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석 목사(한국이란인교회 담임, 4HIM 대표)
일반적으로 성탄절을 12월 25일에 지키지만 세계 최초로 기독교 국가를 선언한 아르메니아 계통의 기독교인들은 1월 6일로 지키기 때문에 성탄 장식을 1월 둘째 주까지는 철거하지 않고 축제 분위기를 유지하는 것이 보통이다. 2011년 성탄 축제의 분위기가 지나가기 전에 이슬람의 이싸(Isa)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것이 좋겠다. 많은 사람들이 이슬람 측에서 주장하는 말을 순진하게 곧이듣고 기독교에서 예수라고 부르는 그 분을 이슬람에서는 이싸(Isa)라고 부를 뿐 같은 인물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착각 현상이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성경의 예수와 이슬람의 경전인 꾸란과 하디스에서 말하는 이싸를 비교해 보면서 이들이 얼마나 다른 인물인가를 확인하는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참고로 이슬람의 자료에서 고유명사를 인용할 때는 성경의 내용과 혼동을 피하기 위해서 이슬람식 이름으로 통일해서 인용했다는 것을 밝힌다.

우선은 탄생에 대한 기록을 비교해보자.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예수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서 태어나신 분이다. 그러나 꾸란의 이싸는 아담처럼 흙으로 만들어서 알라께서 “되라” 혹은 “있어라”라고 말씀하심으로 태어났다고 말하고 있다.(꾸란3:59) 이점에 있어서 최영길 역 꾸란의 각주 설명에 보면 “아담도 흙을 빚어 “있어라”하는 알라의 말씀으로 창조되었으니 이싸도 그와 마찬가지로 동정녀 마리아의 태내에 “있어라”하는 말씀으로 창조된 인간으로 보아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김용선 역 꾸란에는 좀 다른 해석이 보인다. “이싸가 처녀의 몸에서 태어난 것과 같이 아담도 부모 없이 흙으로 빚어졌다. 모두 기적에 의한 탄생이다”고 설명하고 있다. 두 분이 해석에 있어 중요한 차이를 보이는데 최영길 역은 아담과 이싸가 말씀으로 창조되었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하는 반면 김용선 역은 기적에 의한 탄생이라는 공통점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 분들은 꾸란의 모순을 감추기 위해서 자의적으로 해석한 경향이 있다고 생각된다. 꾸란의 영문 번역 10가지를 살펴보면 모두가 본문을 예외 없이 두 문장으로 분리해 놓았다. 첫째 문장은 “이싸는 알라 앞에서 아담의 경우와 같다”는 내용이다. 그리고 두 번째 문장은 이싸와 알라의 어떤 부분이 같은가를 설명하고 있는데 “그분은 흙으로 그를 만들어 놓고 “되라”고 하시니 그가 되었더라”고 기록되어 있다. 즉 이싸도 아담도 모두 흙으로 만들어 놓고 “되라”고 말씀하시니 그들이 탄생했다는 것이 정직한 번역이라고 보인다. 이것은 두 말할 필요도 없이 성경과는 천양지차의 내용이다.

꾸란에 나오는 이싸의 탄생 기록은 이것뿐이 아니다. 꾸란에 보면 “들판에서 종려나무에 기대어 산고로 괴로워하는 마리얌에게 천사가 발밑에 샘물을 나게 해서 그녀는 그것을 마시고 종려나무를 흔들어 떨어지는 열매를 먹고 힘을 내어 출산한 후 아이를 안고 동네 사람들 앞에 나타났다. 마을 사람들은 마리얌이 아론의 누이로서 처녀의 몸으로 출산한 것을 보고 그녀의 부도덕성을 지적하며 조롱하니 그녀의 품에 안겨 있던 갓 태어난 이싸가 자신은 알라의 종이며 예언자로서 알라께서는 자신에게 성서를 주셨으며 자신은 축복받은 자라고 말했다”고 기록하고 있다.(꾸란19장16-34) 꾸란에서 말하는 본문의 배경은 동네 사람들이 그녀의 출산을 조롱하는 것을 보면 호적을 신고하러 잠시 방문했기에 아는 사람들이 없었던 베들레헴이 아니라 그녀를 잘 알고 있었던 동네 사람들이 살고 있던 갈릴리라고 생각된다. 베들레헴 사관의 구유에서 태어난 성경의 예수와 갈릴리 지역 들판에서 태어난 꾸란의 이싸는 분명 다른 인물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그 뿐 아니라 아론의 누이라면 성경의 미리암을 말하는데 그녀는 레위지파 소속이었으며 유대지파였던 예수의 모친 마리아와는 약 1500년 정도의 시대적인 차이가 있는 사람이다. 그 마리얌의 아들이 이싸라면 그는 성경의 예수와는 전혀 다른 사람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김용선 역 꾸란의 각주에는 이 점에 대해서 ‘성서’에 관한 무함마드의 지식이 부정확하여 혼돈하고 있다고 솔직하게 설명하고 있다.

꾸란의 이싸는 흙으로 만들어 놓고 “되라” 혹은 “있으라”하는 알라의 말씀을 통해서 태어났을까?(꾸란3:59) 혹은 레위 지파인 아론의 누이 마리얌을 통해서 갈릴리 들판에서 태어났을까?(꾸란19:16~34) 한 사람이 두 가지 방법으로 태어날 수 없다는 것이 일반 상식이라면 꾸란에 기록된 두 구절 중의 하나는 거짓말일 것이다. 그러나 이슬람에서는 나중 계시에 의해서 이전 계시는 자동으로 취소된다는 만쑤크(Mansukh) 교리 혹은 새로운 구절로 대체된다는 나쓰크(Naskh) 교리가 있기에 어떤 내용이 나중에 받은 계시인가만 구별할 수 있다면 무슬림들에게는 문제될 것이 없을 것이다.

또 한 가지 생각해 봐야 할 부분은 이싸의 사역이다. 꾸란의 이싸도 기적을 행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는 소경과 문둥이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게 할 뿐 아니라 진흙으로 새의 형상을 만들어 숨을 불어넣어 새를 만드는 기적을 행했다고 한다.(꾸란3:49) 그러나 꾸란의 이싸는 기적을 행하되 알라의 허락으로 행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성경의 예수는 자신의 능력과 권세로 기적을 행하여 제자들을 놀라게 했다. 성경의 예수는 죽은 소녀를 살릴 때 “소녀야 일어나라”고 말씀하셨지 “하나님! 이 소녀를 제발 일으켜 주옵소서”라고 기도하지 않았다. 꾸란의 이싸는 한 사람의 피조물이었지만 성경의 예수는 죽은 자를 살리는 능력을 가진 생명의 주인이시다.

또 한 가지 두드러진 차이는 십자가 부분이다. 꾸란의 이싸는 십자가에 죽지 않았고 알라께서 다른 제자의 얼굴을 이싸의 얼굴처럼 바꿔놓은 것에 속은 원수들이 엉뚱한 사람을 죽였으나 이싸를 죽인 것처럼 보였기에 십자가에서 죽은 것으로 추측했으며 사실은 죽지도 않았고 부활도 하지 않았고 산채로 승천했다고 주장한다.(꾸란4:157-8) 그러므로 십자가와 부활이 없는 꾸란의 이싸는 인류의 죄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없으므로 성경의 예수와는 완전히 다른 인물이다.

이번에는 이싸가 세상에 온 목적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는 꾸란의 구절을 생각해 보자. 이싸는 두 가지 목적을 위해서 세상에 왔다고 하는데 첫째는 구약이 진리라는 것을 확증해 주기 위해서 그리고 둘째는 장차 아흐마드(무함마드와 같은 뜻)가 세상에 올 것을 미리 알려주기 위해서 왔다고 이싸가 자신의 입으로 말하는 장면을 꾸란에 기록해 놓고 있다.(꾸란61:6) 예수께서 세상을 구원하러 오신 그리스도 즉 구세주라는 것을 부인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일2:22)라고 성경이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슬람에서는 성경의 예수와 전혀 다른 이싸라는 인물을 만들어 놓고 거짓말 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또 한 가지 부분에서 이싸와 예수는 매우 중대한 차이가 있는데 그것은 마지막 선지자에 관한 부분이다. 성경은 예수께서는 율법과 선지자의 마침이 되시고 인류 구원을 위해서 오신 분으로서 스스로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 되신 분이라고 자신을 소개하고 있다.(계22:13) 그런데 꾸란에 의하면 무함마드는 자신이 마지막 선지자라고 주장하고 있다.(꾸란33:40) 성경은 수천년 동안 구름 같은 증인들과 구약의 많은 선지자들의 증거를 통해서 진리라는 것이 증명되었으나 꾸란은 무함마드 혼자서 지브리일 천사를 통해서 계시를 받았다면서 자신이 마지막 선지자라고 주장하고 있기는 하지만 자신의 주장 외에는 아무도 다른 증인이나 증거가 없다는 것이 치명적인 약점이다.

또한 이싸의 재림에 대한 차이를 비교해 보는 것도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꾸란에 이싸의 재림에 관해 말하는 부분은 한 곳 뿐이다. 단순하게 “이싸의 재림은 심판이 다가옴을 예시하는 것이라. 일러 가로되 그 시각에 대하여 의심치 말고 나를 따르라 이것이 옳은 길이라”(꾸란43:61)고만 기록하고 있고 자세한 설명은 없다. 그러나 이슬람의 전통에 의하면 “이싸는 재림하여 이슬람을 위해서 싸울 것이며 십자가를 깨뜨릴 것이며 돼지들을 죽이고 이슬람세를 없앨 것이다. 알라께서는 이슬람 외의 모든 종교를 없앨 것이다. 그는 악한 자를 멸하고 40년을 살다가 죽을 것이다”(Sunnan Abu Dawud 37:4310)라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 십자가를 깨뜨릴 것이라는 말은 기독교를 없앨 것이라는 말이다. 필자는 이 부분이 궁금하여 이슬람 학자에게 이싸가 재림하여 왜 자신을 사랑하는 기독교인들을 심판한다고 하는지 그 이유를 물었더니 대답이 걸작이었다. 이싸가 하나님이 아닌데 기독교인들이 주님 혹은 성자 하나님이라고 부르며 섬기기 때문에 알라께서 진노하셔서 이싸를 꾸짖으시니 이싸가 너무 속상하고 괴로워서 재림하면 기독교인들을 심판하고 십자가를 꺾어 버리고 세상의 종교를 이슬람으로 통일할 것이라는 설명이었다.(꾸란5:116~118)

성경의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데(요한3:16) 꾸란의 이싸는 알라의 아들이 아니며 알라는 아들이 없다고 강조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알라에게 아들이 있다고 하는 자들 때문에 알라의 진노가 심히 크다고 기록하고 있다.(꾸란19:88-91) 성경에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고백하는 베드로에게 천국 열쇠를 주시겠다고 축복하시는 것을 볼 수 있는데(마16:16-19) 꾸란에서는 오히려 이싸를 주님이라고 부르는 자들은 이미 믿음에서 떠난 자라고 저주를 선포하고 있다.(꾸란5:17) 꾸란의 이싸는 “오직 나의 주님이며 너희의 주님이신 알라(Allah)만을 믿으라”고 선포하고 다니던 무슬림 선지자들 중 한 명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꾸란5:72~75) 성경의 예수는 하나님을 항상 아버지라고 불렀지 알라(Allah)라고 부른 적이 없다. 어떻게 예수가 자신이 죽고 거의 600년이 지난 후 무함마드가 만든 종교인 이슬람교를 믿을 수 있다는 것인가?

이 외에도 수많은 차이가 있지만 이 정도만 비교해 봐도 무슬림들이 주장하듯이 꾸란의 이싸가 성경의 예수와 같은 인물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생각 없이 이슬람의 주장을 수용하여 우리가 같은 예수를 믿고 있다는 황당한 말을 하여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무슬림들이 회개하고 돌아와 천국에서 영광을 누리며 영원히 살 수 있기를 원한다면 성경의 예수를 올바로 가르쳐 주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