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켈란젤로는 청년시절에 이미 천재예술가로 인정을 받으면서 르네상스적인 완벽한 이상미와 보이는 외적 아름다움을 추구하여 최고의 찬사를 받았다. 그렇지만 인간 미켈란젤로는 예술의 노예가 되어 참 “안식”이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대표작이 된 <시스티나 천정화>를 완성한 37세 이후, 20년 가까운 황금 같은 시간을 거듭되는 실패와 좌절을 겪으며 완성작 하나 없이 허비하고 만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시기를 통하여 그의 영혼이 예술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향하도록 변화시켜가고 계셨다.

노년에 이른 그는 더 이상 예술의 노예이기를 거부하고, 그리스도의 고난과 구원에 동참하는 참된 그리스도인 예술가로서 살아가고자 최선을 다하게 된다. 그는 더 이상 보이는 외적 아름다움과 그 완성에 가치를 부여하지 않게 되고, 보이지 않는 영적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것에 참된 가치를 둘 수 있게 되었다.

청년시절 그에게 최초의 성공을 가져다준 <바티칸의 피에타>가 영적인 아름다움을 담아내기에는 지나치게 완벽하고 아름다운 “금 그릇”이었다면, 죽기 며칠 전까지도 작업하였던 <론다니니의 피에타>는 영적인 아름다움을 담아내기에 적합한 “깨어진 질그릇”과도 같았다. 그의 마지막 작품이자 마지막 자화상이기도 한 <론다니니의 피에타>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고난과 그것에 온 맘을 다해 동참하고자 하는 미켈란젤로, 그 영혼의 아름다운 자화상을 발견할 수 있다. 그는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길고 고되었던 여정을 무사히 마치고 이제 십자가에서 두 팔을 벌린 하나님, 그 눈물겨운 임재, 그 영원히 빛나는 구원의 항구에 도달한 것이다.

자신만만하고 욕망 가득한 “거인”과도 같았던 그의 영혼은 최고의 예술가 하나님의 손 안에서 다시 조각되어지고 다듬어졌다. 하나님께서는 그 쉽지 않은 작업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묵묵히 진행하셨다. 어쩌면 미켈란젤로가 완성단계에 이른 <론다니니의 피에타>를 망치로 부수고 다시 끌을 대었던 것은,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 그 섭리의 신비를 깨닫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나온 예술가로서의 뜨거운 반응이 아니었을까?

하나님의 긴 작업의 과정이 끝나고 드디어 그의 영혼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참 아름다움이신 예수님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이제 그의 삶 속에는 참 안식과 세상이 빼앗을 수 없는 참 기쁨이 찾아왔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것은 그에게 주어진 지상에서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후였다. 조금만 더 일찍 그 순간이 찾아왔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크다. 그랬더라면 인류와 미술의 역사는 그저 웅장하고 아름답기만 한 <시스티나 천정화>, 두려움으로 가득한 <최후의 심판>이 아니라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께로 이끌어주는 보다 영성 깊고 능력 있는 <시스티나 천정화>와 <최후의 심판>을 갖게 되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제 이 글을 마치며, 그가 죽기 10년 전에 바사리에게 보냈던 소네트를 다시 꺼내어 읽어보고 싶어진다.

“내 인생의 여정은 폭풍의 바다를 건너서
과거의 모든 행적을 적은 장부를 내야 하는
모든 이가 가야만 하는 항구에 도달했다.
날 가둔 환상이 얼마나 허무했었는가
예술을 우상, 왕으로 여긴 환상.
환각과 자만심이 나를 망쳐놓은 열망이었네.
사랑의 꿈은 달콤한데 영혼과 육신의 죽음은 다가오는구나.
한 죽음은 확실하고 한 죽음은 날 놀라게 한다.
그림도 조각도 날 달래지 못하네.
내 영혼은 우리를 껴안기 위해 십자가에서 두 팔을 벌린 하나님의 사랑을 향해 있다.”(끝)

■ 미켈란젤로 부오나르티 연보

1475년 3월 6일, 피렌체 근처 카프레세에서 출생(2남)
1481년(6세) 모친 별세
1485년(10세) 도메니코 기를란다요에게 사사
1489년(14세) 메디치 가의 조각 학교에 입학
1492년(17세) 메디치 가를 떠나 해부학 연구, <헤라클레스>,<그리스도의 수난>제작
1496년(21세) 로마로 처음 떠남
1497년(22세) <술 취한 바커스>, <죽어가는 아도니스>제작
1499년(24세) <피에타>완성
1504년(29세) <다비드>완성. 피렌체 정부로부터 벽화 <카시나의 싸움>위촉
1505년(30세) 율리우스 2세로부터 <메디치 가의 기념 묘비>위촉
1506녀(31세) 볼로냐에서 <율리우스 2세의 청동상> 제작
1508년(33세) 2월, <율리우스 2세의 청동상> 완성, 5월, <시스티나 천정화>착수
1512년(37세) <시스티나 천정화> 완성
1513년(38세) 2월, 율리우스 2세 별세
1514년(39세) <모세>, <노예>제작
1519년(44세) 레오나르도 다빈치 별세
1520년(45세) 라파엘로 별세
1521년(46세) 3월, 메디치가 성당 및 묘비 착수. 12월, 레오10세 사망. 아드리아노6세계승
1523년(48세) 11월, 클레멘스7세(추기경 줄리아노 데 미디치) 즉위
1527년(52세) 피렌체 혁명 가담
1528년(53세) 피렌체 군사 9일 위원회 위원으로 활약
1530년(55세) 8월 피렌체 항복, 봐로리(교황 감독관) 취임
1531년(56세) 6월, 부친 로도비코 별세. 9월, 로마에 영주. 6월, 중병에 걸림
1534년(59세) 메디치가의 묘비 <아침>, <저녁>, <낮>, <밤> 완성, <승리자> 제작
1535년(60세) 비토리아 콘론나 알게 됨. 9월 바오로 3세에 의해 교황청 건축,조각, 회화 책임자로 임명. 시스티나 성당의 <최후의 심판> 착수
1541년(66세) 12월, <최후의 심판> 완성
1545년(70세) 파올리나 성당 프레스코화 <사울의 개종> 완성
1544년(69세) 중병
1547년(72세) 1월, 성 베드로 성당 건축장관 임명. 2월, 비토리아 죽음
1550년(75세) 파올리나 성당 프레스코화 <십자가형에 처해지는 베드로> 완성
1557년(82세) 중병
1559년(84세) 피렌체 성 요한 성당 설계 위촉
1563년(88세) 피렌체 아카데미 예술원 명예원장 임명
1564년(89세) 최후의 작품 <론다니니의 피에타>제작. 2월14일 중태, 18일 오후5시 영면

심정아 작가는 뉴욕 Parsons School 학사, 뉴욕 Pratt Institute 석사를 졸업하고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설치미술을 전공했으며 국립 안동대학교, 홍익대 조형예술대학, 경희대학교,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강사로 활동 중이다.

출처: 예술의 발현과 선교를 지향하며 아름답고 영화로운 예술장르를 그 목적으로 하는 공동체 아트미션(www.artmissio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