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기억하고 사는 삶

김은애 기자  eakim@chtoday.co.kr   |  

아하! 행복한 가정이 보인다(96)

“여보, 우리도 유서 한 번 써 볼까?”
“유서라니요?”
“아, 죽기 전에 쓰는 마지막 글 있잖아!”
“그게 유서라는 건 아는데, 그걸 왜 쓰냐고요?”
“언제 죽을지 모르잖아! 갑자기 죽어버리면 유서 쓸 기회도 없고….”

“어휴, 기분이 이상해요!”
“기분이 이상해도 한 번은 해야 될 일 같아!”

‘삶의 끝이 있다는 걸 알았다면 다르게 살았을텐데….’ 죽음에 임박해서 이렇게 생각하지 않을 사람은 없다. 사람들은 누구나 죽음이 임박하기 전까지는 자기가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살아간다.

하지만 막상 죽음이 코앞에 닥치면 또한 누구나 수많은 세상 사람들 가운데 오직 자기 혼자만이 지금 죽어야 하는 운명이고, 다른 사람들은 다 살아남는 것 같은 착각을 하곤 한다.
누구나 한 번은 죽게 마련이고, 이것은 결코 내게만 주어진 운명이 아니라 모든 인류에게 평등한 것이다.

죽음에 대비한다는 말은 흔히 유서를 쓰거나, 아니면 죽음을 앞둔 본인이 직접 나서서 한평생 모은 자신의 재산을 정리하여 죽기 전에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일을 연성케 하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들에게 죽음을 대비한다는 말은 그 같은 의미보다는 죽기 전의 삶을 어떻게 그전과는 다르게 살아야 하는가의 문제이다.

이제 자신이 죽고 난 후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더 오래 살 수 있을 것인지, 내가 남기고 갈 재물이 그들에게 얼마나 소용이 될 것인지 등이 모두 불투명한 상황에서 불안이 증가하게 된다.

어쩌면 우리는 간발의 차라고 할 만큼 별 차이 없이 자신이나 가족이나 모두 죽음을 맞는 역사의 벼랑 끝에 직면해 있다. 사람은 누구나 한 번은 죽음을 맞게 되며, 자신도 예외가 아니라는 생각을 해야 한다. 사람이 만약 삶의 끝으로 미리 가서 자신의 죽음을 지켜볼 수 있다면, 그리고 다시 오늘로 돌아와 나머지 생을 산다면 어떻게 다른 삶을 살게 될까?

아마도 그렇게 되면 더 많은 돈, 더 큰 권력, 더 높은 지위 등 자신이 갖지 못한 것에 대한 욕망 보다는 이미 갖고 있는 것들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커지지 않을까? 죽음이 직면하는 순간 부귀와 영화가 얼마나 값없는 것이었던가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러니 그것들을 좇아 바쁘게 뛰어다니며 사는 삶 또한 얼마나 허망한 삶인가? 삶의 끝을 미리 볼 수 있다는 것과 살 날이 며칠 남지 않았다는 것은 어찌 보면 동전의 양면과 같은 말이다.

자신이 살 수 있는 날의 수를 셀 수 있다는 것은 곧 그 수가 그리 많지 않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많은 세월이 남았다 해도 그 날들이 유한함에 있어서는 마찬가지이다.

누구에게든 머지 않아 내일이면 이 세상을 하직해야 할 마지막 하루가 닥칠 것이다. 내일 죽을 것을 알고 있다면 오늘 하루의 삶을 최대한 값지게 살려고 하지 않겠는가? 어떤 하루의 삶보다 비할 수 없이 소중한 이 하루의 삶을 누가 감히 값없이 보내려 하겠는가?

하나님께서 주신 하루의 삶을 참으로 소중히 여기며, 그동안 살면서 제대로 사랑해 주지 못했던 것들을 더욱 뜨겁게 사랑하면서 마지막 하루를 살고자 할 것이라 생각된다.

더구나 이제 죽음 저 건너편으로 건너가는 것이라면 이 생에서의 나머지 삶과 그 삶의 참됨이 얼마나 더욱 더 귀하고 소중히 여겨지겠는가!

로마 사람들 가운데 소위 지성인들이 서로 만나면 라틴어로 이렇게 인사했다고 한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여기서 메멘토라는 말은 영어로 기억하다는 동사 ‘리멤버(remember)’이고 ‘모리’는 ‘죽는다(to die)’는 단어이다. 즉 영어로는 ‘remember to die’라는 말이며 우리말로는 ‘죽는다는 사실을 기억합시다’라는 뜻이다. 이것이 바로 당시 사람들이 했던 인사말이었다고 한다. 나도 죽고, 당신도 죽고, 우리가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고 살자는 것이다. 혹 부부싸움을 할 때 반드시 이 생각을 해야 할 것이다.

둘 다 곧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욕심을 부릴 때에도 ‘메멘토 모리’를 기억해야 한다. 우리도 아침 저녁으로 이런 인사를 주고받으면 좋겠다.

전요섭 목사, 황미선 사모(한국가정상담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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