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충렬 박사(한일장신대·한국상담치료연구소장).
제7장 강박증의 병리학적 특징(2)

앞장에 이어서 강박증의 병리적인 특징을 다룬다. 정신의학에서는 강박증의 병리학적 특징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다른 정신질병처럼 강박증도 일정한 병리적 특징이 있다. 강박증에서 병리적 특징은 대개 강박증으로 이행되는 원인에 중점을 두기보다는 강박증으로 드러나는 증상의 기준을 중요시한다. 이는 강박증에서 병리학적으로 고찰하는 것이 진단적 이해를 넓히는 이유가 된다.

1. 도덕적 완전성의 추구

도덕적으로 완전성을 지향하는 것은 강박증의 1차적 병리 증상이다. 도덕적 완전을 지향하는 것이 그리 나쁜 것은 아니지만 지나치다는 점에서 문제가 된다. 이들은 유달리 높은 도덕적 수준을 유지하려 한다. 심하면 거의 완전성에 가까울 정도인데, 대개 이런 도덕적 완전성에는 사고행위의 융합이 자리한다는 관점이 있다.

사고행위의 융합(thought-action fusion)은 생각이 곧 행동이라는 현상이다. 강박증 환자는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았는데도, 생각한 것만으로도 행동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느낀다. 이들에게는 생각이 행동과 같은 의미를 갖고, 생각 자체에 과도한 의미와 중요성을 부과하는 잘못된 사고 경향을 보인다. 이런 시각에서 사고행위의 융합은 분명히 잘못된 것이다. 생각 자체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여 생각과 행위의 경계를 허물어뜨리고, 생각이 바로 행동과 같은 실제성을 띤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연구자들은 강박증 환자들에게 나타나는 사고행위 융합에서 두 가지 과정을 상정한다. 하나는 도덕성 융합의 오류이고, 다른 하나는 가능성 융합의 오류이다. 도덕성 융합의 오류는 잘못된 생각을 하는 사람은 잘못된 짓을 하는 사람과 별로 다를 바 없다고 여기는 편이다. 나쁜 생각을 하는 것과 그 행동을 실제로 하는 것 사이에는 도덕적으로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이미 잘 아는 누나와의 성적인 공상을 떨쳐버릴 수 없어 심한 죄책감과 우울감에 빠져 있는 남고생이 있었다. 그는 보통 사람들처럼 “참, 나도 별 쓸데없는 생각을 하지…, 한심하구만, 허허 하고 웃으면서 무시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그 학생은 “이럴수가, 내가 이런 끔찍한 생각을 하다니,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실제로 누나를 겁탈하는 것과 마찬가지야” 라고 생각하며 고통스럽게 이를 억누르려고 했다. 그러다 보니 그의 생각은 점차 발전되어갔다. 이를테면, 흐릿하던 장면이 더욱 선명해지고, 정지 화상이던 것이 컬러풀한 동영상으로 바뀌고, 상영 횟수도 무한정 늘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하여 그에게는 시간이 지날수록 생각을 떨쳐버리기 위한 노력도 투쟁적으로 변해가고, 점차 이런 생각이 악질적인 강박사고로 발전됐다. 이로 인해 그의 생각과 행동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말았기에 그는 혐오스러운 생각의 내용보다 자책의 중압감에 심하게 시달려야 했다. 이처럼 도덕적 융합은 행위와 사고의 윤리성을 동등하게 여기는 것이다.

반면 가능성의 융합이란 생각과 행동의 가능한 조화이다. “어떤 생각을 하고 있으면 실제 그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는 방식이다. 나쁜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자신이나 남에게 그러한 일이 일어날 가능성을 증가시킨다는 점에서다. 이런 현상은 실제와는 다를 수 있으므로 분명 일종의 인지적 오류이다. 이러한 인지적 오류를 가지고 있다면, 매우 위험한 일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그는 험난한 절벽 사이에서 외줄을 타는 긴장감과 불안감을 느낄 것이다.

한 젊은 어머니는 ‘한살 된 젖먹이 아기를 창밖으로 내던지는 생각’이 떠올라 몹시 괴로워했다. 그녀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면 실제 그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생각돼 더욱 심한 불안감에 시달렸다. 이로 인해 그녀는 끊임없이 아기의 안전을 확인해야 하고, 수시로 창밖을 살펴봐야 했다.

그런가 하면 남편의 교통사고를 걱정하는 아내가 있었다. 그녀는 “남편에게 교통사고가 일어나면 어떻게 하지?”란 반복적인 생각에 괴로워했고, 걱정을 떨치기 위해 남편이 짜증스러워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끊임없이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물었다. 뿐만 아니라 아내가 자주 건망증이 많아 고통받는 남편도 있다. 그는 오늘도 여러 차례 아내가 가스불을 잘 껐는지, 문을 잘 잠궜는지 반복해서 전화로 확인했다. 생각이 현실로 나타날까 불안해서 그런 것이다. 여기에는 나쁜 생각을 하고 있으면 성적이고 공격적인 충동처럼 실제 자신이 그런 일을 저지를 것 같고, 교통사고나 에이즈 감염 같은 위험한 생각을 되풀이하면 그런 일이 실현될 것 같이 느껴지는 것도 같은 원리다.

이상에서 예를 든 것들은 모두 단순히 가능성의 융합이라도 도덕성 융합처럼 생각을 실제적으로 해석하여 ‘사고의 중요성’을 과도하게 평가하는 잘못된 과정으로 유발된 것이다. 이때 어떠한 혐오 내용의 침투적 생각일지라도 가장 효과적으로 대처하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생각을 무의미한 잡념 정도로 여기고 별다른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엄격히 생각하면 생각 자체가 그토록 심각한 의미를 지닌 실제로 여겨지는 한이를 무시할 수 있는 환자들은 거의 없다. 단순한 생각만으로도 행동으로 여기는 위험성이 강박증의 병리적 특징이 다.

2. 극도의 과민성

극도의 과민성은 강박증의 원천이다. 강박증 환자들은 긴장하고 예민하기 때문이다. 정상적인 사람들은 대개 별다른 위험요소들이 눈에 띄지 않으면 분명한 근거 없이는 위협적으로 느끼지 않는다. 그러나 강박증 환자들은 완벽하게 안전하다고 증명되기 전까지는 평시 상황을 위험한 것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마치 유리조각을 두려워하는 환자는 바닥에 유리조각으로 누군가 다치지 않도록 지속적으로 두려워하는 것과 같다. 보통 사람이라면 아무 일도 없었기 때문에 유리제품이 깨지는 등 어떤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집안을 맨발로 돌아다녀도 신경을 쓰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경우 유리조각이 어딘가에 박혀있어 누군가는 이것을 밟게 되리라는 위험한 결과에 지나치게 예민해져 있다. 심지어 이들은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평상시 상황을 매우 위협적으로 느끼고, 닦고 쓸고 또 닦고 쓸고 난 후에야 간신히 약간의 안정감을 느끼게 된다. 이런 행위들은 모두 혐오스러운 사건이 발생할 가능성을 비합리적으로 높게 평가하며, 혐오스러운 사건이 발생했을 때의 결과를 매우 심각하게 평가하는 경향이다. 여러 연구에서 강박 성향이 강한 사람들이나 강박증 환자들은 혐오 사건이 발생할 확률과 그 대가를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고 보고되었다. 그러나 이처럼 위협을 과도하게 평가하는 것은 강박증에만 국한된 특징은 아니다. 이런 반응은 다른 종류의 불안장애에서도 보편적으로 나타나며, 보통 사람들도 일시적으로 얼마든 나타낼 수 있는 현상이다.

대체로 극도의 과민성은 불안과 긴장감을 수반한다. 이는 일상생활 속에서 불안을 느낄 때면 경험되는 특성들이지만 강박증에서는 정도가 지나친 것이 문제이다. 예를 들어 중요한 시험을 보거나 대중 앞에서 연설을 해야 하는 등의 중요한 일을 앞두고 있거나, 크고 작은 위협적인 일에 직면해 있을 때 심리 상태는 평소와 다른 모습을 나타내기 쉽다. 때로 너무 긴장될 때는 최악의 사태를 떠올리며 아직 시작도 안된 일에 대해 미리 걱정하고 근심에 빠지기도 한다. 이런 때일수록 평상시에 비해 신경이 더욱 예민해지고, 사소한 자극에도 쉽게 짜증이 나거나 신경질적인 반응을 나타내고 쉽게 피로감을 느낀다.

그러나 이런 현상이 강박증 환자들에게는 극도의 과민성으로 인해 다른 반응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이러한 불안감이 끊임없이 지속된다면 매사 부정적인 생각에 초점이 맞추어지고, 그런 일들이 실제로 일어날 확률이나 그 결과의 심각성을 실제보다 과도하게 평가하게 된다. 이런 점에서 강박증 환자들은 확인되지 않거나 매우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위협자극에도 두려워하며 회피 행동을 취하는 경우도 많다. 이는 그들에게 발생 확률이 거의 없는 사건인데도 매우 심각한 위협이 되는 이유다. 실제 그들은 위험한 일이 발생할 확률과 그 결과의 심각성을 과대평가하므로 불확실한 상황 속에 있다는 사실을 매우 불안해하며 견디기 어려운 일로 만든다.

이처럼 실제와는 다르게 생각만으로도 다른 상황을 만드는 데는 특이한 점이 존재한다. 정상적인 사람들의 행동과는 전혀 다른 생각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런 생각을 바로 그들이 내면에 가진 신념이라 할 수 있다. 그러면 이들의 신념은 어디에서 비롯될까? 그들의 부정성이 갖는 과민함이라 보아야 한다. 이런 시각에서 그들은 다음과 같이 세상이 위험한 곳이라고 믿는 측면이 있다:

나에게는 나쁜 일이 남보다 더 잘 일어날 것 같다, 별것 아닌 일이 언제나 나에게는 큰 문제로 확장되는 것 같다, 내 주변은 모두 확실한 것이었으면 좋겠다, 예기치 못한 변화는 제일 견디기 어렵다, 모호한 상황은 너무 끔찍하고 적절하게 내 실력을 발휘하기 어렵다, 충분히 노력하고 의지력만 제대로 발휘한다면 모든 일을 확실하게 할 수 있다, 어떤 일이든 완전히 확실하게 하지 않으면 실수를 저지를 것 같다 등이다. 이런 신념은 모두 객관적 근거에 의한 것이 아니라 순전히 자신의 주관성에 기초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들의 주관성이 그들이 갖는 부정성에서 비롯되는 것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3. 과도한 두려움

과도한 두려움은 강박증에서 또 하나의 병리적 특징으로, 실제 상황보다 과도하게 두려움을 느낀다. 심리학에서 두려움은 어떤 것이든 불확실한 상황을 불편해 하는 심리이다. 여기에는 어떤 예기치 못한 나쁜 일이 생길 것에 대한 불안감을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어떤 해로운 일이 예측할 수 없는 방식으로 찾아온다는 것은 매우 견디기 어려운 긴장감을 주고, 입이 바싹바싹 마르게 만드는 것이 사실이다. 누구나 공포영화나 스릴러 영화를 볼 때 머리털이 서는 긴장감을 경험하는데, 이는 모두 두려움을 느끼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이와 반대로, 공포의 순간들에도 그다지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피범벅이 된 유령이 나타나고 도끼를 든 흉물스러운 범인과 눈이 마주친 정도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가장 긴장되는 순간은 공포의 대상이 출현하기 전 어디선가 뭐가 튀어나올 듯 말듯 하는 예측 불가의 상황이다. 상황을 통제할 수 없다는 것,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을 예측조차 할 수 없음은 무기력하게 하고, 심한 스트레스를 유발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강박증 환자와 일반인들의 두려움에는 차이가 크지 않지만, 강박증 환자들은 이런 두려움이 지나친 편이다.

더 큰 문제는 두려움에 의심을 추가하는 점이다. 실제로 그들은 오염에 대한 걱정을 하거나 실수나 사고로 인해 큰일이 일어날 것 같은 의심을 갖는다. 이런 이유로 이들에게 강박사고의 내용은 매우 실제적인 위협으로 느껴질 수 있다. 그런 위협의 경우 혐오스러운 생각 자체를 떨쳐내기 위한 사고통제의 기법보다, 관련된 외부 상황을 실제로 통제하려는 행위도 요긴한 방법으로 인식된다. 단순히 생각을 떨쳐버리는 것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생각되지 않는 것이다. 이들은 오염으로 당장이라도 손이 썩어들어갈 듯한 불안감이 온 정신을 흐려놓고 있기에 생각을 떨쳐버리는 것만으로 불안이 감소되지는 않는다.

여기서 그들이 이러한 위협을 얼마나 실제적인 것으로, 또 그 결과를 얼마나 심각하게 판단하는지는 강박증 정도를 진단하는 중요한 문제로 부각된다. 게다가 흔히 몇 가지를 연쇄적으로 동반하는데, 여기에는 가능성 융합의 발생이 일차적이다. 그들은 그러한 끔찍한 일이 실현될 가능성을 높게 인식하고, 그 결과의 심각성을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예측할수록, 단순히 생각을 떨쳐버리거나 억제하는 것만으로는 안심할 수 없을 것이다. 그들에게 보다 효과적인 대처행동은 직접 손을 씻어 오염물질로부터 회피하는 형태의 직접적 외부 상황의 통제행위이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에도 위험률이 높으면 정상인과 강박증 환자는 별 차이가 없다. 다만 강박증 환자들은 위험률이 낮은데도 실현 가능성이나 결과의 심각성을 보다 높게 볼 뿐이다. 과대평가 및 잘못된 해석은 그 자체로는 심각한 문제가 아닌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사고과정은 대처행위를 유발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 증상 악화의 중요 원인으로 작용한다. 얼굴 한 번 찌푸리고 생각을 떨쳐버리면 그만일 사건을 실제적이고 심각한 것으로 여기면서 실제 통제행위를 수반하는 심각한 위협거리로 발전시키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그대로 노이로제적 측면이다. 불필요한 생각을 도무지 중단하지 못하고 발전시키기 때문이다. 이는 성격상 강박신경증이다.

그러면 무엇이 그들을 두려워하게 만들까? 잘못된 생각이 문제다. 그들은 스스로 잘못된 과대평가 경향으로 인해 일상생활에서 좀처럼 안정감을 느끼기 어렵다는 점에서다. 물론 이런 현상이 모든 유형의 강박증 환자들에게 해당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이러한 잘못된 사고 과정에 기여하는 결정적 요인이 있음에는 이의가 없다. 이들이 두려워하는 대상이나 상황 자체가 지닌 자극의 속성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공포 반응에서 자극은 신체적이든 심리적이든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럼에도 이들이 나타내는 공포반응은 보통 사람들과 매우 다른 양상을 띠고 있다. 이를테면 속옷에 유리조각이 묻어 들어와 찔릴까봐 걱정하며 하루에도 몇 번씩 속옷을 갈아입고 확인한다. 이 환자에게 실제로 유리에 찔려본 적이 있냐고 물으면 “아니오”라고 할 것이다. 또 어떤 사람은 거미나 개미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면서 천장에서 이것들이 떨어져 옷 속으로 들어갈 것 같다며 두려워하지만, 정작 개미가 나타나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발가락으로 눌러 죽인다. 이는 생각과 실제가 다른 것임과 동시에 그들의 생각이 위험함을 입증한다.

이들의 위험한 생각은 입증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이들이 각자 증상과 관련하여 찾아내고 확인하고 안전하게 되돌리려는 위험요소를 관찰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 이들의 생각을 확인하면 그렇게 될 가능성이 거의 없는 것들이다. 그들이 ‘확실히 아니다. 절대로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 없는 것들을 두려워하고 있는 점이기도 하다. 이들의 두려움은 부적절하리만큼 세부사항에 집착하는 성격과 맞물려 있다. 더욱이 이들의 두려움은 대부분 세세하고 미세하고 보이지 않으므로 언제나 위험을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렵다.

개를 무서워하는 사람이라면 개를 팔아버리거나 피해버리면 더 이상 무섭거나 불안할 이유는 없다. 또 개는 현상적으로 확실히 존재하면 있고, 없으면 확실히 없다. “우리 집 개는 어딘가에 숨어있다 달려들지도 모른다”며 막대기 들고 확인하는 강박증 환자는 없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에이즈균이나 성병균을 두려워한다면, 병균이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불안을 떨쳐버리기 어렵다. 이들은 일말의 실현 가능성을 지니고 있어 그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기 어려운 대상을 두려워한다. 그리하여 두려움과 불안감을 느끼며 완벽한 안전 상태를 추구하고 있기에 실현 가능성이나 위험률에 비해 훨씬 높다. 마치 숲 전체를 보기보다 눈에 거슬리는 나무 하나를 뽑지 못해 온 산이 황폐해진다며 안절부절 못하는 꼴이다.

다르게 생각하면 이는 허구와 현실의 문제다. 그러므로 강박증은 허구와 현실성을 명확하게 구분하지 못한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다르게 말하면 발생 가능성과 개연성이 혼동되는 양상이다. 이런 생각이 옳다면 그들은 발생 가능성이 너무나 희박한 소설적 허구와, 발생 확률은 낮지만 그래도 개연성 있는 사건을 적절히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는 자기주관적 생각이 논리를 압도하는 현상이다. 이로 인해 그들은 스스로 완벽하게 실수나 오점이 제거된 수준까지 확인해서 의례행위를 멈추는 것이 아니라, 미신적인 이유나 피로감에 의해 행위를 멈추게 된다. 다르게 말하면 그들은 “열다섯 번이나 확인을 했으니 이제는 충분하겠지!” 라는 식이다.

이런 점에서 책상 위에 뭔가 있을 것 같다는 그들의 의심은 사실적 확인을 넘어선다. 육안으로는 관찰할 수 없는 미생물 또는 먼지라도 있을 것이라는 개방적 안목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자기 식의 논리로는 거의 ‘거기에는 무언가가 반드시 있다’는 하나의 신념에 가깝기 때문이다. 두말할 것 없이 이러한 가설은 좀처럼 증명될 수 없고, 계속 불안감과 의심만을 증폭시킨다. 그들에게 책상이 깨끗하게 청소됐다는 현실적 근거는 아무런 위안이 되지 못한다. 그러기에 이들의 의례행위가 오염이나 실수와 같은 부정적 상태를 바로잡기 위한 것이라면 현실은 그들의 눈앞에서 달라질 것이다. 그들의 행위는 실제 효과적인 것이 아니므로 의례행위를 거듭하고 반복함으로써 추가적 정보를 얻거나 문제해결에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가상적인 의심만을 반복할 뿐이다.

4. 부당한 의심과 추론

부당한 의심과 추론은 강박증에서 또 하나의 병리적 특징이다. 부당한 의심과 추론은 강박증이 미래의 불안에 집착하는 것과는 매우 다르지만, 이들에게도 그런 특성이 여전히 나타나고 있다. 물론 부당한 의식과 추론은 편집증에서 나타나는 증상이기에 강박증과 상관없을 것 같지만, 그렇지만은 않다. 편집증은 강박증의 부차 증상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강박증은 일종의 의심증으로 알려진 편집증적 경향을 갖고 있다. 결국 강박증에서의 의심은 그들이 완벽주의적 특성을 가진 것에 기초하고 있다. 그들은 어떤 일을 완벽하게 처리하거나 마무리하지 않으면 미래에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나 사건이 터진다고 생각한다. 이런 현상이 바로 일종의 의심적 성향이면서 거기에 따른 추론이 추가로 가능해지는 이유다.

부당한 추론은 정확하지 않으므로 이미 잘못된 추론을 전제로 한다. 이들의 추론은 부당한 의심을 근거로 일어났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강박증에서 나타나는 부당한 의심과 추론은 인지행동 이론에서 이해된다. 인지행동 이론은 강박증의 불안을 생각에 대한 평가로 이해한다. 강박증 환자들의 불안은 생각 자체가 아니라 침투적 생각에 대한 비합리적 해석과 평가로 파악한 결과다. 이런 시각에서 우리는 이들에게 상황을 판단하는 과정 중 빈번히 나타내는 추론상 오류를 인지치료적 관점에서 다음 3가지로 살펴볼 수 있다.

첫째로 추론과 인과론은 일치하지 않는다. 강박증 환자들은 사람들이 가진 추론 과정을 역행하는 식으로 현상의 인과론을 추론한다. 그래서 이들은 많은 경우 자신의 의례행위가 무모한 행동임을 알고 있다. 바보 같고 할 필요도 없는 짓인데 멈추지 못하고 있을 뿐이라고 이야기하는 경우도 많다. 이들은 어떤 경우 거의 99%로 자신이 의례행위를 하지 않아도 됨을 확신하지만, 이 1%가 문제의 근원이다. 정상인들은 바닥에 흩어져 있는 흙먼지와 진흙이 엉겨붙어 있는 구두를 보면 “이곳으로 진흙을 밟았던 사람들이 많이 지나갔나 보다” 라고 자연스럽게 추론한다. 그러나 강박증 환자들은 “더러운 신발로 지나간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고 추론한다. 이는 그들의 주관적 추론에 의한 것이기에 아무리 시각 정보를 통하여 바닥에 더러운 오물이 떨어져 있지 않다고 입력돼도 이를 무시한다.

둘째로 그들의 추론은 부정확한 기억에 근거한다. 이들의 추론 과정에서는 서로 관련없는 개별적 과거의 두 사건이 합쳐져 이상한 내용으로 결합되기도 한다. 이로 인해 그들에게는 우연히도 거의 동시에 또는 연속으로 일어났지만 서로 관련없는 사건들이 결합되어 하나의 증상을 이룬다. 이는 그들의 주관적 사고에 근거한, 일종의 관계사고적 측면이다. 관련이 없는데도 반드시 그것과 관련시켜 생각하는 경향이다. 어떤 강박증 환자는 윗층 욕실에서 개미 한 마리를 보고, 바로 아래층 욕실에서 창으로 스며드는 바람에 키 큰 화초가 살랑살랑 흔들리는 것을 보았다고 하자. 이때 그들에게는 서로 무관한 두 기억간 연합이 생겨 그 이후 개미가 흔들리는 화초의 잎사귀에 매달려 있다 욕실에 있을 때는 등으로 떨어질 것이다. 나무 밑에 가면 벌레가 떨어진다는 강박사고에 시달릴 것이다.

셋째로 이들은 부적절한 감각에 의해 추론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적절한 감각에 의해 추론을 한다면, 그들은 부적당한 감각에 추론하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옷이 제대로 정리된 것을 눈으로 인식하기보다는 옷이 걸리는 소리에 의해서 확인한다. 이는 엄격히 말하면 대단히 심리적인 측면이다. 기분이 괜찮으면 좋은 상태로 인정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태에서는 문을 닫으려고 반복한 자신의 노력 정도에 대한 주관적인 감각에서 문이 닫혔다고 스스로 안위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이러한 추론 양상이 모든 강박증 유형에 적용되지는 않는다 해도, 이들은 적어도 자신의 증상 영역에서는 일반인들과는 상이한 방식으로 현상의 인과관계를 판단한다. 특히 어떤 의심되는 사실에서 사건의 발생 가능성이나 결과의 심각성을 잘못 추론한다. 이들의 추론 과정에 대한 연구는 강박증의 증상 유지에 밀접한 관련을 가지므로 치료자의 세밀한 관찰이 요구된다.

확실히 부당한 의심은 갖가지 추론을 파생시키는 것이 가능할 수 있다. 의심은 특성상 현실적 상황이나 올바른 사실을 기초로 하지 않는 점에서다. 이런 현상이 강박증 환자에게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병리적 증상으로 이행한다는 점이다. 다르게 말하면 이들에게는 단순히 생각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판단되어 다른 부적절한 행동을 유발시킨다는 점이 그들의 병리적 특징을 초래하는 것이다.

5. 미래 불안에 대한 타협

강박증은 지나친 미래 불안과 관련되어 있다. 그들은 이런 미래 불안 때문에 어떤 형태로든 타협이 시도된다. 그것이 조건적인 것이든 결과적인 것이든 간에 스스로 안심할 수 있는 정도의 심리적 불안이 해소되어야 한다. 여기에 일시적이기는 하지만 그들에게는 타협이 존재한다. 강박증이 비교적 엄격한 특성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에 타협이라는 것은 그 어떤 것이든 간에 불가능할 것 같은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것이다. 그들에게도 어떤 형태로의 타협은 얼마든지 가능한 것이다. 그들의 타협형성은 정신역동적인 입장에서 이해된다. 정신역동적인 입장은 강박증상도 다른 신경증적 증상에서와 마찬가지로 일종의 타협성이 존재한다고 본다.

여기서 우리는 그들의 타협성을 고찰하기 위해 일단 신경증의 증상을 거론해야 한다. 신경증의 증상은 대개 불안한 미래에 대하여 부정적으로 판단한 결과로 일어나는 편이다. 이런 신경증 증상은 불안의 실제적 근원을 경험하고 인식하는 것을 방해하며, 경험되는 갈등과 불편감을 감소시키려는 무의식적 의도를 지닌다. 그러면 이런 무의식적 의도에서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이 바로 심리적 갈등이라고 할 수 있다. 이때 그들에게 일어나는 심리적 갈등은 대개 위협적인 욕구나 충동으로부터 발생한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정신분석학이 특히 강박증 환자들의 경우에 공격적인 충동, 분노감, 성적인 욕구와 충동이 중요한 갈등원인이 된다고 보는 이유다.

나아가 정신분석학은 그들이 죄책감과 수치감을 느끼므로 직접적으로 그런 느낌을 표현하거나 건강한 방식으로 적절히 대처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은 것으로 보고 있다. 그들에게 심리적인 원인이 개입되는 대부분의 증상은 자아와 이드(원초아)의 타협하는 과정에서 갈등으로 나타난 것이다. 자아가 한편으로는 자아가 이드(Id)로부터 비롯되는 위협적이고 본능적인 추동과 욕구를 방어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자아가 이드를 현실적으로 덜 갈등적인 변형된 형태로 표출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다. 이러한 의미에서 지나친 미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과정에서 타협형성은 억압된 갈등을 반영하며 동시에 이러한 갈등과 관련된 긴장과 압박을 간접적으로 해소할 수 있게 해준다.

이와 관련하여 가정을 전혀 돌보지 않는 무정한 남편에 대한 분노감정이 오랫동안 쌓여온 아내가 있다고 하자. 그에게 내면의 이드가 호소하듯 이러한 강한 적개심을 직접적으로 표출하는 것은 자아에게 상당한 위협과 불안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러한 갈등적인 감정이 전혀 표현되지 못하고 억압되어 있는 것도 상당한 긴장과 불편감을 주었다.

이때 아내는 이러한 갈등에 대한 타협으로 내과나 신경과적으로 원인이 밝혀지지 않는 두통과 복통 등 심인성의 신체 증상을 나타냈다. 그녀는 잠시도 벗어날 수 없었던 집안일에서 손을 떠맡았기에 남편은 아내에게 더 많은 관심을 쏟아야만 할 것이다. 아내는 이를 통해 자신의 공격적인 충동을 자아에게 덜 위협적이고 현실과의 충돌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식으로 해소할 수 있었다. 이러한 현상이 바로 타협의 형성이며, 이는 물론 상당 부분 무의식적으로 진행되는 과정이다.

그러면 이들에게 일어나는 심리적 갈등과 억제의 패턴은 어떻게 형성된 것일까? 여기에 정신분석학은 생의 초기에 학습된다고 보고 있다. 아동의 성장은 많은 심리적 갈등을 경험하면서 이를 적절히 통제해야 한다. 그래서 성장 과정에 있는 아이들은 이를 적절히 통제하고 다루기 위해 고군분투(孤軍奮鬪)해야 한다. 그러나 어린 시절에는 이러한 갈등을 적절히 다룰만한 인지적 정서적 자원이 제한되어 있다. 이로 인해 아동은 그런 갈등을 경험하게 될 때, 이러한 욕구를 숨기거나 위장하기 위한 많은 조작을 수행하게 된다.

이는 강박사고와 강박행동 역시 이러한 불안이나 긴장을 통제하기 위해 상징화되어 나타나는 증상으로 볼 수 있는 점이다. 그러니까 강박증 환자들은 아동기를 거치면서 겪을 수 있는 위협적인 욕구나 충동이 적절히 표출되거나 다루어지지 못한 채 감당하기 어려운 죄책감이나 수치감으로 남게 된 경우로 볼 수 있다. 여기에는 이러한 다양한 심리적인 불편감에 대처하는 방식에 따라 강박증을 비롯한 다양한 심리 증상이 나타날 수 있는 것도 가능해짐은 물론이다.

6. 결론: 병리적 특징은 다른 질병과 중첩되는 경우도

지금까지 우리는 강박증의 병리적 특징에 대하여 기술했다. 강박증으로 이행하기 쉬운 특이 현상을 병리적 관점에서 고찰한 것이다. 물론 강박증의 병리적 특징은 오로지 강박증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기에 다른 질병의 병리적 증상과 중첩되는 경우도 있다. 이런 현상은 모두 강박증이 다른 부차 증상을 수반하여 일어난다는 점을 반영한다. 실제로 다른 여러 정신적인 질병은 주된 증상을 기준으로 하여 부차 증상이 뒤따르게 마련이다. 정신질병의 증상을 진단할 때 주된 증상과 부차적인 증상을 구분해야 하는 이유다. 다만 특이하게 강박증상으로만 이행되기 쉬운 심리적 현상이나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것을 중심으로 병리적 증상으로 다룬 것이다.

도덕적으로 완전성의 추구에서는 지나치게 완벽성을 지향한다는 점이 문제였다. 도덕적 완전성을 지향하는 것이 그리 나쁜 것은 아니지만 지나치다는 점에서 문제가 된다고 했다. 더욱이 이런 도덕적 완전성에는 사고행위의 융합이 자리한다고 했다. 사고행위의 융합(thought-action fusion)은 생각이 곧 행동이라는 현상으로 행동을 하지 않았는데도 생각한 것만으로도 행동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간주하는 것이었다. 생각하는 것과 행동하는 것, 그리고 생각한 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 그리고 단순하게 생각하는 것은 행동하는 것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는데도 동일하게 취급하는 것이었다. 이는 생각이 행동과 같은 의미를 갖는 현상으로 생각 자체에 과도한 의미와 중요성을 부과하는 잘못된 사고 경향이었다. 이런 시각에서 사고행위의 융합은 생각 자체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여 생각과 행위의 경계를 허물어뜨리는 것으로 생각이 바로 행동과 같은 실제성을 띤 것으로 여겨지는 것이었다.

극도의 과민성에서는 다른 질병과는 달리 강박증 환자들이 긴장하고 예민한 것이 특징이었다. 정상적인 사람들은 대개 별다른 위험요소들이 눈에 띄지 않는 상황인데도 분명한 근거 없이는 위협적으로 느끼지는 않지만 강박증 환자들은 완벽하게 안전하다고 증명되기 전까지는 평상시 상황을 위험한 것으로 간주하는 경향이었다. 이는 마치 유리조각을 두려워하는 환자는 바닥에 유리조각으로 누군가 다치지 않도록 지속적으로 두려워하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아무 일도 없었기 때문에 유리제품이 깨지는 등의 어떤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집안을 맨발로 돌아다녀도 신경을 쓰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과도한 두려움에서는 강박증 환자들이 실제의 상황보다는 과도한 두려움을 경험하는 것이 강조되었다. 이런 두려움은 물론 심리학에서 어떤 것이든지 간에 불확실한 상황에 불편해 하는 심리적 특성이었다. 어떤 예기치 못한 나쁜 일이 생길 것에 대한 불안감을 느끼기 때문일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어떤 해로운 일이 예측할 수 없는 방식으로 찾아온다는 것은 매우 견디기 어려운 긴장감을 주고 입이 바싹바싹 마르게 만들기도 한다는 점에서였다. 누구나 공포영화나 스릴러 영화를 볼 때 머리털이 서는 긴장감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다만 강박증 환자들은 그 두려움을 정도에서 과도하다는 것이 문제였다.

부당한 의심과 추론에서는 강박증이 미래의 불안에 집착하는 것과는 매우 다른 점이기는 어느 정도 갖고 있었다. 이런 점은 강박증이 부차적으로 갖는 편집증적인 경향에서 이해된다고 했다. 실제로 강박증은 일종의 의심증으로 알려진 편집증적인 경향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완벽주의적인 특성을 갖고 있는 것에 기초하고 있다고 이해해야 했다. 그들은 어떤 일을 완벽하게 처리하거나 마무리하지 않으면 미래에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나 사건이 터진다고 생각한다는 점에서다. 이런 현상이 바로 일종의 의심적인 성향이면서 거기에 따른 추론이 추가적으로 가능해지는 이유이기도 했다.

미래 불안에 대한 타협에서는 강박증이 지나친 미래 불안과 관련되어 있는 점에 주목했다. 그들은 이런 미래 불안 때문에 어떤 형태로든 타협이 시도됨에 따라 그것이 조건적인 것이든 결과적인 것이든 간에 스스로 안심할 수 있는 정도의 심리적 불안이 해소되어야 했다. 여기에 일시적이기는 하지만 그들에게는 타협이 존재하는 이유였다. 강박증이 비교적 엄격한 특성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에 타협이라는 것은 그 어떤 것이든 간에 불가능할 것 같은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것이었다. 그들에게도 어떤 형태로의 타협은 얼마든지 가능한 것인데, 그들의 타협형성은 정신역동적인 입장에서 이해되었다. 정신역동적인 입장은 강박증상도 다른 신경증적 증상에서와 마찬가지로 일종의 타협성이 존재한다고 본다는 점에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