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충렬 박사(한일장신대·한국상담치료연구소장).
제9장 강박증의 임상적 양상(2)

강박증은 특정한 일에 대한 집중이 매우 강하다. 이들은 어떤 일에 강렬하게 지속적으로 몰두한다. 그것들은 왕성하게 생산적일 수도 있고, 일의 양이 빈약한 경우, 때로 그 일이 하찮아 보이는 일상적이고 기계적인 일인 경우도 있다. 그런가 하면 하루 종일 집을 청소하고 깨끗이 하는 데 시간을 보내거나, 별로 중요하지 않은 물건들을 신중하게 정리하는 데 골머리를 앓기도 한다. 이러한 활동양식은 경직되고 기계적인 사고방식에 잘 들어맞는 것이다. 강박증은 특정한 일에 몰두하는 것 외에도 중요한 한 가지 특성을 갖는다. 그것이 바로 자율성의 상실을 바탕으로 하면서 다음의 몇 가지 임상적 양상을 가지고 있다.

1. 긴장감과 초조감

긴장과 초조감은 강박증 환자들의 중요한 특징이다. 강박증 환자들은 긴장감이 고조된 편이다. 긴장감(緊張感)은 마음을 놓지 않고 계속하여 정신을 바짝 차리게 되는 상태, 근육이 수축되거나 흥분되는 느낌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의 정신은 긴장과 이완의 두 바퀴를 굴려가는 형식으로 되어있는 것 같다. 긴장을 하였으면 이완이 되어야 하고, 이완이 되었으면 다시 긴장되는 원리인 것이다.

이런 경우 적절한 긴장감은 매사에 필요한 특성이라 할 것이다. 이런 긴장감을 생각하면 현악기의 현(줄)을 떠올릴 수 있다. 현악기를 연주하기 하기 위해서는 현(絃)을 적절히 긴장시켜야 한다. 이를 우리는 튜닝(tuning)이라 한다. 적절한 긴장된 상태에서 음악이 연주되지만 연주가 끝나면 현이 늘어지지 않기 위해 이완시켜 두어야 한다.

그런데 강박증에서는 이런 원리가 정상적으로 작동되지 않는 편이다. 대체로 그들은 심리적으로 긴장을 하는 편이지 이완을 거의 시도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이완에는 휴식을 취하는 것으로서 편안히 쉼을 취하는 것이나 특별한 여행, 그리고 즐거운 놀이를 의미한다. 이들에게는 이런 이완을 위한 쉼이 자칫하면 시간낭비 정도로 생각되는 경향도 있다. 그들은 어떤 경우에도 시간을 생산적으로 사용 및 활용해야 한다는 생각에 집착되어 있기 때문이라 보아야 할 것이다. 시간을 생산적으로 활용하지 않으면 심리적으로 불안하여 더욱 생산적인 일에 치중하거나 집착하는 현상이 일어난다는 점에서다.

이들의 긴장감은 일을 추진하는 방식이나 생활하는 방식에도 영향을 끼치는데, 심할 경우에는 효과를 올리지 못하면서 신경을 무척 기울이는 정도의 행동을 하는 매우 집착적이기도 한다. 이들은 극단적인 경우 일에 지나치게 매달리기도 하는데, 여유를 갖고 천천히 생각하여 보다 나은 방법을 알아내는 것보다 오로지 하나의 문제에 집착하여 새로운 생각이나 행동방식을 얻어내지 못한다.

그러니까 그들은 표면적으로는 신중하고 집중력을 발휘하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이들의 무의식은 초조함이나 불안한 심리적 고통에 휩싸여 있기도 한다. 이런 현상은 아마도 긴장과 이완의 정상적인 방식을 통하여 집중력을 발휘하게 되기보다는 지나치게 신중함을 보이거나 긴장에 사로잡힌 나머지 오히려 집착성과 독단성을 초래하는 것을 경험하기 때문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그들에게는 적절히 이완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가 된다. 그들이 사회생활에서 효과적인 집중력의 발휘를 위해서는 긴장감을 풀어주거나 해소하는 이완이 적절히 요구되는 점에서다. 만약에 그들에게 적절한 이완이 수반되지 않으면 계속 긴장하게 돼 일에 시간을 투자한 것에 비해 그에 상응하는 효과를 올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긴장감이 강한 학생이라면 열심히 공부한다고 책을 붙들고 있지만 내용이 제대로 머리에 기억되지 못하는 것이다. 그것은 그가 집중하여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공부에 집착한 결과로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것을 생각하면 강박증 환자들은 목표 추구에만 정신을 쏟은 나머지 그것을 달성하는 과정을 철저히 분리해 놓고 살아가는 사람처럼 보인다. 서로 연관된 목표와 과정을 분리해 놓고 오로지 목표에만 집착한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존재하는 긴장과 이완을 적절히 균형을 이룬 채, 합리적인 이성, 원칙, 규칙 등에만 집중하지 말고 때로는 전혀 다르게 풀어지는 정도의 즐김이나 누림, 그리고 이완의 결과를 산출하는 향유를 소유해야 할 것이다. 이는 비단 그들만이 아니라 사람에게는 누구나 적절한 정도의 자기절제가 필요한 것임을 짐작할 수 있는 점이기는 하다.

2. 완벽성의 추구

강박증은 완벽성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런 완벽성은 그들로 하여금 신중하게 노력하는 태도를 지향하게 만든다. 실제 강박증 환자들에게는 모든 일이 신중해야 하고, 노력을 들이지 않고 저절로 이뤄질 수 있는 일이란 없는 것처럼 여겨진다. 이런 이유로 그들은 일상의 생활에서도 노력을 요하는 일이든 아니든 모든 일에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일반적으로 생활을 위한 영역에서는 어느 정도 노력이 꼭 필요하지만, 그들에게 일에서 최선을 다하려는 태도는 삶의 중요한 영역이다. 이런 현상은 큰 문제라기보다는 오히려 좋은 태도로 보아야 할 것이다.

다만 문제는 그들이 조금은 지나친 데 있다. 그러니까 대부분 사람에게는 유희와 흥미로운 활동에 대해서조차 신중하고 긴장된 노력이 연장되어 나타난다. 이로 인해 그들은 유희를 즐기는 순간에도 생산성을 추구하며 매달린다. 강박증 환자들이 매주 주말을 최대한 즐겁게 보내기 위해 신중한 계획을 세운다고 하자. 그래도 그들은 주말을 즐기기로 결심하지만 그의 계획을 방해하는 어떠한 것이 생길 때마다 기분이 쉽게 상한다. 그들이 기분이 상한 것은 예기치 않은 일이 그의 활동을 방해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더 큰 이유는 그들이 얼마나 즐겁게 보내는가보다는 휴일을 ‘효율적으로’ 보낼 수 없다는 데 있다.

또다른 강박증 환자는 수면을 취할 수도 없고 책을 읽을 수 없는 증상으로 오래 시달리다가 상담소를 찾았다. 그가 날마다 연구한 주제는 ‘어떻게 하면 잠들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두 눈동자의 초점을 책에 정확하게 일치시킬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는 잠들고자, 책에 초점을 맞추고자 노력하였다. 그러나 노력할수록 잠은 더 오지 않았고, 책에 초점을 맞출 수 없어 글자가 뿌옇게 보였다.

이로 인해 그는 순간적으로 자주 상황이 바뀌는 것을 경험하였는데, 넋을 잃고 졸기도 하였지만 때로는 글자가 선명하게 눈에 들어오기도 하였다. ‘아, 내가 그토록 찾던 방법이 바로 이것이었구나!’ 하고 하나의 통찰을 얻은 듯 그 방법을 몸에 익히려고 노력하면 또다시 잠은 오지 않고 글자는 뿌옇게 사라지고 말았다. 실로 그는 수면이란 그 특성상 긴장이 풀리면 저절로 들게 되고, 글자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임을 깨닫지 못한 것이다. 그에게는 잠자는 것도 일이고, 쉬는 것도 일이며, 노는 것도 일인지 모른다. 긴장을 풀지 못하는 그의 태도는 어떤 결말을 얻을 수 없는 괜한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그들의 완벽성을 추구하는 심리에서 비롯된다. 지나치게 완벽성을 추구하려는 심리가 오로지 생산적이고 효율적인 것에만 정신을 쏟게 만든 것이다. 이처럼 완벽성의 추구는 그에게 즐기는 문제에도 더 효율적이어야만 하는 강박성에 사로잡히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3. 당위성의 압력에 대한 집착

강박증에는 당위성의 압력이 작용하는 편이다. 그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반드시 무엇을 ‘해야만 한다,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당위성의 압력을 떨쳐버리지 못한다. 이런 것이 강박성에 집착되는 현상이다. 이는 욕구와 관심을 넘어 압력을 받아 이뤄진다. 이들의 행동이 열정적인 듯 보이기도 하지만, 이들의 열정은 진정한 열정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는 점, 일에 임하는 모습은 관심과 흥미에 끌려 총명한 눈빛으로 일에 자발적으로 몰두하는 것과 분명히 구별되는 점에서다.

여기에는 다른 보이지 않는 어떤 심리적 작용이 있어서일 것이다. 이들은 마치 어떠한 명령이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고통스럽게 행동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들에게 가해지는 요구는 외부적인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신을 향해 가하고 있는 내면의 압력이다. 실제로 이들은 빈번하게 임의의 기준에 의해 스스로 마감시간을 설정한다. 이들 중 어떤 사람은 ‘다음 생일이 돌아올 때까지 보다 나은 일자리를 구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나는 실패자가 되고 말거야!’ 라고 생각한다. 물론 다음 생일이 다가올수록 그는 굉장한 압박감에 시달리게 된다. 생일이 지나면 마감 기일은 다시 새해 첫날로 옮겨지고, 이러한 압박과 쫓김은 되풀이된다.

이런 것을 보면 강박증은 압박감이나 긴장감, 신중함, 계획성, 노력 등은 동일한 양식이 변형되어 나타나는 것일 수 있다. 자신에 대해 많든 적든 스스로 자신에게 끊임없는 압력을 가하고, 스스로 부과한 스트레스의 압력 속에서 일하고 살아간다. 이로 인해 그들은 누가 보지 않더라도 스스로 자기 자신을 향해 명령하고, 지시하고, 상기시키고, 경고하고, 훈계하는 감독자가 된다. 그리하여 자신에 대해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떤 일은 해서는 안 되며, 심지어 무엇을 원해야 하고, 무엇을 느껴야 하며,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감독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정신분석가 호나이(K. Horney)는 용서를 모르는 이들의 경직된 양심을 가르켜 ‘당위의 폭군’이라 표현했을 것이다. 이런 시각이 옳다면 강박증 환자들이야말로 당위라는 폭군의 노예로 살아가는 사람들일지 모른다. 그들은 용서할 줄 모르며 창살 없는 감옥에서 죄수 아닌 죄수로 스스로를 속박하기 때문이다. 자신과 타인을 용서하지 않는 당위성은 ‘-해야만 한다’ 혹은 ‘-해서는 안 된다’로 집약되기 때문이다. 당위성의 압력이 심리적으로 힘들게 만드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4. 의지적 통제력의 발휘

강박증은 지나치게 자신의 의지력을 통제하려는 경향이 있다. 의지적으로 행동하지 못하는 것은 자신의 정신력 저하를 의미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는 맞는 말이다.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일수록 의지력 통제가 강하기 때문이다. 다만 문제는 지나치게 의지력을 통제하려는 경향을 보인다는 점에 있다. 이런 현상은 스스로 자신을 억압하는 심리적 결과를 초래할 뿐 아니라 주변인들이 보기에도 상당히 억지적으로 보일 것이다.

이런 점을 잘 이해하기 위하여 우리는 자연스런 의지적 통제 현상을 생각할 수 있다. 자연스러운 의지적 통제는 억지적이지 않은 점에서 병리적 증상을 유발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의지적으로 무기력한 것과는 매우 대조되는 측면이다. 의지적으로 무기력한 영아들은 내적 외적 추동이나 압력에 의해 반사적으로 움직인다. 그러나 성장함에 따라 점차 다양한 종류의 의지적 행위나 기능을 획득하게 된다. 행동의 다양한 측면을 자신의 의지대로 원하는 대상에 적용시키는 능력은 다른 말로 자율적인 기능이라고도 부를 수 있다.

아동은 성장하는 동안 근육의 움직임에서부터 시작해 여러 인지적 활동을 포함하는 광범위한 영역이 불수의적 영역에서 수의적 영역으로 바뀐다. 자신의 의지대로 통제 할 수 없었던 영역들이 의지적 통제 하에 들어오게 된다. 예를 들어, 배고픔을 충족시키거나 배설하는 작용 또는 생각하고 구상하는 등의 과정이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의도적인 정향이 가능한지의 영역 내로 포함된다.

아동에게 계획적이고 목적적인 행위와 그 능력의 발달은 새로운 종류의 심리적 경험과 새로운 차원의 자기인식 경험을 동반한다. 물론 모든 심리적 기능이나 행동이 모두 의지 아래 포섭되는 것은 아니다. 본능적 충동을 만족시키는 행동은 어느 지점까지는 개인이 주체이지만, 충동 자체는 의도나 의지의 통제 아래 들어오지 않는 점에서다. 정상인에게서는 삶의 어떤 부분들이 의도와 의지의 영역 내에서 통제될 수 있지만, 어떤 부분들은 의지적 영역 바깥에 위치한다는 것이 아무런 문제로 되지 않는다. 의지력과 자율감이 잘 확립되어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통제력 바깥에 있는 충동, 변덕스러운 기분, 자발적인 정서표현 등을 어느 정도 허용할 수 있는 여유를 지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지의 발달이 상당히 왜곡되는 경우도 있다. 그 발달이 경직된 형태로 이루어지는 경우다. 이런 경직된 형태가 바로 강박증이기에 그들은 끊임없는 의지의 긴장 상태에서 살아간다. 이런 측면을 앞에서 인지적인 경직성을 통해서 살펴보기는 했지만, 이러한 상태는 이들의 생활 전반에 깔려 있다. 이로 인해 강박증 환자들에게는 의도적인 선택과 계획성, 목적적 행위의 추구에서부터 시작해서 모든 행위에 대한 자의식적인 지시, 감독자적 태도, 끊임없는 의지의 압박과 자신에 대한 방향 지시에 이르기까지 상당히 경직되고 왜곡된 형태로 나타난다.

심지어 이들은 자신이 원하는 소망이나 정서적 측면까지도 의지적으로 지배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그 결과로 그들은 거의 모든 행위에서 신중하며 계획적이다. 또 그들은 자신의 의지적 행위가 타인에 의해 방해받는 것을 견디지 못하며, 일단 일을 착수하면 스스로에 의해 방해되는 일도 견디지 못한다. 정상적 의미의 의지적 규제가 왜곡되어 자신이 ‘바라고 소망하는 것’마저 의지적으로 규제하려고 노력하게 된다.

그러자니 이들에게 충동이나 소망은 자신의 결정을 망치고, 자신이 반드시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일들에 방해가 되며, 미리 계획한 행동이나 생각의 방향을 흐려 놓는 유혹거리일 뿐이다. 의지적 통제를 강조하는 생활양식은 한편으로는 우리의 문화 속에, 특히 일과 관련된 문화에서는 당연시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면 의지적인 명령에 스스로를 복종시키는 것이 의지력의 핵심이라고 본다면, 성취나 업적, 그리고 생산성이 강조되는 사회에서의 의지력은 어느 정도까지는 필요한 덕목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5. 인식의 방식으로서 역할연기의 활용

역할연기는 강박증의 특이한 인식의 방식이다. 강박증 환자들은 다소 특이한 방식으로 자신을 인식하고 있다. 그것이 바로 생활에서의 역할연기로 인식하는 방식이다. 그들은 일상생활에서도 자신에게 분명한 역할이 주어져야 혼동하지 않고 일을 해나갈 수 있다. 애매한 역할이나 알아서 하라는 방식의 태도는 그들에게 잘 통하지 않는다. 이런 역할은 모두 융통성을 발휘해야 하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들에게 어려운 것은 분명하지 않고 애매한 역할이나 상황에서 융통성을 발휘해야 하는 것들에 걸쳐 있다.

역할연기는 엄밀히 말하면 연극에서 활용되는 개념이기에 강박증에서 사용하는 것과는 반드시 동일하지 않을 수 있다. 강박증 환자들은 연극에서의 역할연기와는 달리 의지의 명령에 따라 역할연기를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들은 자신에게 분명하게 주어진 일을 성실하게 수행하는 특성을 갖고 있다. 그래서 이들의 모든 행동은 마치 감독이 지시하고 명령하는 것에 따라서 주어진 역할을 연기하는 배우의 행동과도 같다.

강박증을 치료하는 의사인 경우 병원에서는 의사의 역할을 연기하고, 아내에게는 배우자로서의 역할을, 자식들에게는 부모로서의 역할을 연기하고 있는 것과 같다. 이로 인해 그들은 주어진 상황에서 자신의 역할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규명하려 하며, 이러한 역할에 따라 기대되는 적절한 행동을 취하려는 것은 이들의 삶 전반에서 나타나는 모습이다.

더욱이 그들에게는 일정한 역할이 주어지거나 성립되면, 이것은 그들의 행동 전반에 대한 지시자로 된다. 이것은 종종 그들의 얼굴표현이나 언어구사방식 등의 세부 사항까지도 포함하는 편이다. 나아가 강박증은 특별히 자신의 직업적 전문적 역할에 대해서도 이러한 식으로 생각한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페니켈(O. Fenichel)의 사례를 참고할 수 있다.

그에게 어떤 여자환자는 모든 것을 역할연기로 이해하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어떠한 역할을 연기하기로 되어 있는지 알지 않으면 매우 불편해한다. 일을 할 때면 그는 ‘지금 나는 일꾼이야’ 라고 생각한다면, 이 생각은 그가 원하는 안정감을 준다. 집에 있을 때는 ‘나는 이제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돌아온 남편이야’ 라고 생각한다. ‘나는 일꾼이야’ 라는 생각은 ‘나는 일꾼들이 행동하는 방식에 따라 움직여야 해’ 라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그들이 연극성이 있어서가 아니라 오로지 자신의 인식의 방식을 위한 방편으로 역할을 수용하고 활용하는 것이라 보아야 한다. 이는 전술한 대로 융통성의 결여와 관련성을 갖는 것이기도 하다. 그들에게 융통성의 발휘가 문제가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할 것이다.

6. 강박증에서 주로 사용되는 자아방어기제

방어기제는 무의식 속에서 의식적인 자아를 위협하고 있는 충동들을 다룬다. 자아방어기제란 정신분석학에서 자아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방어적 방법들이다. 프로이트는 강박사고와 강박행동을 인생 초기에 억압된 사고, 적개심, 죄책감 등이 이후에 재활성되어 나타난 것으로 보았다. 인격에 별다른 문제가 없는 사람이라 해도 일상의 생활에서 초기의 억압에 대한 반작용으로, 또는 경험되는 생각이나 정서를 부분적으로라도 표출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방어기제를 사용한다. 이때 강박증 환자들은 흔히 고립화, 주지화, 대치, 반동형성, 취소하기 등의 방어기제를 빈번하게 사용하는 편이다. 이들이 주로 사용하는 방어기제들을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

1) 감정의 모호함으로써의 분리화와 주지화

강박증 환자들은 자신의 정서적 특성을 드러내는 것을 어려워한다. 이는 그들이 가급적이면 정서를 배제하고 사실위주의 논리성을 부각시키고자 하는 이유다. 그 논리성이 때로 객관성이 결여된 매우 주관적인 것이라 해도 일정한 논리체계로 자신의 생각을 정당화시킨다. 그러다 보니 그들의 생각 속에는 훈훈한 인정미(人情味)를 기대하기 어렵다. 이런 현상이 바로 방어기제 중에서 ‘분리화’라는 특성이다.

분리화(isolation)는 정서에서 생각을 구분해내는 현상이다. 이로 인해 정서는 배제되고 특정한 생각만이 부각된다. 이를 다르게 말하면 이들의 의식 속에 남아 있는 것은 감정적인 요소를 배제한 무채색의 관념적인 내용 뿐이다. 이런 경우에 그들은 난폭한 행위에 대한 내용의 강박적 사고를 경험하되, 이에 수반될 수 있는 분노 등의 감정은 그들에게 배제된다. 이들은 ‘무엇이 발생하고, 그것이 어떻게 발생했으며, 그때 누구와 함께 있었고’ 등의 사실적인 기억은 길게 설명해도 그 사건과 관련된 느낌이나 감정은 적절하게 표현하지 못한다. 감정표현을 요구하면 모호하고 감정과는 무관한 상태에 대해 진술한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지적(知的)인 우위성을 내세우기를 좋아한다. 이런 특성 때문에 그들은 자신이 타인보다 더 많이 알고 있다는 것에 대하여 상당한 자부심을 갖는다. 이로 인해 그들은 자신의 정당성을 내세우기 위하여 곧잘 지식적인 특성을 지향한다. 이런 현상이 바로 ‘아는 체’ 한다는 것으로 주지화(intellectualization) 또는 현학성(玄學性)이다. 그런 점에서 주지화 또는 현학성은 강박증 환자들의 주로 사용하는 방어기제다.

주지화 또는 현학성은 갈등 감정을 회피하고, 지적인 개념과 관념의 세계로 도피한다는 점에서 고립화와 유사한 기능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매우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내용에 골몰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상당한 불안감을 느끼며 내면의 갈등으로부터 회피하고 싶은 것이다. 다만 이러한 분리나 주지화는 완전히 성공적이지 못하며, 잠재된 충동과 욕구 및 갈등적인 감정이 계속 불편감을 주게 된다는 점에서 병리적인 측면이 된다고 보아야 한다.

2) 핵심을 비껴가는 대치

강박증은 핵심을 비껴가는 행동을 초래할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이 모두 관심을 갖는 것에 대하여 그들은 별다른 관심이 없다는 방식으로 반응하면서 오히려 다른 것에 관심을 갖는다. 예를 들어 바보온달이 평강공주를 만나 장군이 되었다고 하자. 이때 평강공주는 바보를 장군으로 만든 훌륭한 아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런 경우 그들은 “왜 평강공주는 하필 바보온달을 선택했을까요?” 라고 질문할 수 있다. 그러면 모두가 폭소를 터트릴 것이다. 이런 현상을 우리는 정확하지는 않지만 ‘핵심을 놓치는’ 또는 ‘핵심을 비껴가는’ 것으로서 일종의 ‘대치’로 부를 수 있기 때문이다.

대치(displacement)는 다른 생각이나 행동으로 바꾸는 현상이다. 정서적 관심이나 강도의 초점을 본래의 근원으로부터 자아에게 덜 위협적인 다른 생각이나 행동으로 바꾸는 것이다. 이때 특정 과제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느낄 수 있는 불안에는 ‘글 쓰는 스타일이 적합한가, 내용이 적절한가, 전체적으로 가치가 있는가,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평가를 받을 것인가’ 등이 있다.

그러나 대치의 방어기제를 통해 대상의 세부에 집착하게 되면 과제의 보다 중요하고 위협적인 측면들을 간과하게 된다. 이러한 세부적 주의는 정교하고 미세한 부분들을 만들어낼지 모르지만, 전체적인 통합 구조로서의 일관성은 잃게 되기 쉽다. 이로써 강박적인 과제 처리는 오히려 저조한 평가를 받을 수 있고, ‘덜 완벽한’ 사람들의 수행이 강박적인 사람들의 완벽주의적 수행을 능가하는 경우도 생기게 된다.

여기서 그들이 대치를 사용하는 이유가 궁금해질 것이다. 여기에는 몇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하나만 지적하라고 한다면 부분적인 것에는 집중하지만 전체적인 통합에는 문제가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런 이유로 강박적인 사람들에게는 다수의 과제들이 각각 미세하게 정리되어 있을지라도 시작만 했을 뿐 어느 것도 부분의 통합과 전체적 완성을 보지 못한 상태가 관찰되는 경우가 있다.

각 부분들에 대한 반복적인 수정 작업에 집착하여 과제를 전체적으로 통합하고 조직적으로 수행할 수 없었기 때문에 평가에 대한 불안을 세부에 대한 작업으로 대치시킨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이는 다른 것이 아니라 그들이 대치로 인해 핵심을 놓치거나 부분에 집중하다가 전체적인 통합성을 간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3) 불안의 회피수단으로서의 반동형성

강박증은 불안을 바탕으로 한다. 이런 불안이 거의 미래와 관련된 것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이는 강박증을 신경증이라 부리는 이유다. 다만 이들의 문제는 지나치게 불안할 때 전혀 사안과 반대되는 행동을 취하는 경향이다. 이런 경향을 우리는 그 성격상 반동형성의 방어기제로 부르게 된다.

반동형성(反動形成, reaction formation)은 반대로 나타나는 반응으로서 공격의 주체가 작동하는 감정이나 상태에 대하여 오히려 반대로 대응하는 것이다. 자아에게 수용되기 어려운 내면의 충동이나 욕구에 정반대되는 방식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이로 인해 반동형성이 사용되면 사고와 느낌은 단절되지만, 정서와 인지의 내용은 정반대의 것으로 왜곡되어 나타나게 된다.

예를 들어, 자신의 아이들을 해칠 것 같은 강박사고를 경험한 엄마는 반동형성 기제가 사용됨으로써 아이들에게 ‘최고의 엄마’가 되는 상반된 모습을 보이고자 하였다. 아이들과 함께 있을 때 또는 아이들에 대해 이야기할 때마다 항상 생글생글 웃었지만, 그녀의 근육은 대단히 긴장되었으며 아이들에 대한 분노감정이 의식을 위협하게 되는 현상이 초래되었다.

이런 것을 보면 이들의 반동형성은 지성을 우위로 하는 매우 반대되는 것으로 이성(理性)에 대립적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그들은 감정이나 인정(人情)에 이끌리어 전혀 논리적이지 않는 행동을 취할 위험성이 있다. 이는 마치 반동형성에서 대립적 형태가 생명에 죽음, 사랑에 증오, 건설에 파괴, 능동에 수동, 지배에 복종 등과 같이 나타나는 것과도 같다. 그러나 증오에 대하여 사랑으로 반응하였다는 것은 공격적인 증오의 감정이 완전히 사라졌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표면적으로만 그렇게 대응한 것이다. 내면의 기저에는 증오의 감정이 그대로 잔존하는 것이기에 일종의 가면현상이며 겉과 속이 다른 표리부동(表裏不同)의 상태인 것이다.

반동형성은 정신분석학에서 다음과 같이 이해된다. 자아는 초자아가 직·간접으로 압력을 가하여 불안을 유발시킬 경우, 그와 대립되는 본능에 집착함으로써 공격적인 충동을 회피하려 한다. 마치 타인에 대한 적대감이 불안이 유발되면 그 적대감을 숨기기 위해 반대로 사랑의 감정을 발생시키는 것과 같다.

프로이트는 자기적 대립물에 대하여 방향전환을 시도하는 특성을 리비도에 관련시켜 설명한다. 그는 화가 났을 때의 충동적 감정을 오히려 성교나 수음(手淫)으로 대처하는 경우를 예로 든다. 노여움을 성적 흥분으로 역전시킴으로 노여움을 노여움으로 수용하지 않고 성적 흥분으로 체험하는 의식 행위이다. 프로이트의 이론이 옳다면 강박증은 사안에 직면하기보다는 오히려 반대적으로 행동함으로써 회피를 시도하는 양상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4) 취소하기

강박증에서 주로 사용되는 기제 중에 하나는 취소하기다. 취소하기(undoing)는 생각이나 행위를 되돌리고 무효화하는 현상이다. 마술적인 사고나 상징적인 행위를 통해 이미 의식에 떠오르거나 수행되었지만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생각이나 행위를 되돌리고 무효화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계단을 오르내릴 때 누군가를 떠밀어 해치는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다시 계단을 오르내리는 행위를 반복하며 선한 생각을 떠올림으로써 용납하기 어려운 생각을 되돌리고 취소하는 것이다.

이들은 취소하기를 통해 숨겨진 생각에 대한 참회를 시도하고, 종종 마술적이며 강박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순수한 상태로의 회복을 추구한다. 이런 시각에서는 예수님과 성교하는 신성모독적 생각으로 괴로워하는 환자라면 반복적으로 목욕하고, 몇 시간씩 기도하며, 계속 옷을 빨기도 할 것이다.

이들이 취소하기를 사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지나친 불안으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우유부단(優柔不斷) 때문이다. DSM-III에서 불안장애의 한 유형으로 포함되기 이전에는 ‘강박신경증’이라는 명칭으로 불리웠던 강박증이 불안장애로 분류된 것은 무엇보다도 강박사고나 강박행동 등의 증상이 불안의 통제와 조절에 관련된 것이기 때문이었다. 정신분석 이론가들에 따라 강조하는 바에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대체로 강박사고와 강박행동을 고통스러운 경험과 관련된 갈등이나 불안을 격리하고 통제하는 수단으로 이해하였다.

물론 강박증 환자들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면 초기 발달 단계로 퇴행하여 불안을 다루는 덜 효과적인 방법들을 사용하면서 갈등을 통제하거나 회피하려는 시도를 한다. 이러한 방어적 퇴행은 직면한 사안을 회피하려는 성격에 기초한다고 보아야 한다.

예를 들어 외디푸스 리비도를 각성시키는 불안자극을 직면할 경우 히스테리 환자들은 추동을 억압하여 그 에너지를 신체적인 증상으로 변환시키고, 공포증 환자들은 불안과 공포를 투사하여 그 대상을 대치시킨다. 그러나 강박신경증 환자들은 심리성적 발단 단계의 외디푸스 단계에서 성장 과정 중 고착되었던 항문기적 단계로 퇴행한다. 이는 정신분석이 강박증상을 이드(원초아)적인 성적, 공격적 충동과 같이 자아에게 위협적이고 불안감을 유발하는 내적인 갈등에 대한 복잡한 방어와 통제 및 타협의 산물이라고 보는 이유다.

5) 실수를 모면하려는 합리화

강박증은 자기합리화의 방어기제를 곧잘 사용한다. 합리화(rationalization)는 인식하지 못한 동기에서 나온 행동을 그럴듯하게 이치에 닿는 이유를 내세우는 방어기제다. 그들의 행동 속에 숨어 있는 실제적 원인은 의식에서 용납될 수 없는 내용이므로 모르는 것일 수 있는가 하면, 다른 측면에서는 알면서도 타인에게 그 책임을 전가하는 경우로 대치하기도 한다. 이런 경우에 그들은 지적(知的)으로 합리화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볼 수 있다.

히스테리 환자는 정서화하고 극화하는 경향이 있는 데 비해, 강박증 환자는 모든 것을 예리하게 구분되고 잘 정돈된 범주나 개념들로 파악하려는 경향이다. 그들은 또한 미래를 지나치게 확실한 방법으로 계산하고 통제하려 하며, 사고방식 역시 과도하게 정밀하고 매우 잘 정돈되어 있으며 감정과는 분리되어 있다. 강박증 환자의 꼼꼼함과 완고한 경직성은 히스테리 환자의 변화무쌍함이나 변덕과는 매우 대조되는 부분이다.

강박증상은 성숙한 심리신경증 뿐만 아니라 초기 정신분열증이나 정신병적 우울, 그밖에 기질적 장애 등에서도 나타난다. 강박증상은 어느 정도까지는 퇴행적으로 활성화된, 어린 시절에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갈등 해소의 양상일 것이다. 아이들의 놀이와 생활 전반에서 반복은 매우 큰 의미를 지닌다. 아이들은 반복을 통해 구조를 형성하고 한정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그러므로 다른 모든 증상 및 성격형성과 마찬가지로 강박 증상은 우선 적응적인 시도로 이해돼야 할 것이다.

이런 합리화로 그들은 때로 강박증상에 매달리며, 증상의 제거라는 치료목표의 달성에 암묵적 저항을 보이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 강박증은 자아의 붕괴 와해라는 정신병적 상태로의 진전을 방지하고 현실과의 접촉을 필사적으로 유지하며, 심리적 평형 상태를 유지시키기 위한 보상적 수단과 기능이 될 때도 있다. 정신분열증의 초기 단계에 있는 환자들이 종종 강박 증상을 나타내곤 하는 것이 이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놀라운 사실은 이들에게서 강박증상을 강제로 차단할 경우 정신병적 상태가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역설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게다가 강박증상은 기저의 자아구조 수준이나 심리성적 발달 단계의 완숙도와는 무관하게 다양한 수준에서 나타날 수 있다. 이와 같은 강박 증상의 다양한 적응적 의미를 탐색하기 위해서는 증상의 역동적인 의미와 환자의 심리내적 구조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와 분석이 필요할 것이다. 이는 강박증상이 개인의 갈등과 불안감을 다루기 위한 타협형성이며, 나름대로의 적응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쉽사리 해결될 수 없는 치료적 문제가 되는 이유다.

7. 결론: 강박증은 한 가지로 설명 안 되고 다양한 양상 보여

지금까지 우리는 강박증의 임상적 양상에 대하여 고찰하였다. 강박증의 임상적 양상은 증상의 구분이 비교적 용이하여 진단에 도움이 되는 정도의 특성을 가진 것이었다. 긴장과 초조감에서는 그들이 마음을 놓지 않고 계속하여 정신을 바짝 차리게 되는 상태, 근육이 수축되거나 흥분되는 느낌이라고 했다. 이들의 증상은 긴장을 하였으면 이완이 되어야 하고, 이완이 되었으면 다시 긴장이 되어야 하는 원리와는 다른 것이었다.

강박증에서는 이런 원리가 정상적으로 작동되지 않는 것이 문제였다. 대체로 그들은 심리적으로 긴장을 하는 편이지 이완을 거의 시도하지 않는 편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들에게는 휴식을 취하는 것으로서 편안히 쉼을 취하는 것이나 특별한 여행, 그리고 즐거운 놀이 등이 시간낭비 정도로 생각되는 경향이었다. 시간을 생산적으로 활용하지 않으면 심리적으로 불안하기 때문에 더욱 생산적인 일에 치중하거나 집착하는 현상이 유발되기 때문이다.

완벽성의 추구에서는 모든 일에서 신중해야 하고 무던히도 노력하는 것이 기술되었다. 신중하고 노력하는 태도란 모든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이지만 그들의 문제는 조금은 지나치다는 데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명백히 유희와 흥미로운 활동에 대해서조차 그들에게는 신중하고 긴장된 노력이 연장되어 나타난다는 점에서 비교되는 특성이었다. 이로 인해 그들은 유희를 즐기는 순간에도 생산성을 추구하며 매달리려고 한다는 점이 지적되었다.

당위성의 압력에서는 그들이 어떤 상황에서도 반드시 무엇을 ‘해야만 한다,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압력을 떨쳐버리지 못하는 집착적인 현상이 문제였다. 이런 행위는 욕구와 관심을 넘어선 것에 압력을 받아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점에서다. 이들의 행동이 열정적인 듯 보이기도 하지만, 이들의 열정은 진정한 열정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는 점, 일에 임하는 모습은 관심과 흥미에 끌려 총명한 눈빛으로 일에 자발적으로 몰두하는 것과는 분명히 구별되는 것이라는 점 등이 문제였기 때문이다.

지나친 의지력의 통제에서는 그들의 억지적인 태도가 문제였다. 그들은 의지적으로 행동하지 못하는 것은 자신의 정신력의 저하를 의미한다고 생각에서 지나치게 의지력을 통제하려는 경향을 보인다는 점이었다. 이런 현상은 스스로 자신을 억압하는 심리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이 보기에도 상당히 억지적인 경향으로 보일 수 있다는 점이 지적된 것이다. 그러니까 그들은 의지력을 강하게 통제하려다보니 자연스러운 통제가 아니라 지나치게 억지적인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이었다.

인식의 방식으로서 역할연기의 활용에서는 그들이 생활에서의 역할연기로 인식하는 방식이 지적되었다. 그들은 일상의 생활에서도 자신에게 분명한 역할이 주어져야만 혼동하지 않고 일을 해 나갈 수 있기에 애매한 역할이나 알아서 하라는 방식의 태도는 이들에게 잘 통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들에게 어려운 것은 분명하지 않고 애매한 역할이나 상황에 따라 융통성을 발휘해야만 하는 것들에 걸쳐 있다는 점에서였다.

강박증에서 주로 사용되는 자아방어기제에서는 강박증 환자들이 주로 사용하는 몇 가지를 다루었다. 방어기제는 무의식 속에서 의식적인 자아를 위협하고 있는 충동들을 다루는 것으로 정신분석학에서 자아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방어적 방법들이다. 이와 관련하여 프로이트는 강박사고와 강박행동을 인생 초기에 억압된 사고, 적개심, 죄책감 등이 이후에 재활성화 되어 나타난 것으로 보았다고 했다. 인격에 별다른 문제가 없는 사람이라 해도 일상의 생활에서 초기의 억압에 대한 반작용으로, 또는 경험되는 생각이나 정서를 부분적으로라도 표출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방어기제를 사용한다고 했다.

다만 강박증 환자들은 흔히 분리화, 주지화, 대치, 반동형성, 취소하기 등의 방어기제를 빈번하게 사용하는 편이라는 점과 아울러 이런 방어기제들에 대하여 비교적 상세하게 기술하였다.

이렇게 기술했지만 우리는 한 가지를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이상에서 기술된 임상적 양상들은 강박증을 나타내는 부분적인 것에 불과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이런 양상으로 강박증이 모두 설명되지 않는다는 점에서다. 너무나 다양한 특성을 포함하는 강박증은 그만큼 단순하지 않는 병리적 특성을 내포하고 있다. 아직도 강박증은 도덕적인가 하면 지적이고, 지적인가 하면 너무나 엄격하다. 게다가 그들의 양상은 강박적인가 하면 또한 편집적이고, 자신에 대하여 엄격하면서도 타인에 대하여는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정의의 용사로서 활동하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임상적 양상을 기반으로 해서 더욱 세부적이고 구체적인 증상의 특성을 발견해 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