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진 교수(웰빙코칭아카데미 대표, http://blog.daum.net/k-d-h).
2010년 11월 13일 캐나다 온타리오 주의 한 식당에서 갑작스럽게 기이한 일이 일어났다. 그것은 점심시간에 맞추어 수많은 사람들이 식당을 가득 채우고 식사를 하던 중에 일어난 이벤트였다.

주역을 맡은 이들은 캐나다의 Chorus Niagara 멤버들이었다. 그들은 식당의 손님이나 직원으로 가장하여 평범한 복장으로 그들과 같이 점심시간을 보내던 중에 작전을 감행한 것이다. 갑자기 일어나서 각자의 위치에서 자기가 맡은 부분을 함께 불러 분위기를 고조시킨 ‘할렐루야’ 합창이었다.

물론 캐나다의 한 이벤트 회사가 기획하여 연출된 이벤트이지만 매우 감동적이었다. 비록 4분간의 짧은 연출이었지만 그들이 나누어 준 행복감은 무한대라고 생각된다. 그 장면은 “Christmas Food Court Flash Mob, Hallelujah Chorus - Must See!”라는 제목으로 http://www.youtube.com/watch?v=SXh7JR9oKVE 에서 감상할 수 있다.

웰빙은 현대인들이 누구나 사모하고 소망하는 가치이다. 그러나 대부분 사람들에게 웰빙이라는 단어는 머릿속에서 상념으로만 윙윙거리다 희미하게 도망가고 만다. 왜 그런 일이 발생하는 것일까? 그것은 웰빙에 대하여 너무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으며 구체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방법들을 심사숙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필자는 웰빙 특강을 다니면서 가끔 웰빙의 개념에 대해 질문을 던져 본다. 그러면 ‘행복’ ‘안녕’ ‘복지’ ‘복리’ 뭐 그런거 아니냐고 짧은 답변들이 난무한다. 그러나 이것들은 사전적인 의미이다. 웰빙이란 소유가치를 찾아 살아가는 것보다 자신의 영혼과 육체의 행복을 찾아가는, 존재가치를 이웃과 함께 나누는 것이다.

웰빙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육식보다는 채식을 즐기고, 인스턴트 식품이나 음료수 및 화학조미료 첨가물이 들어간 식품들을 꺼리고, 패스트푸드보다는 직접 만들어 먹는 슬로우푸드를 즐기는 사람들이라고 흔히들 생각한다. 또한 육체와 정신의 건강을 위해서 요가나 명상, 휘트니스나 필라티즈 등과 같은 프로그램을 활용하는 사람들이라고 간주한다. 이것은 웰빙족에 대한 설명들로 일부분 맞다.

요즈음 유행하는 아로마 테라피나 라이트 테라피 같은 자연요법들도 그들의 기호 프로그램들이다. 그들은 현대인들이 커피를 즐길때 농약으로 오염되지 않은 식물들을 채집하여 말린 약초들을 차로 만들어 마신다. 그것이 그들이 생각하는 웰빙의 일반화된 현주소이다. 무농약 유기농 농산물만 애용하는 보보스족들도 물론 그들의 일부 모습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필자는 자신의 건강만을 위해 노력하는 삶에서 머물면 그것은 초보 웰빙이라고 생각한다. 즉 품격있는 웰빙은 아니라는 의미이다. 그래서 이 사회를 위해 우리 모두가 품격있는 웰빙을 창출해 나갈 것을 제안한다. 지극히 개인주의나 이기주의에 물들어 삭막해져 가는 세상을 방치해 둔 채, 나홀로 건강하고 행복감에 젖어져 산다고 한들 그것은 기형적인 웰빙이기 때문이다. 마치 욕심장이 키다리 아저씨의 우화처럼 말이다.

품격있는 웰빙은 이웃과 함께 좋은 영향력을 주고 받는 관계에서 꽃이 핀다. 나의 건강과 행복을 나만의 테두리 안에서 멈추는 것은 바람직한 웰빙이 아니다. 웰빙세상을 갈망하신 창조주께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신 것은 바로 우리가 함께 웰빙 세상을 만들어 가야 할 가치가 되는 것이다.

추운 겨울에 길바닥에서 수천명의 우리 이웃들이 노숙을 하고 있는 우리들의 현실은 아직도 우리 나라가 웰빙 국가가 아님을 입증한다. 진정 웰빙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내 이웃이 춥고 배고픔으로 떨고 있다는 것을 조금이라도 해소시켜 보겠다는 따스한 마음으로 행동하는 사람이다. 그렇게 작은 일이지만 하루 하루 그들을 배려하면서 살아간다면 그는 진정 웰빙의 참맛을 나누는 웰빙족이 되는 것이다. 이제 나만의 행복을 넘어서 우리 모두의 행복으로 삶의 추진력을 가속화시켜 보자. 자칫 잘못하면 배부른 돼지같은 기형적 웰빙족이 될 수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