 이는 우리나라 천일염 생산량의 60퍼센트에 달하는 양이다. 천일염은 바닷물을 염전에 모아 햇살과 바람으로 말려 생산하는 친환경 무공해 소금으로 염화나트륨, 칼륨, 코발트, 요오드, 망간, 아연 등 80여 종의 미량원소가 함유되어 있는 미네랄의 보고다.

소금은 태양으로 잉태된 하늘이 내린 먹는 보석이다. 버지선착장에서 왼쪽 길을 따라 대초리 방향으로 가다 보면 길가에 나란히 늘어선 허름한 목재 소금창고들을 볼 수 있다. 이 창고들이 한여름 땡볕을 받아 배를 불렸다가 곱고 건강한 소금을 탄생시키는 조산원이다. 이 조산원이 만원이 될 때까지 염부들이 땀방울을 가장 많이 흘리는 계절이 유월이다. 따라서 유월에 생산되는 소금이 가장 맛이 좋다.

▲부활의 새벽을 깨우는 사람들. ⓒ김혜경 작가

특히 증도가 아름다운 건 한 여인의 순교로 인한 봉사와 헌신의 영성이 살아 숨쉬기 때문이다. 고작 2,200명 정도의 주민이 살고 있는 증도는 대한민국에서 크리스천 비율이 가장 높은 고장이다. 섬 주민의 90퍼센트 이상이 예수를 믿는다고 하니 믿기지가 않을 정도다. 섬 안에 있는 열한 개 교회에는 주일 예배 때마다 교인들로 가득 찬다. 증도가 이렇게 영성이 충만한 섬이 된 것은 신안에 있는 섬 마을을 찾아다니며 교회를 세우고 어려운 이웃들을 돌보다가 6·25전쟁 때 홀로 공산군의 총탄에 맞아 순교한 문준경 전도사의 봉사와 희생정신 덕분이다.

그녀는 묘비에 쓰인 글처럼 “빈한 자의 위로되고, 병든 자의 의사, 아해 낳는 집의 산파, 문맹퇴치 미신타파의 선봉자”가 되었으며, “압해, 지도, 임자, 자은, 암태, 안좌 등지에 복음을 전하고, 진리, 증동리, 대초리, 방축리교회를 설립했으며, 모든 것을 섬사람을 위하였고 자기를 위하여는 아무 것도 취한 것이 없었던” 삶을 살다 간, 한국의 테레사 수녀였다.

남도는 2007년 12월 증도는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슬로시티(slow city)에 지정되었다. 슬로시티는 1986년 패스트푸드에 반대해 확산된 슬로푸드 운동이 모태가 되어 1999년 이탈리아의 그레베 인 키안티에서 몇몇 시장들이 모여 만든 느린 마을 만들기 운동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고유한 자연환경과 전통을 지키면서 그 지역의 먹을거리와 독특한 문화를 유지하며 살아가는 마을의 새로운 이름이다.

증도가 아시아 최초로 슬로시티에 선정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섬이 오염되지 않은 깨끗한 자연을 보존하고 있으며, 개성 넘치는 삶의 풍습을 이어가고 있다는 증거인 셈이다. 슬로시티 운동의 상징은 마을을 등에 지고 기어가는 느림의 대명사인 작은 달팽이다. 증도 곳곳에는 달팽이 그림과 함께 ‘느리게’라는 구호가 붙어 있다. 조급히 서두르지 말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느림의 미학과 기다림의 철학을 즐겨 볼 것을 권하고 있는 것이다.

▲소금밭을 놀이터 삼아 자라나는 아이들. ⓒ김혜경 작가

길이 시작되고 만나는 곳 증도를 가려면 여러 개의 길을 거쳐야 한다. 남도의 붉은 흙길을 지나 예전에는 섬이었으나 지금은 다리가 놓인 지도, 송도, 사옥도를 지나야 증도에 다다른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옥도에 있는 지신개선착장에서 배를 타야만 증도에 들어갈 수 있었다. 지금은 길이가 900미터에 이르는 왕복 2차선 아치형 다리가 예쁘게 세워져 있어 언제든 차를 타고 건너갈 수 있게 되었다. 2005년부터 공사를 시작해 5년 만에 지어진 다리다.

증도는 길의 섬이다. 작은 섬이지만 증도를 둘러보려면 수없이 많은 길을 걸어야 한다. 섬은 제주도처럼 해안도로를 따라 일주하게 되어 있다. 잘 정돈된 평탄한 길을 아닐지라도 산을 넘고 논과 밭길을 지나 바다로 이어지는 일주 코스는 여행의 진수를 느끼게 해줄 만큼 장관이다. 증도 사람들은 길마다 이름을 붙여 놓았다. 천년의 숲 산책로를 비롯해 노을이 아름다운 사색의 길, 보물선 순교자 발자취 길, 갯벌 공원의 길, 천일염의 길 등 증도 일주 코스는 다섯 개의 구간으로 나뉘어져 있다.

그 중 가장 아름다운 길은 천년의 숲 산책로다. 대초리를 지나 우전리로 접어들면 잘 자란 소나무 군락지가 나타난다. 여기가 증도의 자랑인 천년의 숲 산책로다. 증동리 뒷산 상정봉에서 내려다보면 해송 숲의 모양새가 꼭 한반도 모양을 닮았다고 해서 더욱 유명해졌다. 소나무 길을 따라 천천히 걷기만 해도 저절로 삼림욕이 되는 곳이다. 소나무 개채 수가 무려 10만 그루에 이른다고 한다. 엘도라도 리조트에서 시작되는 산책로에는 ‘철학의 길’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고 그 반대편에는 ‘망각의 길’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겨울에는 바닷바람이 매서우므로 단단히 껴입고 길을 나서야 하지만 여름에는 발끝에 닿는 모래의 부드러운 촉감을 만끽하기 위해서라도 맨발로 걷는 게 좋다.

증도가 길의 섬인 또 하나의 이유는 문준경이라는 여인이 걸어갔던 순교자의 길이 있기 때문이다. 이 길은 다른 길과 달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증도 사람들의 가슴 속에 또렷하게 새겨진 길이다. 영성의 길, 신앙의 길, 순교의 길. 그녀가 세상을 떠난 지 벌써 60여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증도 사람들의 눈앞에는 그들이 묵묵히 걸어가야 할 인생길이 노두길보다 더 명료하게 펼쳐져 있는 것이다. 침묵으로 그 길을 걸어 보는 것, 이것이 증도 여행이 주는 커다란 선물이다.

-<천국의 섬 증도>에 담긴 사진작품은 작가 유승준 씨의 아내인 김혜경 씨가 찍은 것이다. 김혜경 씨(현 덕양중학교 교사)는 오는 7월 24일(화)부터 8월 5일(일)까지 서울시 종로구 통의동 ‘사진위주 류가헌’에서 ‘길을 찾아 떠나다-천국의 섬 증도’라는 주제로 사진전을 개최한다. 김혜경 씨(현 덕양중학교 교사)는 사진 동호회 PNP활동을 하며 단행본 <안동교회 이야기>, <산골 십 남매 이야기>, <천국의 섬>의 사진 촬영을 진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