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연하고 있는 이어령 박사. ⓒ크리스천투데이 DB
“신학(神學)에서 ‘ㄴ’ 받침 하나만 빼면 시학(詩學)이 되지 않습니까? 시를 읽듯이 소설을 읽듯이 성경을 읽으면 어렵던 말들이 나에게 더 가까이 다가올 것입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이나 믿지 않는 사람이나 다같이 읽을 수 있는 성경, 우리가 쓰러졌다 일어서는 법과 미움을 넘어서는 사랑의 수사법과 등 돌린 사람을 포옹하는 너그러운 몸짓이 무엇인지 말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한국의 대표적 지성’ 이어령 박사는 지난 2007년 세례를 받기 전부터 성경을 읽었고, 자신의 강의에서 가르쳐 왔다. 그에게 성경은 수천년간 전세계 수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온 ‘베스트셀러’이자, “종교 이전에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의 시요 소설이요 드라마로, 또한 생생한 철학을 담은 생명의 책으로 존재해 왔기 때문”이다.

“안 믿는 사람, 무신론자, 기독교를 반대하는 사람, 지식 많은 사람들이 마음을 비우고 그냥 성경을 읽어보면 우선 재미있고 드라마틱하고 속이 후련해지기도 합니다. … 사물을 바라보는 충격적인 시선을 경험하게 됩니다. 저는 예수님을 믿기 전부터 성경을 수사학 텍스트로 강의해 왔습니다. 제가 강의를 하면 학생들이 웃고 박수치고, 어떤 때는 탄성을 질러요. 안 믿는 학생일수록 더욱 그렇습니다.”

그래서인지 회심 이후 그는 강연을 통해 성경을 “신학이나 교리는 잘 몰라도 문학으로, 생활로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하는 일에 힘써왔다. <지성에서 영성으로>,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를 잇는 신간 <빵만으로는 살 수 없다(이상 열림원)>에서도 그는 문학적 레토릭과 상상력, 그리고 문화적 접근을 통해 성경의 언어들이 얼마나 아름답고 눈물겹고 황홀한 것인지를 직접 느끼게 한다.

‘성경을 알면 사람이 보인다-이어령의 바이블시학(Bible poetics)’이라는 부제를 단 책에서 그는 예수님이 여러 비유를 사용했듯 집과 빵·떡 같은 일상의 친근한 언어를 통해 성경에 접근한다. 그리고 이러한 단어들이 등장하는 성경의 여러 장면들을 문학적·기호학적으로 다양하게 돌아보면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예수님의 세 가지 시험, 누가복음 15장의 세 가지 비유, 포도원 관련 여러 비유 등이다. 이러한 그의 주장들은 지난 2년간 이재철 목사(백주년기념교회)와의 대담 ‘지성과 영성의 만남’, ‘문화로 성경읽기’에서 여러 차례 나왔다.

그는 예수님도 구약성경의 말씀을 많이 인용하셨고, 민중들이 알아듣기 쉽게 당시 떠돌아다니는 이야기를 활용하기도 하셨다며 “예수님 말씀을 아주 어렵게 해석하는 건 잘못”이라고 말한다. “진짜 진리는 쉬운데, 그것에 무거운 주석을 다는 사람들이 그걸 어렵게 만든다”는 것이다. 신학도 아주 어렵다지만, 근원을 파고들면 오히려 쉽다고 그는 덧붙인다.

존재하지만 본 적 없는 영적 세계, 사이버 세계로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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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설명하기 쉽지 않은, ‘분명 존재하지만 본 적 없는 세계’인 영적 세계를 그는 ‘사이버 세계’로 명쾌하게 비유한다. 여기서 키워드는 ‘접속(access)’이다. 종교를 영어로 릴리전(religion)이라고 하는데, 어원이 끊어진 것을 다시 잇는다는 뜻이라며 종교란 신과 인간의 단절된 관계를 다시 잇는다는 풀이다. 유목생활을 하던 과거에는 목자가 양들을 몰고 오듯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것이었지만, 인터넷 시대에는 성도들을 하나님께로 ‘접속시켜야’ 한다고 그는 주장한다.

컴퓨터 창에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치면 가상현실의 사이버 세계로 접속되듯, 목회자들은 키보드와 마우스처럼 예배 시간에 우리를 하나님 나라에 접속시킨다. 마우스나 키보드가 없으면 접속할 수 없지만, 그 키보드나 마우스가 잘 작동하지 않는 경우 바꿀 수 있다. “마우스나 키보드가 잘못됐다고 접속하려는 세계가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목사님을 절대화해서 목사님 흉보는 걸 기독교를 부정하는 걸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는 액세스의 의미, 하나님의 세계를 잘못 알거나 모르는 사람들 이야기입니다.”

“하나님 있다는 거 봤어? 하나님 나라가 어디 있어?”라고 따지는 젊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계시는 하늘나라는 바로 인터넷 같은 사이버 세계”라고 하면 고개를 끄덕거리지 않겠냐는 것이다. 인터넷 가상 세계를 이용해 설명하면 사이버 세계에서 접속을 교란하는 버그(bug)는 하나님 세계로 나아가는 것을 방해하는 마귀와 같다.

가상 세계는 접속할 수는 있어도 그 세계에서 살 수는 없다. 하늘나라, 성스러운 곳, 사랑과 정의, 이런 모든 추상적 가치나 인간이 살아있는 채로는 도저히 갈 수 없는 가상의 세계는 접속할 수밖에 없다. 실체가 없으니 부술 수도 없고, ‘접속’해야만 한다. 접속에는 또 ‘용기’가 필요하다. 낯설다고 머뭇거려서는 안 되고, 한번 해보겠다, 다가가 보겠다는 용기가 필요하다.

하나님께 접속하기 위해서는 형식적인 것들도 무시할 수 없다. “믿음이 중요하지, 성경이 뭐가 중요해? 주일마다 교회 가는 게 뭐가 중요해? 기도 좀 게을리하면 어때” 하면 안 된다. 이는 <알리바바와 40인의 도둑>에서 도둑들이 알리바바를 해치기 위해 문에 표시를 해두었지만, 슬기로운 하녀처럼 다른 집에도 모두 똑같은 표시를 하면 찾을 수 없는 것과 같다. 접속하려면 특별한 표시, 특별한 주문인 패스워드, 비밀번호가 필요하다.

인터페이스(접속 환경)가 잘못되면 사이버 세계에 접속할 수 없는 것처럼, 코너스톤(주춧돌)이 잘못 놓이면 하나님 세계에 접속할 수 없다. 그래서 오늘날 교회나 종교는 인터페이스를 편하고 쉽게 만들어야 한다. 그걸 게을리하니 하나님 나라와 사람의 접속이 잘 안 되어 나날이 멀어지기만 한다. “인터넷에는 어마어마하게 좋은 자료가 많습니다. 방대하고 놀라운 지식이 클릭 한 번으로 내 머릿속으로 들어오는 겁니다. 하늘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세계에도 공짜로 전해주는 놀라운 진리들이 잔뜩 있는데, 접속이 제대로 안 돼서 모르고 지내는 겁니다.”

하지만 제아무리 좋은 것들이 잔뜩 있어도 그 세계를 게임이나 하고 재미나 찾는 세상 정도로 생각한다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접속하려는 사람의 태도도 문제인 거죠. 교회 다니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건성으로 다니는 사람들은 귀하고 아름다운 보석 같은 진리를 찾지 못합니다. … 하나님의 세계로 잘 접속시킬 수 있는 교회와 목회자, 접속한 후에 귀한 이야기를 들으려 귀를 쫑긋 세우는 사람들이 있어야 하나님 세계는 더 풍요로워지겠지요.”

“나는 나중 온 자이지만… 하나님의 계산법에 희망”

책에는 70여년간 무신론자였던 ‘한국의 C.S. 루이스’답게 날카로운 기독교 변증도 여러 번 선보인다. 종교와 과학의 관계에 대해 그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인간 세상의 논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성경을 논리적으로 이해하려다 보면 욥처럼 됩니다. 하나님이 ‘욥아, 내가 악어 만들 때 너 있었어?’ 그러시잖아요. 그것은 우리는 알 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누군가 ‘설명할 수 있는 것을 설명하는 게 과학’이라고 했는데, 과학이라는 건 아무리 위대한 과학자라도 설명할 수 있는 것만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종교는 설명해서는 안 되는 것을 자꾸 설명하려 드는 것이다. 그래서 기독교는 도그마에 얽매이면 안 되고, 피가 통하는 생명의 이야기로 읽어야 한다. “저는 기호학과 문학을 공부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소설을 보다가도 앞뒤가 안 맞으면 ‘이 소설은 기본이 안 됐다’고 판단합니다. 아무리 치밀한 머리, 상상력이 뛰어난 작가라도 인간이 만든 것은 허점이 많습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겉으로는 믿기 어렵지만 그 의미를 따지고 들면 빈틈없이 앞뒤가 들어맞는 이야기들이 가득합니다.”

“당신같이 공부 많이 하고, 과학도 아는 사람이 남자 갈비뼈로 여자를 만들었다는 천지창조설을 믿으시오? 처녀가 혼자서 수태했다는 이야기를 믿으시오?”라고 물으면 이렇게 반문한다. “아니, 그렇게 안 믿어지세요?” 그러고는 덧붙인다. “우리가 아는 그 유명하고 뛰어난 사람들도 다 죽고 잊혀지는데, 2천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예수님의 이름을 알고 무릎을 꿇지. 성경이 왜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보다 세계 구석구석까지 많이 읽혔겠어요? 나는 천지창조든 동정녀 이야기든 그 사실을 믿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행적으로 보아 ‘거짓말’ 하실 분이 아니라는 걸 믿는 거야. 예수님을 아는 제자들은 다 참혹한 형을 받고 순교했지. 당신 과학자의 말 믿지, 과학이니까? 그런데 그들을 위해 목숨 내놓을 수 있어?”

이어령 박사는 ‘나중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마 20:16)’는 포도원 품꾼의 비유 말씀을 읽고 희망을 가졌다고 한다. “남들 다 젊었을 때 세례 받고 아침부터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저는 이게 뭐에요. 이제 와서 알지도 못하는 성경 얘기나 하고, 그럴 때마다 가슴이 뜨끔뜨끔한데 하나님은 품삯을 똑같이 주시잖아요. 제가 할렐루야 하지 않겠어요? 늦게 온 사람이 먼저 온 사람보다 후대받았을 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깨달을 수 있습니다.”

성경의 ‘빵’은 왜 ‘떡’으로 번역돼선 안 되는지 설명하기 위해 책을 썼다는 그는 “제가 늦게 온 건 맞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직 일을 제대로 안 하고 있어서 1데나리온도 못 받을 것 같기도 합니다. 그래서 열심히 이 포도밭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지요.” 늦게 왔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고 있는 그에게 더 기대를 가져도 좋을 듯 싶다. 책 마지막에서 “본격적으로 성경을 논할 나의 ‘성경 독서 고백’을 나눌 기회를 가져보려 한다”고 했기 때문이다.

“‘빵만으로는 살 수 없다’는 완성된 문장처럼 보이지만 그 뒤가 비어 있습니다. 빵만으로 살 수 없다면 무엇으로 살아야 하는지 그 빈칸을 찾아 채워줘야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