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본철 교수(성결대학교)
Q) 성령을 충만히 받았다고 하면서도 사생활이 엉망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크리스천이라고 하면서도 나쁜 죄를 서슴없이 저지르곤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없는 것 같습니다. 도대체 성령 충만하면서도 죄를 지을 수 있는 건가요? 성령 충만 하면 죄를 짓지 말아야 하는 거 아닌가요?

A) 우리의 경건생활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질문입니다. 먼저 속 시원하게 답변부터 드리자면, 성령 충만한 사람은 죄의 유혹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이라고 말씀 드리겠습니다. 적어도 성령을 따라 살아가면 죄를 이길 수 있다는 것이 성경의 교훈이라는 말입니다. 여기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우선 다음 말씀을 보실까요?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리라(갈 5:16-18).

본문에서 우리는 성령으로 지속적으로 걸어가면(περιπατειτε) 육체의 욕망을 이루지 않는다는 말씀을 보게 됩니다(16절). 우리에게는 육체의 욕구와 성령의 욕구가 함께 있습니다. 그런데 육체는 성령을 대항하여 욕구하고 있고, 성령은 또한 육체를 대항하여 욕구하고 있습니다(17절). 그러므로 아무리 거룩함의 완전을 이룬 자라 할지라도 경험상 육체의 욕심이 완전히 사라져서 다시는 고개를 들지 못하는 그런 단계는 결코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양면성을 인정해야 합니다. 원칙적으로 우리는 죄에 대하여 살던 옛사람이 죽었습니다. 그리고 경험적으로는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복할 때 우리는 이 성결의 능력을 경험하게 됩니다. ‘십자가에서 옛사람을 죽였다’(롬 6:6; 갈 5:24)는 표현은 성결의 능력에 대한 현주소를 정확히 기술한 것이지만, 경험적으로는 우리의 자유의지가 지속적으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르지 못할 때가 많으므로, 이럴 때는 ‘죄를 죽이신’ 성령의 능력이 우리 영혼 속에서 구현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전적으로 성령의 인도하심만을 따르기 위해서 우리의 의지를 지속적으로 드린다면, 죄와 육체의 소욕 그리고 율법의 요구는 우리 안에서 죽은 것과도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삶을 살아가면 우리의 영혼과 인격 속에 성령의 열매(καρπος; 단수)가 나타나게 됩니다. 성령의 열매는 한 성령 안에서 자라나는 것으로서, 이는 그리스도의 영이 지니신 품성 그 자체입니다. 그러기에 열매들이라는 복수 표현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갈 5:22-23).

마찬가지로 우리가 성령의 인도하심을 잘 따르면서 살아갈 때, 여기에 성령의 열매가 제각기 다르게 나오지 않습니다. 그리고 어떤 열매는 나오는데 또 어떤 열매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던가 하는 일이 없습니다. 한 성령을 품고 살아갈 때, 우리의 인품 속에는 자연히 성령의 품성인 이런 특성들이 모두 나타나게 됩니다. 단, 그 사람의 환경과 상황에 따라 어떤 열매가 특히 두드러지게 자라나게 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았느니라”(갈 5:24)는 말씀은 성경의 다른 곳의 십자가에 못박힌 표현이 대부분 수동태로 되어 있는 반면, 여기서는 적극적인 능동태로 되어 있습니다(εσταυρωσαν). 이것은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다는 수동태의 진리를 우리가 적극적으로 고백하고 활용해야 할 것을 단호하게 지시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육체의 일을 행할 수도, 성령의 열매를 택할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신자 자신의 결단인데, 이 말씀은 유혹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신자의 믿음의 고백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5장에 나타나는 성령과 동행하는 삶에 대한 여러 번의 교훈에 다음과 같은 공통적인 성격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성령을 좇아 행하라(walk, 16절),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be led, 18절), 성령으로 살면(live, 25절), 성령으로 행할찌니(walk by rule, 25절) 등에 나타나는 행하다(περιπατειτε), 인도 받다(αγεσθε), 살다(ζωμεν), 행하다(στοιχωμεν)는 이 네 동사는 모두 현재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는 성령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단회적인 체험이나 기도의 몰입 체험 또는 일정기간동안 세상과 격리된 수도생활 등으로 인해서 지속될 수는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 대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는 삶이란 순간마다 지속되어져야 할 일상 속에서의 경건이라는 점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어떤 도덕적이거나 윤리적인 규범과 실천 그리고 계율에 의해 자신을 복종시키며 살아가는 삶은 어디까지나 자기 자신(ego)으로 부풀어 있는 삶을 살뿐입니다.

성령의 주되심(Lordship of Holy Spirit)에 순복하는 삶을 살아갈 때, 그리스도인의 아름다운 품성이 나타나는 것은 염려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이 모든 열매는 다 주님의 품성이기 때문에, 단지 그분의 인도하심에 따라 살아갈 때 그분은 자신의 품성을 우리 인격 속에 열매 맺게 하십니다. 이처럼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게 되면 죄의 유혹을 충분히 이기고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가는 성화되는 삶을 힘차게 달려 나갈 수 있습니다. 우리 한국교회의 거룩함의 길, 그것은 무언가 특별한 캠페인이나 제도적 장치를 통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 길은 우리 크리스천 모두가 복음에 제시된 그리스도 안(in Christ)의 능력을 즐기며 살아가는 데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