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도 목사는 거리상 어려움으로 한국 목회자들이 잘 찾지 않는 남미에 3번 다녀오는 등 전세계를 누비면서 복음을 전하고 있다. ⓒ이대웅 기자
“여러 어려움이 많지만,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하라’는 말씀만 붙들고 가는 거에요. 다른 건 때가 있지만, 선교에는 때가 없잖아요. 그러면 하나님께서 어떻게든 열어주세요. 그걸 한두 번 체험하는 게 아니니까… 그러니 미치는 거지, 그렇지 않으면 못 해요.”

어명선교회 대표 이기도 목사는 숨은 ‘선교 일꾼’이다. 지난 6년간에만 21개국을 다니며 현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선교사들에게 새 힘을 불어넣었다. 6년 전부터는 ‘선교 거점’ 마련을 위해 부천에서 ‘주예수이름교회’를 개척했다. 최근 인도 선교를 마치고 돌아온 이기도 목사는 이름처럼 ‘기도’에 대해 여러 번 강조했다.

-개척교회인데도 선교에 열심이신데, 선교를 시작한 동기가 있으신가요.

“신학교 때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하는 말씀에 꽂혔어요. 신학생 때 다들 산기도 많이 하는데, 저는 ‘선교에 써 주십시오’ 그런 기도 많이 했어요. 그랬더니 자연스럽게 선교로 이끄시더라고요.

중국이 개방되자마자 1993년 동북3성 쪽으로 많이 다녔어요. 그러다 1998년 공안에게 두 번째 잡혀서 추방당했어요. 블랙리스트에 오른 거죠. 한국에 들어와서 눈물로 기도하는데, ‘위를 보라’는 감동이 왔어요. 하나님을 바라보라는 줄 알았는데, 중국 위에 있는 몽골이 떠올랐어요.

하나님은 한 쪽 문을 닫으시면 다른 문을 여시는 분이니까, 몽골로 이끄시는 것 같았죠. 마침 이종사촌이 몽골 선교사였어요. 당장 그리로 가서 왔다갔다 하다 2004년에 아주 들어가서 2년간 원주민들과 같이 살았어요.”

-개척은 언제 하셨나요.

“그러다 2006년 1월 1일 이곳에 개척했지요. 그것도 기도의 결과에요. 세계 선교를 놓고 기도하면 여러 나라를 보여주셨는데, 거점기관이 필요하겠더라고요. 귀국 후 1주일 만에 이 건물 이야기를 들었는데, 건물주가 안수집사님이었어요. 어려움을 겪던 그 분은 7층을 선교하는 목사에게 교회로 줘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있던 차였죠. 하나님이 만나게 하신 거에요. 그래서 아주 싼 가격에 임대를 했습니다.

이후 3월에 인도 집회를 시작으로 6년간 21개국 다니면서 선교했어요. 선교하라고 베푸신 은혜니까요. 몽골에는 수도인 울란바토르 등 교회가 3곳 있어요. 현지인들이 운영하는데, 1년에 2-3회는 들어가서 집회를 갖습니다. 선교하다 보니 선교사들도 자연스럽게 알게 돼 아시아권, 남미권, 러시아권, 오세아니아권 등을 다니며 현지인들을 상대로 대중 전도집회를 갖고, 목회자와 선교사들을 대상으로 지도자 세미나를 엽니다.

어디든 가면 한국 선교사님들이 계셔서 좋아요. 우리는 가서 말씀을 전하고 사명감을 고취하면 무척 좋아하세요. 한국에서 가기 쉽지 않은 곳들을 다니니까요. 그리고 복음의 능력은 말씀 뒤에 이적까지 따라오니까, 예수님이 살아계심을 확실히 증거하면 기적이 나타나요.”

-그런 기적의 현장을 좀더 구체적으로 듣고 싶습니다.

“이번 인도 집회는 오릿사주였어요. 지난 2007-2008년에 힌두교도가 폭동을 일으켜 기독교인들을 박해했던 곳이죠. 인도에서 저희 주 선교지입니다. 이번에 가 보니 교회가 100곳 이상 파괴됐고, 크리스천 가정 4800곳도 공격받았어요. 당시 5백명이 사망했다고 알려졌지만, 칸다말 마을에서만 138명이 죽은 걸 보면 희생자가 얼마나 더 많은지는 알 수 없습니다.

이 마을에서 손 잘린 사람만 1800명이었대요. 산 채로 목사를 불 속에 집어넣고, 고아원 지도자도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로…. 십자가만 달려 있으면 다 부숴버렸답니다. 기독교인을 보호한다고 경찰서에까지 불을 질렀죠. 힌두교인들이 기독교에 대한 피해의식이 많아요. 영국의 식민지였던데다가, 힌두교인들이 자꾸 기독교로 개종하는 것도 불만이고, 기독교인들이 자기네 우상을 무시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나쁘고요.

▲지난 인도 오리사주 집회를 인도하고 있는 이기도 목사.

그곳에서 두 군데 도시 집회를 했는데, 좀 위험했어요. 광고하고 플래카드 붙이면서 대대적으로 집회한 것은 처음이었어요. 그들이 폭탄을 터뜨릴 수도 있는 상황인데, 하나님께서 함께하셔서 수천명 규모의 집회를 무사히 치렀어요. 위축되고 침체돼 있던 교회와 목회자들은 힘을 얻었고요. 복음의 능력을 갖고 담대하게, 박해가 오더라도 복음을 전해야 한다고 외쳤습니다. 이것이 사도행전의 역사요, 교회의 역사이지 않습니까. 치유의 역사도 일어났고, 부흥의 불이 떨어졌어요.”

-현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면 다양한 일들이 일어날 것 같습니다.

“러시아에 뚜바공화국이라고 있어요. 자치공화국인데, 대통령도 따로 있어요. 시베리아 중심 도시에서 남쪽으로 16시간을 자동차로 달려야 나오는 곳이에요. 몽골 국경 근처인데, 몽골에서는 교통편이 없어서 모스크바로 갔다가 내려와야 하는 곳이죠. 러시아는 정교회가, 뚜바공화국은 라마불교가 기독교를 핍박합니다.

그곳에는 공산주의 영향으로 대형 원형극장이 많아서 주로 거기서 집회를 열죠. 대통령궁 앞 극장에서 집회를 하려는데 대통령이 알고는 못 열게 막아버렸어요. 이미 광고까지 다 한 상황에서, 도착하니 경찰이 못 들어가게 해요.

어쩔 수 없이 교회에서 집회를 했는데, 예수님 얘기를 하니 한 여성도가 데굴데굴 구르기 시작했어요. 안수하고 나서, 이유를 물으니 자신이 간음한 여인인데 말씀을 듣고 고백하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다면서 소리를 질러요. 그런데 동네 사람들은 그 여인을 잘 알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여인을 보고 ‘예수가 살아계시다’며 다 예수 믿는 역사가 일어났어요. 이 사람들이 은혜 받아서 귀신이 떠나가고 치유의 역사가 막 나타났어요.

하나님은 그런 어려움 속에서 더 강력하게 역사하심을 체험했죠. 우즈베키스탄에서는 집회하는데 전기를 꺼 버려요. 그래서 음성으로 ‘예수님 없는 세상은 이렇게 어둡다. 예수님만이 영원한 생명의 빛’이라면서 복음을 전했어요.

중국에서는 숨어서 침례를 주는데 한 여성이 강물로 들어왔다 죽은 적도 있어요. 선교한 죄에다 살인죄로 바로 교도소 갈 상황이었죠. 간절히 기도할 수밖에요. 그렇게 기도를 끝내고 나왔는데 숨을 쉬는 거에요. 모인 사람들이 난리가 났죠. 어마어마하게 부흥이 일어났어요. 그때 중보기도를 배웠어요.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 사건을 믿고, 그 사람의 운명이 곧 내 운명’이라 생각하면서 기도하는 거죠.”

-현지에서 만나는 선교사들은 어떤가요. 집회를 위해서는 많은 기도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선교사님들 중에 숨겨진 보석들이 참 많아요. 그런 분들은 앞에 나서지 않고, 뒤에서 묵묵히 일만 하시죠. 미얀마에서는 한국 선교사들이 못 가는 곳까지 침투해서 무려 38만명에게 복음을 전한 선교사님도 계세요. 미얀마 옷차림을 하고 5년만에 미얀마어를 능숙하게 하세요.

남미 볼리비아와 파라과이 등에서는 교도소 선교집회를 했어요. 이번 인도 집회도 그랬죠. 믿음으로 금식하고 기도하고 가면 폭동 일으킨다고 위협하지만 아무 일도 없이 잠잠해요. 대신 그곳에서 신성시하는 소를 들이받는 교통사고가 나서 홍역을 치렀어요. 선교지는 정말 영적 전쟁이 너무나 치열한 곳입니다. 여러분들의 기도가 절실히 필요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