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옥 교수(기독문학 작가, 영문학 박사, 대신대 외래교수).
강의 시간에 나는 어떤 문학적 주제에 대해 학생들의 이야기를 더 많이 듣는다. 특히 삶의 현실성과 이상이라는 서로 다른 차원에서 문제를 이해해야 하는 경우 더욱 그러하다. 신학대라는 특수성에 맞게 학생들은 대부분 성경을 잘 알고 있는데, 때로는 이점 때문에 문학적 상상력으로 접근해야 하는 작품 이해나 예술 전반에 대한 견해가 소극적이고 도식화되는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내가 학생들의 이야기를 많이 듣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시각에서 자유로울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자유롭게 발표하고 토론을 할 때 기술적인 면에서 부족한 점이 많다. 또 자신의 상상을 기초로 작품을 창작하거나 창작된 작품의 가치를 논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생각의 유연성과 참신성에서는 전문인 못지 않다. 이는 아마도 자신의 창조력을 찾아 강화하고 싶은 젊음의 내적 열망 때문이 아닌가 싶다. 나의 의도가 학생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난 오월이었다. 어느날 강의 시간에 나는 생떽쥐베리(Antoine de Saint-Expery, 1900-1944)의 <어린왕자>를 학생들과 담론의 중심으로 끌어왔다. 동기는 한 학생이 마태복음 18장 3-4절을 가지고 던진 질문 때문이었다. 내 추측으로 어린이주일 그 학생이 출석하는 교회 목사님의 설교 때문이 아나었는가 싶다. ‘어린이와 같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문자적 표현에 시각을 고정시킨 학생의 화두는 결국 어른들의 구원 문제로 까지 비약되어 서로간에 열띤 논쟁으로 이어졌다.

문득 내 머리 속에는 ‘어린이 같이 되다(to become like a little child)’는 주제를 문학적으로 접근해보자는 생각이 떠올랐고 결국 이 글 제목인 ‘<어린왕자>의 아이들’이라는 주제를 제시하게 되었다. <어린왕자>는 1943년에 출간됐는데 장르로 따지자면 동화의 범주에 속한다. 그러나 내용으로 보면 어른들을 위한 작품이며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어른 독자층이 매우 두텁다.

어느 날 비행기 사고로 사하라 사막 한가운데 불시착한 비행사인 ‘나’는 이상한 복장의 어린아이를 만난다. 그 소년은 원래 아주 작은 떠돌이별 소혹성의 왕자였다. 소년은 그곳에서 자존심 강한 장미꽃 한 송이와 함께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투정만 부리는 장미꽃에 마음이 상하여 꽃을 혼자 별에 남겨둔채 여행길에 오른다.

여행 중에 어린 왕자는 자기가 살던 작은 별 같은 여섯 개의 소혹성을 거친다. 그 별들은 모두 어린왕자 자신의 별처럼 아주 작아서 그곳에는 각각 한 사람씩만 살고 있어 그가 별에서 만난 사람은 여섯명 뿐이었다. 왕과 허영심 가득찬 남자, 주정뱅이, 상인, 가로등 관리자, 그리고 지리학자였다. 어린 왕자의 눈에 비친 그곳 어른들은 모두 이상한 사람들이다.

첫번째 만난 사람인 왕은 늘 남에게 군림만 하면서 명령밖에 할줄 모르는 어른이다. 두 번째는 남들의 박수만 받기 원하는 허영꾼이며 세번째는 술을 마시면서도 부끄러워 할 줄 모르는 어른이다. 술주정뱅이는 술이 술을 마신다는 핑계를 대며 삶의 의미를 상실한 허무주의에 빠진 어른의 모습을 말해준다. 다음 장사꾼은 황금만능주의에 물든 어른을 대표한다. 그는 5억개나 되는 우주의 별을 헤아리면서 되풀이해서 그 별들이 모두 자기 것이라 한다.

그리고 어린왕자가 만난 사람은 가로등 관리자와 지리학자이다. 점등인은 1분마다 한 번씩 불을 끄고 켠다. 이는 기계 문명에 인간성을 상실하고 사는 어른을 묘사한 것이다. 지리학자는 아직도 자기 별을 한 번도 탐사해 본 적이 없는 이론가다. 지식은 있으나 행동할 줄 모르는 어른이다. 이 6명의 어른들을 만난 후에 어린왕자의 순례는 끝나고 지구로 돌아오게 되었다.

어린왕자가 별에서 만난 여섯 명이 모두 어른들의 실상이라면, 어린이는 이는 다른 속성을 가졌다고 글쓴이가 말하려 했을까? 그래서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일까?(계속)

/송영옥 박사(영문학, 대신대 외래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