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 공화국’이라는 오명은 우리 사회에서 지워야 할 가장 시급한 과제가 됐다. 일조량이 줄어들고 쌀쌀해지는 지금은 ‘놀러가기 가장 좋은 때’이지만, 자살이 가장 많이 일어나는 때이기도 하다. 국가적으로 법률이 제정되는 등 자살방지 노력이 조금씩 시작되고 있지만, 아직은 많이 미흡하다. 특히 ‘생명 살리기’에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한국교회의 관심도 아직 생각만큼 크지 않다.

이같은 사회와 교계 분위기 속에서 2011 한국성경적상담학회(회장 장원철 교수) 학술대회 ‘자살과 성경적 상담’이 24일 오후 서울 사당동 총신대 제1종합관에서 개최됐다. 학술대회에서는 자살에 대한 이해(이상원 총신대 교수)와 상담학적 이해, 상담사례 발표(김미선 사모) 등이 이어졌다.

▲노원석 교수.
‘자살의 상담학적 이해’에 대해 발표한 노원석 교수(개신대)는 “더 이상 교회가 자살 문제를 드러내기 부담스럽거나 사소하게 여기면 안 되고, 이 순간도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으며 그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포함돼 있으므로 그들을 향한 관심과 치유의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취지를 밝혔다.

노 교수는 자살방지 상담의 설명에 앞서 ‘기독교인의 자살’에 대해 “절망적 환경에서 느끼는 두려움, 자살을 향한 유혹 등에도 하나님께 소망을 두기 때문에 신앙으로 이겨야 한다는 ‘당위적 책임감’을 갖고 있지만, 실제 기독교인의 자살률은 타 집단과 비슷하다”며 “엘리야, 욥, 모세 등 성경의 위대한 위인들도 자살 충동을 가졌던 것으로 볼 때 신앙인들도 자살을 생각할 만큼 고통스러울 수 있고, 극단적인 경우 자살을 시도할 수도 있다”고 언급했다.

자살방지 상담자에 대해 그는 “자살 시도자들은 살려달라는 이야기를 꺼리지만 절대적인 도움과 관심이 필요하고, 스스로 상담자를 찾아오지 않는다”며 “상담자는 그들을 찾아 나서야 할 책임이 있고, 상담이 온전히 이뤄진다면 분명 삶의 종착역을 향해 나가는 이들을 향해 온전한 하나님의 인도를 보여줄 수 있다”고 평가했다. 그리고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은 ‘경청’과 ‘공감’이다.

자살방지 상담, ‘경청’과 ‘공감’이 가장 필요

“경청이란 단순히 ‘듣는 것’ 이상”이라고 노 교수는 강조했다. 말에 수반되는 정성적 의사표현에 주의를 기울이고, 내적 삶을 지배하는 개인적 의미에 대한 단서에 귀를 기울이며, 감춰진 갈등이나 표현되지 않는 욕구, 표현할 수 없는 두려움이나 어렴풋한 소망을 잡아내야 한다. 기독교 상담자는 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그들의 아픔을 노출하도록 인도하는 ‘경청자’가 돼야 한다.

자신이 상담자가 아니더라도, 주변에서 자살하겠다는 위험, 자살과 관련된 말 또는 행동을 대수롭지 않게 여겨서는 안 된다. “무슨 말을 하는 거요? 자살을 하다니, 진심은 아니지요?”, “그래. 그럼 가서 해 보지 그래?” 등의 말은 의도하지 않았지만 그를 자살로 초대하는 셈이 되므로 해서는 안 된다. 상담자는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에게 기꺼이 경청하겠다는 태도 및 순수한 관심과 안정되고 확고한 자세를 취해야 한다. 그를 위해 가능한 모든 조치를 취하겠다고 주지시켜야 한다.

또다른 덕목인 공감에 대해 노 교수는 “삶의 고통과 죽음의 망설임 가운데 처한 이들을 상담하기 위해서는 공감능력을 계발하거나 훈련해야 한다”며 “그간 자살과 관련된 당사자나 가족들을 향한 한국교회의 시선은 ‘따스함’보다는 ‘차가움’에 가까왔던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자살충동을 상담하는 능력은 피상담자와의 관계의 질과 상담자가 보이는 관심에 달려 있다. 피상담자를 판단하지 않고, 진실한 공감의 관계를 맺으며 상담을 진행해야 하나님의 사랑과 지키심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노 교수는 “상담자는 ‘하나님을 보여주는 작은 창’이기 때문에, 크리스천 상담자는 피상담자가 지닌 아픔을 보듬는 참사랑의 모습을 보임으로써 하나님을 발견하게 한다”며 “생명의 근원 되시는 하나님께서 피상담자를 향한 놀라운 섭리가 있음을 상담자의 말과 행동, 마음으로 보일 때 피상담자는 절망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상담가가 아니라도 주변 사람들의 언행을 세심하게 관찰해야 그들의 자살을 막을 수 있다. “자살할 생각이 있다”고 직접적으로 말하거나, “다음 주에는 일터에 못 나올거야”, “이 시험이 마지막 시험일 것 같아요” 등은 자살을 생각하고 있는 말이다. 평소 우울증에 걸려 있거나 인생을 절망적으로 느끼던 사람이 오히려 안정감을 느끼고 긍정적 행동을 보이는 경우도 자살 결심이 섰을 수 있으므로 유의해야 한다. 밀린 부채를 청산하거나 귀중품을 정리하고, 오래 보지 못했던 이들을 만나는 경우도 자살을 암시하는 표현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거나 이혼을 당하는 등 극단적 상황을 경험한 사람들도 보살펴야 한다.

기도 한 번으로 모두 해결된다는 생각 버려야

보통 자살에 대한 생각을 심어줄 수 있으므로 “자살을 생각하고 있는가?”를 묻지 말라고 하지만, 이는 잘못된 생각이라고 노원석 교수는 지적했다. 자살에 연관된 마음과 생각을 드러내 표현하도록 해야 하고, 자살충동을 고백할 때 정죄하지 말고 진정으로 마음을 함께하는 공감과 부드러움으로 대해야 한다. “부끄러운 줄 알라”, “그렇게 생각하지 마”, “너는 너무 지나치게 생각해. 그게 바로 네 문제야”, “정신 좀 차려” 등의 말은 또다른 상처를 줄 수 있다.

영적인 문제로만 해결하려는 태도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기도 한 방’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며 기도해 주는 일은 삼가고, 문제의 핵심을 바로 보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성령의 은혜로 즉각적이고 강권적인 역사가 기도 가운데 당연히 일어날 수 있지만, 기도했는데 실제적인 치유가 즉각 이뤄지지 않으면 더 이상 가능성이 없다고 혼자 단정하거나 좌절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상담자가 모든 것을 속단하면서 명쾌한 답을 얻으려는 태도도 금물이다.

보다 전문적인 상담자에게 위탁하거나 직접 인계하는 것도 중요한 방법 중 하나다. 하지만 자살충동이 있거나 자살을 시도했던 사람이 찾아올 경우, 경험자에게 조언을 들으면서 직접 상담하는 게 가장 좋다. 위탁 결정은 회피하거나 떠넘긴다는 느낌이 들지 않도록 해야 하고, 위탁 과정에 피상담자가 참여하도록 한다.

상담자와 피상담자가 약속을 맺는 것도 매우 효과적이다. “만약 다음에 죽고 싶다는 심각한 생각이 들면 무엇인가 하려 하기 전에 나와 상의할 수 있겠습니까?” 등을 말이나 문서, 문자로 약속할 수 있는데, 관계맺기 차원에서 효과가 명백하다. 그 약속에는 △자살충동이 일어날 때마다 꼭 연락하기 △연락이 잘 안 되더라도 서로 그 문제를 이야기할 때까지 연락을 지속하기 △피상담자는 어떤 연락을 받든 지체 없이 귀찮아하지 않고 인내로 만나 대화하기 △위기가 지나갔다는 확신이 설 때까지 곁에 있어주기 등이 포함돼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에게 ‘삶의 소망’을 갖게 하는 일이다. 노 교수는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들의 치료와 행복은 하나님의 말씀과 뜻에 대한 성경적 가르침과 순종 없이 오지 않는다”며 “진정한 기독교 상담의 목적은 그들의 행복이 아니라, 그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도록 돕는 것이므로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에서 벗어나 하늘 소망을 갖도록 인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교회가 ‘생명 상담전문가’ 양성하자

노원석 교수는 “자살하는 기독교인이 점점 증가한다는 사실은 ‘어머니 품 같은 안식처’로서의 교회 역할에 안타까움을 갖게 만든다”며 “자살을 막는 일이 쉽지 않지만, 그들의 그 ‘고통의 여정’ 속에 과연 교회가 도움을 줄 수 없었느냐는 자괴감이 든다”고 토로했다.

‘모든 성도들을 인격적으로 돌볼 의무와 책임’을 가진 교회는 우울증 혹은 감당할 수 없는 어려움으로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이나 자살자 유가족들에게 더욱 세심하게 다가서야 한다. 노 교수는 “특히 자살자 유가족들의 깊은 상처와 수치감을 교회가 치유해야 한다”며 “교회의 작은 ‘가족공동체’가 길을 잃고 헤매는 자살 시도자 및 자살자 유가족들을 장기간동안 보살펴 줄 때 그들은 조금씩 회복될 수 있다”며 “자살충동에 마음을 돌린 이유로 ‘목회자의 말씀’이 제일 많은 데서 보듯 목회자의 역할 또한 중요하다”고 분석했다.

노 교수는 “무엇보다 기독교 상담전문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점점 문제를 가진 신앙인이 늘지만,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를 나누고 아픔을 매만져 줄 상담사는 부족하며, 더구나 자살을 생각하는 이들을 전문적으로 상담할 ‘생명 전문상담가’는 전무하다는 것이다. 그는 “가전제품이 고장날 경우 전국 어디서든 소비자 거주지 중심으로 서비스센터가 존재하듯, 한국교회가 힘을 합친다면 충분히 검증된 상담센터를 도시 혹은 지역마다 세울 수 있을 것”이라며 “우울증이나 감당하기 힘든 삶의 문제들이 발생할 경우 언제든 지역 기독교 상담연구소를 찾아가는 시스템이 구축되면 예방 효과가 충분하다”고 말했다.

개교회에는 ‘가정적 기능 강화’를 주문했다. 자살을 막는 가장 든든한 버팀목은 ‘가정’이지만, 소그룹의 상담 기능 강화는 가정 회복과 함께 현실적 대안이 될 수 있다. 노 교수는 “구역 단위 리더들에게 상담 교육을 시키고, 이들을 통해 구역원들 또는 지역에 믿지 않는 이들에 대한 상담사역을 감당케 하자”며 “이를 위해서는 목회자의 결단과 의지가 필요하고, 부교역자 혹은 평신도 지도자에게 상담교육을 시키고 목양을 맡기는 ‘동반자적 목회 파트너십’ 없이 이는 불가능하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