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보라 네게 노하던 자들이 수치와 욕을 당할 것이요 너와 다투는 자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이 될 것이며 멸망할 것이라”(사 41:10~11)

<서론>
저는 오늘 여러분과 더불어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는 주님의 말씀을 가지고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크고 작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 다 불안과 공포의 분위기를 완전히 벗어나서 살지 못합니다. 불안은 아직 원수의 모습이 나타나지 않았는데 상상 속에서 대적하는 원수를 생각하고 불안해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동물들은 공포는 있어도 불안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짐승은 상상하지 않기 때문에 공포가 다가와야 상대를 보고 두려워하지 다가오기 전에 머릿속에 이러는 것이 저렇고 저런 것이 생기고 내게 여러 가지 위협이 올 것이라는 상상을 해서 불안해하는 동물은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는 상상을 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내게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일들이 일어날 것을 생각하고 그 속에서 불안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공포는 원수의 대상이 뚜렷이 나타났을 때 느끼는 감정입니다. 원수가 분명히 내 앞에 나타나면 불안은 공포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불안과 공포의 바이러스는 어느 곳에나 있습니다. 그것을 없앨 수는 없으나 극복은 해야 되는 것입니다. 감기는 어느 곳에나 있어요. 감기를 이 지구상에서 없애 버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감기를 극복할 수가 있습니다. 건강으로써 이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기지 못하면 그것 때문에 각종 심신의 위축과 질병과 고통과 좌절 및 절망을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전 세계는 경제적인 위기로 불안과 공포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아시아나 아프리카 등이 경제위기에 처해도 까딱없던 것은 미국과 구라파가 버팀목이 되어서 탁 받들어 주기 때문에 아시아나 아프리카의 경제위기를 극복할 수가 있었습니다. 또 구라파가 어려울 때 미국이나 아시아가 도움이 되었었습니다. 지금은 온 세계가 함께 경제위기에 당면하고 경제 파탄의 불안과 공포가 세계를 쓰나미처럼 휩쓸고 있습니다. 유럽이나 미국이나 아시아나 아프리카나 할 것 없이 다들 경제적 위기 속에 흔들흔들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바라볼 곳은 어느 대륙도 아닌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영국의 한 출판사에서「내게 단 한번 설교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이와 같은 제목으로 출판하기 위해 많은 사람에게 원고를 부탁했는데 그 가운데 길버트 채스터턴(Gilbert K. Chesterton)이라는 분은 “내게 단 한 번, 설교의 기회를 준다면, 두려움을 없애는 설교를 하겠다”고 말했었습니다. 사람들에게 가장 큰 문제가 두려움인 것입니다. 자나깨나 두려움에 직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천사가 세례 요한의 아버지 사가랴와 세례요한이 잉태될 것을 알려줄 때, 제일 먼저 말한 것이 뭐냐면 두려워말라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또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와서 하나님의 아들을 잉태할 것을 알릴 때, 천사가 나타나서 두려워말라. 그리고 예수님이 강생한 것을 알릴려고 목자들에게 나타난 천사들이 목자들에게 제일 먼저 말한 것이 두려워말라 너희에게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전하러 왔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어느 곳에 든지 하나님의 사자들이 와서 말씀을 전할 때 먼저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을 먼저 했습니다. 사람들이 그만큼 두려움에 포로가 되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아담의 범죄 이후 오늘 늘 불안과 공포 가운데 살아갑니다. 더욱이 오늘날 온 세계가 함께 경제적 위기를 당면하여,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불안과 공포 속에 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바라볼 곳은 이제 미국도 아니고 구라파도 아니고 아프리카도 아니고 아시아도 아닙니다. 우리가 이 어려운 위기에서 건져내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바라봐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보고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노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2011년 우리나라 최저 임금 기준은 시간당 4천 320원으로 하루 8시간 일을 하면 한 달 25일을 일하면 86만 4천 원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최저임금 적용대상자가 234만 명이 됩니다. 한달 내내 일해가지고서 최저 임금이 86만 4천 원 받아가지고서 어떻게 삽니까? 돈 잘버는 사람들의 푼돈도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현실이 86만 4천 원을 한달받아 사는 인구가 234만 명이나 된다는 것입니다.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이 현실이 얼마나 각박한가를 알지 못할 것입니다.

오늘날 30대들은 “불만, 불신, 불안”으로 가득 찬 3불(不) 세대가 되었습니다. 우리나라 청년 고용률은 40.3%로 OECD 국가 중 꼴찌입니다. 매년 대학 졸업자 가운데 15만 명이 비정규직으로 취업을 하거나 백수가 되고 있습니다. 게다가 대학생 신용불량자는 2006년 보다 43배 이상 폭증하여 2만 8천 891명이나 신용불량자가 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 베이비붐 세대의 주력 계층인 지금 50세에서 54세 남성의 자살률은 2009년에 이미 최대 수치를 기록했습니다. 통계청의 2010년 사회조사 결과를 보면, 자살한 남성의 44.9%가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자살한 것입니다. 직장을 잃어버릴 때 혹은 직장을 잃어버린 사람, 사업에 실패한 사람, 빚에 고통당하는 사람, 경제적인 위기로 자살한 사람이 거의 대다수인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나라는 전 세계의 경제 위기 앞에서 더욱 어려운 생활의 현실로 불안과 공포에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올해는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정치적으로도 불안정한 상태입니다. 이러한 때 온통 불안이 꽉 들어찬 이 사회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될까요?

<본론>
1.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첫째로, 하나님 말씀으로 돌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저 하늘이 무너지고 이 땅이 꺼져도 일점일획도 변치 않는 것이 하나님 말씀인 것입니다. 우리가 의지하는 모든 것이 다 흔들거리고 사라집니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은 영원하기 때문에 말씀을 찾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첫째로 말씀에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한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이 함께 한다는 것 이 사실을 발견하는 것은 우리 마음에 평안을 얻는 제일 첫째 길인 것입니다. 내가 눈을 들어 산을 보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야훼께로다. 천지를 지으신 야훼만이 우리의 도움이 되기 때문에 우리는 태산같은 어려움이 있어도 태산을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만드시고 천지를 다스리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만난다는 것은 천지에 두려움이 있어도 그것을 극복할 수 있다는 전제조건이 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7장 24절로 27절에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살게 하시고 그들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정하셨으니 이는 사람으로 혹 하나님을 더듬어 찾아 발견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계시지 아니하도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 하나님이 구만리 장천 멀리 계신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은 실제로 우리에게서 멀리 떠나 계시지 않고 우리가 숨 쉬는 공기 속에 계시고 우리가 앉아있고 일어서 걸어가는 이 공간속에 바로 하나님이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기있다 저기있다 할 수 없으니 하나님은 바로 우리와 함께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멀리 계신 분에게는 한없이 멀리 계시지만 하나님이 함께 계신 것을 깨달아 아는 사람은 24시간 내 호흡과 같이 하나님이 같이 계신다는 것을 깨달아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불안과 공포보다 위대하신 하나님 되심을 우리가 마음속에 깨달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마음이 생각을 다스려야 평안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생각이라는 것은 긍정적으로 생각하거나 부정적으로 생각하거나 마음을 점령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어린 아이가 상점 앞에 서서 땀을 뻘뻘 흘리면서 끙끙 앓고 있거든요. 그래서 너 왜 그 상점 앞에서 땀을 흘리고 끙끙 거리고 있냐고 하니까 “꼭 저기에 있는 물건을 훔치고 싶은데 안 훔치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야 이놈아, 안 훔치려고 애를 쓰고 있으면 애를 쓸수록 더 훔치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 때문에 이 자리를 떠나라!” 그 물건이 눈에 보이지 않게 하라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미운 사람을 사랑하려고 안미워해야지. 안미워해야지 하면 그것이 마음속에 더 미워하도록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마음은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이거나 집중하면 마음을 점령하는 것입니다. 늘 마음속에 불안과 공포를 생각하면서 불안하지 말아야지 공포를 갖지 말아야지 그렇게 생각하면 불안과 공포가 더 마음을 잡는 것입니다. 생각을 달리해야 되는 것입니다. 불안과 공포를 생각하지 말고 좋은 일, 기쁜 일, 승리하는 일, 다른 일을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 중에 한 사람이 병원에 입원해서 수술을 받는데 수술하러 들어가기 전에 날보고 기도해 달라고 해서 내가 가서 기도를 해주는데 기도를 받으면서 하는 말이 나 절대 불안하지 않아요. 나 두려워하지 않아요. 그래서 내가 그러지 말아요. 그 말하면 더 불안하고 두려워진다. 두려워 안해요. 불안 안해요 하는 말은 내 속에 두려움이 있고 불안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럼 어떻게 할까요? 시편 23편을 외우십시오. 불안도 생각하지 말고 두려움도 생각하지 말고 야훼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저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예수님을 생각하고 주님께서 당신 오늘 수술 받는 것은 바로 푸른 초장에 뉘이시고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고 마음을 소생시키시고 은혜를 베푸는 장소라고 생각하고 주님을 생각하면 생각이 불안과 공포를 쫓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안두려워해요. 안무서워해요. 안두려워해요. 안무서워해요. 점점 더 두려움과 무서움이 마음을 붙잡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이 두렵고 불안한 시대에 언제나 우리는 위대한 하나님을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잠자리에 들어갈 때 불안과 두려움을 가슴에 안고 들어가지 마십시오. 베개 베자마자 여러분 성경을 외우십시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그 말씀을 외우십시오. 볼지어다 세상 끝날까지 내가 너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말씀을 외우면 두려움은 마음속에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두려움을 생각하지 마시고 말씀을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시편 118편 6절 우리 다같이 한번 읽어 보십시다. “야훼는 내 편이시라 내가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까” “야훼여 위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승리와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야훼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물의 머리이심이니이다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물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사람을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

이와 같이 위대한 하나님을 생각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생각이 무엇을 포용하고 있는가에 따라서 두려워하느냐 평안하느냐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마음속에 늘 생각하고 모시고 그를 바라보고 예배하고 찬양하고 있으면 두려움은 사라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심을 생각하면 하나님이 나와 함께 손잡고 살고 계시다는 것을 꿈꾸고 그것을 믿고 입술로 하나님이 나와 같이 계신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이 자리에 일하신다. 하나님이 나를 붙들어 주신다고 고백을 하십시오.

시편 91편 2절로 3절처럼 “나는 야훼를 향하여 말하기를 그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내가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이는 그가 너를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극한 전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 저가 너를 그의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의 날개 아래에 피하리로다”

이 얼마나 좋은 말씀입니까? 이것을 마음속에 생각하는 것입니다. 두려움이 오기전에 여러분 마음속에 나는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이 나와 무슨 관계가 있느냐. 저는 나의 피난처다. 나의 요새다. 나의 의뢰하는 하나님이다. 저가 나를 새사냥꾼의 올무에서와 극한 염병에서 건지신다. 내가 그 깃으로 덮어주는 날개 아래에 거한다. 주 날개 밑 내가 그 안에 거한다. 얼마나 마음에 큰 평안을 갖다주는 것입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이 함께 계시므로 두렵지 않다고 마음속에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같이 계시므로 두려움보다 더 크신 하나님이 나와 같이 계시므로 나는 괜찮다.

마태복음 28장 20절에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저는 어릴 때 아주 시골에서 자랐습니다. 경상남도 울주군 삼남면 교동리 31번지 산장에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시골에서 다 그렇듯이 닭을 키워요. 닭이 마당에서 암탉이 병아리를 까서 병아리를 데리고서 정원으로 들어가서 땅을 헤쳐서 벌레를 나타나게 하면 병아리들이 와서 찌어 먹고 해요. 그런데 재밌는 것은 언제나 고양이가 그것을 노리고 있다가 싹~ 병아리 잡아 먹으려고 가는데 그러면 어미닭을 그것을 알고 난 다음에 곧장 구구구 구구구 하고 외치면 세상에 학교에서 배우지도 않았는데 그 병아리들이 쏜살같이 어미의 날개 밑으로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것 지금도 생각하면 참 기가 막혀요. 어머니가 날개를 이렇게 펴고 있는데 그 밑에 싹싹싹 뛰어 들어와요.

그러면 어미가 날개 밑에 새끼를 품고 난 다음에는 날개를 그냥 두지 않고 전부 새웁니다. 날개를 세워요. 그러면 닭이 엄청나게 커보입니다. 거기에다가 눈에 불을 착착착 흘립니다. 그러면서 병아리를 바라봅니다. 그리고 고양이에게 대적하면 고양이가 곁에 까지 와서 빙글빙글 돌다가 못달라듭니다. 엄마가 하도 기가 등등해서 무섭게 구니까 새끼 한 마리 잡아 먹으려다가 눈알이 빠지던지 하겠다. 그러다가 결국에는 고양이가 물러갑니다. 심지어는 개까지 새끼를 품은 암탉에 달라들지 못합니다. 하물며 여러분, 하나님이 여러분을 품고 있으면 여러분 어떻게 되겠습니까? 상상을 초월하는 일 아니겠습니까?

나는 암탉이 병아리를 얼마나 다정하게 돌보는 것을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비가 내리고 벼락이 치고 천둥이 쳐도 새끼들을 모두 불러서 날개 밑에 품고 비가 지나가도록 보호해 주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어떠한 위험이 오더라도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은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를 편히 쉬게 하리라. 하나님은 그냥 하나님이 아닌 것입니다. 왜 하나님이 하늘에 계십니까? 저는 나의 피난처입니다. 김씨, 박씨, 서씨의 피난처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나의 의뢰하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니까 나를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극한 염병에서 건져내어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묵상하십시오. 이것이 사실이요 진리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신지라 거짓이 없으시고 인자가 아니신자라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가 하신 말씀을 반드시 이루시는 것입니다.

시편 91편 4절에 그가 너를 그의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의 날개 아래에 피하리로다 그의 진실함은 방패와 손 방패가 된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2.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둘째로, 성경은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특별한 관계를 생각해야 돼요. 우리는 막연하게 하나님 천지와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이라고 생각하고 저 크신 하나님이 나 같은 인생에 무슨 관심을 가지겠는가 어떻게 내가 하나님을 아는 것처럼 하나님이 나를 돌보아 주실 것인가 그렇게 의심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씀하기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놀랬지? 내가 이렇게 천지와 만물을 지은 하나님이지만 바로 너의 하나님이다. 너 볼일 없이 생각하지 말라. 물론 너의 나라에서는 별볼일 없는 사람일 수도 있다. 장관도 아니고 국회의원도 아니고 회장도 아니고 조그마한 구멍가게 사장도 못되고 별볼일 없는 사람 아무도 몰라주는 사람같지만 나는 너의 하나님이다. 나는 너를 알아준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나의 특별한 관계를 생각해 봐야 되는 것입니다.

이사야 41장 9절에 “내가 땅 끝에서부터 너를 붙들며 땅 모퉁이에서부터 너를 부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나의 종이라 내가 너를 택하고 싫어하여 버리지 아니하였다 하였노라”
하나님의 종으로써 하나님이 택해 주신 것입니다.

이사야 43장 1절을 보면 더 마음이 감격적입니다.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할렐루야~

애들처럼 야 이것 내 것이야. 아니야 내 것이야. 얼마나 다정한 말입니까? 하나님께서 너는 내 것이다. 아무리 사탄이 너를 시험해도 아무리 세상의 권세가 너를 잡고 흔들어도 내 허락없이는 안된다. 너는 내 것이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는 두려워하지 말고 이 하나님과의 특별한 관계를 생각하십시오. 내 하나님이라는 것을 우리가 깊이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많은 남자들이 있잖아요. 길거리 가서 남자 붙잡고 내 아버지여, 아버지여 하면 이것 미쳤나? 왜 이러냐고 합니다. 그 많은 남자가 있어도 내 아버지는 한 사람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많은 여자가 있어도 내 어머니는 한사람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 아버지가 와서 나는 네 아버지다. 그 어머니가 와서 나는 네 어머니다. 하나님은 와서 나는 네 하나님이다. 얼마나 개인적인 것입니다. 막연하게 나는 너희들의 하나님이다. 너희는 내가 아는 자식 중에 하나가 될똥 말똥하다 그것이 아닙니다. 너는 나의 자식, 이와 같이 개인적인 따뜻한 감정을 가지고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나를 예수 믿게 해서 성령으로 거듭나서 영적으로 태어나게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과 나를 낳으신 분은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여러분과 내가 구원받은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과 나를 부르셔서 예수믿게 하시고 그리스도를 통해서 성령으로 거듭나게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디도서 3장 5절로 7절에 보면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그 성령을 풍성히 부어 주사 우리로 그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상속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모조리 하나님이 다 해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부르셔서 예수의 보혈로 씻어 주시고 성령으로 거듭나게 해서 변화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도록 만들어 주시고 품에 품어 주시고 우리를 하늘나라의 상속자로 삼아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적으로 낳아주신 하나님과 우리는 깊은 관계가 있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께서 여러분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희생하신 것을 생각할 때 뜨겁게 사랑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사야 53장 4절로 6절 우리 다같이 함께 읽어 보십시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야훼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주님의 십자가 고통이라는 것은 보통 고통이 아닙니다. 형언할 수 없는 고통입니다. 마귀가 인간으로써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고통을 예수님께 가한 것은 중도에 포기시키려구요. 아버지여 나 더 이상 감당하지 못하겠으니 십자가에서 내려 주십시오. 나 포기합니다. 그러면 아버지가 예수님 안들어 줄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예수님 혼자는 구출함을 받겠지만 온 인류는 다 멸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죄와 불의, 추악과 저주, 절망과 죽음을 끝까지 다 청산해야 되는데 주님이 다 이루었다 하기 까지는 한없는 고통을 당했습니다. 그 고통에서 포기하도록 만들려고 마귀가 압력을 막 가한 것입니다. 얼마나 아프셨겠습니까?

♬ 얼마나 아프셨나 못박힌 그 손과 발 / 죄없이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님
하늘도 모든 땅도 초목들도 다 울고 / 해조차 힘을 잃고 온누리 비치잖네
아~ 끝없어라 주의 사랑 언제나 / 아~ 영원토록 구원의 강물 넘치네 ♬

끝까지 주님께서 고통을 참고 우리의 죄와 불의, 추악과 저주,절망과 죽음을 다 청산했기 때문에 이제는 주님의 사랑과 구원이 강물처럼 흘러 넘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면 구원을 받게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이 대속의 하나님을 생각하십시오. 이 하나님이 이렇게 고통 속에 있는 우리를 쉽게 모른다고 하실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을 절대로 알고 하나님 앞에 마음을 떳떳하게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3. 굳세게 하리라
셋째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고 내가 너를 굳세게 하겠다.

우리를 약하게 할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경제적인 위기를 통해서 마음이 약해지니까 자살하잖아요. 가정적으로 불안하니까 가정이 파탄에 이르잖아요. 젊은이들이 불안하니까 밖에 나가서 데모하잖아요. 이 세상에 불안이 다가오면 점점 약해지고 위축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를 강하게 해줄자 누굽니까? 하나님께서 말씀하기를 내가 너를 강하게 만들어 주겠다. 굳세게 만들어 주겠다. 힘차게 만들어 주겠다. 사실 불안과 두려움이 있을 때 도움이 속에서 와야지 바깥에서 사람들이 도와준다고 말해도 큰 힘이 안됩니다. 속에서 성령으로 담대함이 생겨나면 그 공포를 이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불안과 공포는 우리를 약하게 만들잖아요. 뒤로 물러가면 원수 마귀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가데스바네아에서 12명의 정탐꾼을 가나안땅으로 보냈는데 그들이 40주 40야 정탐하고 돌아와서 보고하는 것을 보면 10명의 정탐꾼은 마음속에 불안하고 공포가 있었다구요. 불안한 눈으로 보면 모든 것이 좌절과 절망으로 부정적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 땅은 주민을 삼키는 땅이다. 그 성벽은 말할 수 없이 높다. 거기에 사는 사람들은 아낙자손 네피림의 후손 아낙자손 거인들이 살고 있다. 우리와 비교해 보니 우리는 그들에게 메뚜기 같더라. 우리는 못들어간다.

왜, 그 마음속에 불안과 공포를 가지고 사물을 바라보니 정확하게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이 충만하여 강하고 담대한 마음으로 보니까 그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더라. 그 백성들은 우리의 밥이다. 우리가 들어가서 점령할 수가 있다. 일어나서 들어가자. 보고가 완전히 달랐습니다.

민수기 13장 32절로 33절에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정탐한 땅을 악평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10명의 정탐꾼이 불안과 공포로 사물을 바라본 상황은 그와 같은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믿음과 용기와 담대함을 가져야 사회가 안정되는 것입니다. 한 가정에도 가장인 남편이 강하고 담대하여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살 수 있다 길이 열릴 것이다. 그리하면 아내와 자식들이 아버지의 말을 듣고 용기가 생깁니다. 희망이 생깁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이제는 다 죽었다. 우리 그만 가족들 전부다 독약을 먹고 죽자. 더 살 희망이 없다. 절망이다. 그렇게 되면 온가족들이 같이 있는 사람들이 다 불안과 좌절과 절망에 처하지 않습니까?

나는 신앙상담 온 우리 35살 먹은 시골에서 온 자매님 이야기를 듣고 내가 큰 힘을 얻었습니다. 그는 시골에서 왔는데 살기 위해서 서울에 올라왔습니다. 공부를 많이 한 적이 없으니까 업소에서 서비스 하면서 사는데 내가 보기에도 편한 곳이 아니에요. 사람들에게 노리개감이 되고 고통스러운데 그는 내게 왜 신앙상담을 왔느냐 하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조금 더 받아서 힘을 얻기 위해서 왔다고... 그러면서 제일 먼저 하는 말이 목사님, 감사해요. 감사. 내가 시골서 올라와서 일자리가 있다는 것 감사하잖아요. 좋은 일자리는 못되어도 밥을 먹을 수 있으니까 감사하잖아요.

사람들에게 놀림감이 되지만 그러나 나는 놀림감이 되더라도 그들의 손에서 돈을 받아먹고 사는 것이니까 나를 놀림감으로 삼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해도 감사하지 않습니까? 부정적인 말을 안해요. 나는 감사한 것밖에 없어요. 나는 하나님 어찌하든지 의지하고 하나님이 나를 붙들어서 이보다도 좀 더 좋은 직장과 직업을 주실 줄 믿습니다. 희망이 있습니다. 늘 감사하고 희망과 꿈을 말해요. 그런데 내가 그 말을 가만히 듣고 있으니까 내가 신앙상담해줄 사람이 아니가 내가 신앙상담을 받았어요.

나중에는 감사하다고 인사하고 밖으로 나가는데 내가 은혜를 받아가지고서 내가 내 처지를 바라보면 그 자매님보다도 천배나 나은 처지에요. 그런데 내가 감사하지 못하면 어떻게 할 것이냐. 그 어려운 처지에서도 꿈과 희망을 가지고 얼굴에 웃음을 갖고 행복하다고 말하는데 아휴 내가 희망과 꿈이 있지 않고 행복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부흥회 가서 설교들은 것보다 더 큰 은혜를 받았어요. 보십시오.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계신 것을 알면 얼마나 큰 용기와 힘을 얻겠습니까? 이러한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말을 하는 사람이 곁에 있어서 그 말만 들어도 용기와 힘이 생기는데요.

여러분 통해서 이웃 사람들이 얼마나 영향력을 입는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더구나 요사이 같이 염려, 근심, 불안, 초조, 절망이 많고 불안과 공포가 꽉 들어찬 곳에 여러분 가는 곳마다 여러분은 햇빛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 보자는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창조적인 말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요사이 정치인들 선거에 투표 받으려고 자꾸 다 죽는다 다 절망한다 슬픈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그런 역행 플레이는 효과를 발생하지 못합니다. 국민들에게 희망을 줘야 돼요. 이 어려울 때 국민들이 살아 일어날 수 있는 것은 희망입니다. 용기와 희망을 주면은 어떠한 역경에도 일어나지만은 용기와 희망을 잃어버리면 절망이요 좌절이요 죽음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앞으로 우리나라가 이 위기를 이기고 살아나가기 위해서는 지도자들이 먼저 불안과 공포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을 의지하고 용기와 담력을 가지고 희망을 주는 메신저가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모든 국민들이 그를 바라볼 때 어찌할 수 없이 분위기에 타서 희망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같이 희망과 용기를 가질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약속을 주시고 난 다음에 그를 격려하는 말씀 보십시오.

여호수아 1장 5절로 9절에 “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맹세하여 그들에게 주리라 한 땅을 이 백성에게 차지하게 하리라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야훼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한번 따라 읽으십시오.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 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내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야훼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나님은 좋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계신 곳에는 좋은 일이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여호수아에게 용기를 주는 것 보십시오. 힘을 주시고 희망을 주시고 꿈을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부정적인 말 한마디도 없습니다.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말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백성은 바로 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을 닮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여러분도 살고 여러분을 듣는 사람들도 살게 되는 것입니다.

4. 의로운 오른손으로 붙들리라
넷째로, 이 성경에는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하나님께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하나님의 의로운 오른손이 뭡니까?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의로운 오른손인 것은 죽었다가 부활하셔서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역사하는데 예수님은 이 땅에서 여러분과 나를 위해서 십자가를 짊어지시고 구속하신 놀라운 은혜를 가지고 계신 분이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를 붙들어 주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 하나님은 우리를 붙들어 주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를 붙들어 주시고 예수님이 우리 속에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내 편이시고 내 하나님이 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고 우리 속에 계신다는 것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모릅니다. 예수님이 내가 너를 고아와 같이 버려놓지 않고 너희에게 오리라. 예수님은 우리와 같이 계신 하나님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계시니 성령이 함께 계시고 아버지가 같이 계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죽었다가 부활하셔서 지금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계시며 성령으로 우리 속에 와서 계신 것입니다.

로마서 8장 34절에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하나님의 오른팔 예수님, 우리를 위해서 간구하시는 주님인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 33절에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똑같이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왼손으로 우리가 물건을 잡지만 왼손은 별로 힘이 없지 않습니까? 오른손이 힘이 있지 않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적당하게 너를 돌보아 주겠다가 아니라 내가 전력으로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어 준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지금도 여러분에게 오른손으로 붙잡고 계시다는 것을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가 하나가 되었으므로 하나님의 오른손은 우리 허리를 감고 있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그리스도와 우리가 하나가 된 것입니다. 예수 죽음 내 죽음, 예수 부활 내 부활, 예수 승천 내 승천, 예수 보좌 내 보좌, 우리는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론이 아닙니다. 이것은 경험인 것입니다. 이것은 실제인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과 나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고 예수님은 우리 안에 계신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여러분과 나를 더불어 하나님과 함께 역사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믿는다는 것은 여러분 언제나 플러스 알파의 생활을 하는 것이 왜냐하면, 우리 플러스 예수님이 되기 때문에 예수님께는 플러스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께는 패배란 없습니다. 십자가를 통해서 사망을 다 철폐하시고 플러스를 우리에게 영원히 허락하신 주님이신 것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항상 모든 것이 합동하여 선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은 우리의 선한 목자가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결론>
이사야 41장 11절로 16절 우리 다같이 읽어 보십시다. “보라 네게 노하던 자들이 수치와 욕을 당할 것이요 너와 다투는 자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이 될 것이며 멸망할 것이라 네가 찾아도 너와 싸우던 자들을 만나지 못할 것이요 너를 치는 자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고 허무한 것 같이 되리니 이는 나 야훼 너의 하나님이 네 오른손을 붙들고 네게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 할 것임이니라 버러지 같은 너 야곱아,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 야훼가 말하노니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이니라 보라 내가 너를 이가 날카로운 새 타작기로 삼으리니 네가 산들을 쳐서 부스러기를 만들 것이며 작은 산들을 겨 같이 만들 것이라 네가 그들을 까부른즉 바람이 그들을 날리겠고 회오리바람이 그들을 흩어 버릴 것이로되 너는 야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겠고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로 말미암아 자랑하리라”

너 버러지 같은 야곱아. 여러분 세상이 바라볼때라도 나는 버러지 같이 보인다. 나는 내가 보아도 나는 지렁이 같은 인생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세상이 버러지로 생각하고 여러분 자신이 지렁이로 생각할지라도 하나님이 같이 계시므로 하나님 함께 한 버러지, 하나님 함께 한 지렁이가 되면은 여러분 산을 부서트려 까부려 날려 버리는 위대한 능력을 가진 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너 버러지 같은 야곱아 너 이스라엘 사람들아 두려워 하지 말라 나 야훼가 말하니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 하나님이 도우시면 누가 우리를 넘어뜨리겠습니까?

그러므로 바울 선생이 말하기를 우리가 이 보배를 이 보배로운 진리를 질그릇 속에 가졌으니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안싸인다. 답답한 일을 당해도 낙심하지 않는다. 핍박을 받아도 버림바 되지 아니하고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않는다. 항상 예수 죽음을 몸에 걸머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난다. 예수를 죽인 십자가의 고통이 다가와도 예수를 부활시킨 생명의 역사가 우리 속에 나타나므로 넉넉히 이기고 마는 것입니다. 환난이나 곤고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기근이나 칼이랴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그러므로 오늘 하나님을 바라보고 이기는 여러분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진실한 그리스도인만이 불안과 공포를 이기고 평안과 담대함을 갖고 살 수가 있는 것입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고 하나님이 오늘 여러분에게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아멘.

/ 2012년 3월 25일 주일 설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