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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누리주일강단] 절망적인 사람들을 구원하신 예수님

오늘 말씀은 절망적인 상황에 있는 사람들을 구원하신 예수님의 이야기입니다. 야이로라는 회당장이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열두 살짜리 딸이 있었는데 이 아이가 죽을병에 걸렸습니다. 사람은 자신의 병명을 알고 있으면 그런대로 위로가 됩니다. 환자가 죽음을 맞이하더라도 치료를 마음껏 해보고 ...
이미경 기자 (mklee@chtoday.co.kr) 입력 : 2011.05.30 11:13 수정 : 2015.12.28 10:20

오늘 말씀은 절망적인 상황에 있는 사람들을 구원하신 예수님의 이야기입니다.
야이로라는 회당장이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열두 살짜리 딸이 있었는데 이 아이가 죽을병에 걸렸습니다. 사람은 자신의 병명을 알고 있으면 그런대로 위로가 됩니다. 환자가 죽음을 맞이하더라도 치료를 마음껏 해보고 죽으면 그래도 그 가족에게는 위로가 됩니다. 그런데 병명을 알지 못하고 죽거나 치료도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죽을 때 그 부모의 가슴은 찢어집니다.

회당장 야이로의 어린 딸이 죽게 되었습니다. 아주 절망적인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오늘 말씀에 또 한 사람이 나타납니다. 12년 동안 피가 멈추지 않고 계속 흐르는 혈루병을 앓는 여인입니다. 이 여인이 예수님을 만나 치료를 받는 이야기가 오늘 말씀에 나옵니다.

예수님이 만난 사람들

“예수께서 배를 타고 다시 호수 건너편으로 가셨습니다. 예수께서 호숫가에 계시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예수께로 모여들었습니다. 그때 야이로라 불리는 회당장이 예수께 와서 예수를 보고 그 발 앞에 엎드려 간절히 애원했습니다. ‘제 어린 딸이 죽어갑니다. 제발 오셔서 그 아이에게 손을 얹어 주십시오. 그러면 그 아이가 병이 낫고 살아날 것입니다’”(21~23절).

예수님은 참 바쁘셨습니다. 쉴틈이 없으셨습니다. 예수님이 호수 건너편으로 자리를 옮기셨을 때에도 야이로라고 하는 회당장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종교 지도자였지만 자기 딸이 알 수 없는 병에 걸려 죽게 된 상황이었습니다. 그는 절망에 빠져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즉시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간절히 애원했습니다.

“제 어린 딸이 죽어갑니다. 제발 오셔서 그 아이에게 손을 얹어 주십시오. 그러면 그 아이가 병이 낫고 살아날 것입니다.”

회당장에게는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종교인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어린 자식이 죽어 가는데 고통 받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겠습니까? 부모들은 아이의 숨이 넘어갈 때 대신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이 회당장을 보고 예수님이 어떻게 반응하셨는지 다음 말씀에 나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그와 함께 가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따라가면서 예수를 둘러싸고 밀어댔습니다”(24절).

재미있는 것은 예수님이 그와 함께 말없이 가셨다는 것입니다. 때로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말없이 들어주십니다. 예수님께서 직접 “고쳐주겠다. 네 집에 가겠다”는 말씀을 하시지 않아도 이미 예수님의 발걸음은 우리를 향해 오고 계십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우리의 절망 속으로 들어오십니다. 예수님은 말없이 조용히 여러분에게 다가오고 계십니다.

혈루병 여인의 희망 ‘예수님’

사람들이 주변으로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발걸음을 옮기실 때마다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었는데 그 중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한 여인이 예수님을 따라오고 있었습니다.

이 여인은 12년 동안 혈루병으로 무척 고생 했던 여인입니다. 성경에는 이 여인이 병을 고치기 위해 수없이 애를 썼다고 쓰여 있습니다. 이 여인은 많은 의사를 찾아다녔고, 가지고 있는 돈을 다 썼는데도 불구하고 그녀의 병은 고쳐지지 않았고 오히려 더 악화되었습니다.

“그 가운데는 혈루병으로 12년 동안 앓고 있던 여인도 있었습니다. 이 여인은 여러 의사들에게 치료를 받으며 고생도 많이 하고 재산도 다 잃었지만 병이 낫기는커녕 악화될 뿐이었습니다”(25~26절).

우리 주변에는 이런 분들이 참 많습니다. 애를 쓰면 쓸수록 덫에 빠진 것처럼 상황이 더 악화됩니다. 누구나 이 절망적인 상황에서 빠져나가고 싶지 않겠습니까? 과연 병뿐이겠습니까? 우리들의 인생사에 여러 가지 일이 얽히면, 마치 낚시 바늘에 꿰인 것처럼 몸부림칠수록 더 어려워지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여러분, 이 여인의 심정을 생각해 보십시오. 이 여인은 지금 죽지 못해서 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 여인이 어디로 가겠습니까? 여인은 돈이 다 떨어졌기 때문에 옷도 새 옷으로 갈아입지 못했을 것이고, 빨래도 제대로 못했을 것이고, 몸에서 냄새도 났을 것입니다. 얼굴 또한 빈혈로 창백했을 것입니다. 이 여인을 지켜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어쩌면 부모도 포기했는지 모릅니다.

얼마 전에 MBC에서 방영하는 휴먼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보았습니다. 그 프로그램에 피를 흘리는 네 살짜리 어린아이가 나왔습니다. 그래도 그 아이에게는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에 나온 혈루병을 앓는 여인에게는 지켜줄 사람이 없었습니다. 사람이 스스로 혼자 살아야 한다는 것은 고통이고 또한 외로움입니다. 아마 이 여인은 그 당시 문둥병자와 똑같은 취급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 여인에게는 ‘예수님’이라는 희망이 하나 있었습니다. 물론 이 여인도 다른 사람들처럼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들었을 것입니다. 그리고는 마음속으로 ‘그분을 한번 만나보고 싶다’고 생각하며 예수님의 이름을 수없이 불렀을 것입니다. 또한 ‘나같이 천하고 가치 없는 존재가 예수님을 만날 기회는 없겠지’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마음속으로는 예수님의 이름을 수없이 부르며 눈물을 흘렸을 것입니다.

병을 낫게 한 여인의 믿음

그런데 어느 날 예수님이 자기 동네에 오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 여자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사람들이 뭐라고 해도 나는 예수님의 얼굴이라도 보고 싶다’고 생각하며 사람들 틈에 끼어들었습니다.

아까 말씀드린 대로 이 여인의 몸에서는 악취가 났을 것이고, 사람들은 인상을 썼을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좀처럼 자리를 내어주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여인의 마음속에 있는 예수님을 만나보고 싶은 강한 열정이 사람들이 환영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 속에 끼어들게 했습니다.
이 여자의 마음속에는 ‘내가 예수의 옷자락만 만지기만해도 내 병이 나을 것이다’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여러분에게 이 마음이 생기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마음속으로 부르고, 내가 예수님을 만질 수는 없지만 예수님께 가까이 가서 옷자락이라도 만지면 나을 것 같다고 고백하는 믿음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던 중 예수의 소문을 듣고 뒤에서 무리들 틈에 끼어들어 와서 예수의 옷자락에 손을 댔습니다. ‘예수의 옷자락만 닿아도 내 병이 나을 것이다’라고 생각한 것입니다”(27~28절).

이것이 믿음입니다. 이 여인이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는 마음, 이것이 믿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을 찾는 것, 예수님을 생각하는 것이 바로 믿음의 시작입니다. 예수님의 옷자락이라도 만지면 나을 것 같다는 것이 이 여인의 믿음입니다. 이것이 과학적 사실이겠습니까? 지성적 논리겠습니까? 둘 다 아닙니다. 그냥 마음의 생각입니다. 그렇게 해서 이 여인이 예수님께 가까이 가서 옷자락을 만지는 순간, 흐르던 피가 멈췄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사실입니까? 이 여인은 자신에게 변화가 온 것을 알았습니다. 피가 멈춘 것도 알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도 아셨습니다.

여인의 몸에 변화가 일어나다

“그러자 곧 출혈의 근원이 마르면서 이 여인은 자신의 병이 나은 것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동시에 예수께서도 자신의 몸에서 능력이 나간 것을 알아차리셨습니다. 예수께서 사람들을 돌아보며 물으셨습니다. ‘누가 내 옷자락에 손을 대었느냐?’ 제자들이 대답했습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밀어 대는 것을 보시면서 ‘누가 손을 대었느냐’고 물으십니까?’ 그러나 예수께서는 누가 옷을 만졌는지 알아보려고 둘러보셨습니다. 그러자 자기에게 일어난 일을 알고 있는 이 여인이 와서 예수의 발 앞에 엎드려 두려움에 떨면서 사실대로 말했습니다. 예수께서 여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했다. 이제 안심하고 가거라. 그리고 병에서 해방돼 건강하여라’”(29~34절).

제자들은 이 사건을 다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때로는 우리도 설교를 들으면서도 이해하지 못할 때가 참 많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괜한 말씀을 하신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당사자인 여인은 알았습니다. 자기 몸에서 이상한 변화가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여인은 두려움에 떨면서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사실을 고백했습니다. 이것이 진짜 크리스천과 가짜 크리스천과의 차이입니다. 교회에 나와 설교를 듣고 말씀을 읽어도 뭐가 뭔지 느껴지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분들이 글자를 모르겠습니까, 뜻을 모르겠습니까? 단지 느껴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이 괜히 쓸데없는 말씀을 하신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와 그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갑자기 내가 변하고, 마음이 울렁거리고, 기쁨이 내 안에서 솟아나며, 생명이 움틀거리는 것을 느낍니다. 12년 동안 혈루병을 앓던 이 여인은 자기 안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예수님께 고백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 안에 일어나고 있는 변화를 예수님께 고백하십시오. “주님, 내게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내 몸과 내 마음에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의 세 가지 반응

이때 예수님의 반응이 세 가지로 나옵니다.

첫 번째로 예수님은 이 여인의 병이 나았는데 더 높은 축복의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네 믿음이 너를 치료했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여러분, 불치병의 치료보다 더 놀라운 치료는 당신의 구원입니다. 우리가 구원받았다는 것이 얼마나 희망적이고, 강력한 축복입니까?
여러분은 구원받으셨습니다. 인생의 작은 문제들은 해결되지 않았을지라도 “당신은 구원받았다”는 말을 예수님께로부터 들었다면 이 얼마나 값진 축복입니까?

두 번째는 “이제 안심하고 가거라”하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두려움을 쫓아버리고, 절망을 떨쳐버리고, 당신을 얽매고 있는 모든 족쇄를 풀어버리고 자유하다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너를 묶어놓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돈도, 세상의 인연도, 모든 꼬인 것도 다 풀렸다. 이제 너의 복역의 때가 끝났다. 너는 자유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선언입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은 자유입니다. 병이 여러분을 묶을 수 없습니다. 세상의 어떤 것도 여러분을 묶을 수 없습니다.

요즘은 범죄자들에게 전자 발찌를 채운다고 합니다. 칸 IMF 전 총재도 전자발찌를 차게 됐다고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발에는 아무것도 채울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자유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안심하고 가십시오. 이것이 주님의 두 번째 축복입니다.

세 번째는 “병에서 해방되어 강건하여라”하는 말씀입니다.
할렐루야! 여러분, 병든 자에게 이 말씀은 얼마나 큰 축복이겠습니까? 예수님은 오늘 우리에게 “이제 당신은 아프지 않다. 이제 병마에서 해방되었다. 일어날 것이다. 걸어갈 것이다. 건강해질 것이다. 너는 병에서 자유를 얻었다”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 혈루병 걸린 보잘 것 없는 여인에게 예수님은 세 가지의 축복을 해주셨습니다. 곧 그것은 오늘 여러분과 제게 주시는 축복의 말씀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예수님의 말씀을 받으십시오. 내 것으로 받으십시오. 오늘 당장 여러분의 마음에 받으십시오.

달리다굼(소녀야 일어나라)

“예수의 말씀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야이로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 말했습니다. ‘따님이 죽었습니다. 선생님께 더 이상 폐 끼칠 게 뭐가 있겠습니까?’ 예수께서 그 말에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회당장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여라’”(35~36절).

예수님이 혈루병 걸린 여인을 고쳐주시는 사이에 야이로의 딸이 죽었습니다.

이야기는 회당장 야이로가 죽어가는 어린 딸을 위해 예수님께 기도해 달라고 부탁한 것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혈루병 걸린 여인이 끼어들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동안 딸이 죽었습니다. 사람들의 반응은 어땠을까요? 사람들은 울고불고 통곡을 했습니다.
예수님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예수님은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여라”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과 반응이 달랐습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야고보의 동생 요한 외에는 아무도 따라오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회당장의 집에 이르자 예수께서 많은 사람들이 울며 통곡하며 소란스러운 것을 보시고는 집안으로 들어가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어째서 소란하며 울고 있느냐? 아이는 죽은 것이 아니라 그냥 자고 있는 것이다’”(37~39절).

예수님은 이 어린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자고 있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죽는다는 것과 자고 있다는 것과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죽는다는 것은 다시 깨어나지 않는다는 것이고, 자고 있다는 것은 다시 깨어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다시 깨어날 것입니다. 우리는 언젠가는 죽을 것이지만 죽고 나면 하늘나라에서 다시 깨어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야 합니다.
죽음은 천국을 향해 가는 문입니다. 단지 그 뿐입니다. 죽음은 우리 인생의 끝이 아닙니다. 죽음은 영원을 여는 시작에 불과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어린아이가 자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비웃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아이의 손을 붙잡고 “달리다굼”(소녀야 일어나라)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이 어린아이가 일어났습니다. 그리고는 즉시 걸어 다녔습니다. 모든 사람이 놀랐습니다. 어찌 놀라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이 사실을 많은 사람에게 알리지 말라고 당부하시면서 어린아이에게 떡을 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늘 희망이 되시는 예수님

“그러자 사람들이 예수를 비웃었습니다. 예수께서 사람들을 모두 밖으로 내보내시고 아이의 부모와 함께 있는 제자들만 데리고 아이가 있는 방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예수께서 그 아이의 손을 잡고는 아이에게 ‘달리다굼!’ 하셨습니다. 이 말은 ‘소녀야, 내가 네게 말한다. 일어나거라!’는 뜻입니다. 그러자 곧 아이가 일어나더니 걸어 다녔습니다. 이 소녀는 열두 살이었습니다. 이 일을 본 사람들은 몹시 놀랐습니다. 예수께서 이 일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고 엄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아이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40~43절).

예수님은 바쁜 가운데에서도 절망 가운데 빠진 사람들, 희망을 잃어버린 사람들, 인생을 포기한 사람들에게 희망이 되셨습니다.

인생의 끝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희망이 되십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죽은 사람에게 새 생명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자 죽은 자가 살아나고 병든 자가 일어났습니다. 이것이 오늘 말씀입니다.

물론 모든 사람에게 이들과 똑같이 동일한 일이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오늘 이 시간에 우리가 이 말씀을 통해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어떤 경우에 있어서도 우리의 희망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절망을 뛰어 넘어 우리에게 희망을 주십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뒤로하고 우리에게 부활의 영광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말씀을 믿으십시오. 받아들이십시오. 그리고 예수님께 영광을 올려 드리십시오. 만약 의사 선생님이 당신에게 어떤 병이 있다고 하든가 어떤 진단을 내렸다고 할지라도 만약 당신이 3개월밖에 살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부인하지 말고 그냥 들으십시오. 그렇지만 여러분의 마음속에 희망의 꽃을 피우십시오. 믿음의 꽃을 피우십시오. 여러분은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희망의 길을 열어주실 것입니다.

출처: 온누리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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