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옥 교수(기독문학 작가, 영문학 박사, 영남신대 외래교수).
강의를 듣는 학생 가운데 애기엄마 학생이 있다. 애기엄마보다는 산모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이번 학기가 시작되던 9월, 첫 강의 시간에 그녀는 만삭이 다 된 몸으로 강의실에 들어왔다. 내가 보기에는 분만일이 일주일도 채 남지않았을 것 같았다. 아마 첫 시간에 강의를 듣고 휴학을 하려나 보다라고 생각하였고 불러오는 배로 버스를 타고 힘겹게 오가며 1학기를 마쳤을 그녀가 한편으론 대견해 보였다.

강의시간 내내 그녀는 매우 진지하게 공부를 했다. 그리고 토의 시간에 ‘삶을 담아내는 문학과 기독교적 세계관’이라는 주제에 대하여 열정적으로 의견을 개진하고 질문을 하는 적극성도 보였다. 그 학구적인 태도가 인상적이었고 나는 매우 기분이 좋았다. 그 때문에 나는 강의를 마치고 먼저 그 학생에게로 가서 손을 잡고 건강한 아기를 출산하게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순간 그녀의 눈에 짙은 불안감이 스쳐갔다. “교수님, 제가 나이가 너무나 많은데 이 아이를 무사히 출산할 수 있을 까요?” 그녀는 내 손을 꼭 잡고 마치 도움을 청하듯 이렇게 말했다. “생명은 하나님의 영역이니 맡기고 마음을 편안하게 가지세요.” 나는 그녀의 등을 다독여 주며 조금이라도 용기를 주려고 애를 썼다.

다음 주에 예상대로 그녀는 결강을 했고 사내아이를 출산했다. 그날 함께 강의를 듣는 친구들로부터 나는 그녀와 관련된 몇 가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는데, 친구들 역시 그녀의 늦은 출산에 대해 매우 걱정을 했으며 때때로 학교의 기도방에 함께 모여 기도해왔다고 했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 마음은 따뜻해지고 안심이 되었다.

그런데 출산 소식을 듣고 이주일이 지났을 때였다. 그녀는 느닷없이 보따리 같은 것을 가슴에 안고 강의실로 들어왔고 그 옆에는 또 한 학생이 큰 가방을 들고 있었다. 전혀 예상할 수 없는 일이기에 처음엔 별 생각없이 안부를 물었는데 다시 보니 친구가 든 가방 속에서 젖병과 일회용 기저귀가 보였고 가슴에 안은 포데기 속에는 3주 전에 태어난 신생아가 안겨 있었다.

나는 많이 놀라고 당황했다. 산모의 얼굴이 퉁퉁 부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 겨우 3주를 지났으니, 한참 누워서 몸조리를 해야 할 때인데, 신생아 역시 그렇다. 두세 시간 간격으로 수유하는 건 엄마가 함께 있으니 그렇다 치더라도 아이를 하루종일 포대기에 꽉 싸놓는 건 문제다. 꽉 싸서 안고 있거나 강의실 책상 위에 눕혀 놓으니 아이는 발로 차거나 팔다리를 움직일 수가 없다. 신생아 일개월 동안은 아이가 힘차게 발로 차고 팔다리를 움직여야 하는데.

어디 그뿐인가. 아가가 언제 턱을 들어 올리며 고개를 세우려 애쓰는지, 엄마의 목소리에 작은 반응을 보이는지 어떻게 살필 수 있으며 대기와 환경의 오염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야 하다니, 생각할수록 이건 아기와 산모 모두에게 아닌 듯 했다. 학교에 알아보니 산모는 휴학계를 내지 않았고 그날 아침도 다른 학생들과 같이 스쿨버스를 타고 애기를 안고 보따리를 들고 학교로 왔다고 했다. 나는 강의 시간 내내 말도 하지 못하고 아기와 산모는 걱정이 되고해서 마음이 무거웠다.

그런데 한날 내가 맘으로 신뢰하고 또 경애하는 학생 하나가 조용히 내게 오더니 “교수님. 그 학생은 자기의 최선이라고 생각하고 기독문학 강의를 선택했으니 너무 심려 마세요. 저희가 도와드릴께요” 라고 말하면서 사려 깊은 태도로 나를 안심시켰다. 이 시니어 학생은 시골 교회를 섬기고 있는 장로님이신데 정말, 정말로 괜찮은 학생이다. 나는 이 학생에 대하여는 나중에 따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그날부터 시니어 학생은 산모와 애기를 자기 차에 태워 집으로 데려다 주고, 친구들은 산모의 짐을 들고 함께 강의실로 오간다. 산모의 선택 잘잘못 이전에 나는 이처럼 배려 깊은 나의 학생들을 보면서 산모와 애기에게 어떻게 해야 하나를 고민하지 않을 수가 없다. 우선은 내 걱정을 놓는 일이 먼저일 것이다.

뇌를 연구하는 학자들의 실험에 의하면 태아는 엄마의 자궁 속에서 일어난 일을 기억한다고 했다. 울고 있는 갓난아기에게 자궁에 있을 때 녹음한 엄마의 심장 박동소리를 들려주면 놀랍게도 아기는 울음을 멈추고 편안히 잠을 잔다고 했다. 아기는 뱃속에서 들었던 심장박동 소리를 기억하고 평안함을 느끼는 것이다.

아마 이 학생의 아기도 나중에 내 강의 시간에 들었던 얘기를 기억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엄마 친구들이 베풀어준 호의와 친절을 잊지 않을 수도,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가 하나님 사랑하는것, 그 빛과 생명의 언어적 형상화를 꼭 기억해 주었음 좋겠다.

/송영옥 박사(영문학, 대신대 외래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