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모든 영역에서 점점 더 가속도가 붙어가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인터넷에 접속하면 무한대로 펼쳐지는 정보의 바다를 대면하게 됩니다. 그 곳에서는 누가 더 짧은 시간 안에 더 많은 정보를 얻느냐는 보이지 않는 거대한 속도전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책 한 페이지를 오래오래 곱씹으며 읽던 기억은 이제 구시대의 일기장 속으로 자취를 감추어 가고 있는 듯 보입니다.

미술 전시의 장도 예외는 아닌 것 같습니다. 점점 더 거대한 규모로 기획되어갑니다. 수많은 작가들과 각양각색의 작품들을 한두 시간 안에 거뜬히 감상해 내는 일이 이제는 누구에게나 당연히 여겨지는 것 같습니다. 한 점의 그림 앞에 멈춰 서서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자리를 뜰 수 없던 기억도 구시대의 일기장 속으로 파묻혀 버려야 하는 것인지 안타깝기만 합니다.

멈춰 서서 보고 또 보고, 보일 때까지 보는 연습이 우리에게는 필요합니다. C.S. 루이스는 “거기 정확히 무엇이 있는지 선명히 보일 때까지 보고 또 보자”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한 점의 그림 앞에서 ‘영혼의 창’이 열리기까지 인내하고 기다려야 합니다. 긴 시간 침묵하며 잠잠히 기다리다 보면 어느 순간 창문이 열리면서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기 시작할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들의 가장 깊은 것은 감각이나 이성만으로는 깨달아지지 않습니다. 그것은 영혼의 눈으로만 볼 수 있는 것들입니다. 영혼의 눈을 뜨게 해 주어야 합니다. 영혼이 영혼에게 말을 건넬 수 있도록….

▲빈센트 반 고흐, 별이 빛나는 밤, 1889년, 뉴욕 현대미술관

이 그림은 너무 유명해서 또 너무 흔해져 버린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입니다. 어느덧 전 세계 사람들이 무조건 좋아하기에 이르게 된 그림 앞에서 멈춰서기란 더욱 어려운 일일지 모릅니다.

고흐는 보이는 세계를 다소 변형함으로써 보이지 않는 것들을 담아냈습니다. 화면의 2/3를 차지하고 있는 거대한 밤하늘이 안겨주는 황홀한 아름다움의 경험을 천천히 따라가 보는 것은 마치 밤하늘을 여행하는 듯한 희열을 저에게 안겨주고는 합니다.

블루와 레몬 옐로우의 강렬한 보색 대비를 이루며 뒤엉켜 소용돌이치고 있는 은하수의 물결은 고흐 특유의 거친 붓터치과 두꺼운 마띠에르(물감의 물성)의 사용에 의해 가슴을 쓸어 내리게 만드는 질감을 입고 화면 전체를 압도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그림 앞에 서면 그 색채와 질감의 인상이 어찌나 강렬한지 가슴 속이 온통 휘저어지는 느낌마저 들어서 마치 내 안에서 저 밤하늘이 소용돌이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착각이 들 정도입니다. 대부분 불이 꺼진 다소 협소한 마을의 풍경은 밤하늘과 대조를 이루며 화면 하단에 묻혀 있습니다.

화면 좌편 하단에서 시작하여 이글이글 타오르는, 초록 불꽃처럼 하늘을 향해 올라가고 있는 비현실적인 크기의 거대한 나무는 고흐가 평소 자신을 투영하여 그리기 좋아했다는 사이프러스 나무입니다. (계속)

심정아 작가는 뉴욕 Parsons School 학사, 뉴욕 Pratt Institute 석사를 졸업하고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설치미술을 전공했으며 국립 안동대학교, 홍익대 조형예술대학, 경희대학교,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강사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