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을 통해서 과거를 회상하고 미래를 상상할 수 있다면 갈 때마다 늘 새로움을 느끼고 자꾸 찾고 싶을 것이다. 또 그 주인을 직접 대면하지 않아도 공간을 통해 그의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있고 생각을 알 수 있다면, 언어를 초월한 소통으로 서로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아이엠크리에이티브 정승범 대표. ⓒ오유진 기자
전문 디자인그룹 ‘아이엠크리에이티브’를 이끌고 있는 정승범 대표에게 디자인이란 ‘하나님을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한다. 즉 디자인이란 인간의 편리함을 위한 상업미술이 아닌, 하나님을 느끼는 도구이다.

그는 최근 고 김준곤 목사 기념관인 ‘CCC 역사비전센터’와 ‘민족복음화전략센터’ 공간 디자인을 전담했다. 또 이에 앞서 극동방송 이사장 김장환 목사의 삶과 사역을 소개하는 BK기념관을 디자인했다.

종로구 부암동 북악산길에 위치하고 있는 ‘CCC History&Vision Center’(역사비전관)는 고 김준곤 목사의 삶과 사역을 통한 믿음의 발자취와, 민족복음화운동의 중심이었던 한국대학생선교회(이하 CCC)의 지난 50년의 역사와 비전을 체험하고 공감할 수 있는 전시공간이다.

김준곤 목사의 삶과 사역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1층은 도입부부터 70년대의 시대상을 정밀한 세트로 옮겨놓았다. 때문에 아이들과 젊은이들은 호기심을 갖고 과거를 체험할 수 있으며, 기성세대들은 지난날의 향수를 통해서 공간에 몰입할 수 있다.

또 공간의 한계를 극복하고 방대한 양의 자료를 효과적으로 담기 위해 디지로그적(디지털+아날로그) 기술을 사용해 배치했다. 그리고 다양한 모션 그래픽으로 디자인된 4개의 영역을 통해 CCC의 현재 사역과 비전을 경험하고, 마지막엔 자신을 향한 비젼을 발견하고 다짐할 수 있는 공간이 되도록 구성했다.

▲CCC History&Vision Center의 1층에 담겨 있는 가장 큰 이야기 중 하나는 ‘엑스플로 74 집회’였다. 이는 우리나라 기독교 집회 역사상 최다 합숙훈련 인원, 최다 철야기도 인원, 최다 전도 실천, 최다 성령 충만, 최다 헌신 등 수많은 기록들을 세운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아이엠크리에이티브

▲민족복음화운동의 중심이었던 CCC의 지난 50년의 역사와 비전을 체험하고 공감할 수 있는 전시공간. ⓒ아이엠크리에이티브

“공간 기록의 가장 큰 장점은 기록하고자 하는 그 사건을 사실적으로 재현할 수 있다는 데 있다”며 “흔히 기념관은 주인공을 자랑하는 요소가 많지만, 나는 철저히 그에게 임하신 하나님과 그를 통해 드러나는 하나님에 주목했다”고 말한 정 대표는 잊혀져가는 믿음의 발자취를 재조명해 계승되도록 영성 있는 공간을 디자인한다.

‘가족’과 ‘융합’ 개념으로 최적의 공간활용 디자인

그는 디자인 프로젝트가 주어지면 그 공간 주변을 거닐어 보고 주민과 얘기도 나눈다. 그러면서 그 공간이 가진 특색·정서·기능성과 사람들의 감성·유대감을 모두 아울러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어떤 때는 우두커니 혼자 앉아서 밤 12시가 다 되도록 찬양을 들으면서 그 공간만의 느낌과 포인트를 잡을 때까지 골몰하기도 한다. 작업이 진행되면 크리스천 직원 전원이 돌아가면 40일 기도를 하고, 아침 7시에 시공 현장에서 예배드리자며 직원들을 새벽에 출근하게 하기도 한다.

그리고 디자인을 마친 마지막 주는 직원 전원이 릴레이 금식기도를 한다. 또 성경의 한 부분을 암송하는 프로젝트도 진행하고, 올해는 회사에서 이틀간 큐티세미나를 열어 영성훈련를 가졌다. 그는 이렇게 치열하게 준비하는 이유에 대해 “한 개인을 영웅시하거나, 나 자신의 디자인을 앞세우고 싶은 마음과 싸우는 것”이라며 하나님의 영적인 공간을 만들기 위한 영적 싸움을 전했다. 이렇게 정 대표의 디자인의 시작은 하나님과의 소통이고, 그는 그 감성이 녹아나도록 최선을 다해 디자인한다.

하나님의 성품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그의 방법은 ‘Flex’ 개념으로 창작하는 것이다. 이는 다른 말로 ‘융합 디자인’이라고 하는데, 정형화된 틀이 아니라 인쇄·가구·인테리어 등이 모두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최상의 공간과 디자인으로 변모하는 형태라고 설명한다. 이는 이동과 용도 변경을 자유롭게 해 업무 유연성이 향상되고 공간 활용도를 높인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으며, 구성원들간의 커뮤니케이션 효율을 높일 수 있다.

앞서 소개했던 기념관들은 ‘Flex’를 극대화한 것으로, 정 대표의 그간 노하우가 축적된 결과물이다. 이번 기념관 건립으로 정승범 대표는 CCC와 협력하는 순디자인연구소의 소장이 되었다. 시공을 맡긴 입장에서 200% 만족, 그와 계속 협력해 작업을 하고 싶다고 한 것이다.

그가 디자인할 때 두번째로 중요시하는 요소는 ‘가족’이다. 이는 “세계 경제를 쥐고 있는 유대인의 강력한 힘은 가정 교육에서 비롯되었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공간도 가정의 느낌이 살아있는 곳”이라는 생각 때문이라고 전한다.

▲CCC History&Vision Center의 전시된 자료들. 어린이 선교 중 정다웠던 순간을 디지로그(디지털+아날로그) 기술로 재현함으로써 관람객과 소통하고 있다. ⓒ아이엠크리티브

그는 아이엠크리에이티브가 특히 잘 만들고 싶은 공간 디자인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교회”라고 말했다. 정 대표는 “1세대 목사님들이 세대교체 중인 한국교회의 실정에서 기념관은 매우 중요하다. 1세대 목사님의 훌륭했던 믿음과 헌신을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기념관을 만들어, 방문자들이 그 목사님이 하나님과 만나고 헌신하며 살아온 과정이 연대기 순으로 잘 전달되어 계승되어야 한다. 그러면 불신자도 감동을 받아 영접할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이라며 죽어있는 공간에 생기를 불어넣어 ‘믿음을 물려주는 기념관’으로 만들어야 함을 강조했다.

▲고 김준곤 목사의 발자취와 소장 도서들을 담은 공간. ⓒ아이엠크리에이티브

그가 또 만들고 싶은 공간 디자인은 ‘청소년 문화센터나 기념관과 같은 문화공간’이다. 아이엠크리에이티브는 향후 10년 안에 문화와 놀이공간, 기념관을 한데 모은 테마파크를 세우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있다.

아울러 그리스도인으로서 그의 비전은 해외 선교사를 파송해 교육과 복지 사역을 감당하고 싶다는 것이다. 그는 “현지의 선교사 2세들과 현지인의 2세들의 미술교사로서 디자인 교육을 시켜 현지의 디자인 수준을 끌어올리는 역할을 감당하고 싶다”며 “또 그곳이 가난한 나라라면 보살펴주는 사역도 함께 진행할 것”이라고 했다.

그의 비전은 전문 디자인그룹 아이엠크리에이티브 설립 때부터 가져왔던 것이다. 그가 가난하고 외로운 소외계층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다는 소망을 품게 된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CCC History&Vision Center(역사비전관)의 세계선교를 향한 비전을 담은 세계지도를 형상화한 벽면모습.  ⓒ아이엠크리에이티브 

그는 “어릴적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면 부모님은 일터에 계셔서 빈 집을 내내 혼자 지켰다. 어린이날의 즐거움도 몰랐다. 가장 서러웠던 기억은 집이 용역단체에 의해 강제 철거당해 거리로 쫓겨났던 것이다. 너무 어린 나이에 그 일을 겪어 아직도 그 충격이 생생하다”며 “집이 없는 사람이 거리로 내몰리면 얼마나 비참함 속에서 떨게 되는지 잘 알고 있어 몇 년 전 일어났던 용산참사 당시 곧장 현장에 찾아가 분노와 함께 뜨거운 눈물을 흘렸었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집과 사람들이 모여 있는 따뜻한 공간에 대한 애착이 강하고, 아이들을 절대 외롭게 두어선 안 된다는 생각에 주말이면 꼭 자녀들과 놀아주는 아빠다. 그는 “바르게 잘 성장한 사람을 보면 대부분 가정을 중시하고 가정 교육을 토대로 잘 성장한 것이다. 그래서 꼭 자녀와 놀아주는 아빠, 가족의 따뜻함을 알도록 실천하는 아빠가 되고 싶고 가족을 넘어서 회사 구성원들에게도 사랑의 소통을 하는 공간을 우선순위로 구상한다”라고 말했다.

정승범 대표는 젊은 나이지만 신앙과 철학이 뚜렷하고, 하나님을 닮은 부모의 사랑과 소통하는 감성을 공간으로 창출하는 탁월한 디자이너다. 그는 “여기까지 온 것은 내 실력보다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였다. 작은 음반 자켓 디자인으로 출발해 가지치기하듯 이 사람 저 사람으로부터 굵직한 프로젝트를 끊임없이 맡겨주셨으니 말이다. 그래서 무슨 일이어도 하나님께 근간을 두는 아이엠크리에이티브일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