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근 목사(온누리선교교회).
1 여룹바알이라 하는 기드온과 그를 좇은 모든 백성이 일찌기 일어나서 하롯 샘 곁에 진 쳤고 미디안의 진은 그들의 북편이요 모레 산 앞 골짜기에 있었더라 2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너를 좇은 백성이 너무 많은즉 내가 그들의 손에 미디안 사람을 붙이지 아니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이 나를 거스려 자긍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니라 3 이제 너는 백성의 귀에 고하여 이르기를 누구든지 두려워서 떠는 자여든 길르앗 산에서 떠나 돌아가라 하라 하시니 이에 돌아간 백성이 이만 이천 명이요 남은 자가 일만 명이었더라 4 여호와께서 또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아직도 많으니 그들을 인도하여 물가로 내려가라 거기서 내가 너를 위하여 그들을 시험하리라 무릇 내가 누구를 가리켜 이르기를 이가 너와 함께 가리라 하면 그는 너와 함께 갈 것이요 내가 누구를 가리켜 이르기를 이는 너와 함께 가지 말 것이니라 하면 그는 가지 말 것이니라 하신지라 5 이에 백성을 인도하여 물가에 내려가매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무릇 개의 핥는 것같이 그 혀로 물을 핥는 자는 너는 따로 세우고 또 무릇 무릎을 꿇고 마시는 자도 그같이 하라 하시더니 6 손으로 움켜 입에 대고 핥는 자의 수는 삼백 명이요 그 외의 백성은 다 무릎을 꿇고 물을 마신지라 7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물을 핥아 먹은 삼백 명으로 너희를 구원하며 미디안 사람을 네 손에 붙이리니 남은 백성은 각각 그 처소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 8 이에 백성이 양식과 나팔을 손에 든지라 기드온이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을 각각 그 장막으로 돌려보내고 그 삼백 명은 머물러 두니라 미디안 진은 그 아래 골짜기 가운데 있었더라

1. 기드온이 진을 친 하롯 샘의 하롯은 떨림이라는 뜻이다. 이 지명을 통해 추측할 수 있는 것은 이스라엘이 당시 미디안 군 앞에서 떨고 있었다는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기드온의 나팔소리를 듣고 모여온 32,000명의 군대가 너무 많다고 하셨다. 두려워 떠는 한 무리의 사람들은 이미 전쟁을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 영적 전쟁을 이기기 위해서는 먼저 영적으로 속사람 안에서 강건케 되어야 한다(엡 6장). 또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인수가 많으면 그들이 이긴 후 자신들의 능력으로 이겼다고 자긍할 것을 우려하셨다.

2. 영적 전쟁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은 담대함이다. 두려워하는 자들은 영적 전쟁에 참여할 수 없다. 베드로전서 5장 8절은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삼킬 자를 찾나니”라고 말한다. 마귀는 먼저 으르렁거리는 소리로 신자들을 두렵게 하여 꼼짝 못하게 한 뒤에 삼켜버리곤 한다. 가령 어떤 사람이 맹수를 만났을 때 문제는 순간 두려움으로 온 몸이 얼어붙어 꼼짝 못하는 것이다. 그럴 때 잡아먹힌다. 그러므로 우리 옛말에 호랑이에게 물려가더라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말이 있다.

영적 전쟁에서는 우선 두려워 떨지 말아야 한다. 두려워하는 자들은 이기지 못한다. 여호와께서는 두려워하는 자들을 돌려보내라고 하셨다. 그때 22,000명이 돌아갔다. 심약한 자들은 다른 군인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이제 10,000명이 남았는데 여호와께서는 기드온에게 아직 너무 많다고 하셨다. 그리고 이번에는 물을 마시는 것을 보고 전쟁할 자와 돌아갈 자를 구분하라고 하셨다. 물을 마시되 손으로 물을 움켜 개같이 핥아먹는 자와 무릎 꿇고 마시는 자를 구분해야 했다. 정병을 구분하는 비결은 목이 마를 때 물을 마시는 태도에 있다.

극심히 목마르면 너무 견디기 어렵고 절박하기까지 하다. 그렇게 목마르다가 물을 마실 수 있는 상황이 주어지면 평소에 나타나지 않던 그 사람의 됨됨이가 나타나게 된다. 사람들이 함께 있고 긴장한 상태에 있을 때에는 그의 진상을 알기 어렵다. 그러다 어느 날 자유로운 여건이 주어질 때 그의 원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게 된다.

손으로 물을 움켜 개처럼 핥아먹는 자는 전쟁 중 짧은 시간이라도 대적에 대해 깨어있는 자이다. 군대 용어로 물을 마실 때에도 사주경계를 하며 물을 마시는 것이다. 그러나 물을 마실 때 무릎을 꿇고 마시는 자는, 군사로서 단체 행동을 할 때에는 제법 싸우는 자같이 보일지라도 일단 자유로운 시간이 주어지고 물을 마실 일이 벌어지면 다 잊어버리고 그저 물 마시는 일에만 정신이 팔리는 자들이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상황에서도 깨어 있는 그러한 자들을 정병으로 선발하라고 하셨다. 기드온은 그렇게 개처럼 핥아 물을 마시는 300 명만을 미디안 정복군으로 삼아야 했다.

3. 성경은 이기는 자들을 중심으로 씌어진 책이다. 이기는 자들이란 자신들을 위한 자들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하여 싸우는 자들이다. 우리는 특히 사사기에서 이기는 자들의 노선을 볼 수 있다. 여러 사사들을 통해 이기는 자들의 특징을 보게 된다. 기드온과 함께 선발된 300 명의 용사들은 이기는 자들의 전형이다. 과연 이기는 자들은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반대로 실패자들은 어떠한 특징을 가지고 있는가?

가장 먼저 돌아간 20,000명은 싸움 자체를 두려워한 자들이다. 이러한 자들은 말할 것도 없이 낙제이다. 그러나 선발된 300명 외에도 10,000명은 두려워하지 않는 자들이었다. 그렇더라도 한 가지 더 시험해 볼 것이 있다. 그들이 여유로운 시간에 가장 기본적이고 절실한 문제에 부닥쳤을 때 어떤 식으로 반응하느냐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생계 문제가 이러한 시험이 된다. 어떤 사람은 자녀들의 교육 문제이며 또 어떤 사람은 남편과 아내의 문제이다.

이러한 시험이 닥칠 때 정병으로 발탁될 사람들은 그런 일들을 돌보되 거기에 완전히 빠지지는 않는다. 어디까지나 주님의 일을 주의하고 돌보는 것을 중심으로 모든 것을 행한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생계 문제와 자녀 문제, 배우자의 반대 등에 부딪힐 때 무릎을 꿇어버린다. 그들은 그 일을 일단 해결한 다음 섬기겠다고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은 이기는 자들의 전투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하실 것이다.

무릎 꿇고 물을 마신 자들은 자신들이 왜 자격이 없느냐고 따질지 모른다. 그러면서 물을 마신 다음 바로 싸움에 임하면 되지 않느냐고 할 것이다. 그러나 참 군대장관이신 주님은 물을 마시는 그 순간에도 대적을 주의하며 자신의 전투태세를 흐트러뜨리지 않는 자들을 주목하신다. 사탄은 결코 졸지 않기 때문에 영적 전투에 참여하는 자들은 언제나 깨어있는 자들이 아니면 안 된다.

9 이 밤에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내려가서 적진을 치라 내가 그것을 네 손에 붙였느니라 10 만일 네가 내려가기를 두려워하거든 네 부하 부라를 데리고 그 진으로 내려가서 11 그들의 하는 말을 들으라 그 후에 네 손이 강하여져서 능히 내려가서 그 진을 치리라 기드온이 이에 그 부하 부라를 데리고 군대가 있는 진 가에 내려간즉 12 미디안 사람과 아말렉 사람과 동방의 모든 사람이 골짜기에 누웠는데 메뚜기의 중다함 같고 그 약대의 무수함이 해변의 모래가 수다함 같은지라 13 기드온이 그곳에 이른즉 어떤 사람이 그 동무에게 꿈을 말하여 이르기를 내가 한 꿈을 꾸었는데 꿈에 보리떡 한 덩어리가 미디안 진으로 굴러 들어와서 한 장막에 이르러 그것을 쳐서 무너뜨려 엎드러뜨리니 곧 쓰러지더라 14 그 동무가 대답하여 가로되 이는 다른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사람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의 칼날이라 하나님이 미디안과 그 모든 군대를 그의 손에 붙이셨느니라 하더라 15 기드온이 그 꿈과 해몽하는 말을 듣고 경배하고 이스라엘 진중에 돌아와서 이르되 일어나라 여호와께서 미디안 군대를 너희 손에 붙이셨느니라 하고

1. 결국 전쟁은 믿음의 문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은 그 전날 밤 기드온의 믿음이 더 굳게 될 필요가 있음을 보셨다. 그리고 그에게 미디안 진영에 내려가서 어떤 말을 듣고 오라고 하셨다. 만일 혼자 가는 것이 두려우면 부하 중에 부라라는 자를 데리고 가라 하셨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에 대한 배려와 사랑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은 기드온에게 미디안을 물리치고 이스라엘을 구하라는 명령을 주실 뿐 아니라 그가 싸울 수 있는 믿음을 주시는 분이다. 이전에 기드온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것에 대한 증표로 사면 땅은 마르고 흰 양털 한 뭉치에만 이슬이 내리게 해달라고 했고, 또 반대로 사면 땅에는 이슬이 맺히고 흰 양털만은 마르게 해달라고 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의 요청대로 해주심으로 그분의 위임을 확인시켜 주셨다. 그러나 막상 결전을 앞뒀을 때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에게 더욱 확고한 믿음이 필요함을 아셨다. 그러므로 미디안 진중에 내려가 그들이 하는 말을 들으라고 하신 것이다.

2. 하나님은 당신 백성의 연약함을 아시며 작은 일로도 얼마나 큰 위로를 받는지 알고 계신다(매튜 헨리 주석). 우리는 기드온을 대단한 사람으로 알지만(300명으로 미디안 대군을 대파한 사람으로), 배후에는 하나님의 애정어린 배려가 있었다. 그렇게 큰 일을 하는 사람에게 이렇게 작은 말 한 마디가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데 우리는 매우 공감한다. 우리는 실상 그렇게 크지 않다. 크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누군가에게 믿음을 주신다면 그는 싸울 수 있고 승리할 수 있다.

우리도 많은 일에서 싸워 이기고 싶고 효과적으로 주님을 섬기고 싶을 때가 얼마나 많은가? 그러면서도 모든 것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좌절한 적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주님께 감사드리는 것은 조만간 주님께서 이런저런 면에서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고 돌보아 주시며(매우 작은 일일지라도), 그렇게 해서 믿음과 담력을 갖도록 도와주신다는 것이다. 주님은 마치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다. “보아라, 나의 자녀야, 내가 너를 이렇게 섬세하게 지키고 돌봐주고 있다.”

우리는 지난 날 죽을 것만 같았고 더 이상 소망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지금까지 주님을 위해 한 일이 너무 보잘 것 없는데, 주님을 위해 적어도 이런저런 일은 해야 할 것이 아닌가? 여기서 끝이란 말인가?”하며 탄식했다. 그러나 주님께 감사하자. 주님은 우리에게 주신 소원을 이룰 수 있도록 기회와 힘과 모든 것을 부여해 주신다. 그리고 그러한 약함과 질병과 어려움에서 돌보시고 지키시고 치료하신 하나님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의 장래 섬김과 싸움에 승리의 밑거름이 되는 믿음을 주신다. 그러므로 많은 작은 일 가운데서의 하나님의 돌보심은 장래 큰 일을 위한 하나님의 예비적인 공급임을 알 수 있다.

3. 기드온이 미디안과 아말렉과 동방 사람의 진영에 가보니 그 인수가 메뚜기 같이 많고 낙타가 해변의 모래와 같이 많았다. 그런데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이 자기의 꿈 이야기를 했다. 그 꿈은 보리떡 한 덩어리가 미디안 진영으로 들어와 한 장막을 쳐 무너뜨리니 장막이 넘어졌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친구가 말하기를 “이는 다른 것이 아니라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의 칼이라 하나님이 미디안과 그의 진영을 기드온에게 넘겨주셨느니라”고 했다. 즉 한 사람은 자기가 꾼 꿈을 말하고 다른 한 사람은 그것을 해석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보리떡을 칼로 해석한 것은 매우 기이하다. 보리떡은 아주 보잘 것 없다. 결국 미디안은 보잘 것 없는 한 덩어리 보리떡에 의해 패배한 것이다. 보잘 것 없어 보이는 보리떡(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말씀)이 그들에게는 칼이 된 것이다. 결국 미디안 진중에 쳐들어간 것은 기드온 자신이 아니라 기드온과 함께한 그리스도의 말씀이었다. 결국 영적 전쟁에서 대적을 쳐부술 수 있는 것은 말씀의 검이다. 좌우에 날선 검인 하나님의 말씀만이 영적인 전쟁을 이길 수 있는 검이다. 우리가 이 혼탁한 세상에서 싸워 이기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가져야 한다. 말씀을 갖는 것만이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 힘이다.

그렇지만 말씀은 믿음으로 취해야 한다. 기드온은 말씀을 가지고 나아가기 전 확고한 믿음을 가져야 했다. 하나님은 기드온으로 하여금 믿음의 담력을 먼저 갖게 하려고 미디안 진중에 들어가 그들의 말을 듣게 하시고 믿음을 갖게 하셨다. 하나님은 기드온으로 하여금 이 말을 듣고 충분한 믿음을 갖게 하시려고 진중에 보내신 것이다.

이 말을 들은 후 기드온은 더 머뭇거릴 게 없었다. 이것이야말로 확실한 승리의 증표였다. 기드온은 그 자리에서 하나님을 경배했다. 그리고 진에 돌아와서 이스라엘 군(300명)에게 진군 명령을 내렸다―“일어나라 미디안과 모든 진영을 너희 손에 넘겨 주셨느니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이다. 전쟁의 승패는 인수에 있지 않고 하나님이 누구에게 승리를 주시는가에 있다. 그리고 그 전투에서 요구되는 승리의 요건은 굳건한 믿음이다.

4. 보리떡은 당시 상황에서 음식으로서 큰 가치가 없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밀을 얻을 수 없을 때 보리를 먹는다. 평상시 보리는 사람보다 개들이나 가축의 음식이었다. 다른 한편으로 사람들, 특히 대적 미디안이 알아주지 않는 기드온을 상징했을 것이다. 미디안이나 혹 이스라엘도 기드온과 그의 무기와 실력에 대하여 생각했을 것이다. 그가 과연 이 전투에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므로 하나님이 보리떡으로 미디안 장막을 쓰러뜨렸다는 것은 하나님은 사람들이 보기에 아무 쓸모없고 무익한 도구를 가지고도 일하실 수가 있음을 나타내는 그림인 것이다. 그분은 가장 연약한 수단을 가지고도 친히 영광을 받으시며 많은 대적을 무너뜨린다는 것을 기억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