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방사능 피해지역을 섬기는 이들. ⓒ이규상 간사 미니홈피

 

오늘도 냉장고를 제외한 모든 전기 코드를 뽑고 집 밖을 나섰습니다. 13명의 팀원을 이끌고 도쿄를 떠나 후쿠시마의 글로벌 미션 센타를 방문해서 대지진과 쓰나미, 그리고 방사능 피해로 완전히 마비된 그 지역 가운데 헌신적으로 피난민들을 돕고 섬기며, 복음을 전하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만나 뜨거운 교제와 격려의 시간을 가지고, CCC를 통해 모금된 헌금을 전달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미야기현에 도착해서 지난번에 연결된 CRASH JAPAN이라는 구호단체와 연합해서 내일부터 시작되는 구호활동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아내는 도쿄 근교의 시즈오카에 살고 있는 친구의 권유로 아이들과 함께 그곳에서 당분간 지내기로 했습니다. 좋은 충전의 시간이 될 수 있도록 기도부탁드립니다.

도쿄는 지금 전력 부족으로 인해 철저한 절전 운동이 실행되면서 전철역이나 가게 안에 들어가면 상당히 놀랄 정도로 어둡습니다. 대부분의 공장들이 야간이나 주말에 움직이게 되면서 주일 성수를 어려워하는 그리스도인들도 있을 정도입니다. 인간들이 얼마나 원자력에 의존하며 살아왔는지 새삼 되돌아보게 됩니다.

얼마전에는 일본 뉴스를 통해 놀이터에 방사능이 축적되어 흙놀이가 위험할 수 있다는 방송이 나가고 나서 놀이터에 아이들이 사라졌습니다. 저희 아들 녀석들도 흙놀이를 자제하고 있어서 답답해할까봐 걱정했지만 감사하게도 집안에서 노는 즐거움을 새롭게 알아가고 있어서 너무나 다행스럽습니다. 그렇게보면 요즘처럼 가족들이 함께 동거하는 기쁨과 감사를 누린적도 없는 것 같습니다. 정말 강력한 중보 기도의 힘으로 하루하루 호흡하며 살아가고 있음을 느끼며 감사드립니다.

지난번에 방문했던 이시노마끼에서의 구호활동도 기도해 주신 덕분에 정말 큰 은혜와 배움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사건은 언덕 위의 집을 청소하고 돕던 중에 갑자기 나타난 어느 아저씨가 작업하던 저희들을 향하여 화를 낸 것입니다.

황당하고 억울하기도 했지만, 언덕 밑에서 무언가 혼자서 찾고 있길래 무슨 도움이 필요한지 물어봤더니 커다란 벽 더미를 옮겨달라고 했습니다. 남자들이 모두 함께 모여서 힘차게 들어올리니까 아저씨는 잽싸게 조그만 드레스 한벌을 집어 냈습니다.

무엇이냐고 물으니까 죽은 자기 딸이 피아노 공연 때 입을 옷이였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알고보니 가족 모두 쓰나미에 죽고, 혼자 살아남아서 내일 있을 장례식 때 친척들에게 보여줄 유품을 찾기 위해 왔는데, 저희들이 그 위로 쓰레기를 던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순간 짜증을 냈던 저희 마음이 수그러들고 오히려 미안함으로 가슴이 미어져왔습니다. 물론 윗집의 주인이 시켜서 버린 것이라고 말하면 괜찮겠지만 또 하나의 상처를 만들기 보다는 침묵으로 저희가 대신 이 상처를 가져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이 일은 무조건 우리 입장에서 무언가를 달성하고 만족할만한 일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의 입장에서 아픔을 공유하고, 때로는 억울하게 대신 욕을 들을 수도 있는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새롭게 깨달았습니다. 조금이나마 주님이 당하셨던 억울함과 고통에 동참할 수 있어서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내일부터 미야기에서 새롭게 시작되는 구호활동도 기대됩니다. 이번 주일에는 후쿠시마의 가설 주택에 들어간 피난민들을 만날 예정입니다. 정부에서 기본적인 생활 용품을 전혀 지급하지 않아서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매우 힘든 상황 가운데 있다는 소식을 듣고 CRASH JAPAN과 함께 경제적인 지원과 더불어 케어 사역을 진행해 나갈 예정입니다.

어떤 형태로든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고 싶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쓰임받고 있다는 것이 참으로 감사하고 행복합니다. 다만 한가지 걱정이 있다면 제가 주인공이 되고자 하는 욕심이 생길까봐 두렵습니다. 반드시 일본인 크리스찬들이 주인공이 되도록 뒤에서 열심히 그리고 겸손히 섬기는 자가 되도록 기도부탁드립니다. 일본 민족 최대의 위기에, 최고의 영적 지도자가 탄생할 수 있도록……. 지금이 바로 최고의 기회입니다.

2011년 6월 16일 미야기 맑음
이규상, 최혜원 선교사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