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돌아오시지 않는다.

경성에 가자마자 아버지에 관한 소식을 알려주시겠다고 한 고진의 아저씨도 감감무소식이었다. 하루가 백년 같은 데도 한가위 추석이 돌아왔다. 이미 9월도 끝자락에 닿아 있었다.

작년 추석 땐 흰 인조견 속치마를 받쳐 입은 위에 까만 뉴똥 치마와 노란 개나리꽃 무늬가 있는 분홍색 공단 저고리를 입었던 생각이 나서 신애는 몹시 우울하였다. 해마다 추석이면 엄마는 가지색의 뉴똥 한복을 입고 아끼는 옥양목 버선과 꽃 그림이 든 고무신 차림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할머니 댁으로 가곤 했다.

비둘기색의 비단한복을 입으신 할머니는 온종일 웃음꽃이 피어 행복하신 분위기이고, 한복이 거추장스러운 아버지는 양복차림이고 고동색의 세루 한복을 입으신 큰아버지는 사뭇 의젓해 보이시곤 했다.

샘 많고 삐치기쟁이 진자와 선자랑 신애의 두 동생이랑 다섯 여자아이들은 싸우는 소리 없이 재미나게 놀았다. 고소한 깨와 밤이 든 송편이랑 윤기 나는 대추와 약과며 잣강정을 손톱에 봉숭아꽃 물들인 양 손에 들고 배가 볼록하도록 먹고 놀았었다.

넓은 마당 곁에 올린 등나무 정자에서 해가 설핏 기울도록 공기놀이를 하고 쇠줄그네를 타던 생각을 하며 신애는 울적한 기분에 잠겨있었다.

뒤란의 감나무 잎이 다 떨어질 즈음, 징용 갔던 동네 사람 둘이 돌아왔다. 겨울을 부르는 찬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 오후였다.

그들은 심장이 타는 엄마에게 비상(砒霜)과 같은 소식을 전해주었다. 7000개나 된다는 필리핀 섬 중에서도 가장 남쪽 섬에 있던 조선 노무자들은 연합군의 폭격으로 몰살당했다는 비보였다. 쑥밭이 된 인원을 충당하기 위해 신병을 나르던 수송선도 폭격을 맞아 모조리 침몰하고 말았다고 침을 튀기었다.

바다로 튕겨나간 몇몇은 허우적이며 거의 기진하여 죽기 직전에 미군부대의 군목(軍牧)을 만나 구사일생으로 산거라고 벌쭉 웃었다. 얘기를 들으며 빠직 빠직 애가 타는 엄마의 심정을 헤아리지 못하는 혹부리 아저씨는 계속 자랑스럽게 말하였다. 병든 신애 아버지가 살아 돌아 오리란 기대는 눈보라 속에서 무지개 뜨는 걸 기다리는 것만큼이나 기적 같은 일일 겝니다.앞뒤 분간 없이, 턱 밑에 사과만한 혹이 달린 땅딸보가 엄마 가슴에 독침을 놓고 갔다.

그날 이후.

최후적인 절망감에 빠진 엄마는 시력이 약해져서 안경을 맞춰 쓰고 다녀야 했다. 그리고 몇 주가 지나간 밤이었다. 자리에 누었던 엄마가 신음을 쏟아내며 뒹굴기 시작하였다. 안방으로 간 신애는 몸부림치는 엄마 요의 흥건한 피를 보고 큰엄마를 부르러 대문을 박차고 뛰어나갔다.

달 없는 그믐밤이었다.

겁 많은 신애는 무서움에 입을 앙다물고 할아버지 산소가 있는 뒷동산을 지나 도라지 밭이 있는 돌담길을 가로질러 헉헉 달려갔다.

그날 밤에 엄마는 실신할 것 같이 되어 태아를 사산하였다. 오래도록 엄마는 일어나지 못하였다. 밤에 잠들지 못하였고 제때에 식사를 하지 못하였다. 안경을 쓰고도 사물이 희미하게 보일 정도로 엄마의 건강과 시력은 급격히 내리막길을 탔다.

할머니도 앓으셨다. 둘째 손자를 기대하던 할머니는 아버지의 무소식과 엄마의 사산으로 영 기운을 잃으셨다. 설상가상 큰아버지의 구속은 재판도 없이 지지부진 시간만 끌고 있었다. 안 좋은 일은 겹치기로 온다했던가.

진자 엄마가 야반도주를 하였다. 큰아버지의 토지를 헐값에 팔아넘기고 그 동안 빼돌려 쌓아둔 배급품까지 몽땅 쓸어가지고 쥐도 새도 모르게 도망을 친 것이었다. 한 번도 살가운 모성애를 보이지 않던 두 딸마저 헌신짝처럼 내동댕이친 채.

정정하시던 할머니가 병석에서 일어나지 못하시는 건, 징병 간 아버지의 무소식에 겹쳐 큰돈을 품고 나간 작은 아버지가 해방이 되었는데도 감감소식인 때문이었다.

혼란스럽고 괴로운 나머지 혹시, 아버지가 돌아가신 게 아닐까, 연합군의 포탄이 아니더라도 과로와 영양실조로 치명타를 당하신 게 아닐까, 신애역시 엄마처럼 마음속 울음으로 야위어가는 비탄의 나날이었다.

점심때가 지나면서 그쳤던 눈이 다시 풀풀 날리기 시작하였다.

눈을 본 철없는 동생들과 삽살개까지 신나게 마당에서 뛰놀고 있었다. 화로에 밤을 굽고 있는 엄마가 군밤을 좋아하는 아버지 생각에 목메어 하는걸 아는 신애는 눈길을 창 쪽으로 돌렸다. 신애는 무슨 말을 해야 엄마에게 위로가 될지 망설이며 엄마의 눈치만 살피었다.

어둠이 깔리면서 눈발은 점차 굵어졌다. 폭설이었다. 눈 쏟아지는 넓은 마당은 안개 낀 호수처럼 운무빛깔로 희뿌옇다. 흰 사기갓을 씌운 전등불빛을 받고 눈 속에 서 있는 나목 가지의 소묘는 하얀 크레파스화인양 몽상적인 느낌을 자아내었다.

엄마는 우산을 쓰고 집안을 한 바퀴 돌아보았다.

그 전에는 아버지가 하시던 일이었다. 펌프 물도 충분히 부엌에 길어다 놓았고 새 짚으로 이엉을 한 광에 묻은 김장독들도 문제없이 튼튼하게 해놓았다. 지하실에 간수해 놓은 겨울부식으로 항아리에는 한 포기씩 짚으로 덮은 국거리 배추와 무가 있고 중간 항아리엔 하나씩 종이에 싼 옥수수랑 고구마와 감자가 그득했다. 다른 항아리엔 사과랑 배와 연시감도 차곡차곡 저장되어 있었다. 해마다 겨울을 위한 부식을 챙기는 것은 꼼꼼하고 손끝 섬세한 아버지의 몫이었다. 하지만 금년 겨울엔 모두 엄마가 대신해야할 일들이었다.

이, 눈보라 속에 느이 아버지는---?

부젓가락으로 화로의 숯불을 다독이면서 엄마는 혼자 말을 웅얼거렸다. 눈보라치는 센 바람에 양철 챙이 뒤흔들리고 문풍지가 윙윙 울어대었다. 마루의 분합문도 쉴 새 없이 덜커덩거렸다.

오늘 같은 날씨에도 엄마는 대문만은 잠그지 않는다. 그냥 닫기만 하고 헌 맷돌로 지쳐놓을 뿐 빗장을 지르지는 않는다. 아버지를 기다리는 엄마의 뼈저린 마음이었다. 잠든 동생들의 이불을 다독여주면서 엄마는 혼잣소리를 하였다.

내일은 과수원에 가 봐야지. 지난번에 사과가 엄청 없어졌던데, 누가 더 손을 타기 전에, 다 가져와야지. 아침엔 눈이 좀 그쳤으면 좋으련만, 이 눈보라 속에 지게꾼이나 나올 런지---.
안방의 창호지문에 비친 엄마의 고개 숙여 기도하는 실루엣을 보고 신애는 가만가만 편지를 쓰기 시작하였다.

보고싶은 아버지.
아버지, 지금 어디 계신 거예요? 전쟁은 끝났는데 아버지는 왜 아직 집에 오시지 않는 거예요? 우리 동네 사람은 아버지까지 세 사람 빼고는 모두 돌아왔어요.

아버지! 더 많이 아프신 거예요? 일본이 전쟁에 져서 아버지가 속한 부대가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하면 나도 엄마처럼 잠잘 수가 없어요. 

아버지! 부디 빨리 오세요.

엄마가 태아를 사산하고 안경을 쓰게 되었다는 것과 큰아버지의 구속사건과 진자 엄마가 재산을 모조리 빼내어 종적을 감추었다는 사연은 생략하였다. 할머니가 많이 편찮으시다는 것도, 아버지에게 걱정될 일은 모두 다 빼 버렸다.

편지를 쓸 때면 신애는 아버지가 편지를 보지 못하신다는 걸 잊고 만다. 그래서 항상 아버지와 대화하듯이 편지를 쓴다. 매일매일 일기처럼 쓰기만 하고 부치지 못하는 주소 없는 편지를. <계속>

김녕희 작가
<현대문학>으로 등단, 한국소설문학상·조연현문학상·만우문학상·PEN문학상 등 수상, 단편소설집 <고독한 축제> 등, 장편소설 <에덴의 강> 외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