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본철 교수(성결대학교)
Q) 기도하다가 몹시 괴로워하면서 심하게 울며 통곡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이런 것은 예외적인 일로 보아야 하는지 아니면 누구에게나 다 일어나는 일인지, 그리고 이런 일이 성령의 역사로 인해 일어나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A) 그런 현상이 참다운 성령의 역사로 인한 것인지 여부는 그 열매를 보아 알 수 있습니다. 즉 성령의 역사는 인간을 거룩하게 변화시키며 교회에 활력을 주는 열매를 맺습니다만, 악령의 역사는 심한 자책감의 포로가 되게 하고, 남을 정죄하며, 교회에 불화와 분란을 일으키는 열매를 맺게 합니다. 우리는 그 열매를 보아서 그 나무를 알 수 있게 됩니다.

성령께서 인간에게 하시는 중요한 일 중에는 회개케 하시는 사역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죄라고 하면 보통 윤리적이거나 도덕적인 죄를 생각하지요. 그러나 하나님께서 심각하게 보시는 것은 그런 차원보다는 예수님께 대한 근본적인 태도의 변화를 죄인들에게서 보기 원하신다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가장 심각하게 다루시는 죄악은 예수님을 구주와 주님으로 영접하지 않는 죄이기 때문입니다.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요 16:9).

예수님을 믿지 않는 이들이 정말 하나님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롬 1:21).

그들은 자기 교만과 무지 때문에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섬기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진정한 회개란 어그러진 길을 가던 사람이 돌이켜서 바른 길을 행하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 없이 자기중심적이고 죄악 된 인생을 살던 사람이 돌이켜서 예수님을 믿는 삶으로 변화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요 16:8)는 말씀에서, 세상이란 거듭나지 못한 인간의 영혼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세상을 책망하신다는 것은 성령께서 거듭나지 못한 인간의 영혼에게 역사하여 그들이 깨닫고 회개케 하신다는 의미입니다. 이 구절을 통해서 볼 때, 성령께서 인간을 회개시키는 길은 크게 다음 세 가지 방법을 사용하신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첫째, 성령께서는 자기중심적이고 정욕적인 삶을 살아왔던 죄에 대하여 깨닫게 하심으로서 회개케 하십니다. 둘째, 성령께서는 오직 의로움은 예수님께만 있다고 하는 진정한 의에 대하여 깨닫게 하심으로서 회개케 하십니다. 셋째, 성령께서는 죽음 이후에 반드시 있게 될 심판의 두려움을 깨닫게 하심으로서 회개케 하십니다.

이처럼 우리는 전도 현장에서 성령의 회개케 하시는 사역을 힘입어야 합니다. 성령께서 회개케 하시지 않으면 아무도 예수님 앞에 진심으로 마음을 열 수도 없으며 또 예수를 주님으로 고백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성령을 의지할 때, 성령께서는 전도 대상자의 영혼과 삶 속에 그늘져 있는 어둠의 영들을 우리가 느끼게 하시곤 합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그런 부분들을 접근해 갈 때, 전도 대상자들이 회개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일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성령의 회개케 하시는 사역이 강력하게 확산되었던 점, 이것이 바로 초대교회가 폭발적으로 부흥할 수 있었던 이유 중의 하나였습니다.

신자의 죄악

그러면 믿는 이들의 경우에는 성령께서 회개케 하시는 사역이 어떻게 나타날까요? 거듭난 신자들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실제의 삶 속에서 여러 가지 범죄를 하게 될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죄란 윤리적, 도덕적 차원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곧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는 것이 죄입니다. 사실 거듭난 자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고자 하는 동기를 갖게 됩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요일 3:9).

그러나 영혼 속에 아직도 죄 된 본성이 거하고 있기 때문에, 바로 여기에서 중생한 자에게는 영혼 속에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자 하는 동기와 죄악 된 본성 사이의 싸움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비록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로 믿고 또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서 구원의 확신을 지니고 살아간다 하더라도, 특정한 죄의 유혹에 계속 자신을 굴복하여 범죄 하게 되는 생활이 청산되지 않는 한, 우리의 양심은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움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거듭난 크리스천들은 하나님을 온전히 기쁘시게 하기 위해, 자신의 영적 능력이 좀 더 강건한 데까지 나아가서 충분히 죄악을 이겨내는 죄와는 상관없는 삶에 이르게 되기를 간절히 소원하게 됩니다.

거듭난 신자의 영혼 속에는 죄를 짓게끔 하는 내적 동기, 즉 죄의 유혹을 수용하기 원하는 죄의 뿌리가 잠재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원죄(Original Sin) 즉 죄의 뿌리에 속하는 것인데, 이는 아담의 범죄로부터 전 인류가 생래적으로 이어받은 성품입니다.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니라”(롬 14:23)고 성경에 기록된 바와 같이, 원죄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력(自力)에 의해서 살고자 하는 의지요 동기인 것이지요. 그러므로 이러한 종류의 교만은 자연인 속에 내재하고 있을 뿐 아니라, 거듭난 자들 속에도 있어서 종종 하나님을 향해 고개를 쳐들게 되고, 또 자기중심적인 사고와 행위를 통해서 결국 죄의 열매를 거두게 만드는 것입니다.

18세기 영국의 부흥가인 존 웨슬리(John Wesley)는 자유의지를 사용하여 범죄 하는 고범죄(willful sin)에 대해 말하면서, 신자는 이러한 죄로부터 현세에서 완전히 해방될 수 있는 것으로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이 같은 성결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우리의 삶 전체가 주님의 것이 되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고후 10:5)라는 말씀과도 같이, 우리는 양심을 통하여 주어지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민감히 따르게 위해, 그리고 지성과 감정과 의지를 통해 하나님의 뜻이 날마다 우리를 통해 나타날 수 있도록, 순간마다 주님의 발 앞에 엎디어 있는 영혼의 상태가 되게 하여야 합니다. 이 영광스러운 성결의 순간을 체험하기 위해서는 물론 알려진 모든 죄를 자백해야만 할 것이요, 또한 자신을 온전히 주님께 헌신해서 성령의 인도하심대로 자신을 복종시키는 삶을 매일 매순간 살아갈 것을 주님 앞에서 단호히 결단해야만 할 것입니다. 이처럼 성령께서는 불신자에게는 회개를, 그리고 크리스천들에게는 거룩을 향한 더 깊은 회개(deeper repentance)의 역사를 일으키시는 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