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본철 교수(성결대학교)
본지에 ‘배본철 교수의 성령론 Q&A’를 연재 중인 배본철 교수(성결대)가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세계교회협의회(WCC)와 관련, WCC의 태동과 그 역사적 배경, 신학적 실체 등을 분석한 글을 본지에 보내왔습니다. 배 교수는 “현재 WCC 논쟁이 과다한 정치적 논리와 교계 분열의 양상으로 치닫는 것을 보면서, 이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학문적이고도 교회사적인 입장에서 차분하게 WCC를 비평해 정리해야 할 때가 바로 지금임을 느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또 “이 글은 단지 반대를 위한 반대는 아니며, 어떤 정치적인 목적이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며 “오직 바람이 있다면 한국교회가 바른 복음적 의식 안에서 일치를 이루는 것”이라고 이 글을 쓰게 된 배경을 설명했습니다. 배 교수의 글은 ‘WCC, 그 실체를 밝힌다’는 제목으로, 총 5부에 걸쳐 연재될 예정입니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교회연합운동의 태동
② 세계대전의 격랑 속에서
③ WCC 창립 총회와 Missio Dei
④ 왜곡된 복음의 뒤안길을 걷다
⑤ 간과될 수 없는 역사적 과오

뉴델리(New Delhi) 대회까지

1948년 암스테르담에서 세계교회협의회(WCC)가 창설된 이후, 그 집행위원회는 해마다 열리며 통상적으로 정기 총회는 7년에 한 번씩 개최되었다. 1954년의 에반스톤 총회는 ‘세상의 희망이신 예수 그리스도’(Jesus Christ, the Hope of the World)라는 주제를 가지고 모였다. 여기에서 ‘에반스톤 메시지’를 발표했는데, 내용은 그리스도만이 세상의 참 소망임을 강조하면서, 교회는 정치적 및 사회적 불의와 대항하여 싸우는 사회적 책임을 감당해 나가야 한다고 했다(The Evanston Report, ‘A Message from the Second Assembly of the World Council of Churches’).

이 총회에서는 특히 저개발국에 대해 고조된 관심을 나타냈다. 그리고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 등지의 혁명적 봉기(蜂起)를 인정했고, 동서분쟁, 핵을 비롯한 군축 문제 등에 관심을 나타내었다. 또 식민주의와 인종차별을 정죄함에 있어서 암스테르담을 훨씬 능가하였다. 이 인종차별 문제는 3차 뉴델리 총회와 4차 웁살라 총회에 이르러서는 그 추세가 혁명적 전향을 보여, 인권운동과 인종차별 배격운동으로 번져갔다. 에반스톤 총회는 다음과 같은 6개 분과로 연구와 토론을 하였다;

제 1분과는 교회의 분열을 비판하면서, 분열의 죄악을 벗고 연합을 이루기 위해 교회의 전통과 특성을 부인하는 순교자적 결단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제 2분과는 교회 밖을 향한 교회의 선교에 대한 것으로서, 선교에 평신도의 역할을 강조했다. 제 3분과는 ‘책임 있는 사회’의 분명한 정의를 내렸고, 현존하는 모든 사회질서를 판단하는 기준을 세웠다. 제 4분과는 세계 공동체를 위한 그리스도인의 투쟁에 대해서 논했다. 제 5분과는 인종적 및 종족적 긴장 가운데 있는 교회로서의 국제적 평화와 정의 구현을 위한 교회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했다. 제 6분과는 평신도 그리스도인과 직업에 관한 것이다.

1961년 WCC 뉴델리 대회에서는 복음을 전한다는 선교의 성격보다는 봉사적 차원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인 경향들이 나타났다. 따라서 이 회의에서는 Faith and Order에 관한 논의보다는, 세계 도처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기아와 빈곤의 문제에 초점이 맞춰졌다. 이러한 경향은 제네바(1966)와 베이루트(1968) 대회 이후 훨씬 더 분명하게 나타났다. 나이로비(1975) 총회에서는 총회가 민간인 게릴라 활동을 위한 경제지원을 승인하는 것을 보장하는 접근에 대해 충분한 지지를 보냈다.

이 총회에서는 역사적으로 IMC와 WCC가 통합되어 하나의 기구가 되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비 서구지역에서 열린 이 회의에서 WCC는 제 3세계 교회를 받아들였고, 그 교회들은 러시아정교회 및 불가리아, 루마니아, 폴란드 등의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경향을 띤 교회들이 대거 회원이 되었다. 이로 인해 WCC 내의 세력 균형은 서방 자유주의 교회들로부터 동구 공산권과 제 3세계로 전향되게 되었고, WCC 내의 용공(容共) 세력은 점점 강화되었다. 뉴델리 총회에서는 다음과 같은 증거와 봉사와 연합의 3분과로 나뉘어 교회의 3중 과업을 연구했다;

제 1분과 ‘증거’에서는 그리스도와 복음의 독특성을 내세우면서도, 그리스도 활동의 보편성 내지 종교혼합주의를 인정하는 듯 했다. 제 2분과 ‘봉사’에서는 봉사의 본질과 형태를 다뤘다. 제 3분과 ‘연합’에서는 연합의 본질과 목적을 다루면서,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며 은사인 연합은 실제적으로 구현해야 함을 밝혔다.

뉴델리 대회의 가장 큰 신학적 문제점은 보편구원설(普遍救援說; Universalism)의 경향성이 그 이전 어느 때보다도 많이 보였다는 점이다. 총회의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의 빛’(Jesus Christ the Light of the World)이었는데, 이 빛은 모든 사람들 속에 있다고 하였다. 이러한 진술들은 에큐메니칼 전도방법으로서 ‘대화’(dialogue)를 택했다. 이러한 보편구원설은 교회와 세상 사이, 기독교와 이방종교들 사이, 그리고 기독교 신앙을 가진 사람과 신앙이 없는 사람사이의 구별을 거의 없애버리고 말았다. 하나님의 목적이 집단적이고 국가적이기 때문에,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 아니라 새로운 인간성과 오는 세계의 한 시범(示範)이고, 그 사명은 봉사라는 것이다.

상황화신학

1966년의 제네바 대회에서는 사회적 정치적 구조에서 혁명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 물리적 행동의 가능성이 절정에 달했다. 사회의 이상적인 구조로서 사회주의를 제시함으로 복음 전도의 정치적 경향을 나타냈다. 즉 필요하다면 폭력적인 정치혁명도 일으키는 급진주의(急進主義)를 승인했다. 이 대회에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 인간성의 개념을 받아들여 그 관심을 세상과 세상의 요구로 돌렸다. 이 대회는 선포와 복음전도도 새로운 인간성과 사회정의라는 면에서 해석되었던 것이다.

1968년의 웁살라 총회는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Behold, I make all things new)라는 주제로 모였다. 이 총회에서는 제 3세계라고 불리우는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지역의 여러 분야의 문제를 다루게 되었다. 특히 부유한 나라들과 가난한 나라들 사이의 커져가는 간격에 대하여 교회의 선교활동이 그 해결을 모색하는데 주력하도록 촉구했다. ‘급진적인 변화’, ‘경제정의’(經濟正義) 그리고 ‘해방’을 요구했다. 이러한 목적들을 성취하기 위한 도덕적인 짐이 미국과 서구에 무겁게 부과되었다. 또한 공산주의 게릴라 단체들을 지원하는 인종차별 투쟁사업을 합법화한 총회이기도 했다.

그후 1972년 WCC 계통의 TEF(Theological Education Fund)가 'Ministry in Context'를 주제로 다루면서 공식적으로 ‘상황화’(狀況化)라는 개념이 대두되었다. 상황화는 각 문화의 지역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의 사고와 실천에 공헌할 수 있다고 하면서, 지역 문화에 있는 긍정적인 본질을 찾아 모든 인종 그룹에 기독교의 메시지를 관련시키려는 문화적 상대주의(文化的 相對主義)가 내포되어 있다. 이러한 상황화신학은 ‘오늘의 구원’(Salvation Today)을 다룬 1973년 방콕 회의와 1975년 나이로비 대회 보고서에서도 일반적으로 나타난다;

다른 신앙을 가진 자나 신앙이 없는 자가 예수 그리스도와 제자들에 대해서 어떻게 말하는지를 우리는 알 필요가 있다. 그리스도가 다른 종교들 속에도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든 안 하든 간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어느 세대나 사회 속에서 자신을 증거하지 않고 스스로 물러선다는 것을 믿을 수 없다. 또한 교회 밖에 있는 크리스천들에게 하나님이 말씀하실 수 있다는 가능성을 또한 배제할 수 없다. 어떤 종류의 제설혼합주의라도 배제하는 반면에, 우리는 상호 이해와 실제 협력의 수단으로서 다른 종교들과 사상들 속의 남녀들과의 대화의 필요성을 주장한다(David M. Paton(ed.), Breaking Barriers; Nairobi 1975, 46).

그래서 상황화신학에서는 지나간 시대의 신학은 기독교가 지배하던 콘스탄틴 이후의 크리스텐돔(Christendom) 신학이었다고 본다. 그래서 이 같은 전통적인 신학에 도전하여,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 아시아 교회의 문화적, 상황적 질문을 그들의 시각에서 보고 성경을 읽는 새로운 방법이 대두되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서 정치신학, 해방신학, 흑인신학 등의 토의에서 상황화의 주제와 방법론이 두드러지게 다루어져 왔다.
이러한 상황화신학에는 어쩔 수 없이 다음과 같이 몇 가지 심각한 난제들이 따르게 된다; (1) 진보적이거나 아니면 보수주의적인 신학자들은 모두 최근의 상황화에 대한 논쟁이 단순히 복음의 전달(communication) 차원만이 아니라 복음 자체의 본질에 관계된다는 점에 긍정한다. (2) 상황화에 대한 논쟁은 결국 제설혼합주의에 대한 문제에 맞춰진다. 상황화신학은 복음을 지역 주민의 문화로부터 분리하지 않고 그들에게 이해시켜야 된다고 하지만, 이러한 과정에서 복음 자체를 왜곡하고 약화하거나 혹은 타협하는 위험이 발생할 수 있다. (3) 성서신학과 상황화신학 간의 뚜렷한 마찰이 생긴다는 것이 중대한 논제이다. 복음주의자들은 성서신학적인 관점에서 흑인신학이나 해방신학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다. 그러나 진보주의자들은 참으로 성서적인 신학이란 하나님 백성들의 문화들과 문제들속에서 성육신적인 신학을 형성하는 일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신학의 상황화가 교회 선교를 위해서 최우선적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상황화신학에 대한 비평은 1974년 로잔대회를 비롯한 여러 복음주의 교회들의 회의에서도 심도 있게 논의되어왔다. 로잔 언약(Lausanne Covenant)에서는 ‘교회는 때때로 성경보다는 문화에 매여 있다’고 하여 WCC의 상황화를 경계한 바 있다. 이처럼 WCC 계열은 신학의 출발점을 상황에 두며, 따라서 비복음적, 비선교적, 제설통합주의, 배타적 민족주의 등을 야기시키는 위험한 상황화신학의 노정에 서서 교회의 복음적 선교의 정신을 와해시키는 것이다.

대화적 대화의 문제

WCC의 세계선교와 복음화 위원회(CWME)는 종교간 대화 프로그램을 구체화하면서 인도 태생의 신학자인 사마르타(Stanley J. Samartha)를 대표자로 선정하였다. 그는 상호 종교 간의 대화의 정신은 내 종교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상대방의 종교적 관점 속에서 내 종교의 특수성을 파악하고 표시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보았다. 그는 ‘대화’야 말로 기독교가 자신을 찾을 수 있는 본질적인 요소임과 동시에 지속적인 관심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Stanley J. Samartha, "Dialogue as a continuing Christian Concern", Living Faiths and the Ecumenical Movement, 153-7).

파니카(Raimund Panikkar)는 ‘대화의 신학’에 있어서 우리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사람 중의 하나다. 그는 인도 태생의 가톨릭 사제이며 종교간 대화(Inter-religious dialogue)의 대표적 인물로서 1971년부터 1978년까지는 Santa Barbara의 캘리포니아대학교의 종교학 교수로서 일했다. 그는 사마르타와 같은 입장에 서서, 현대와 같은 다원주의 세계에서 실재에 대한 올바른 통찰을 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의식에만 의존해서는 안 되고 다른 사람의 의식을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보았다. 그리고 성숙한 대화는 변증법적 대화를 거부하고, 다원적 상황에 입각해서 ‘대화적 대화’(Dialogical Dialogue)를 진행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Raimundo Panikkar, "Dialogical Dialogue", Frank Whaling(ed.), The World's Religious Traditions, 207).

여기서 그가 변증법적 대화보다 대화적 대화를 훨씬 낫게 평가한 것은, 대화적 대화가 어떤 신조보다는 그 사람의 인격을 만나는 것이고, 또 단순한 어떤 사상으로서만이 아닌 전인(全人)으로서 관심과 사랑 속에서 이루어지는 대화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대화적 대화를 통해서만이 상대방으로부터 새로운 통찰을 얻으며 자신을 성장시킬 수 있으며, 변증법적 대화를 통해서는 이러한 만남과 성장을 이룰 수 없다고 보았다.
파니카는 대화적 대화의 실천적 모델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였다; (1) 우리는 지금 지구에서의 인류 상호 공존에 대한 매우 중대한 질문으로서의 종교다원주의에 직면해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2) 대화자 상호간에 따뜻한 사랑과 함께 진리에 대한 관심이 있어야 한다. (3) 상대방의 타종교에도 보편적 하나님의 계시로 인한 진리의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으면 대화는 진전될 수 없다. (4) 진정으로 상대방을 알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상대방의 종교경험에 참여해 보아야 할 것이다. (5) 양자는 대화 도중 자기 안에서 일어나는 변화에 대해서 개방적이어야 한다. 이 변화를 통해서 진정한 성장을 기대할 수 있으며, 변화를 통해 자신의 기존 신념의 틀이 부서지고 혹 개종의 도전이 주어진다 해도 이를 용기 있게 받아들여야 한다.

이상과 같은 파니카의 대화지침(對話指針)은 다음과 같이 간단히 삼단계로 나눠질 수 있다; 첫째는 용납(容納) 단계로서, 이는 상대방의 종교적 전통과 문화를 이해하고자 노력하는 단계이다. 둘째는 입증(立證) 단계로서, 이는 상대방에 의해 나의 경험적 확신이 참여를 통해 입증되도록 하는 일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통합(統合) 단계로서, 이는 종래의 주관적 경험과 상대방에 의해서 얻어진 새로운 경험을 통합정리(統合整理)하는 일이다. 이와 같이 대화의 신학은 종교다원주의 시대에서 저마다 절대적 신념을 고집하고 있는 세계의 여러 종교들 간의 매개역할을 시도하고 있다. 그리고 그 성취하고자 하는 목표는 결국 다름 아닌 종교혼합주의인 것이다.

나이로비(Nairobi) 대회 이후 구체화되는 혼합주의

1975년의 나이로비 총회는 ‘예수 그리스도는 자유케 하며 하나되게 하신다’(Jesus Christ Frees and Unites)라는 주제로 모였다. 이 총회는 적도 이남에서 열린 최초의 총회였고, 여성과 평신도에게 대표할당제가 실시된 최초의 총회였다. 그리고 로만 가톨릭, 불교, 힌두교, 이슬람교, 유대교 등의 대표자들이 참관자로 참석하여 혼합주의의 색체를 강하게 띠고 있었다. 이 대회에서도 역시 종교간의 대화의 필요성을 매우 강조하였다(Paton, Breaking Barriers; Nairobi 1975, 70-3). 그리고 이 대회의 중심 주제인 ‘해방’은 다음과 같은 여섯 부분으로 구분 지었다; (1) 오늘날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것 (2) 연합이 요구하는 것 (3) 공동체에 대한 촉구 - 다양한 신앙과 문화와 이념을 가진 사람들의 공동 탐구 (4) 해방과 공동체를 위한 교육 (5) 불의에서의 구조와 해방을 위한 투쟁 (6) 인간의 발전.

이어서 1983년의 뱅쿠버 총회에는 소련 대표 61명과 동구 공산권과 제 3세계의 대표들이 상당수 차지했다.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의 생명’(Jesus Christ, the life of the world)으로서, 평화와 정의의 문제를 비롯하여 아프카니스탄과 중남미 및 세계 여러 지역의 사건들에 대한 해석 등 여러 주제들을 다루었다. 가장 중요한 시책으로서 인종차별 투쟁사업을 계속 강화하기로 결의하였다. 이 총회에서는 힌두교, 불교, 유대교, 이슬람교, 시크교 등 다섯 개 세계종교들의 지도자들을 초청하여 공식적으로 연설하게 하였다. 또 타종교(他宗敎)와의 대화를 모색함으로서 타종교도 역시 하나님께로 가는 다른 길들임을 인정한 총회였다(David Gill(ed.), Gathered for Life, 39-42).

1991년의 제 7차 캔베라 총회는 힌두교, 불교, 이슬람교 등 세계의 대표적인 15개 종파의 지도자들을 초청하여 모든 행사에 참석시켰다. 특히 이 총회에서 이화여자대학교 정현경 교수가 억울하게 죽은 영혼들의 이름이 적힌 종이를 불태우며 하늘로 뿌리는 초혼제(招魂祭) 사건은 한국교회를 경악시키며 큰 비난을 불러일으켰다(이에 대한 비판문으로서 이종윤, “초혼제는 무당 신앙 접맥 불과”, 김명혁, “종교혼합주의 노선 심각 경계”를 참조하라. 2009년 11월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합동) 총회장 담화문에서도 교수가 초혼제와 풍물을 발표하며, 착취를 당했다는 하갈과 광주, 천안문에서 죽은 영혼들을 불러내는 초혼제를 열어 이를 성령의 강림으로 표현했다고 심하게 비난하였다). 이 총회에서 나타난 종교혼합주의적 색채는 그 어느 때보다도 짙었으며, 이와 같은 양상은 1998년 제 8차 짐바브웨 총회나 2006년 제 9차 브라질의 포르토 알레그레(Porto Alegre) 총회에서도 여실했다. 이처럼 WCC 총회는 참 복음선교의 비전은 사라지고, 세속적 비전 즉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논제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였으며, 그들이 의도하던 안 하던 간에 WCC 선교론의 행보는 세계 종교의 단일화를 향한 발자취가 그들의 역사 속에 점차 선명해져 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