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셀러 작가 차동엽 신부의 <잊혀진 질문>.
내 가슴을 다시 뛰게 할 잊혀진 질문

차동엽 | 명진출판 | 368쪽 | 16,000원

누릴 것을 다 누렸달 수 있는 故 이병철 회장의 질문이 궁금했을 수도 있고,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이 우리에게 해답이 될 것 같았을 수도 있다. <‘내 가슴을 다시 뛰게 할’ 잊혀진 질문(명진출판)> 이야기다.

<무지개 원리>의 저자 차동엽 신부는 “故 이병철 회장이 작성한 저 물음들을 빙자하여, 우리가 처한 ‘삶의 자리’에서 가장 절박한 물음들의 답을 탐사하는 도전에 감히 임했다”고 했다. 그는 이병철 회장이 원래 40 항목에 달했던 질문을 24개로 압축한 것처럼, “2010년대를 살고 있는 우리를 우선적으로 배려하여 당장 절실한 것들부터 순서를 정했다”.

질문은 철학적이었지만, 저자가 ‘난문쾌답’을 꾀하며 일부러 쉽게 푸느라 “보다 설득력 있어 보이지만 지나치게 학술적인 사변은 아쉽게도 포기했다”고 한다. 그래서 故 이 회장 뿐 아니라 누구나 삶 가운데 한번쯤 던졌을 법한 질문들인데도 시원한 대답을 들을 수 없다(이병철 회장과 관련이 있는 모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대답을 조금 하기는 했다). 자신이 하고싶은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 요즘 트렌드를 쫓아 무작정 독자들을 ‘위로’하려다 보니, 저자의 표현처럼 “동시대인들의 가슴에서 튀어나오는 ‘처절한’ 물음”인데 비해 답은 처절하지 못하다.

그는 천주교 관련 물음에 대해 다른 저술에서 산발적으로 취급해두었다는 사실과 그런 주제들을 다룬 참신한 저작들이 이미 있음을 언급하는 정도로 머물겠다고도 했다. 대신 “사는 게 고달플 땐 생의 모멘텀을 어디서 구해야 하나?”, “불안과 두려움이 끈질기게 따라올 때 극복할 방법은 있나?”, “가슴 속에 분노가 가득한데 이 분노를 다스릴 수 있나?” 등 사회 분위기를 감안한 질문들로 메꿨다.

그래서 “로마 교황의 결정엔 잘못이 없다는데, 그도 사람인데 어떻게 그런 독선이 가능한가?”, “천주교를 믿지 않고는 천국에 갈 수 없는가?”, “천주교의 어떤 단체는 기업주를 착취자로 근로자를 착취당하는 자로 단정, 기업의 분열과 파괴를 조장하는데, 자본주의 체제와 미덕을 부인하는 것인가?”, “천주교를 믿지 않고는 천국에 갈 수 없는가?”, “종교의 목적은 모두 착하게 사는 것인데, 왜 천주교만 제1이고 다른 종교는 이단시하나?” 등 ‘원래’ 질문에는 묵묵부답이다.

차 신부가 대답한 첫번째 대답을 보자. 질문은 ‘한번 태어난 인생, 왜 이렇게 힘들고 아프고 고통스러워야 하나?’ 이다. 이병철 회장의 원래 질문은 ‘신이 인간을 사랑했다면, 왜 고통과 불행과 죽음을 주었는가?’ 였다. 두 질문의 많은 차이는 차치하고라도, 대답으로 넘어가면 “일단 고통은 신의 조화가 아니라 철저히 자연현상임을 확인해둘 필요가 있다”고 한다. 고통이란 “3차원 공간을 사는 모든 존재들이 서로 부대끼면서 ‘생명의 몸살’로 겪게 되는 자연발생적인 현상”이라는 말이다.

그리고는 보호의 기능, 단련의 기능, 정신적 성장의 계기로서 기능 등 고통의 여러 기능을 설명한다. “고통은 우리로 하여금 삶의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인지 묻게 한다”며 “설령 고통의 의미가 우리 앞에 훤히 드러난다 해도, 아직 준비가 되어 있지 못하면 그것은 우리의 답이 되지 못한다”는 것. “고통의 의미를 깨닫는 날 우리는 고통에서 도망치려 하기보다 오히려 고통을 동경하게 될지도 모른다”고도 한다.

하지만 고통 중에 있는 이들에게 이 정도 대답으로는 안 되겠던지 마지막에 “‘신이 인간을 사랑했다면, 왜 고통과 불행과 죽음을 주었는가?’ 묻는 이에게 역시 고통은 속앓이의 복판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에게도 고통과 불행과 죽음은 피할 수 없는 주제였습니다. ‘신이 인간을 사랑했다면’이라는 전제로 미루어보건대, 묻는 이는 어렴풋이 그 답이 사랑에 있다는 역설적인 진실을 직관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고 진술한다.

책을 보면서, 최근 천주교는 확실히 ‘이미지 메이킹’을 전략으로 잘 활용한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게 아니라면 “해답을 모르고 있구나” 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 변죽만 울려댔기에 책은 ‘불신자’들도 거부감 없이 읽을 수 있고, 천주교에 다분히 호감을 갖고 마음에 작으나마 위로도 얻을 수 있다. 이병철 회장의 질문에는 ‘신’에 대해 다소 날이 서 있는데, 잘 순화시켰다.

이에 비해, ‘오직 예수’를 말하는 기독교는 ‘배타적’이고 ‘독선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오직 예수’를 세련된 접근으로 전할 방도도 물론 연구해야겠지만,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가. 그러나 이러한 질문에 잘 대답할 수 있고 대답해야 마땅한 기독교는, ‘우리끼리 물고 뜯는’ 내전에 휩싸여 바깥의 애타는 소리를 듣지 못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는 내부 비리를 철저히 덮어두고 ‘고풍스런 성당이 결혼 장소로 인기를 끈다’는 뉴스까지 일간지에 내보내는 천주교에 배워야 할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