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복음연맹(WEA)과 세계교회협의회(WCC), 교황청이 스위스 제네바 WCC 본부에서 28일(현지 시각) 공동의 선교 문서를 발표한 것에 국내 복음주의 신학자들은 상당히 높은 관심을 나타냈다. 그러나 이들은 이것이 기독교 보편적 가치관에서의 합의일 뿐 근본 교리와 정체성에서의 합의는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본지에 ‘WCC, 그 실체를 밝힌다’를 제목으로 칼럼을 기고하고 있는 배본철 교수(성결대)는 세 단체가 합의한 문서에 대해 “다종교 상황의 세계에서 복음주의와 진보주의를 아우르는 하나의 공통적인 정신을 담아내려 한 점에서 고무적”이라며 “교회론이나 구원론 등 각 교파간 민감한 부분을 언급하지 않았고, 무엇보다 그간 WCC가 사용해온 종교 다원주의 내지 상대주의적 단어들이 빠졌다는 점에서도 이번 문서가 기독교 공통의 정신을 찾으려 했음을 알 수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이번 합의가 지향한 이른바 ‘기독교 공통의 정신’은 그 자체로 장점이자 동시에 한계라고 배 교수는 지적했다. 어디까지나 공통의 영역에서 도출된 문서로, 서로가 협력할 수 있는 부분을 찾은 것에 의의가 있을 뿐, 그 이상의 해석은 금물이라는 것이다. 즉 교황청이나 WCC가 WEA를 비롯한 복음주의 진영을 위해 그들의 교리와 정체성을 양보했다거나, 마찬가지로 WEA가 그러했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라는 의미다.

나아가 배 교수는, 이번 합의에서 교황청, 곧 가톨릭의 저의가 있을 수 있음을 간과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가톨릭이나 WCC가 이런 행동을 하는 것에는 다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며 “일단 가톨릭에 유익하다. 가톨릭은 가능하면 지상의 모든 교회를 가톨릭이라는 지붕 아래 두려 한다. 이번 합의 역시 이런 통합주의의 한 방편일 수 있다”고 꼬집었다.

또 “WCC도 비록 이번 문서에서 그들 고유의 단어들을 사용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종교 다원주의적 노선이 변한 건 아니다”며 “사실 이번 문서의 내용만을 놓고 보면 로잔대회나 마닐라대회 때의 선언과 크게 다르지 않다. 따라서 이번 문서만으로 WCC를 비롯한 진보진영이 복음주의로 전향했다고 보는 것은 그야말로 단순한 판단”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배 교수는 “WEA가 이번 합의를 WCC와 가톨릭을 복음적 노선으로 돌이킬 수 있는 기회로 삼을 수 있을 것”이라며 “그렇게 된다면 오는 2013년 WCC 부산총회에도 복음주의의 정신을 반영시킬 수 있다”고 덧붙였다.

박명수 교수(서울신학대학교 교회사) 역시 이번 문서의 장점과 한계를 동시에 지적했다. 그는 “이번 문서가 실질적 전도에 있어 그리스도인들이 지켜야 할 여러 문제들을 종합적으로 잘 다루고 있다고 생각한다”면서도 “그리스도나 복음 선포와 관련된 복음주의의 본질적인 요소들은 빠져있다. 단어 사용에 있어서도, 복음주의가 전도라는 의미로 흔히 사용하는 에반겔리즘(evangelism) 대신 크리스천 위트니스(Christian Witness) 라는 단어가 주로 사용되고 있다. 이 문서의 내용이 복음주의가 지향해야 할 전부는 아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박 교수는 “교파 간 협력이나 종교 간 대화는 대사회적인 측면에서 얼마든지 이뤄질 수 있지만, 서로의 정체성을 훼손하면서까지 할 필요는 없다”며 “이번 합의 역시 그런 차원이다. 각자가 받아들일 수 있고 공통으로 고백하는 부분에서 이뤄진 합의이지 그 이상으로 진전된 내용은 없다”고 밝혔다.

한국복음주의협의회 회장 김명혁 목사도 이들과 같은 의견이었다. 김 목사는 “세계가 정치와 경제, 문화, 종교 등 각 분야에서 극심한 대결로 치닫는 상황에서 기독교의 대표적인 세 단체가 선교와 관련된 협력을 시도하게 된 것은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며 “각자 자기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서로 대화하고 협력을 시도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특히 민족과 세계의 평화와 화해, 공동선을 추구하기 위한 협력은 매우 필요하다. 그러나 이 때도 각자의 신앙적 정체성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