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본철 교수(성결대학교)
본지에 ‘배본철 교수의 성령론 Q&A’를 연재 중인 배본철 교수(성결대)가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세계교회협의회(WCC)와 관련, WCC의 태동과 그 역사적 배경, 신학적 실체 등을 분석한 글을 본지에 보내왔습니다. 배 교수는 “현재 WCC 논쟁이 과다한 정치적 논리와 교계 분열의 양상으로 치닫는 것을 보면서, 이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학문적이고도 교회사적인 입장에서 차분하게 WCC를 비평해 정리해야 할 때가 바로 지금임을 느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또 “이 글은 단지 반대를 위한 반대는 아니며, 어떤 정치적인 목적이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며 “오직 바람이 있다면 한국교회가 바른 복음적 의식 안에서 일치를 이루는 것”이라고 이 글을 쓰게 된 배경을 설명했습니다. 배 교수의 글은 ‘WCC, 그 실체를 밝힌다’는 제목으로, 총 5부에 걸쳐 연재될 예정입니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교회연합운동의 태동
② 세계대전의 격랑 속에서
③ WCC 창립 총회와 Missio Dei
④ 왜곡된 복음의 뒤안길을 걷다
⑤ 간과될 수 없는 역사적 과오

에딘버러 회의 이후 연합운동에 대한 강조는 단지 선교의 문제에 국한되지 않고 기독교생활 전반에 확대되어야 한다는 움직임에 의해 신앙과 직제(Faith and Order), 생활과 활동(Life and Works)이라는 두 기구가 조직되었다. 신앙과 직제 모임은 교회론적인 영역에서 교회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추구하였다. 반면 생활과 활동 모임은 기독교인의 생활 가운데서 봉사를 통해 일치를 요망했다.

그리고 두 모임의 끈질긴 노력과 끊임없는 접촉으로 기독론적인 의미에서 하나의 통일성을 찾게 되었고, 마침내 1948년 암스테르담에서 세계교회협의회(WCC; World Council of Church)의 창립총회를 하게 된다. 이 대회는 ‘인간의 무질서와 하나님의 계획’(Man's Disorder and God's Design)이라는 주제를 내걸고 147개 교회 대표들이 4개 분과로 나누어져서 모임을 가졌다.

전후의 시대적인 혼란 가운데서 세계교회협의회(WCC; World Council of Church)는 전후 세계의 재건과 교회 간의 협동에 지대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위대한 세기인 19세기 선교운동의 확산을 거쳐 20세기에 접어들면서, 에큐메니칼운동은 그 주된 관심이 사회개혁에 있는가 아니면 선교를 위한 교회일치에 있는가 하는 의문과 함께 급진주의(急進主義)의 대변자, 심지어 용공단체(容共團體)라는 의심까지도 받게 된 것이다.

1948년에 드디어 WCC는 그 역사적인 창립총회를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에서 개최했다. 암스텔담 총회 소집의 소식이 전세계에 알려지자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흥분과 기대를 했으나, 이 WCC가 오늘날만큼의 큰 기구로 발전되리라고는 거의 짐작하지 못했다. 다만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하나됨’을 염원하던 세계 교회지도자들은 지금까지 나누어졌던 교회들이 한 자리에 모이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기쁨과 감격을 억제할 수 없었다. 아시아, 아프리카 그리고 신생 독립국가들의 교회들도 참여했으나 정교회(Orthodox Church)나 로만 가톨릭은 참석하지 않았다. 이 대회는 ‘인간의 무질서와 하나님의 계획’이라는 주제를 내걸고 147개 교회 대표들이 4개 분과로 나누어져서 모임을 가졌다.

제 1분과는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는 우주적인 교회’(The Universal Church in God's design)라는 주제 하에 하나님의 경륜 속에서의 보편적인 교회론을 토의하였다. 여기서 일치란 하나님의 창조이지 우리의 성취가 아니며,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백성에게 주신 것이라는 가장 근원적인 것을 재확인했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 사이에는 깊은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사랑할 수 있는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다.(Man's Disorder and God's Design, The Amsterdam Assembly Series(New Yor: Harper & Brothers, Plishers, 1948), Vol. I, 204-8.)

제 2분과는 ‘하나님의 계획에 대한 교회의 증거’(The Church's Witness to God's Design)라는 주제 하에서, 두 번의 세계대전으로 세계의 구조가 뒤흔들어진 구조 속에서 ‘화해’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과 하나님의 손에 쓰임 받는 도구가 되기 위하여, 교회는 복음에 성실하고 교회의 본질을 보다 더 충실히 실현해야 함을 강하게 부각시켰다.(Ibid., Vol. II, 212-8.)

제 3분과는 ‘교회와 사회의 무질서’(The Church and The Disorder of Society)라는 주제 하에 책임사회, 특히 교회의 기능 중 그 사회적 기능에 대해서 매우 강조하고 있다. 교회의 사회적 기능에서 특히 주목되는 것은, 교회는 민족적 종족적 담을 헐어야 한다는 것과 또한 교회는 어느 정당과도 자기를 동일시 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Ibid., Vol. III, 189-97.)

제 4분과는 ‘교회와 국제적 무질서’(The Church and International Disorder)라는 주제 하에 모였다. 암스텔담 총회는 특히 제 2차 세계대전 기간에 준비되었으며 전후에 소집된 것이기 때문에 국제간에 어려운 문제를 다루어야 했다. 그 가운데서 특히 전쟁, 평화, 하나님의 절대적 지배권, 이권과 자유에 대해서 논의하였다. 기독교인의 책임에 대해서는 ‘교회와 기독교인들은 오늘날의 국제적 무질서에 대해서 책임을 통감해야 하며 그 질서화에 의무를 가져야 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Ibid., Vol. IV, 217-28.)

이 대회는 창립총회였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작업의 하나가 헌장을 결정하는 것이었다. 이 헌장은 앞으로 WCC가 활동하는데 있어서 법적 근거가 되는 것이었다. 이 헌장에서 가장 핵심이 되고 중요한 것은 다음과 같이 처음 3장까지 명시되어 있다.

제 1장, 총칙은 ‘WCC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과 구세주로 받아들이는 교회들의 친교이다. 그리고 그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헌장을 제정한다’고 되었있다.

제 2장은 회원권에 관한 것이다. 회원은 제 1장의 총칙에 찬성하고 그 총회의 중앙위원회가 제정하는 모든 기준에 만족한 뜻을 표시하는 교회들로서, 총회 대표 2/3 이상의 찬성 투표를 얻어야 한다. 회원권 신청이 총회 회의가 아닌 때에 제출되는 경우에는 중앙위원회가 이를 심사한다. 그 신청이 출석할 중앙위원 회원 2/3 이상의 지지를 받았을 때에는, 이 결정을 WCC 회원인 모든 교회에 통고하여, 통고가 발송된 후 6개월 안에 1/3 이상의 반대가 없을 경우에는 그 신청자는 회원권을 얻을 수가 있다.

제 3장은 WCC의 기능을 명시하고 있다. 헌장에 의하면 WCC는 (1) 신앙과 직제, 생활과 활동이라는 두 세계적인 운동의 일을 계속하는 것 (2) 교회들의 공통적인 일의 촉진 (3) 연구에 있어서 협조와 촉진 (4) 회원이 된 교회들의 에큐메니칼 의식의 촉진 (5) 전 세계 각 교파 연맹단체와 다른 에큐메니칼 운동과의 상호관계의 수립 (6) 필요에 따라 특수문제를 토의하기 위한 세계적인 회합의 소집 (7) 교회로 하여금 복음전도사업을 하도록 지지하고 돕는 것 등이다.

WCC를 창립시킨 암스텔담 회의는 1910년 에딘버러 선교대회 이후 30여년간의 준비기간을 거쳐 비로소 모이게 된 역사적인 모임이었다. 이 총회를 통하여 전 세계교회들이 에큐메니칼 운동에 대해 책임을 지니게 되었으며, 또 책임을 계속적으로 다할 때만이 이 운동의 기초가 견고하게 된다는 것을 분명하게 하였다. 암스테르담 총회는 WCC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는 에큐메니칼 성격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WCC는 초교회(Super-Church)를 형성하려고 하지 않는다. WCC는 각 교회가 자기들의 특성을 가지고 연합할 수 있는 길을 찾는 것이다.
-WCC는 각 교회가 자기 교회에 충성을 다하면서, 동시에 에큐메니칼 운동에 적극하여 충성하게 하는 것이 연합운동의 사명이다.
-WCC는 어떤 또 다른 교회 조직을 새로 만들려는 것이 아니고 순전히 협의 기관의 구조로서의 성격을 가진다.
-모든 교회들은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를 증거함에 공동전선을 펴야 할 것을 밝혔다. “하나님의 목적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인간을 그와 그리고 인간 서로 간에 화해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 목적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성육신과 그의 섬기시는 사역과 그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그의 부활과 승천을 통하여 명시되었다. 그것은 그의 교회와 함께 계시는 그리스도의 임재와 모든 민족으로 제자를 삼으라 하신 명령과 성령의 은사를 통하여 계속된다.”( (1948).) WCC는 IMC, 신앙과 직제, 생활과 활동 위원회가 지금까지 밝혀온 바와 같이, 교회가 가지고 있는 예언자적 사명을 감당하므로 이 세계를 섬길 수 있는 동시에 하나님의 자비를 보여 줄 수 있어야 한다.
-WCC의 최고 권위 기관은 총회이다. 총회 폐회 기간 중에는 중앙위원회(The Centural Committee)가 권위 있는 대리자로서 12개월 또는 18개월 단위로 회집한다. 중앙위원회는 총회가 선출한 회원들로 구성한다. 형식적인 의미에서 WCC는 서구의 민주적인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총회의 모든 회원인 회원과 중앙위원회의 위원들은 한 표씩을 가지며, 다수결에 의해 문제가 결정된다.(그러나 WCC의 수뇌부가 굉장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것에 유의하는 것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여기에서 의사일정을 결정하며, 계획을 전진시킬 협의회들을 주도하고, 주제를 상정하며, 예비 자료를 위탁하고, 저자를 선발하며, 그리고 일반적으로 큰 기구의 주요 임원들이 사용할 수 있는 방법들을 채택하기 때문이다.) 특별한 상황에서는 최고 실행임원인 WCC 수석총무가 자신의 이름으로 발언할 수도 있다.

돌이켜보면 전후(戰後) 세계의 암담한 현실 속에서 WCC가 수행한 사업들은 높이 평가할만한 것 들이다. 그것은 기독교의 본연의 자세인 섬기는 자의 자세를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교운동으로 시작된 WCC가 오늘날 그 관심이 변화된 듯한 인상을 주어 비판을 받고 있다. 에딘버러는 본래 선교를 위해서 모인 회의였으며, 일치를 위한 WCC의 모든 제반 업무도 그 목적이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인 상황의 호전이 아닌 선교를 위한 일치가 일차적인 관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오늘의 선교신학자들의 비판이다. 이제 오늘날 일어나는 여러 가지 오해와 비판을 제거하고, 많은 교회들로 하여금 세계교회협의회에 호응하도록 하기 위해서, 세계교회협의회가 노력해야 할 몇 가지가 있다;

-협의회의 본질을 분명히 천명하는 것(to clarify the nature of the council)
-신앙고백적 충성과 에큐메니칼적인 충성 사이의 올바른 관계를 정립하는 것(to find the right relation between confessional of the ecumenical loyalties)
-협의회가 진실로 전세계적인 협의회임을 명백히 하는 것(to manifest that the council is truly a world council)
-현대세계의 구체적 증인으로 함께 임무를 수행하기를 배우는 것(to learn to bear together concrete witness to the modern world)
-일치와 에큐메니칼 운동의 독립을 유지하는 것(to maintain the unity and independence of the ecumenical movement)(Rouse, A History of the Ecumenical Movement, 1517-1948, 722-3.)

그러나 암스테르담 총회 이후 WCC의 선교론은 복음주의 선교관에서 지나쳐 이른바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의 신학을 형성하게 된다. ‘하나님의 선교’ 신학이 등장하게 된 배경은 다음과 같다;

(1) 제 2차 세계대전 후 독일이 전 세계 모든 선교지에서 철수하게 되자 전통적인 선교가 어려워지게 되었고, 더욱 1949년 중국의 공산화는 세계 최대의 선교지를 상실케 했다. 그러자 해외선교 외에 새로운 현장(現場) 선교의 개념이 호소력을 갖게 되었다. (2) WCC와 IMC의 선교학자들이 점차 보편구원설(Universalism)의 경향성을 보이게 되었기 때문에, ‘오직 예수 이름으로만’ 구원 받을 수 있다는 복음의 핵심이 깨어지게 되었다. (3) IMC 지도자들은 전 세계 모든 곳에 교회가 이미 충분히 세워졌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해외 선교의 필요성이 줄어들게 되었다. (4) 서구 기독교가 비기독교 세계에 대해 식민주의와 양차(兩次) 대전에 대해 갖는 죄책감 때문에 좀 더 적극적인 선교를 주저하였다.

그래서 결국 과거와 같은 공간적 및 양적 교세 확장적인 선교사상을 거부해야 하며, 개인의 개종과 구령(救靈)만을 최고로 삼는 전도나 신조를 피해야 하며, 혹은 개교회 중심과 개교파 중심의 선교사상과 운동을 지양해야 한다는 취지 아래, 교회의 선교가 하나님의 선교로 대치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선교’에서는 선교란 근본적으로 교회의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이라고 본다. “세상 속에서 구원의 선교를 성취하는 것은 교회가 아니다. 그것은 성부 하나님을 통해 역사하는 성자와 성령의 교회를 포함하는 선교이다.”(Jürgen Moltmann, The Church in the Power of the Spirit: A Contribution to Messianic Ecclesiology (London: SCM Press, 1977), 64.) 그러므로 선교란 세상을 향한 하나님으로부터의 운동이라는 것이다. 교회는 선교를 향한 하나의 도구라고 여겨진다. 다시 말하면 선교가 있기에 교회가 존재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랑을 샘솟게 하는 분이기에, 선교에 참여한다는 것은 곧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 운동에 참여하는 것을 말한다.(David J. Bosch, Transforming Mission (Maryknoll: Orbis Books, 1991), 389–90.) 따라서 교회의 선교는 곧 하나님의 선교이며, 교회는 그 소명과 본질상 선교적이다. 결국 ‘교회는 선교’라는 말이 되는데, 이것은 일반적으로 복음주의에서 말하는 교회의 선교적 과제 또는 선교적 책임이라는 내용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이러한 내용의 ‘하나님의 선교’는 오늘날 세계교회에 큰 영향을 준 것이 사실이며, 이 신학은 이른바 행동신학(doing theology)의 기초를 제공하였다. 이러한 입장은 ‘하나님-교회-세계’라는 전통적인 질서를 ‘하나님-세계-교회’로 바꾸어 놓는 것으로서 결국에는 보편구원설과 상황화신학의 전제가 되기 마련이다.