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석 목사(한국이란인교회 담임, 4HIM 대표)
9.11 테러가 2001년 9월에 발생했으니까 벌써 정확하게 10년이란 세월이 지났다. 아무리 엄청난 사건이라도 10년 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처럼 잊힐 때도 되었는데 오히려 더 자주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한편에서는 이슬람을 ‘테러의 종교’라고 하는 것은 오해이며 편견일 뿐이라고 주장하면서 일부 과격한 사람들 때문에 평화의 종교인 이슬람이 폭력의 종교로 오해 받고 있다는 사실이 안타깝다고 호소한다.

우리 주변에 살고 있는 무슬림들 중에는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도 많고 주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만큼 착한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아무도 부인하지 않는다.

그런 선량한 사람들이 단지 무슬림이라는 사실 때문에 테러범일 가능성이 있다고 오해받아 괴로움을 당하는 사례는 세계적으로 셀 수 없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모든 무슬림들을 무조건 평화의 사람들로 인정하고 존중하고 보호해 주는 것도 왠지 불안하다는 것이 유럽과 서구사회의 솔직한 고백이다.

9.11 당시 한창 감수성이 예민했던 10대들이 지금은 20대 중반이 되었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무슬림들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발물 같은 존재들이라고 각인되어 있으며 이를 지우기는 세월이 간다고 해도 쉽지 않아 보인다.

9.11 테러 사건은 1941년 일본의 진주만 공격과 그 피해 규모와 충격 면에서 유사한 점이 많다고 생각된다. 일본의 기습적인 진주만 공격으로 미군 비행기 188대가 파손되었으며 1~3만 톤급 11척을 포함한 16척의 함선이 침몰 혹은 파괴되었고 민간인 68명을 포함하여 약 2,500명의 미군들이 희생되었다고 한다.

그 충격은 엄청난 것이었으나 그것은 분명한 전쟁이었고 사망자의 97%가 군인들이었다. 그럼에도 이로 인해 미국 본토에 오래 전부터 평화롭게 살고 있던 일본계 미국인들은 아무 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애매하게 죄인 취급을 받아야 했다.

미국 내무부의 자료의 의하면 그 때 미국 내 일본인들은 12만 명 정도 살고 있었는데 미국은 그들을 적으로 간주해 군사작전에 방해가 될 우려가 있다는 명분으로 수일 내로 집, 농장, 사업체 등의 재산을 처분토록 명령했고 그들은 강제로 워싱턴, 애리조나, 오리건, 캘리포니아 등지에 있는 임시 수용소로 옮겨졌다. 급조된 수용소의 열악한 환경도 그들을 괴롭혔지만 언제까지 거기 살아야 할지 혹은 자신들이 살던 곳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그들을 더 고통스럽게 했다.

그 억울한 세월 3년 반 만에 전쟁이 끝나고 돌아올 수 있었으나, 돌아온 그들은 지나간 고통의 세월에 대한 원망과 복수 대신에 자신들이 미국의 적이 아니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미군에 자원했고 그들만으로 구성된 미 육군 442부대는 충성을 다하여 유럽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으며 그 부대는 비록 일본계 미국인으로 구성되었지만 전사율도 가장 높았을 뿐 아니라 훈장을 가장 많이 받은 부대로 유명해졌다. 2차 대전 중에 26,000명의 일본인들이 미군에 복무했다고 하니 당시 미국에 살던 일본인의 20%가 넘는 숫자였다.

따라서 미국은 이들의 충성심을 확인하고 1988년 그들에게 공식 사과할 뿐 아니라 그 당시 수용소에서 생활했던 82,000명의 일본계 미국인들에게 1인당 2만 불의 보상금을 지급하였다.

이제는 누구도 진주만 공격으로 인해 일본인들을 까닭 없이 미워하는 미국인은 없기에 일본계 미국인들은 미국 고위 공직에 혹은 상하원에 국회의원에까지 여러 명 진출해 있다. 미국 육군의 최고 지휘관으로서 근래에 있었던 이라크 전을 진두지휘하던 미 육군 참모총장은 일본계 미국인 에릭 신세키 씨였으며 그가 전역하자 오바마 대통령은 그를 보훈부 장관에 임명했는데 그 때 아무도 그가 진주만 폭격을 했던 일본의 혈통이 섞였다는 것으로 이의를 제기한 사람은 없었다.

이제 9.11 테러로 화제를 돌려보자. 무슬림들이 자신들을 공연히 죄인 취급하고 테러범으로 오해해 공항 출입 시 혹은 주요 시설 출입 시에 특별대우(?)를 받아야 하는 점에 대해서 억울하다고 항의하는 기사들을 많이 본다. 진주만 폭격 사건 이후의 일본계 미국인들과 유사한 상황이라고 생각된다.

사실 일본의 진주만 공격과 비교해 볼 때 무슬림들에 의한 9.11 테러에 의한 충격이 훨씬 컸던 이유는 아래와 같은 몇 가지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첫째: 상황이 전쟁터가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번화한 대도시 뉴욕이었다는 점,
둘째: 사망자들 3,000여명은 모두 전혀 무장하지 않은 순수한 민간인들이었다는 점,
셋째: 폭탄 대신에 출근용 비행기를 납치해 건물을 들이받아 죽였다는 잔인성,
넷째: 범인들은 자신들이 조종한 비행기 속에서 같이 죽었던 자살 테러라는 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진주만 폭격 사건 때처럼 자국 내의 무슬림들을 모두 임시 수용소에 가두거나 추방하지 않았으며 오직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했을 뿐이다.

진주만의 충격이 70년 만에 완전히 지워지고 육군 최고 지휘관을 일본계 미국인이 맡은 것을 보면 무슬림들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도 9.11 테러가 10년 지났으니 앞으로 60년 후에는 모두 잊어버리고 무슬림들 중에 미국 육군 총사령관이나 장관이 탄생하는 일들이 일어날 수 있지 않을까를 생각해 보지만 이런 일은 미국이 테러범들에게 항복하고 이슬람 국가가 되지 않는 한 절대로 불가능할 것이다.

9.11 테러의 충격은 날이 갈수록 세계인의 기억에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하루가 멀다고 세계 도처에서 발생하는 무슬림 테러로 인해 그들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오히려 점점 더 강화되고 있다.

그래서 무슬림들은 궁여지책으로 “우리는 테러범이 아니다”는 구호를 만들어 붙이든지 아니면 무슬림들을 테러범으로 오인하는 현상을 ‘이슬람포비아’라는 질병에 걸린 정신병 환자로 몰아가면서 매스컴과 정부 인사들과 순진한 인권운동가들을 설득해 ‘종교편향 금지법’이라는 것을 만들어 이슬람을 나쁘게 말하는 사람들을 처벌할 수 있는 법적인 조치까지 마련해 놓았다.

사실 이슬람권에서는 9.11 테러가 발생하여 세계가 비통에 빠졌을 때 이슬람권에서는 거리로 뛰어나와 축포를 쏘며 손에 손을 잡고 춤을 추었다. 한편 무슬림 테러범들이 9.11 사건발생 10주년 기념 테러를 계획했다는 소식은 세계를 긴장시켰다.

그렇다면 왜 선량한 무슬림들은 일본군들로 조직된 442부대가 했던 것처럼 테러범들을 대항하여 싸우지 않는 것일까? 싸우기는커녕 당신들 때문에 애매하게 우리가 오해받고 있다고 왜 알카에다나 탈레반들에게 공개적인 비난조차 하지 않는 것일까?

평화를 사랑하는 보통 무슬림들은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이슬람권에서는 그 테러범들을 이슬람의 경전 꾸란에 기록된 알라의 말씀을 실천하기 위해서 목숨까지 바치는 모범적인 무슬림들이라고 소개하며 모든 무슬림들은 그들을 본받아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고, 실제로 꾸란은 그 같은 명령을 실천하지 않는 자를 위선자로 정죄하며(꾸란3:167), 생명 바쳐 싸울 것을 명하고 있다.(꾸란4:74)

아랍권 평균 시청률 54%인 알자지라 방송에서 이슬람 설교자가 “그들은 테러범이 아니라 우리가 본받아야할 영웅들”이라고 설교할 때 청중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하는 모습을 youtube.com에 검색하면 영문 자막이 삽입된 동영상으로 얼마든지 볼 수 있다.

9.11 테러가 일어난 지 벌써 10년이 지났다. 세계적으로 무슬림들의 숫자는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고 그들의 테러와 폭력은 날이 갈수록 대담해지고 피해는 커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비이슬람국에서는 이슬람은 평화의 종교라고 열심히 홍보하고 있고 정부와 매스컴과 인권운동가들은 교과서를 고쳐가면서까지 그들의 위선적 홍보를 돕고 있다.

필자의 의도는 그러므로 무슬림들을 함께 미워하자는 말이 아니다. 거짓과 폭력의 영에 속고 있는 무슬림들을 불쌍히 여기며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을 열어 진리를 깨닫고 회개하고 돌아와 진정한 사랑과 자유를 누리며 이웃과 더불어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해 달라고 기도하자는 말이다. 이 길밖에는 우리가 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안타깝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